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06
호그와트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토요일. 12시 30분에 눈이 떠지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일기에서 본 내용이 꽤나 생생하게 꿈으로 나타났다는 것.
냇가인지 호수인지 알 수 없는 물가 앞에서 나무 위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장면.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내가 이제껏 토요일 아침마다 꿨던 꿈임을 깨달았다. 너무나 사소한 꿈이라 반복되고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꿈인데, 내가 일기를 보기 전에도 꿔왔던 꿈이라는 것은. 일기와 내가 뭔가 관련이 있다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이 내 앞에 쿵, 하고 놓인 책 더미에 생각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다 읽자고?”
“아니. 챕터별로 참고할 게 꽤 있어. 이 책들은 내가 잘 아니까 나머지는 네가 찾아 봐.”
그러더니 두껍기도 엄청 두꺼운 책들 중 그나마 얇은 책 몇 권을 내게 넘겨주고는 나머지는 제가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전정국은 바로 제 몫의 책을 펼쳐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천문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나는 무조건 경험자의 말을 따르는 게 유리했기에 일단 따라서 책을 펼쳤다.
시험기간이 아니라 그런지 도서관은 주말에도 한산했다. 강리원을 만나러 온 뒤로 두 번째 방문이다. 주말에는 자유일정이므로 전정국과 나는 늦은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만나 자료조사를 하기로 했다. 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말에도 도서관을 오다니.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챕터를 살펴봤다.
우리 조(조라고 해봤자 전정국과 나뿐이지만)는 금성에 대해 조사해야 했다. 금성이야 익히 들어온 이름이니 쉬울 줄 알았건만 마지막 시험을 마친 지가 벌써 4개월째라 가물가물한 게, 어디서부터 뭘 찾아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타나는 시간대과 관측방법 같은 건 책 보면 나와 있지만……
“조금 더 특별한 걸 찾아야 해. 그 교수님이 원하는 건 그거야.”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작년에 들어봤으니까.”
“너는 작년에 뭘 조사했는데?”
“태양.”
“점수 좋았어?”
“응.”
“어떻게 했는데?”
“태양을 화산과 비유해서 지구를 또 다른 태양으로 표현했어.”
“허얼. 조금만 들어도 거의 논문 수준인데.”
“참신한 걸 원하는 교수님이니까.”
“내가 금성에 대해 아는 건 샛별로도 부른다 뭐 이런 것뿐인데.”
“샛별?”
“엉. 샛별 몰라? 새벽에 보이는 금성.”
내 말에 전정국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해질 때쯤에 보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 이것두 몰라?”
“모르는데.”
“중학교 과학시간에 이것만 주구장창 외웠는데.”
“너, 머글세계에서 왔어?”
“응.”
그러자 전정국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다른 것도 자세히 얘기해줘.”
평생을 마법사세계에서 살아온 전정국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금성의 명칭을 하나도 모른다 했다. 애초에 금성이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머글세계, 그러니까 한국 문화에 얽혀 있는 것이니 모를 만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머글세계에서 불리는 금성의 이름을 시간대별로, 머글세계의 나라, 지역별로 분류해서 큰 틀을 잡았다. 인터넷을 못 쓰니 도서관 천문학 자료들을 전부 이 잡듯이 뒤지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 되었더라. 전정국과 나는 함께 연회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책에 파묻혀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해 목을 돌리는데 마주치는 시선마다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와 전정국을. 나야 뭐 정해진 기숙사가 없으니 어디서 먹든 상관없지만 전정국은 래번클로에서 먹는 게 문제될 것도 없는데 왜 그러지?
“참. 래번클로 좋아?”
“갑자기 무슨 말이야.”
“기숙사 정해야 돼서. 래번클로는 퀴디치 잘해?”
물론 남준 선배와 회장에게서 고막이 닳도록 들어온 이야기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물었다. 얘는 작년에도 있었으니까 전체적인 흐름을 알지 않을까 싶어서.
“정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응. 내가 정하래.”
“그럼 성향에 맞는 기숙사를 골라야지. 퀴디치가 아니라.”
“모든 성향이 비례해서 배정이 안 됐다는데 어떡해, 그럼.”
내 말에 전정국은 수저 놀리던 손을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분류모자를 속이지 그랬어.”
“그럴 수도 있어?”
“……아니. 어디 가서 이 말 하지 마.”
자기가 해놓고 나보고 하지 말래.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소시지를 집는데 전정국이 약통인지 사탕통인지 모를 통을 꺼내더니 또 무언가를 입에 털어 넣는다. 안 본 척 시선을 돌리는데 통에 덜 떼진 은박이 보였다. 시아 말대로 진짜 사탕인가 봐.
“사탕.”
“…….”
“많이 먹으면 이 썩는다.”
양치 열심히 해.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아무리 사탕이라도 그렇게 약 먹듯이 먹은 건 걸리지만 어쩐지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례원이는 뭘 제일 좋아했어?”
오늘도 눈 뜬 시각은 12시 30분, 생생히 기억나는 꿈의 장면들. 같은 장면이 반복되지만 점점 뚜렷해지는 꿈이 의미하는 게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일어나자마자 아직 버리지 않은 상자를 찬찬히 살펴봤다. 일기를 읽고 나서 꾼 것도 아니고 읽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꿔 온 것이고, 이 장면이 일기를 읽은 뒤부터 생생해지는 거라면 분명 이것을 보낸 사람은 무언가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일기가 있던 상자를 살펴봐도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 일기를 처음 영원의 집에 보내온 사람은 내가 호그와트에 오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인 걸까? 영원의 집에 두고 온 소포를 다시 호그와트에, 그것도 이 방으로 보내온 사람은 처음 소포를 보낸 사람과 동일인물일까? 그렇다면 왜, 뭐 때문에 내게 이 일기를 전해준 거지?
“어…… 어떤 거 말하는 거야? 음식?”
그래……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내게 가장 생생한 것은 내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는 강리원이다. 강례원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과 강례원 이야기를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강리원에게 똑같이 웃어 보이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리원은 곧 다가오는 강례원의 생일을 맞아 언니로서 처음으로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강례원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평생을 곁에서 살아온 사람이 나타났으니. 도서관에서 강리원의 부탁을 큰 고민 없이 들어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평생을 곁에서 살아오면서, 가족을 찾아다니던 모습을 봐왔으니까. 어쩌면 눈물로 얼룩졌던 마지막을 조금이나마 닦아내려는 나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음식이든 뭐든, 생일선물로 좋아할 만한 거. 평소에 갖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한 거라든지……”
“어, 음. 아무래도 이제 새학기니까 옷이…… 갖고 싶지 않을까 싶은데. 먹을 것도 좋고!”
사실 거의 평생을 봐 왔다고는 하지만 강례원의 취향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크게 싫어하는 것도 크게 좋아하는 것도 없이 꽤나 둥근 취향으로 살아왔고, 내가 아는 강례원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진짜가족’이었으니.
“옷이나 문구류는 이곳과 많이 다를 테니…… 역시 먹거리가 좋겠지? 젤리 같은 건 좋아하려나?”
“으응. 싫어하진 않아.”
“그래도 일단 옷이 제일 갖고 싶댔으니까 옷부터 보러 가자! 머글세계에서 입을 만 한 걸로 네가 골라줘!”
강리원은 나를 끌고 옷가게로 향했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따랐다. 옷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상점들이 있는 이곳은 ‘호그스미드’라는 곳으로, 작년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허가서가 있어야 나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방침이 바뀌어 자유로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냥 시내 같은 느낌인데 허가서씩이나 받아야 하나 싶지만, 17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나쁜 마법사가 출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7년이 지나도록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서, 작년에 학생회에서 강력히 주장한 덕에 이렇게 자유롭게 나올 수 있게 됐지.”
“여기 꽤 무섭네…….”
“그래도 17년이나 안 나타났는데 별 일 있겠어? 나타난다 한들 사람이 죽거나 하지는 않았대. 좀…… 다치기는 해도……. 아, 저기 가 보자! 저기 예쁜 거 엄청 많아.”
옷가게에서 괜찮아 보이는 몇 벌에 고개를 끄덕이자 전부 계산해버려 양손에 짐이 한아름 있는데도 또 발을 옮기는 강리원에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이번에 간 곳은 다이소 느낌의 상점이었다. 인테리어 소품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다양한 장신구들을 보니까 내 방의 테라스가 생각났다.
“이거 마음에 들어?”
“어? 아니, 그냥 본 거야.”
“네 마음에 드는 것도 하나 골라! 내가 살게.”
“아니야, 안 그래도 돼.”
“내가 고마워서 그래. 앞으로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건데, 뇌물로 하나 사줄게. 이거 마음에 든 거 맞지? 계산하고 올게!”
말릴 새도 없이 계산대로 향하는 강리원에 나는 그냥 가만 서 있었다. 사주는 사람이 저렇게나 완강할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건 뇌물이었던 건지 하루 종일 이곳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오래 걸은 건 오랜만이라 슬슬 다리가 아파왔는데, 강리원은 지치지도 않는지 무거운 짐들을 들고 잘도 돌아다니더라.
우리는 옷가게부터 시작해서 잡상점, 문구점, 서점 등 여러 곳을 들렀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사탕가게였다. 사탕을 위주로 비스켓과 젤리 등 여러 군것질거리를 팔았는데, 확실히 내가 살던 곳, 그러니까 ‘머글세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군것질거리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은 잘 없는데 말이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통이 보여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여기서 익숙할 게 뭐가 있지 싶어 자세히 보니 전정국이 가지고 다니는 그 통과 같은 모양새였다. 은박 포장지와 은박 상표까지 딱 그거였다. 시아가 말한 것처럼 꽤냐 유서 깊은 브랜드인 건지 30주년 기념으로 원 플러스 원 이벤트까지 하고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오렌지 맛, 자두 맛, 체리 맛이 주요상품이고 나머지는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나는 오렌지 맛과 체리 맛을 양손에 들어 향을 맡아봤다. 밀봉 돼 있음에도 오렌지 향과 체리 향이 물씬 풍겼다. 가짜로 만들어 낸 향이 아닌, 진짜 생과일 향이. 이래서 전정국이 이걸 그렇게 먹어대는구나. 생각해보니 전정국에게서는 항상 옅은 오렌지 향이 났었다. 과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홀릴 것 같은 향에 몇 번이고 번갈아서 코를 킁킁댔다. 하나 사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 나 여기 돈이 없잖아?
“헐, 원 플러스 원이라니 이건 사야 해!”
그리고 어김없이 강리원이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뇌물은 아까 그 상점에서 시작해서 들르는 모든 상점에서 계속돼왔다. 강리원 만큼이나 한가득인 내 짐을 보며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이젠 거절하는 것도 지친다. 강리원은 내 손에 들린 사탕 통들을 집더니 계산대로 향했다. 이제는 저 뒷모습이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자, 이거 네 거야.”
“고마워…… 근데 이렇게 많이 사도 돼?”
“처음으로 내 동생한테 주는 선물인데 이 정돈 돼야지!”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나한테까지 이렇게 많이 사줄 필요는 없는데…….”
호그와트까지 오는데 몇 번이나 휘청거렸는지 모르겠다. 계단을 오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데, 강리원은 오히려 가뿐한 표정으로 교정을 들어섰다. 내가 든 쇼핑백이 강리원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더 이상해져 말하니 강리원은 이렇게 말했다.
“희완아 나는, 부모님이 계셔. 물론 친부모님은 아니지만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자라왔어. 내가 친동생을 찾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여러모로 도와주시기도 하셨고. 하지만 5년 동안 단 하나의 단서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어렴풋이 머글세계에 있을 거라 생각만 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나타난 거야. 무려 걔가 어디서 어떻게, 뭘 하고 지냈는지 전부를 아는 네가. 내 곁에 지금의 부모님이 계신 것과는 달리 그 아이에게는 그 누구도 곁에 없었잖아. 오직 너만, 곁에 있었잖아. 네가 부정해도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야. 아, 두 번째로 해도 될까? 첫 번째는 부모님으로 할게.”
“…….”
“그러니까, 조금은 부담스럽더라도 내가 주는 고마움의 표시들을 받아줬으면 해. 앞으로 내가 너에게 들을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받을 도움이 너무나도 많을 것 같아서…….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거기도 하니까.”
그러고 강리원은 햇살만치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강례원이 저렇게 웃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래. 아싸, 엄청 예쁘고 친절한 물주 생겼다! 이번 생은 성공한 인생인가 봐!”
“푸하하! 그래! 나도 엄청 예쁘고 친절한 친구 생겼다!”
언젠간 강례원도 저렇게 웃는 날이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 화 되게 별 거 없는 것 같지만 떡밥 투성이,,,
항상 느끼는 건데 미세한 떡밥이 너무 많아서 감당 못하겠다 나중에 작붕 일어나면 어카지 그것도 감당x
지금 쓰고 있는 게 8환데 추석연휴 동안 8화 다 쓰고 6화 올리려던 계획은 사라졌당
아마 다음 화는 8화 or 9화를 다 쓰면 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언제 다 쓸 것인가 두둥
하도 쓰면서 수정을 많이 해서 '여주 성향이 비례해서 기숙사 배정이 보류됐다'는 게 전에 올린 화에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도 몰겠당
쓰면서 빠뜨린 부분을 추가한 것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착오 없으셨으면,,,
그리고 이걸 보고 계신 소수의 독자분들,,, 암호닉 신청,, 저 잘 모르지만,, 원하시는 분들은 자유로이 해주세용,,,
거의 혼자 쓰고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올리는 건데 생각지도 못한 댓글 주시는 분들 넘넘 감사합니당,,♡ 돌아다니면서 답글 달아드려야지ㅠㅠ
초록글도 몇 번 올라갔더라구요,, 기준이 뭔진 모르겠지만 껄껄,, 암튼 다들 해피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