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밤새 내려 명국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던 눈이 전부 검붉은 피로 물드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 한 놈도 놓치지 마!
멀리서 들려오는 적국 병사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채
명국의 왕,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한참을, 한참을 달렸다.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 월국만 간다면 그들이 도움을 줄거야 ' 라는 말을 반복하셨고
나는 등 뒤로 멀어지는 궁과 궁에 남겨져버린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숨이 막힐 정도로 달리면서도 수없이 뒤를 돌아봤다.
낮은 산 하나를 넘어 명국과 월국의 경계 쪽에 위치한 계곡에 다다랐을 즈음엔 아버지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숨을 내쉬자마자 그 잠깐의 안도감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화살이 빠르게 날아와 아버지의 뺨을 스쳐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화살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니 옷과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든 두 명의 남자가 말을 탄 채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분명 뒤를 밟히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까지 따라잡혀버린건지
그들이 다가올수록 커지는 위압감이 나를 집어삼키려했다.
볼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닦아낸 아버지는 아마 그들중 한명일듯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분노하셨다.
" 전정국... 감히 네 따위가 명국에서...! "
아버지는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시며 소리를 지르셨으나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다가왔다.
" 그러니까 입조심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
어느새 말에서 내려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만큼 다가온 그들에 아버지는 나를 등 뒤로 보내며 월국 쪽으로 떠미셨다.
언제나 당당하며 두려울 것 없어 보이셨던 아버지의 등이 눈에 띌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계속 해서 도망가라고 빨리 도망가라고 처절한 목소리로 아버지는 말씀하셨지만 어느새 뒤 쪽에도 적국의 병사들이 깔린 상태였다.
앞 뒤는 이미 꽉 막혀있고 달아날 곳은 더이상 없었다.
꽉 잡은 아버지의 손을 아버지는 도망가라며 계속 떼내셨고 나는 손을 놓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 어떻게든 살아라, 꼭 살아서 명국을 구해야한다."
처절한 아버지의 음성이 심장에 내리꽂힌다.
이 상황에서 둘 중에 한명이라도 살아나갈 확률은 얼마쯤 될까?
우리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저 남자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0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아마 0.01정도일 것이다.
한 마디로 내가 살아서 명국을 재건할 가능성은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과 가깝다는 말이다.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나라만을 생각하시는 아버지에게 나같은 자식이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없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이 상황까지 와버린 나라를 되찾나요.
한참동안 지속된 울음소리뿐인 대치상황을 깬 건 아까 아버지가 정국이라고 부르던 남자였다.
"지금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정국은 아버지 뒤에 숨어있던 나를 한 번 흘깃보고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본 후 조소를 지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정국은 피가 흘러내리는 칼을 꺼내 아버지를 겨눈다.
몇백명의 목을 베어냈을 것이고, 끝내 아버지와 나의 목숨까지 앗아갈 그의 칼 끝이 서늘하게 빛났다.
"공주마마와 작별인사라도 하실련지? "
" 천 벌을 받을 ㄱ..."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의 칼이 아버지를 향했고 아버지는 피하지도 못하신 채 비명도 없이 쓰러지셨다.
“저랑 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쓰러지신 아버지는 아무런 미동이 없다.
아버지를 몇 번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있는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나라의 왕의 끝이 이렇게도 허무하고 비참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아버지... 제발 일어나요... "
항상 답만을 향해 가셨던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답의 끝은 이런 결말이였나.
" 공주는 어떡할까요? "
아버지를 죽인 남자의 뒤에 서있던 남자가 정국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말에 나의 생사가 걸려있겠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하신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모두 점령당했을 명국의 지역들, 한 곳이라도 점령당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겨우 죽지 않고 살아있을 백성들, 그들이 과연 나와 함께 명국의 재건을 원할까?
위의 조건들이 다 충족된다해도 내가 과연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확언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보단 죽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아버지에게 말할 핑계라도 생기니까.
하지만 정국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이였다.
" 공주는 살려서 데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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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마무리가 굉장히 애매하네요~~~~~~~~
사실 남자주인공을 아직 안정해서 제목에 뭐라써야할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