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숨도 못 자고 한 시간 일찍 출근 준비했어
어차피 회사에서 볼 얼굴이지만 둘이서 이야기하기 숨 막힐 거 같아서 안 마주치려고 일찍 출근하기로 하고 얼른 준비함
혹시 김종대가 빨리 올까 급하게 준비하는데 신입사원이라 그런지 신경 쓸 게 참 많음 ㅋㅋㅋㅋ
원래 아침은 안 먹는데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서 아침이라도 먹을까 하다가 집 앞에 김종대 있으면 큰일 나니까 그냥 오렌지 주스 하나 챙겨 들고 나옴
엘리베이터 타고 일층 내려서 나가려는데 아파트 현관 앞에 못 보던 차가 보이는 거야
현관 앞에 주차 자리 우리 밑층에 아저씨 집인데 저 차는 뭔가 하고 유심히 보는데 운전자 좌석에 김종대 얼굴이 보이는 거야 진심 놀램 ㅎ..
내가 지랑 마주치기 싫어서 좀 더 일찍 준비할 걸 알았는지 일찍 온 거 같더라고
김종대랑 고1 때 처음 알았으니까 횟수로 따지면 10년이니까 든 생각이, 아 얘가 나 10년이나 봤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하필 현관 바로 앞이라 몰래 나가도 들킬 게 뻔해서 나가면서 가방 정리하는 척하면서 시선 피하고 옆 길로 빠지려는데 차 문 닫히는 소리가 참 크게 들리더라 ..ㅋㅋㅋ
모른 척하고 빠르게 걸어가는데 손목 잡아서 돌려 세우는 거야 당연히 김종대였고
“아침에 온다고 했잖아. 카톡 안 봤어?”
“배터리가 없어서 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너..”
“저 죄송한데 어제부터 밀린 서류가 있어서 먼저 출근하겠습니다. 나중에 회사에서..”
“미친 소리 하지 말고 타.”
타긴 뭘 타 억지로 끌고 가서 차 안으로 쑤셔 넣더라. 진짜 불편해서 문 열고 나가려는데 이미 문 잠가 버려서 나가지도 못했음
인상만 찌푸리고 창밖 보고 있으니까 작게 한숨 소리 들리면서 밥은 먹었냐고 묻더라
2년 전까지만 거의 매일 듣던 소리를 지금 들으니까 되게 울컥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그랬어
말하기 싫어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니까 말없이 차 출발하더라
회사로 가는 내내 진짜 조용했어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해서 음악이라도 들어야겠다 싶어서 가방에 이어폰 찾아서 엉킨 거 풀고 있는데
신호 걸려서 차 멈추더니 내 손에 들린 이어폰 가져가서 지가 엉킨 거 푸는 거야. 벙쪄서 김종대 손만 보고 있으니까 금세 풀어서 내 손에 다시 쥐여줌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차 출발시키는 모습이 그냥 화나서 귀에 이어폰 꼽고 소리 크게 하고 유리창에 기대서 눈 감아버렸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노래 그냥 듣고 있는데 한 곡 끝나기도 전에 김종대가 한쪽 귀에 있는 이어폰을 탁 빼는 거야
"소리 낮춰. 귀 상해."
더는 안될 거 같아서 그냥 내려야겠다 하고 이어폰 가방에 넣고 말했지
"내려줘, 걸어갈게."
"......"
"안 들려? 차 세우라고."
"......"
"...야"
"그냥 가자. 다 왔어."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목소리로 말하니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달래이듯이 말하는 거 같았어
다와가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었고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자, 하고 창 밖 만 보는데 잠이 슬슬 오는 거야 밤을 새운 후유증인 듯 ㅎㅎ..
도착하기 전까지 한 15분 정도 남아서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겠다 싶어서 잠에 듦
"ㅇㅇㅇ."
"ㅇ사원."
김종대가 깨우길래 눈 떠보니까 회사 지하 주차장이더라. 휴대폰 꺼내서 시간 확인하는데 예상보다 10분은 더 늦게 도착했더라
아직 출근 시간까진 30분이나 남아서 먼저 나가기도 그렇고 손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김종대가 무슨 할 말을 하려는지 계속 입만 달싹거리는 거야
나는 또 그거에 긴장해서 얘가 무슨 말을 할까 안절부절 거리고 있는데 김종대가 하는 말이
"잠깐 들릴 데가 있으니까"
"......"
"먼저 올라가요."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싶었다. 무슨 말을 기대한 건지는 나도 모르지만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들어 놓고 그냥 올라가라니까 힘이 탁 풀리는 거야
"팀장님."
"네, ㅇ사원."
"아니 김종대. 이야기할 거 있다 그랬지? 없으면 내가 말할게."
"......"
"나 첫 직장이고 어제 처음으로 출근한 회사야 근데 너 때문에 벌써 사표 들고 싶진 않거든
너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 그냥, 회사 동료로
오늘처럼 할 말 있다고 집 앞으로 데리러 오지도 말고, 어제처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해줘 나도 그럴 거고."
"......"
"...그럼 먼저 올라가 볼게."
무슨 정신으로 말 한지는 모르겠는데 막 뱉고 나니까 또 눈물 나려고 하는 거야
꾹 참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김종대가 손목 잡길래 멈춰있으니까 손에 작은 종이봉투를 하나를 쥐여주더니 그제야 손목 풀어주길래 빨리 나옴
주차장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더라
2년 만에 만난 헤어진 남자친구한테 모른 척 당했던 일? 아니면 갑자기 집 앞으로 찾아와서 마음 흔들었던 일?
혼자서 말해 봤자 답 따위도 없는 질문들 때문에 또 눈물 고이고 ㅋㅋㅋ..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사무실 들어가 보니까 아직 아무도 안 온 거야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서 손 부채질하면서 눈물 식히는데 아까 김종대가 쥐여준 봉투가 눈에 보이길래 열어보니까 샌드위치랑 커피가 있었음
샌드위치 포장지 사이에 종이 같은 게 끼워져 있길래 빼서 보니까
'아침 안 먹었다며 먹고 일해.'
짤막한 글이지만 한참 고민해서 쓴건지 꾹꾹 눌린 흔적이 보이더라
멍하니 쪽지만 내려다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까 김종대더라고
[너 말 잘 알아들었어 근데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미안 -김종대 팀장님]
글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암호닉이라니요 으아아ㅏㅇ 감사히 받겠습니다 ㅡ.ㅡ♥
다음 편부턴 분량 더 늘리도록 할게여
암호닉 <('ω')/
마지심슨, 예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