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가(大學緣歌)
캠퍼스에서 피어나는 첫사랑
01 : 불편한 선배
"와, 정국이 형 또 대전 올라왔네."
"몇 번째냐 이게. 이제 놀랍지도 않다."
우리 과엔 유명한 선배가 한 명 있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대학 선배 하나 갖고 뭘 그리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선배는 발에 채일 만큼 많고 많은 선배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존재였다. 선배의 유명세는 과를 넘어, 공대를 넘어, 캠퍼스 정체로 뻗어 나갔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기공 전정국'이란 이름을 모르면 아싸, 아니 그냥 아싸도 아니라 핵아싸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선배는 대전에 이름 올리길 무슨 집 앞 편의점 가듯이 했다. 올라오는 호칭도 다양했다. 기공 전정국 씨, 영화의 이해 뒷문 바로 옆에 앉으신 분, 학관 카페에서 아이스초코랑 츄러스 드시던 분, 까만색 레터링 후드 입으신 분 등등. 오죽하면 선배가 무슨 수업을 듣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알고 싶으면 대전을 확인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가끔은 선배가 지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날에는 '오늘 방시혁 교수님 수업 중간에 들어오신 남자분 누구신가요'라고 대전에 올라왔으니까.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학관 휴게실에서, 인문대 앞 벤치에서, 학관 카페에서 종종 선배의 이름을 듣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다수의 학생들에게서 선배의 이름이 언급되는 이유는 간다했다.
"근데 그럴 만도. 존나 잘생겼잖아."
"인정."
잘생겼으니까. 단순명확한 이유였다.
각이 살아있는 얼굴 골격에 담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소년과 청년의 경계를 넘나드는 얼굴은 길쭉한 기럭지와 합쳐지며 빛을 발했다. 길거리 어디서 마주쳐도 한 번쯤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대체 전정국이 누구냐며 역정을 내던 사람들도, 실물을 마주하면 그럴 만 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공부도 잘하던데. 너프 좀 필요한 거 아니냐."
잘난 얼굴로 캐퍼스 전제체 그 이름을 널리 퍼뜨렸다면, 과 내에서 이름값을 드높인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공대에서 보기 힘들다는 4점대의 높은 학점과 성적 장학금을 받은 전적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이 축구를 했던 남자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운동까지 잘한다고 한다.
사람이 이 정도로 능력치가 뛰어나면 인성에 하자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선배는 그렇지도 않았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선후배 상관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며 복학 직후에도 인싸 생활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딱히 결함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과 내에서 말이 안 돌 리가 없는데 그런 얘기는 아직까지 한 번도 들려온 적이 없었다.
이렇듯 대학 선배에 대한 이상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사람이다 보니 동기들과 있으면 선배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다. 남자애들은 대부분 선배를 부러워했는데 개중에 친한 애들은 정국이 형이랑 뭐 했다, 뭐 하기로 했다, 식으로 선배와의 친분을 자랑하기도 했고, 여자애들은 '대학 가면 이런 선배 있나요'에서나 등장할 법한 선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여튼 이렇게 남녀를 불문하고 호감을 얻는 그 선배가 나는 조금,
"야, 정국이 형 카톡 왔다. 밥 같이 먹자는데?"
"난 좋아."
"오케이, 김탄소 너는?"
"난 약속 있어."
"아 진짜? 그럼 내일 보자."
"응, 내일 봐."
불편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선배와 처음 만난 건 과 행사에서였는데, 첫인상은 오히려 굉장히 좋았다. 그 전부터 들려오던 전정국이란 이름에 나는 호기심을 품고 있었고, 실제로 나타난 선배는 '아, 그래서'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첫만남에서 선배는 취해 있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기도 했다. 선배의 친절함에 감동 받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나는 선배에 대해 좋은 인상을 유지했다. 과 사람들이랑 있으면 꼭 한 번씩은 선배 얘기가 나왔고, 그 나온 얘기들 중에 나쁜 것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했다.
그러던 내가 선배를 불편해하게 된 이유?
나와 뭔가 트러블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정국 선배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서,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나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냐.
선배는 어딜 가나 주목 받고 남들의 관심을 산다. 누구나 환상을 가지기 딱 좋은, 마치 청춘 영화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다. 나 역시 선배의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기울였고 그에 대한 동경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건 나와 선배 사이의 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선배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지 않는 이상 우리가 친해질 가능성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선배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배가 그런 사람들을 놔두고 평범한 후배에게 관심을 가질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언젠가부터 선배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인물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나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선배가
나는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