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에게 등짝을 다여섯대를 맞고나서야 일어난 백현과 미니백현이는 어영부영 준비를 하고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유치원, 회사에 갔다. 아 물론 까꿍이는 입에 한조각이라도 토스트를 물려줬지만 밥 한숟갈 뜨지도 못한 백현은 부랴부랴 회사로 떠났다. 시끄러운 10분이 지나고 나면 집은 언제나 고요하고 언제 그랬냐는듯 평화롭다. 경수는 그제서야 한숨 돌리고 쇼파에 기절한듯 앉았다. 앉은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난 경수는 주방으로 가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침도 못먹고갔네. 항상 투닥투닥 싸우던 둘이지만 그래도 부부라고 챙기긴. 경수는 김이 다 식어버린 밥을 다시 밥통으로 넣었다. 동그란 밥그릇 자국이 그대로 남아 밥통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릇은 계수대에 놓고.
"어?"
식탁을 다 정리할때쯤 경수에 눈에 보인것은 백현의 도시락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지출이 늘어나 최대한 돈을 아껴야한다며 점심을 사먹지말고 도시락싸서 먹자며 매일 아침 경수가 싸준 도시락이 덩그러니 식탁위에 있는것이아닌가. 경수는 한숨을 폭 쉬고 시간을 확인했다. 회사 점심시간 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았으니 지금 준비해서 나가면 딱 맞겠다는 판단이 선 경수는 간단한 복장으로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든 채 회사로 향했다.
"어? 경수씨 왔네?"
"안녕하세요"
"변백현!"
회사에 들어서니 몇번 얼굴을 본적이 있어 낯이 익은 분이계셨다. 경수는 내조의 여왕이라도 돼 보겠다는 심상으로 백현의 주변사람에게 살랑살랑 웃으며 잘 대해주었고 그 노력 덕분일까 백현이 욕을 먹으면 먹지 칭찬받을일은 절대 없는 일에도 사사건건 경수의 이름을 들어가며 백현을 칭찬해주었다. 이정도면 나름 내조의 여왕아닐까. 백현은 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왔고 경수를 보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무슨 일이야?"
"도시락. 놔두고 갔잖아."
"아...이제 알았네"
"치, 일 잘하고 있어?"
경수는 괜히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어 백현의 양복 어깨를 툴툴 털었다. 백현은 활짝 웃으며 제 어깨를 터는 경수의 손을 마주 잡아 예쁘게 입꼬리 말아올려 웃었다. 경수는 간지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백현은 그런 경수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더욱 더 활짝 웃었다. 신혼은 이렇게 깨를 볶고 있는게 정상이니 별로 질타는 하지말자. 경수와 백현이 마주잡은 손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서로를 보고있기만해도 행복하다는양 입가에 미소가 여전한 둘은 한참을 그렇게 손을 잡고있다가 동료 직원 종대의 질투에 그만 손을 놓고 아쉬운 이별을 해야했다.
"나도 마누라가 싸준 밥좀 얻어먹어보자"
"부러우면 결혼하든가."
백현의 옆에 찰싹 붙어 사단이나 되는 도시락을 여는걸 본 종대는 입이 쭉 튀어나와 툴툴 거렸다. 평소에 종대는 경수가 싹싹하고 착하고 마음씨 좋고 내조 끝내준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백현이 첫번째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종대는 아나. 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줌마 드라마 너무 많이 보셨네."
완두콩으로 하트를 그려놓은 하얀 쌀밥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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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집에 도착해 밀린 가정일을 한다고 한참이었다. 청소기도 돌리고 까꿍이가 마구 흐트려놓은 장난감도 정리하고 빨래도 개고. 작은 까꿍이의 양말을 차곡 차곡 놔두고 그 옆에 백현의 양말을 놓았다. 어쩜 취향도 이리 똑같을까. 경수는 이러나 까꿍이도 자기같은 사람만나서 결혼하는거 아닌가 싶어 피식 웃었다. 귀여워, 귀여워!
경수가 깜빡 잠에 들었다 깼을 때는 까꿍이가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와야할 시간이었다. 경수는 까꿍이의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치원에 막 도착했을 때는 까꿍이 또래아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하마터면 경수는 이 무더운 날 길바닥에서 쓰러질뻔 했다지. 하나같이 찹쌀떡같은 애들이 오밀조밀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니 말이다. 경수는 유치원 문을 열고 와다다 달려오는 까꿍이를 안아들었다.
"엄마아!"
"유치원에서 재밌었어요?"
"응응! 오늘 있짜나 막 까까도 만들구~ 인형도 만들구우~"
늦은 저녁 노을이 어찌나 예쁘던지 하얀 찹쌀떡 같은 볼에도 잔뜩 노을이 비췄다. 까꿍이는 경수와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내내 잔뜩 신나서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경수에게 말 해주느라 집에 도착했을 때는 진이 다 빠져 경수에게 안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