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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 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했다. 언제나 푸름. 뜻도, 어감도 참 예쁜 단어. 남들이 단풍 구경을 갈 때 나는 집앞의 상록수를 구경했다. 계절에 물들지 않는 나무라니 멋있잖아. 진녹색의 잎들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편안해진다. 특히 오늘처럼 햇살이 따뜻한 날이면 더.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점점 무거워졌다. 나른한 오후의 단잠 속에서 펼쳐지는 꿈들은 항상 달콤하다. 잔디 덮인 언덕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거리면서 코끝을 간질이고, 또...


"-라고."


...응?


"김여주 일어나라고! 강의 들으러 안 가?!"


...아, 젠장. 이런 소음은 계획에 없었는데 말이다.


[세븐틴/김민규] 어른이 되면 01 | 인스티즈

어른이 되면

철없었던 너와 나의 첫 번째 봄

Episode 01.

*


김민규는 오늘도 바쁘다. 자기 강의 시간 체크하랴, 내 스케줄 챙기랴... 아마 김민규 아니었으면 자느라 출석일수도 다 못 채웠을 거다. 당연히 재수강이었겠지. 그 깐깐한 장 교수님 수업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민규한테 감사하곤 한다. 때와 장소 안 가리고 잠드는 내 고약한 버릇 때문에 김민규도 어릴 때부터 고생깨나 했었다. 지금도 봐, 사람 많은 카페에서도 그렇게나 쉽게 잠들었던걸. 한창 사람 많을 시간대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다.


"민규야, 나 다음 수업이 뭐였더라..."

"손 교수님 보육학개론."

"아, 맞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민규가 기겁한 목소리로 부른다. 야 잠깐만, 그 꼴로 가게? 그 말에 나는 또 어리둥절해지고. 내 꼴이 이상한가? 괜찮은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좀 부스스하게 뜬 것도 같아 손가락으로 대충 빗었다. 김민규가 한숨을 푹 내쉬고 트레이 위에 놓인 냅킨 한 장을 집어든다.


"립스틱 다 번졌어."

"...아."


틱틱거리는 말투와는 다르게 입가를 닦는 손길은 다정하다. 섬세한 손끝이 장점이라면 장점인 김민규였다. 하긴 그래서 미대 다니겠지.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 립스틱 바꿔야 할 것 같다. 너무 잘 번진다니까. 엎드려서 한숨 자고 일어나기라도 하면 피에로처럼 입 주변이 온통 붉게 번져 있다. 김민규를 올려다보며 살짝 웃어보이니 질색한 표정으로 손을 내린다. 네가 해 이제. 얼떨결에 김민규가 쥐어주는 냅킨을 받아든 내 입에서 무의식 중에 투덜거림이 흘러나왔다.


"아 왜. 이왕 할 거면 다 해 주지."

"가방이나 똑바로 메세요."

"네네..."


입가를 대충 닦고 자꾸만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을 고쳐 멨다. 시계를 흘끗 보니 꽤 여유가 있다. 간만에 천천히 걸어갈 수 있겠네. 화장을 대충 수정하는 동안 김민규는 카운터에서 음료 한 잔을 더 주문한다. 민규는 다음 수업 뭐더라. 저번에 보니까 막 크로키 같은 것도 하고 그러던데. 순수미술도 아니고 시각디자인과인데 크로키 같은 걸 하나? 의문은 끝도 없이 가지를 친다. 미술은 나로서는 너무 생소한 과목이다. 고등학생 때 민규가 수행평가로 제출했던 그림들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또 멍 때리지."

"남이사."

"가면서 마셔. 마시고 잠 깨."


음료를 받고 돌아온 김민규가 내 볼에 차가운 얼음컵을 가져다댄다. 아 차거! 순간적으로 짧은 비명이 튀어나온다. 잠 깨는 효과는 탁월한 것 같다. 구름처럼 몽실하게 올라간 휘핑크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위에 예쁘게 뿌려진 황토색 시럽도.


"뭔데?"

"캬라멜마끼아또. 너 쓴 거 못 마시잖아."

"오... 센스 있다 너."

"난 그거 달아서 못 먹겠던데."

"마셔볼래? 사줬으니까 첫 입 양보할게."


김민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빨대를 입에 문다. 휘핑크림의 높이가 아주 약간 낮아지는 게 보였다. 캬라멜마끼아또 다 마시고 퍼먹는 휘핑크림만큼 맛있는 게 없는데. 단것의 황홀함을 모르다니 불쌍한 김민규. 차마 입밖으로는 낼 수 없어서 속으로나마 측은해한다. 아니나 다를까 김민규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으, 이거 너무 달아..."

"싫음 말고."


나만 마시지 뭐. 빨대를 타고 올라오는 단맛은 정말이지, 짜릿하다. 시럽이나 휘핑크림은 혀를 온통 달게 만들어주거든.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하기도 하고.


"그냥 마셔?"

"응?"

"아니, 빨대..."

"빨대? 아, 이거."


내가 김민규랑 빨대 같이 쓴 적이 없었나?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저런다. 가끔 김민규가 저렇게 사소한 것에 반응하는 걸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평소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아니 안 했을 형용사였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입밖으로 내뱉어도 될 것 같다.


"우리 민규 귀여워 아주~"

"미쳤냐?"

"우와 표정 봐. 너무한다 너."


귀엽다고 하기가 무섭게 살벌해지고 말이야.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린다. 김민규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너 늦는다, 이러다가?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본다. 어느새 십 분이 지나 있다.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또 헐레벌떡 뛰어가게 생겼다. 손 교수님 지각하면 엄청 눈치 주는데.


"나 갈게! 이따 봐!"

"아 맞다, 윤초연이 저녁 먹자는데?"

"엥? 갑자기?"

"중요하게 할 말 있대."


그러고 보니까 초연이도 못 만난 지 꽤 된 것 같다. 저녁 좋지. 뭐 먹자고 할까. 치킨에 맥주? 삼겹살에 소주? 스테이크에 와인?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데 김민규가 내 머리에 손을 툭 얹는다. 넌 어떻게 딴생각 하는 게 이렇게까지 티가 나냐... 김민규의 중얼거림에 발끈해 입을 여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린다.


"수업 끝나면 전화해, 건물 앞으로 갈게."


...뭐, 반박은 다음번에 하면 되지.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몸을 돌린다.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씨도 꽤나 좋은 것 같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온도. 적당한 바람에 딱 좋은 햇빛.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까 초연이도 오랜만에 만나고. 오늘은 아무래도 운세가 좋나 보다.


*


김민규는, 윤초연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친구다. 휙휙 넘어가는 피피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며 어렴풋이 가늠해본다. 내가 민규랑 몇 년 됐더라. 초등학교 오 학년 때 처음 만났나? 그럼 아마도 올해로 11년째인 것 같다. 엄청 오래됐네. 일 년만 있으면 김민규랑 처음 만났던 해의 띠가 돌아온다. 그때가 무슨 해였지, 쥐였나 돼지였나...


"김여주 학생?"


초연이는 뭐하고 지내려나. 대학도 잘 갔으니까 과외 같은 거 할 수도 있겠다. 하긴 윤초연 공부도 잘했으니까. 시험이 끝나면 우리는 항상 두 갈래로 나뉘었었다. 집에 가서 자거나 돌아다니면서 놀거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윤초연은 전자였고 나랑 김민규는 후자였다. 공부한다고 며칠 밤을 새우니까 시험이 끝나도 놀지를 못하고...


"김여주 학생!"

"...네?!"

"70 페이지 제시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는데요."

"아..."


급하게 전공책을 넘겼다. 70 페이지라고? 언제 진도를 이렇게 나갔지? 교재에 쳐진 밑줄은 21 페이지에서 멈춰 있다. 허둥지둥 페이지를 넘기는데 손 교수님이 한숨을 쉰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초리가 날카롭다. 으, 저 눈만 보면 간이 쪼그라든다니까.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여주 학생은."

"..."

"다른 생각 하고 있는 티가 굉장히 많이 나는 편이네요."

"...죄송합니다."


주의하세요, 라는 손 교수님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다. 김민규랑 똑같은 소리네. 아니, 지적을 할 거면 수업이나 좀 재밌게 하란 말이야. 이봐요, 당신 목소리가 어떤지 알고는 있냐고요. 고카페인을 아무리 들이켜도 삼십 분 안에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란 말야. 딴생각이 어디야, 자는 것보다야 낫지. 속으로 마구 투덜거리면서도 쪽팔림이 밀려온다. 시험 망치면 백 퍼센트 재수강행일 텐데.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재수강 안 하려면 열심히 들어야... 하는데...


[세븐틴/김민규] 어른이 되면 01 | 인스티즈


...아, 그런데 이건 반칙이잖아. 고개를 돌린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치만 창밖 풍경이 너무 예쁜걸. 봄이라는 계절은 정말이지 너무하다. 예쁜 풍경에 좋은 날씨에. 이러니까 춘곤증 같은 게 생기는 거지. 수업에 집중하느냐 마느냐의 내기는 애초에 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 결정했다. 중간고사 따위 말아먹어도 기회는 세 번이나 남아있다고. 공부는 벚꽃이 지면 시작하는 거다. 교재에서 눈을 뗀다. 기껏 손에 쥐었던 형광펜을 다시 내려놓았다. 뭐, 한 번쯤은 괜찮겠지...


"저기요. 수업 끝났어요."

"...헉."


-라고 생각했는데.

눈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새 사람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다. 분명히 난 벚꽃을 보고 있었는데. 손 교수 그 인간 최면술사가 분명하다. 레드썬, 당신은 이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이딴 거 필요없이 목소리만으로 사람 재울 수 있는 최상급 실력의 최면술사. 교재를 정리하고 있던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내쉬며 혀를 끌끌 찬다. 아무래도 제대로 찍힌 것 같다. 이번 학기 망했네. 이러다 진짜 재수강 각 세우면 어떡하지. 아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데 그런 생각하지 말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누군가 형광펜 한 자루를 건넨다.


"이거 아까 떨어뜨리셨길래."

"아, 감사합니-"


...

어?


"승철 선배?"


놀람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선배가 웃는다. 형광펜을 손에 쥔 채로. 저 사람 최승철 맞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꿈이라기엔 배경이 강의실이다. 내가 강의실이 배경인 꿈을 꿀 리가 없잖아. 그리고 손 교수님의 저 한심하다는 눈빛도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아니, 이게 아니지.


"선배 언제 복학했어요?!"

"얼마 안 됐어. 아는 애들 몇 없을걸?"

"소리소문도 없이? 선배 복학하면 학교에 소문 쫙 날 줄 알았는데."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 이런 반응 궁금했거든."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최승철다운 이유라서 그냥 입을 다문다. 생각해보면 선배가 2년을 쉬었으니까 지금은 나랑 학년이 같을 거다. 그럼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지. 같은 학년이니까 선배는 아니고. 오빠...는 차마 입밖으로 못 꺼내겠고. 역시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르는 게 나으려나.


"선배 그럼 손 교수님 수업 들어오는 거예요?"

"응. 애들이 다 먼저 졸업해버려서 나 이제 왕따 됐어."

"에이... 선배가 친구가 없어봤자죠."

"너 날 너무 인기쟁이로 생각하는 거 아냐?"


최승철은 또 웃는다. 무표정일 때는 그저 부러운 얼굴이다. 하얗고 눈 크고 입술 빨갛고. 내 미적 기준이 되는 특징들을 모조리 지닌 얼굴. 그런데 저 사람이 웃으면 왜인지 경계가 허물어진다. 괜히 심장이 뛴다. 설마 아직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고백하자면 1학년 때 선배를 연애감정으로 좋아했던 건 맞는데, 지금은 이 년이나 지났단 말이다. 그때 여자친구 있었던 것 같은데. 어차피 안 될 연애는 꿈도 꾸지 말라고 배웠다. 받아든 형광펜을 꾹 쥔다. 타이밍 좋게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댔다. 보나마나 김민규겠지.


"여보세요?"

- 너 어디야? 수업 아직 안 끝났어?

"아니. 복학한 선배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 좀 하다가. 이제 내려가."

- 나 로비에 있어, 윤초연이 차 가지고 온대.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미안, 바빠 보이는데 괜히 시간 잡아먹었네. 선배의 말에 어설프게 웃어보인다. 내가 최승철이랑 같은 년도 졸업생이 될 줄이야. 새삼 신기하다. 김민규는 선배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에 한 번 소개시켜 줬던 적은 있는데. 선배랑은 가볍게 인사만 하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왔다. 아직도 심장박동이 빠르다. 덩달아 발걸음도 빨라진다. 아 진짜, 차라리 놀라서 이런 거였으면 좋겠네. 입술 사이로 얇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세븐틴/김민규] 어른이 되면 01 | 인스티즈

"...우와. 2년 전이랑 완전 똑같네."


어쨌든 확실한 게 있다면 절대 선후배 관계의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 그 정도일까.


*


"카페? 아니 그보다, 형 한국 들어온 거야?"

"응. 한 달쯤 됐나?"

"말도 없이? 너 집 가면 김민규 단단히 삐쳤다고 꼭 좀 전해줘."


김민규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홍길동이야 뭐야. 한 마디도 안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최승철은 군대 갔다왔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 인간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게 또 뭐냐고. 초연이는 녹두전을 젓가락으로 찢으면서 환하게 웃는다. 저 취향 진짜 어쩔 거야. 빈대떡에 막걸리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고. 뭐 싫은 건 아니니 괜한 트집은 잡지 않기로 했다.


"카페 언제 오픈하는데?"

"이 주 뒤."

"에엥? 한 달 전에 귀국했는데 오픈이 이 주 남았다고?"

"응. 원래 있던 카페 매입해서 간단히 개조만 한 거라 얼마 안 걸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말도 없이 호주로 떴던 윤초연네 오빠가 말도 없이 귀국했다. 그러고는 또 말도 없이 카페를 차렸다. 심지어 우리 학교랑 별로 멀지도 않은 곳에. 성격 한 번 특이하다니까. 유학도 커피 배우려고 간 거라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돌아오자마자 개업할 줄은 몰랐다.


"당분간 형 카페에서 살아야겠다."

"얼씨구. 신났어 아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 입가에도 살짝 웃음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 사실이니까. 고등학생 때 펑펑 울면서 배웅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절대 안 울 거라고 출발 훨씬 전부터 눈에 힘주고 있던 김민규는 마지막 포옹에 결국 눈물이 터져서 한 시간 동안이나 훌쩍거렸더랬다. 나랑 민규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얼싸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고 윤초연은 숨넘어가게 낄낄대면서 그 장면을 핸드폰에 고스란히 담았다. 내 인생에서 한 장면만 지울 수 있다면 나는 무조건 그때를 선택할 거고 그건 아마 김민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술잔이 계속해서 오갔다. 음주운전할 작정이냐며 기겁하는 내게 윤초연은 오빠 부르면 되지, 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주량이 센 편은 아니라서 평소에는 주의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 많이 풀어졌다. 초중고를 같이 나온 친구들이라 그런지 이렇게 술판을 벌이는 게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다. 물론 그런 어색함도 꽤나 매력 있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술에 취하면 귀소본능이 튀어나오는 윤초연이 먼저 일어섰다. 나 집에 갈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술집을 나가는 초연이를 그나마 덜 취한 김민규가 간신히 붙잡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에 앉은 윤초연 다음은 내 차례였다.


"야 김여주!"

"민규야 나 머리 아파..."

"우와 돌겠네. 나 혼자 뭐 어떡하라고."


여간 난처한 상황이 아닌 모양이다. 좀 자제할 걸 그랬나. 머리가 띵 울렸다. 이렇게 술 많이 마셔본 것도 오랜만이다. 술버릇이 고약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고래고래 소리 지르거나 우는 것보다야 낫겠지. 눈이 자꾸만 감긴다. 여전히 집에 가겠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초연이의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더불어 누군가랑 통화하는 것 같은 민규 목소리도. 간신히 뜨고 있던 눈꺼풀이 결국 내려앉았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


[세븐틴/김민규] 어른이 되면 01 | 인스티즈

"와아... 신나게들 마셨네."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반쯤 체념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김민규였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 민규가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머리 깨질 것 같아. 물 한 잔만 따라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 보여서 관뒀다. 나도 일말의 양심 정도는 있다고.


"차키는?"

"윤초연한테요... 야 일어나 봐..."

"...됐어, 내가 할게."


정한오빠가 애잔함이 잔뜩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바톤을 넘겨받는다. 이쪽도 자다 왔는지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말투도 나른하게 늘어지는 것 같다. 저 집안 유전자는 진짜 대단한 것 같다. 외모도 그렇지만, 정한오빠도 학생 때 윤초연 못지않게 성적이 좋았다. 대학도 잘 갔고. 수시로 붙었지만 수능도 평균 2등급대는 나왔다고 들었다.


"얘 또 엄마한테 엄청 혼나겠다."

"..."

"그치~?"


아무리 그래도 나더러 윤정한 동생을 하라면 단칼에 거절할 거다. 저 해맑은 표정 뒤에 대체 무슨 표정이 감춰져 있을지 감이 안 잡힌다. 언젠가 윤초연이 그랬었다. 우리 오빠 화나면 엄청 무섭다고. 그 이후로 정한오빠의 저런 표정을 보면 괜히 오싹해진다. 김민규도 마찬가지인지 눈동자를 데굴 굴리며 시선을 피하고 있다. 어쨌든 정한오빠는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윤초연을 일으키는 데 가볍게 성공했고 우리는 입을 딱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자 가자~ 나 피곤해 죽겠다 니들 때문에."


정한오빠가 차키를 흔든다. 저 오빠 목소리는 뭐랄까... 높낮이가 다양해서 가끔 들으면 노랫소리 같다. 끝을 길게 늘이는 버릇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꽤나 경쾌한 목소리에 맞춰 손끝에 걸린 차키가 짤랑거린다. 여전히 세상이 핑글핑글 돌아서 김민규 팔을 붙들고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아픈 것과는 별개로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지금은 아직 봄인데. 새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반은 지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 모르겠다. 그냥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내가 미래에서 살고 있지는 않잖아. 무책임한 말이라도 던져놓고 보면 나름 위로가 된다. 시동소리와 함께 눈을 꼭 감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가기 마련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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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8ㅁ8 글잡에 세븐틴 넘 어랜만인거같은 ㅠㅠㅜㅜㅜ 잘보구가욧~!!!! 민규....귀엽다....살뜰히 챙기는 민규..ㅠㅠㅠ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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