- 6
우리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머그컵을 앞에 두고 말이 없었다. 옆에 앉은 우지호는 저가 회사를 잘린것 마냥 고개를 숙인채 두손을 모아 잡고있었고, 우리는 약속을 한 것 마냥 그냥 가만히,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회사는 어떻게 할거야. 그냥 이대로 그만 둘거야?"
"그럼. 뭘 어떻게 해. 이미 사표쓰고 도망 나온걸."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해?"
"맞아. 포기야 그만 할거야. 너를 질투하는 것도 혼자하는 경쟁도 지쳤어 이제"
"...난..!"
"알아. 나 혼자 바보같았지. 대단하신 우지호에게 감히."
나의 말에 우지호는 짜증스럽게 푹 한숨을 쉬었다. 방 안 가득 한숨이 가득히 퍼진다. 그는 지금 화를 내는게 아니라 걱정을 하고있는거다. 그냥 표정만 봐도 알겠다 이제. 그러고 나니 왠지 더이상 웃고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괴롭게 짓이겨진 그의 눈썹을 손으로 문질러 주었다. 그만 표정 풀어.
"웃어봐."
"뭐?"
"웃어봐. 항상 웃었잖아. 뭘 새삼스럽게"
"허...너 진짜 "
"어서, 그 동안 보고싶었으니까."
그가 어색하게도 웃는다. 매마른 입꼬리를 더듬더듬 끌어올려 웃는다. 나를 보기 힘겨워보이는 그의 눈이 느리게 감겼다 떠짐을 반복한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와 모락모락 오르는 연기. 말라버린 그의 입술이 부조화스럽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웃고있는 그의 입술에 가만히 눈을 감아 입술을 짧게 맞댔다 떼어냈다. 놀란 표정.
"...."
"좋아. 좋아 너. 처음부터 좋았어."
"너..."
"어떡하지 우리 이제?"
뭘 어떡해. 하고 말하는 것같았다 우지호의 표정이.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또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지호가 내게 키스했다. 영화같은 로맨틱한 순간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의 입술이 닿고 눈을 감으니 확실히 이 공간에 단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고, 그가 감싼 왼쪽 뺨과 목덜미가 뜨거웠다. 그리고 매마른 그의 입술 때문에 약간 아팠던 것 같다.
-
"그래서 우지호랑 같이 산다?"
"알면서 뭘 물어."
"야 솔직히 나는 둘이 이럴 줄 알았거든"
박경은 여전하다. 이럴 줄 알았느니 어떻느니 하며 떠들어 대는 모습에 한 숨이 푹 나왔다.
경이는 내가 퇴직서를 부장님의 면상에 날려준 후 정확히 한달뒤에 나를 따라 회사를 그만 뒀다. 그 날 밤 이 더러운 회사 때려 치겠다 어쩌겠다 술에 취해 전화가 왔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것 까지는 몰랐다. 아무튼 박경은 회사를 그만 둔 뒤, 내가 하는 작은 카페에 매일 매일 와 공짜 커피 마시펴 죽치고 앉아있다 가곤 한다. 뭐 무슨 뭘 준비하고 있다는 것 같긴 한데 내가 보기엔 그냥 우리 카페 알바생만 하루종일 괴롭히다 가는 것으로 밖엔 안 보인다. 아무튼 박경은 여전하다.
"뭐가 이럴 줄 알아?"
딸랑하고 문에 달린 방울이 소릴낸다. 동시에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들어오는 우지호다. 벌써 퇴근시간 이라니,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한창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니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그냥 배고프면 밥먹는거고 해뜨면 문열고 해지면 문 닫는거다. 물론, 마감은 우지호의 퇴근시간 뒤다.
"몰라, 박경 얘 또 와서 이러고 있다? 완전 민폐야"
"야 너는 친구가 귀찮냐? 심심한거 놀아주러 왔더니"
"네가 어쩌다 한번 오냐. 매일 오잖아 매일!"
박경과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에 그가 하핳하핳ㅎ 하며 웃는다. 저 웃음소리 만큼은 항상 놀랍다. 예전에 회사에서 그는 그저 씩 하고 미소짓 거나, 말아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거나 해서 전혀 몰랐는데, 그와 사귀고 난 뒤에야 그의 진짜 웃음을 알았다. 처음 들을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이제는 뭐... 조금씩 적응 중이다.
"박경. 너 집에 안 가냐."
"워... 이제 지 왔다고 나 보내는거 봐라. 웃기는 새끼야 진짜."
"빨리 가버려! 나도 가게 문 닫고 집에 갈거야 너때문에 피곤해"
"커플이 쌍으로... 솔로 서러워서 살겠냐? 에이씨 짜증나...꼴보기 싫어서 간다."
투덜거리며 매고왔던 가방을 도로 들고 밖으로 나간다. 딸랑. 하며 가게가 그를 배웅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린 마주보며 웃는다. 우지호와 나.
"오늘은 어땠어, 부장님이 또 지랄해?"
"지랄이 뭐야. 그래도 부장님인데."
"뭐 어때. 이제 내 상사도 아닌데."
"맞네. 뭐, 똑같지 그 분 성격이 어디 가셔?"
으으 하고 기지개를 켜고 나를 마주 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너무나도 예쁘다. 열쇠 줘. 진짜 퇴근하자. 곱게 핀 손바닥 위에 열쇠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을 잡는다. 가자. 하고 이마에 가볍에 키스하는 그에게 미소지었다. 그에게 느끼던 열등감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지호와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내가 너랑 이렇게 손잡고 걷게 될 줄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알았는데?"
"뭐? 거짓말. 우리한테 그럴만한 순간이 없었는걸."
"거짓말 아니야. 입사하고 처음 너랑 같은 부서에 배정 됬을 때부터 난 알았는데?"
그때 부터 좋아했어, 너. 잡은 손을 꼭 잡으며 말한다.
"가자."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