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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지원한빈] 밤의 황제

 

 

 

 어두운 밤이었으나, 바깥은 달빛을 받은 눈으로 빛나고 있었다. 연못이며 나무가 멋스럽게 자리한 아름다운 연못도, 산자락 쪽에 몸을 반쯤 수줍게 감춘 정자도 모두 하얀 눈에 덮여 차갑고 단정한 빛을 띠었다. 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흩날린다. 지원은 창틀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아름다운 밤풍경을 감상했다.

 지원은 드넓은 대륙의 북쪽을 차지한 수(水) 국의 황제였다. 역대 황제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좌에 앉았으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는 백성의 번영을 주도해나갔다. 조그만 약소국에 불과했던 수 국은 지원이 15세에 왕의 자리를 꿰찬 이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나가기 시작했고, 강대하게 번성했던 화(火) 국은 그 명성만을 믿고 방탕한 사치를 누리다 무서운 기세로 자라나는 수 국에게 뼈도 못추리게 당하고 말았다. 불과 8년 사이, 수 국과 화 국의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버린 수 국 앞에서 화 국은 꼼짝없이 눈치를 보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원은 화 국이 번영했을 시절 외로이 내버려져 무너져가던 수 국의 가여운 처지가 생각나 화 국을 괘씸하게 여기긴 했지만, 인과응보라는 쓸데없는 이유로 화 국의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비록 적국의 백성이지만, 어쨌거나 그들 역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뜻은 곧 화 국에 대한 원조로 이어졌고, 3년 전부터 수 국의 넉넉한 도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 국은 수 국의 도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교활하게 다시금 전세역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물론 지원이 그것을 모를 리는 전혀 없었고, 그 역시 조금의 여유나 틈새도 보이지 않아 화 국은 입맛만 다시고 있는 상태였지만.


 오밤중의 손님이라…….


 이 위대한 업적들 모두가 이제 고작 23살이 되 젊은 남성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지원은 부드러운 성품을 가졌으나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을 지녔고 그 성격은 나라의 번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치지 않고 꼿꼿하게 버텨내는 강직함 또한 그에 한몫을 더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격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 유달리 넓은 그릇을 알아본 사방의 적들이 보내오는 칼날은 역대 왕들에 비해 유달리 많았다. 충직함을 가장한 간신들의 혀놀림을 시작해서 저도 모르게 음식에 스며든 독, 혹은 직접 핏줄을 끊으러 오는 자객들까지, 지원은 끊임없이 많은 위협을 받았다. 그 때문에 그의 신경은 늘 곤두서있었고 무술 역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솜씨를 길러놓았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호위무사들 역시 어느 누구와 맞붙어도 지지 않을 만큼 빼어난 솜씨를 가진 자들로만 이루어졌고, 그가 주로 머무는 커다란 집무실과 침실에는 각각 6개나 되는 탈출구가 숨어있었다.


 그 안에 있으면, 춥지 않느냐?


 그리고, 희미한 촛불로 밝혀진 넉넉한 집무실 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으나, 그 탈출구 사이로 또 다른 칼날이 숨어들어온 것을, 지원은 보지 않고도 알아낼 수 있었다.
 지원은 상대가 움직임이 없자 빙그르르 몸을 돌리더니 재차 그를 불렀다.


 그만 나오너라. 어차피 정체를 들킨 이상, 나와 한 번쯤은 마주서야 할 것 아니겠느냐.


 그러자 마침내 어둠 속에서 상대가 인영을 드러냈다. 평균 이상의 키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옷에 싸인 몸은 가냘프리만큼 말라서, 원체 체격이 좋은 지원에 비해선 마냥 꼬맹이처럼 보였다. 검은 옷으로 온 몸을 휘둘러 싼 상대는 유일하게 드러난 날카로운 눈으로 지원을 바라봤다. 자객답잖게 유리알 같이 말간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각 잡힌 자세에서 지원은 그가 과연 만만찮은 상대구나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재작년에 두 번, 작년에 한 번, 올 해에 한 번 있었으니…… 이번이 다섯 번짼가?
 …….
 나머지 놈들은 이곳에 접근조차 못하고 잡혔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이리로 오는데 많이 힘들진 않았더냐?


 자객은 지원의 말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신까지도 강한 자로군.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오랜만에 대결할만한 상대를 만난 것 같아서 지원은 즐겁게 웃었다. 그는 자객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자객의 날카로운 시선이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검을 쥔 손에 나지막히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지원이 말했다.

 화 국의 자객들은 모두 얇은 옷만을 입더구나. 날씨가 온화한 남방에 있어서 그런가?
 …….
 밖에 눈보라가 치는 것을 보았느냐? 가뜩이나 천옷만 입은 너에겐 그것이 몹시 추울 것이다.
 …….
 그러니까 창문부터 닫자. 그것이 너에게도 좋지 않겠느냐?


 커다란 손이 창틀을 짚었다. 자객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더욱 낮추었다. 지원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방 안은 미약한 밤바람에 흔들리는 희미한 촛불과 고요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지원은 미소 지었고, 자객은 날선 숨을 몰아쉬며 그의 목을 노렸다. 드드드득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창틀이 움직였다.

 타각─

 마침내 창문이 완전히 닫혔다. 그 소리를 신호로, 자객은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왕좌에 비스듬히 앉아 꼰 다리를 건들거리며, 하얗게 늘어지는 내의 위에 빛나는 흑빛 도포를 걸친 지원은 빙긋이 웃었다. 가늘게 찢어진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지원의 앞에는 장수들의 손에 포박당한 채 바닥에 짓눌린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아까의 그 자객이었다. 그는 심한 저항으로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흐트러진 모습이었고, 커다란 두건 밑으로 드러난 조그만 얼굴은 소년과 어른 사이의 경계에 선 듯한 기묘한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지원은 흥미로운 눈빛을 한 채 아까부터 자객을 위아래로 주욱 훑고 있었다. 길게 죽 찢어진 모양새를 한 날카로운 눈매부터 젊고 싱그러운 피부, 초조한 듯 아까부터 잘근잘근 깨물리며 혹사당하는 입술과 장수들의 손 안에 꼼짝없이 결박당한 채 지쳐 늘어진, 검은 옷 속에 감춰진 마른 몸, 상처에서 아직도 조금씩 흘러내리며 바닥을 적시는 핏방울까지. 지원의 타는 듯이 끈끈하고 집요한 시선에 자객은 창백해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원은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무술이 예사롭지 않으니, 어깨를 확인해보아라.


 자객은 질겁하여 힘이 다 빠진 몸을 힘껏 뒤틀었으나, 억센 손에 머리마저 눌리고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 옷이 벗겨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부드러운 검은 천이 흘러내리며 자객의 양쪽 어깨가 드러났다. 결 좋은 나무 바닥을 적신 피의 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자객의 새하얀 왼쪽 어깨는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붉은 피도 그의 어깨의 새겨진 붉은 색의 선명한 주작 문양을 가려주진 못했다. 그것은 임금만을 위해 길러지고 움직인다는 화 국 왕실 소속 자객 집단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주작단의 표식이었다. 장군들 사이에서 분노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원은 혀를 쯧쯧 찼다.


 역시 주작단이었구나.
 …….
 요새 지원도 잘 해주는데, 화 국이 뭐가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내게 주작단까지 보냈는질 모르겠군.


 지원은 다시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그쯤에서 말을 멈추고 자객을 주욱 훑었다. 부드러운 시선이 자신을 감쌌으나 자객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정작 지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 뒷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충분히 알았기에 자객은 더더욱 치욕을 느끼고 있었다. 열기로 약간 혈색이 돌아온 얼굴이 씨근대며 저를 노려보는 것을 본 지원이 쿡쿡 웃었다.


 어쨌든, 주작단은 언젠가 한번쯤은 만날 것이라 예상했었고 만나보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왔군. 그나저나 너처럼 어린 아이도 주작단에 있는 줄은 몰랐다. 네 솜씨를 보니 주작단에 들어온 것이 이해는 간다마는……


 지원은 읏차 하고 가볍게 탄성을 뱉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광에 넣어 놔라.


 뜻밖의 말에 장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늙은 장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즉결처리하심이 어떠하십니까.
 전하, 이 기회에 공개처형이라도 하여 적반하장 격의 태도를 보이는 화 국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하옵니다!
 당장은 안 내키는구나. 사람 목숨 사라지는 걸 보고 바로 잠자리에 들고 싶진 않다.
 하오나……
 아무리 최고의 자객이라 할진들, 결국은 사람이 아니냐. 다치고 지쳤을 터이니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대신 단단히 묶어두어라.


 슬슬 피곤하니 자리에 들어볼까. 지원이 하품을 참으며 뒤를 돌았다. 그 때 자객이 잇새로 으르렁거렸다.


 ……무슨 수작이냐.


 옷자락을 펄럭이며 성큼성큼 걷던 지원이 고개를 돌려 자객을 바라봤다. 그가 분노의 신음을 토해내다가 장군들을 뿌리치려는 듯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비록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무슨 수작이냐. 무슨 짓이냐고! 차라리 지금 당장 죽여라!!
 이 놈,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네 놈의 목을 못 딴 것은 물론이요, 이렇게 꼴사납게 잡혀서 갇히기까지 하는 건 치욕 중의 치욕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 네 위엄이라도 보여라. 그래봤자 언젠가 다시 일어설 화 국에는 비교도 안 될 테지만 말이야. 나는 이 자리에서 끝까지 네게 저항이라도 하여 화 국의 위신을 세우고 명예롭게 죽을 것이다! 그러니 죽여라. 차라리 지금 날 죽이란 말야!!!


 분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몇몇 장군들은 벌써 씩씩거리며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지원은 무표정하게 손을 들어 모두를 제지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지자 자객이 흥분하여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지원은 천천히 뒤돌아 자객에게 다가갔다. 아니 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졌지만 지원은 멈추지 않았다.
 자객의 바로 앞으로 오자, 그는 옷자락을 슥 정리하며 자객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커다란 손아귀가 머리채를 움켜쥐자 자객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지원은 자객의 고개를 들어 올린 채 그를 천천히 살폈다. 단정한 이목구비는 틀림없는 사내의 것이었으나, 계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곱고 여린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노와 흥분과 고통으로 어우러진 표정이었지만 그 밑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렴풋하게 깔려있었다. 으르렁거리던 자객은 그를 향해 침을 탁 뱉었다. 얼굴까진 아니지만 흑색 곤룡포에 선명하게 튀긴 자국을 보며 장군들이 여기저기서 분노를 내질렀다. 그러나 지원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만.


 아까의 능글대는 말과는 전혀 다른 낮고 위압감이 넘치는 명령에 장군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자객은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 채 숨을 죽였다. 지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똑같은 무표정과 똑같은 자세로 그를 살폈다. 마침내 그의 얼굴에 천천히 피어오른 것은 놀랍게도 만족감이 가득한 미소였다. 그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뜻밖의 반응에 장군들과 자객까지 멍해졌다. 지원이 쾌활하게 말했다.


 ……목소리도, 그 성정도 모두 마음에 드는구나.
 …뭐……?
 저, 전하……?


 지원은 읏차 소리를 내며 일어서더니 기지개를 죽 켰다. 그가 밝고 힘차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 곳'에 가두어놓아라!
 저, 전하!
 그리고 분명히 혀라도 깨물어 자결할 놈이니, 입부터 막아놓아라. 죽여서는 아니 된다.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은 혼란스러워하는 장군들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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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자객 좋음... 자비로운듯 보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지원도 이요..ㅠㅠ
9년 전
독자2
하읏ㅠㅜㅠㅠㅠㅠㅠㅠ이런거 좋아하는건 또 어떻게 알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 사랑의 총알 받아버렷....!
9년 전
독자3
어익후 이거뒷편없나여
강한불맠의 기운이풍기는데(ㅇㅅㅁ)
취향저격ㅠㅠㅠㅠㅠ뒷편의자비를ㅠㅠ

9년 전
독자4
뒷편을ㅜㅜㅜㅠㅠㅜ
9년 전
비회원194.207
헐 뒷편은 업ㄱ나요...
9년 전
비회원7.123
헐....♥
9년 전
독자5
뒷편을 내놓으시오!!! ㅠㅜㅠㅠ 러브네요
9년 전
독자6
헐 메일링 저 원하는데 텍본엔 뒷편도 있나요???ㅠㅠ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84.191
독자7
와 진짜 재밌어요 취향저격ㅠㅠㅠ 뒷편 안나와요ㅠㅠㅠ? 뒷편을 원해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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