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산소
아침 8시. 이 시간에 지하철은 항상 발 디딜틈도 없이 북적북적대. 오늘도 앉아서 가기는 글렀구나.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 낑겨서 내 의지로는 상관없이 저절로 발이 움직여 나도 모르게 구석으로 밀려났어. 답답한 몸을돌려 조금 편안해지자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어. 어디있지?
'아, 찾았다!'
매일 아침마다 같은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많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사람이 한명있거든. 몇번 둘러보다 아침잠이 많아 아직 잠이 덜깼는지 졸린눈을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남자가 눈에들어왔어.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저 사람을 좋아한지 조금 오래됐어. 처음엔 그냥 단순히 잘생겨서 눈호강할겸 몰래몰래 쳐다봤는데 점점 좋아지더라구. 오늘도 그렇게 이름 모를 그 남자를 보며 멍때리다가 그만 내릴역을 놓칠뻔했지뭐야.
아슬아슬하게 지각하지않고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입사동기면서 유일한 친구인 경수가 먼저 인사를 해줬어.
"ㅇㅇㅇ 좋은아침~"
"응 경수도 굿모닝~"
"자, 커피타왔어 마셔"
"땡큐- 아 맞다, 나 오늘도 그 남자 봤어!"
"그 지하철남? 오늘은 말 걸어봤어?"
"아니...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말을어떻게걸어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어"
"그 남자는 너 알기나해?"
"음? 아마 모르지않을까?"
"아, 너도 참 불쌍하다 나이가 몇인데 짝사랑이냐. 그것도 이름도 모르는남자를"
"아아 몰라몰라 좋은걸 어떡해"
"ㅇㅇ씨랑 경수씨는 아침부터 할말이 그렇게 많나봐?"
경수가 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지하철남자에 대해 열띤 대화를 하고있는데 부장님이 슬쩍 나타나 어서 일하라는 눈치를 주셨어. 깜짝놀라 예예 하면서 바로 모니터에 눈을 돌렸지. 부장님 눈치를 슬슬보면서 업무 처리를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경수랑 바로 뛰쳐나왔어.
"휴- 숨막혀 죽는줄 알았네"
"자, 이제 마저 얘기해봐 지하철남에 대해서"
"뭘 얘기해? 내가 아는게 뭐가있다고"
"ㅇㅇㅇ 진짜 답답하다. 번호라도 따던가 해보지그래?"
"나 그런거 못하는거알잖아"
"사랑은 쟁취하는거야"
"아아 됐어 밥이나 드세요 도경수씨"
번호를 따라니, 말이쉽지 나 이래뵈도 엄청 소심하단말이야..! 저렇게 말하는 자기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도 못걸으면서 누구보고 지적인지. 에휴 나나 너나 진짜 답답하다.
오늘도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정도로 바빴어.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아침엔 출근시간이라 헬게였다면, 지금은 퇴근시간이라 헬게야. 통근 방법을 버스로 바꾸던지 면허를 따던지 어서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지하철에 몸을실었어. 들어서자마자 운좋게도 자리 하나가 비어있길래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냉큼앉았지. 얼마만에 편하게 가는건지! 하루종일 부장눈치 봐가면서 일을하다보니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졸음이 밀려오더라. 자면안돼는데... 자다가 내릴역 놓치면 어쩌지... 그냥 조금만 잘까...
"헉, 여기가 어디지?"
10분만 눈감고 일어나자! 하고 잠깐 눈을 붙였는데 꽤 오래 잔거같았어. 게다가 민폐녀처럼 옆에 앉은 낯선남자 어깨에 기대서말이야. 민망하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고 사과를 하려는데 어..? 지하철남..!
"더 기대셔도 되는데"
"아..어...저...어.."
"그 쪽 내릴역 도착하려면 아직 좀 남았어요 피곤해보이시는데 더 자세요 깨워드릴게요"
"에? 아..아니.. 괜찮아요..."
어떡해.. 처음으로 말해봤어.. 으이구 바보같이 말을 왜 더듬어!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을까. 이렇게 내 첫인상은 침흘리면서 추하게잠든 민폐녀로 찍혔구나. 나 지금 얼굴 엄청 빨개졌겠지? 창피해.. 고개를 숙여 발끝만 보면서 빨리 내가 내릴역에 도착하길 기도하고있는데 그 남자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뭘 건네줘. 응? 이어폰?
"같이 들을래요?"
"아..감사합니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우니 남들 눈에는 우리가 커플처럼 보일거같아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 조용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데 생긴건 잔잔한 발라드만 들을거같이 생겨서 의외로 신나는 비트의 음악이 나와서 조금 놀랐어.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있었더니 나를 보고 살짝 웃더라. 비웃는건가..? 기분이 나빠져서 곧 내린다는 핑계로 끼고있던 이어폰을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내 옷을 붙잡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한테 내밀더라.
[아침마다 저 쳐다보시는 이유가뭐에요?]
..! 어떻게 알았지? 난..나름 몰래 쳐다본거였는데! 내 첫인상은 침흘리는 민폐녀가 아니라 음흉한 스토커였구나. 마음속으로 대성통곡을하며 아무말도 못하고있었더니 지하철남이 핸드폰을 가져가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내밀었어.
[맨날 힐끔힐끔 보는거말고 대놓고 볼생각은없어요?]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핸드폰 액정만 바라보고있는데 지하철남이 조금 답답한 표정을하고는 메모장을 꺼버리고 다이얼로 들어가버리네? 아, 나 지금 번호 따이는거구나. 얼떨떨한 기분으로 내 번호를 꾹꾹눌러줬더니 사탕을 손에 쥐어준 어린아이마냥 함박웃음을 지어보여. 그 얼굴에 또 한번 반해 넋을 놓고있는데 내가 내릴역에 도착해버렸어.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달려나오니 띠링하고 문자가 도착했어!
[저는 김종인 그 쪽은?]
[ㅇㅇㅇ이에요!]
[어깨가 너무 아프네요 병원비를 받아야하나]
[네..? 죄송해요.. 많이아프세요? 병원갈정도에요?]
[네 엄~청 아파요 밥한번 얻어먹으면 싹 나을거같은데]
[저.. 그럼 이번주 토요일에 밥 사드릴게요..]
[콜ㅋㅋ 토요일에 봐요]
약간은 이상하지만 어쨌든 데이트약속을 잡았어!! 데이트가 아닌가? 데이트가 아니면 어때! 이제 스토커처럼 몰래 쳐다보지않고 사적으로 만날수있다니.
혹시 나한테도 드디어 따뜻한 봄날이 오려는건가?
♡암호닉♡ + 작가의말 |
♡ 핫뚜 알린 토리 별사탕 고2소녀 레몬 염소 됴됴 요리킹 나호 챠됴르 다시마 파파야 빅팝 잠만보 ♡ 알린님이 말해주신 지하철에서 영감받고 싸질렀는데 대충 만든 티가나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글쓰는재미보다 브금고르는재미에 푹 빠져있다는건 비밀.. 근데 그거알아요? 내일 월요일이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