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번 경험한 상황이었지만, 체육대회는 정말이지 일분일초가 시끌벅적하고 정신없고 어지럽다. 교실로 들어서기 전 화장실에서 반끼리 맞춰입은 하얀 과티를 입고 거울 앞에서만 10분째 나가길 망설이고 있었다. 난 분명 m사이즈를 시킨 것 같은데, s사이즈를 받았다. 팔을 조금만 들어올려도 배꼽이 보인다. 더울까봐 가디건이나 남방은 챙겨오질 않았는데.. 숨을 흡- 들여마시고 배에 힘을 주었지만 이대로 하루종일 버틸 수도 없을 것 같고, 집에 갔다올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어느새 들어온건지 부과대가 내 옆에 서서 손을 씻고 있었다. ' 과티가 맘에 안드시나봐요. ' 치어리더 활동으로 아이돌이 입을 법한 의상을 입은 부과대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팔을 만지작거리며 손을 저었다. 사이즈와 과티를 수령하는 것은 모두 부과대가 해주긴 했다만 말을 섞는 것은 썩 내키진 않았기에 아무 말도 않았다. 부과대는 손을 털고 내 얼굴 밑쪽, 아마 반티를 보는 것 같다. 그러다 휴지로 손을 닦으며 나가면서 ' 사이즈 잘 맞네요 뭘. ' 라 말했다. 나는 떠나간 부과대의 잔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역시 일부러 그런거구나. "
19
사람 하나를 몰아세우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때 까진 ' 너 왕따 당해본적 있어? ' 하는 물음은 내 마음에 스크래치 하나 낼 수 없는 힘을 가진 질문이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왕따를 당해본 적이 있는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내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듣듯이 했으니까. 왕따던 아웃사이더던, 이 한 사람을 위해 아웃사이더로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주변인들은 너무나도 많다. 마음을 먹지 않고 편에 서지 않는 것 만으로도 가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딱히 얼굴을 마주하고 귀찮게 뭐라 내세우거나 물리적 가해를 하지 않아도 핸드폰 하나만으로 내가 확실히 어설프게나마 믿고 있던 이 무리 안에서 ' 겉돌고 있구나. ' 를 느끼게 해주기 딱 좋다.
내게 있어 첫 경험은 대학교 1학년 때다. 평소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있는 단톡 방에서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진을 올려대며 '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 ' , ' 나 저거 스티커 붙여서 올려줘. ' 하며 sns 에 어떤 사진을 올릴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이 단톡을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멍청하게 고민할 뿐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내가 버려진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라. 무서운 감정을 갖고 핸드폰을 끈체 TV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내가 얘네한테 무슨 잘못을 했지? 왜 나한테 이러는거지? 하며 내가 잘못했을 법한 일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 난 정말 잘못한게 없는데. ' 하는, 이유없이 왕따를 당한다는 소름끼치는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 내가 너한테 너무 심했던 것 같아. 미안해 여주야.. "
" 아니야 정우야. 내가 더 미안해.. 내가 진짜 잘할게. 그 선배 번호 차단했어. "
" ...내가 진짜 나쁜놈이다. 너 울게하고. "
그 일이 있은 직후 나는 바로 정우에게 전화를 걸며 택시를 잡아탔다. 연결음을 들으며 기사님께 정우가 자취하는 동네를 가달라고 다급히 말했고, 결국 전화를 받지 않는 정우에게 미친듯이 문자를 보내며 택시에서 내렸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뛰느라 차에 치일뻔 했고, 골목을 미처 살피지 않고 뛰다 한 아주머니와 부딪혀 욕도 먹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정우는 그만큼 내 우선순위 중에서도 맨 첫번째였기 때문이다. 정우의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이미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먼저 문부터 두드렸다. 길었던 통화음과는 달리 주변 이웃들이 신경쓰인 탓인지 문은 순순히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울며 정우에게 매달렸다. ' 정우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헤어지자고만 하지마. ' 싸늘했던 정우의 얼굴을 계속 보기가 두려워 정우의 품부터 찾았다. 일방적으로 셔츠를 부여잡고 울었다. 정우는 곧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 정우 앞에서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여서 그런건지 정우도 카톡으로 차갑게 이야기한 것,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행히 크게 싸움은 번지지 않았고 바닥에 앉아 정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라도 먹자는 정우의 말에도 한 순간에 정우를 영원히 잃을 상황에 놓인 충격이 가시질 않아 계속해서 정우를 눈에 담고 싶었다. 정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표정을 지었다.
" 맞다, 여주 너 애들이랑 사이 안좋아? "
" 응? 왜? "
" 아니.. 사실 나한테 너 그 선배랑 있다고 알려준거 이슬이였어. "
정우의 말을 듣고 무언가 내 머리를 한 대 세게 친 것 처럼 멍한 기분이 들었다. 이슬이가? 나는 세 번 정도 재차 물었고 정우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정우와 헤어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슬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슬이가 전화를 받자마자 속으로 눌렀던 감정이 폭발했다. 다짜고짜 이슬이에게 ' 너 내가 선배님이랑 뭐가 있다고 생각한거야? ' 물었고, 이슬이는 내가 알던 이슬이와는 다른 말투로 내게 되물었다. ' 너 정우랑 헤어졌냐? ' 이슬이는 다른 사람들과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웠고 이 전화를 이슬이만 듣는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났다. ' 아니, 그래도 정우한테 말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거 아니야? 왜 알지도 못하면서 정우 오해하게 만드는데. ' 킥킥 거리며 웃는 이슬이는 정말 낯설었다. 내가 빠른이라 존대말을 쓰며 이슬이를 대할 때 제일 먼저 친구 아니냐며 편하게 해주었고 내가 유일하게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내가 갑자기 변한 것 같은 이슬이에 혼란스러워 할 때 이슬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 미친년이 지가 잘못해놓고 왜 이슬이한테 지랄이야. '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너무 놀랐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이슬이가 무어라 하려던 순간에 나는 더이상 전화를 이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이슬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것을 거부하자 두 번 정도 더 오다가 말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려대는 카톡소리에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미리보기를 통해 확인한 한 개의 카톡을 읽자마자 헤아릴 수 없는 충격감에 입을 틀어막았고 이 일이 돌이킬 수 없을 내 인생의 커다란 사건이 되리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너 이미 그 선배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다 소문났어 ㅋㅋㅋㅋ 근데 뭘 아닌척해;; - 이슬이 ]
20
작년에는 모든 종목에서 패배를 했던 우리 과인데, 이번 학번 애들이 패기에 넘쳐서 그런지 모든 종목 예선을 통과했다. 우승은 바라지도 않았던 상황이라 예선통과에 벌써부터 잔치집 분위기였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구석을 찾아 홀로 앉아있었다. 경기장에서 예선 승리에 신이 나 소리를 질러대는 쉬시를 보며 피식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편과 악수를 할 때 마저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 민형이가 잡아 끌어다 세우는 모습에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예선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에 휩싸여 쉬시와 민형이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 속을 뚫고 쉬시가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너무 놀라 주춤거리며 일어났고 쉬시는 내 손을 잡고 ' 누나 나 이겼어~ ' 하며 어린 아이 마냥 좋아했다.
" 누나, 내가 슛 하는거 봤어? "
" 으.. 응. 봤지 그럼. "
" 나 진~짜 멋있어! 그치? "
" 맞아, 쉬시 멋있어. "
내 말에 쉬시는 두 팔을 들어올리며 더 신나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많이 신나해서 약간 움찔하긴 했지만 해맑은 쉬시 모습을 보니 오전에 불편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듯 했다. 쉬시는 신나하는 것도 잠시 멈춘체 배가 고프다며 내 손을 덥석 잡고 경기장을 나가자고 했다. 순간 놀라서 손을 빼려했지만 쉬시는 꽉 잡고 경기장 출구를 찾고 있었다. 행여나 누가 볼까 나는 쉬시의 손을 다독이며 자연스럽게 손을 놓고 저쪽에 보이는 출구를 가리켰다. 반 사람들과 다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내 말에 쉬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 왜? ' 라 받아쳤고 나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아 쉬시를 따라 경기장을 나왔다.
" 뭐 핫도그 같은 거 안먹을래? 내가 사줄게. "
" 진짜? 그럼 쉬시 저거 먹을래. "
바로 앞에서 팔고있는 닭꼬치를 가리킨 쉬시는 어느샌가 달려가서 하나를 집어 먹고 있었다. 내게 하나를 권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그대로 자기 입으로 넣는 쉬시를 보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쉬시도 그런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쉬시는 닭꼬치 2개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고 우리는 다시 도시락을 먹기위해 과 부스로 향했다. 부스에는 벌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쉬시와 나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빈자리를 찾았지만 이미 테이블엔 사람들이 다 앉아있어서 같은 테이블에 껴서 먹어야 했다. 내가 망설이는 틈에 쉬시는 민형이를 발견하고선 내 어깨를 살짝 감싸며 그곳으로 갔다. 민형이가 있는 테이블엔 같이 농구를 뛰었던 남자동기와 부과대,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같은 반 여자동기가 있었다. 인사가 오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내 눈은 도시락에만 꽂혀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리고 있었다.
" 아 맞아, 선배 줄넘기 말고 다른 종목 나가는거 있어요? "
" 어? 아니.. "
" 잘됐다, 그럼 짝피구 나가요 같이. 지금 지예가 다리를 접질려서 피구를 못 나가거든요. "
" 아... "
" 선배 나가기 싫으시죠? 제가 대신 나갈게요. 나한테 진작 말하지 내가 나갔을 텐데 민형아. "
" 선배가 안 한다고 안했잖아. "
" 선배 안 할걸? "
" 할게요. "
아마 부과대는 본인이 피구를 나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부과대 말대로 나는 피구를 나가자는 민형이의 말에 어떻게 좋게 거절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내 대신 나의 의사를 결정하는 부과대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 순간에 부과대에게 맞받아치려 내린 결정이긴 했다. 말하고나서 바로 후회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대답을 듣고 땀에 젖은 머리칼을 정리하다가 활짝 웃는 민형이를 보니 잘 내린 결정이라 믿었다. 쉬시 또한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부과대는 숟가락을 잘근거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쳤을 때 남은 학교생활이 조금은 불편할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바로 있을 피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짝피구의 짝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정해졌는데 나는 민형이와 짝이 되었다. 쉬시는 발야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없었고 민형이라도 있어 다행감을 느꼈다. 민형이는 게임 시작 전에 뒤를 돌더니 주먹을 내밀었고 나는 살짝 그러쥔 주먹으로 콩 민형이의 주먹을 쳤다. 그러자 민형인 웃으며 ' 화이팅. ' 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고 양팀의 과 사람들이 응원을 시작했다. 긴장감에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갔다. 처음엔 민형이를 잡지 않고 도망다녔지만 머리 옆으로 휙 소리나게 공이 지나간 후에는 바로 민형이의 티셔츠를 붙잡았다. 정신없이 도망만 다녔는데 어느새 상대팀을 모두 없앤걸 확인했고 진짜 이긴건가 의심할 때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다 나를 와락 끌어안는 민형이에 정말 우리 팀이 이긴걸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금방 공에 맞아 탈락할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참가한 게임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덩달아 민형이를 따라서 방방 뛰어댔다.
" 내가 뭐랬어, 난 선배가 잘 할줄 알았어요. "
" 에이- 제가 뭘 했다고.. "
" 잘 했다니까요? 선배 가기 전에 잠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
" 아, 네! "
민형이는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려 반으로 들어갔고 나는 건물 밖에 앉아서 민형이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옷을 갈아입는 것 치곤 조금 걸린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반으로 가볼까 고민했다. 그 때 지나가던 부과대가 나를 발견하더니 그냥 지나치지 않고 ' 선배, 여기서 뭐하세요? ' 물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혹시 민형이가 나오지 않을까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가, 민형이를 기다린다고 답했다. 부과대는 웃음을 잃지 않은체 옆을 돌아 친구들과 무어라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러곤 다시 나를 보며 ' 민형이 아까 건물 뒷편으로 가던데, 선배 못봤나봐요. ' 그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부과대 옆에 있던 친구가 ' 아까 그 쪽으로 뛰어가던데. ' 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고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한체 자리를 벗어났다. 왜 그 쪽으로 갔지? 생각하며 그들의 말대로 건물 뒷편으로 가는데 생각해보니 이쪽은 흡연구역이 있는 곳이었다. 민형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걸로 아는데.. 하며 그곳에 다다르자. 4-5명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다 나를 발견했다. 흡- 코 끝을 찔러대는 매캐한 담배냄새도 그렇지만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나는 바로 뒷걸음질을 쳤다.
" 누구 찾으러 온거야? "
" 아.. 아니. 그게- "
내게 말을 건 아이는 정우와 가장 친한 친구 경민이였다. ' 정우 찾으러 왔어? ' 경민이의 말에 나는 코를 가린체 고개만 저어댔다. 아랑곳 않고 담배를 피우던 경민이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내게 다가왔다. ' 복학하고 나선 별 일 없지? '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부를 묻는 경민이를 보니 옛날 생각이 잠시나마 났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정하고 가끔가다 웃겨주는 친구였는데. 나는 고개만 숙인체 응.. 작게 대답했다. 경민이는 ' 김정우 어딨는지 안 궁금해? ' 물었고 천천히 걷던 나는 제자리에 멈춰서 경민이를 바라보았다. 경민이는 나를 한 번 보더니 ' 보건실에 있는데, 가봐. ' 툭 던지듯 말을 하곤 다시 뒤돌아 갔다. 보건실? 어디 다쳤나? 어느새 보건실의 위치를 생각하며 학교를 둘러보던 난, 내가 뭐라고 정우를 걱정하는건지 스스로가 어이없었다. 민형이가 있을 체육관에 가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보건실 표지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잠시 작은 창 틈으로 정우가 있는지 기웃거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커텐에 가려진 한 침대로 다가가려다 ' 내가 여기서 뭐하는거야. ' 정신이 들었고 결국 돌아서 나가려는데 커텐이 젖혀지며 수척해보이는 정우가 나타났다. 정우는 날 보고 놀랐는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정우를 보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너 어디 아파? "
" 아.. 아니. 너야말로 아픈것 같은데, 어디 다쳤어? "
" 나.. 아니.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
평소와는 달라보이는 기운 없는 정우의 얼굴에 홀린 듯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단순히 머리만 어지러워 보이는 게 아닌 것 같다. 입술에는 피딱지가 가라 앉았고 눈 옆에도 미세하게 멍이 아물어지는 표가 났다. 정우는 내가 이곳저곳을 살피는 걸 알았는지 머리칼로 얼굴을 가리려 했다. ' 설마 나보러 온거야? ' 힘없는 정우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침대시트만 만지며 대답하길 망설였다.
" 그런데 너 얼굴이 왜그래. 누구랑 싸웠지. "
" 응. "
" ...다치지 말고 다녀. 상대가 먼저 시비걸어도 좀만 참고.. "
" 참았더니 이렇게 된거잖아. "
" ..... "
" 참아서 너랑 이렇게 남보다도 못하게 됐잖아. "
" .... "
정우는 분에 찬듯 나를 보며 말했다. 도대체 누구랑 싸운건지 가늠도 못하는 상태에서 정우는 답답한듯 머리칼을 헤집으며 탄식했다. 낮게 욕을 읊조리는 정우를 보면서도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 그 새끼가 아직도 학교를 다니는게 진짜.. 하, ' 정우는 잠시 내 반대편을 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 그 새끼도 복학했어 김여주. 알아? "
" .... "
" 죽여도 모자랄판에 학교를 같이 다닌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