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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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Z ANALOG - 여름밤
8.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자면
한바탕 억울해하고 나니 그 뒤로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새 지독하게 엇갈렸던 사실을 알고 화가 나다가도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만나 지금 내 옆에 서있는 김태형을 보니 울컥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말 없이 반짝이는 런던의 야경을 보다보니 더 감성적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스물 다섯이나 먹어놓고 구ㅡ어쩌면 현ㅡ 짝남 앞에서 우는 건 아무래도 좀 그래서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는 아직 교복 입은 그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지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태형이도 마음이 복잡미묘했는지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휙 돌아보는 걸 보니 내 훌쩍임이 산통을 깬 모양이었다.
“ 여주야, 잠깐만... 너 울어? “
“ 아니...그게 아니라... “
“ 왜, 왜 울어... 내가 미안해. 고개 좀 들어봐, 소매로 비비지 말고... 내가 닦아줄게. 응 착하다... “
김태형의 다정이 가득 담긴 달램에도 불구하고 6년간 꾸역꾸역 참아왔던 감정들이 모두 쏟아지는 것 마냥 눈물은 우리가 탄 캡슐이 한 바퀴를 돌 때 까지 멎을 생각을 않았다. 김태형 바보새끼. 나도 바보새끼. 서로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서 온 건지. 와중에도 내 얼굴을 감싸쥐고 조심스레 소매 끝으로 흐르는 눈물을 콕콕 찍어 닦는 그 모습이 너무, ...
와중에 나중 가서는 자기도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 큰 눈이 촉촉히 젖어갔다.
" ... Would you kiss me? "
김태형은 여전히 내 얼굴을 그러쥔 채로 물었다. 눈물이 가득 차 한 번의 깜빡임에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을 하고서.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으며 웃어보이자, 곧이어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말랑하고 따듯한 감촉이 입술 위로 닿아왔다. 김태형의 온도가 고스란히 옮겨지는 기분이었다. 너는 이만큼 따듯했구나, 태형아. 촉, 촉 하는 소리를 내며 가볍게 입술을 맞추던 김태형이 내 아랫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을 즈음, 갑자기 장난기가 돋아 얼굴을 떼곤 입을 앙 다물었다. 눈을 뜨니 눈을 감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깔고있던 태형이가 뭐냐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아, 이 당황하는 표정 오랜만이다. 맨날 너한테 놀림 받았었는데 이렇게라도 복수 해야지.
" 아, 하지 마... "
" 태형아. 누나 해주세요, 해봐. "
" 지금 애닳아 죽겠으니까 빨리... "
" 안하면 나도 안 해. "
" ... 해주세요. 누나. "
이제 됐지. 김태형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입을 맞대왔다. 눈, 눈 감... 그 덕에 다급하게 외치던 내 뒷 말은 먹혀들어갔지만 용케 알아듣긴 했는지 이내 맞닿아있는 볼에 눈물으 흘러 축축해졌다. 김태형과의 키스에서는 짠 맛이 났다. 얼만큼 그러고 있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겨우 한 발짝 뒤로 떨어져 주위를 살피자 이미 캡슐은 한 바퀴를 다 돌고 같이 타고있던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미친, 미친, 미친...! 나 첫키스 했어...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김태형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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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이를 탔던 건 나름 관광 목적이었으나, 우리 둘 다 런던의 야경은 개나 줘버린 것이 분명했다. 뒤늦게 현실을 인지하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며 서둘러 캡슐에서 내렸다. 캡슐 안에서와는 다른 종류의 정적과 어색함이 감돌았다.
“ 태형아. “
“ 응. “
“ 돈 아깝다. “
괜히 어색함을 깨보겠다고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내 말이 끝나자 김태형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난 하나도 안 아까운데.
" 그 대신 키스 했잖아. "
" 야...! "
" Did't you like it? "
" ... 너 이럴 때마다 영어 쓰지 마. "
그래서 싫었어? ...아니. 아까와 같은 눈빛으로 묻는 김태형에 겨우 가라앉힌 홍조가 다시금 올라왔다. 아까 받은 장난 되돌려주는 거라며 김태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손 부채질을 하는 나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걱정 없이 웃는 걸 보고 있자니 이 뒤에 있는 낯선 풍경들이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보이는 듯 했다. 밝게 빛나는 런던의 야경의 불빛은 하나가 나갔던 교실 형광등으로, 갈색 자켓을 입고 웃고있는 김태형은 항상 정복에 가디건을 챙겨 입고 다니던 김태형으로. 김태형이 아직 축축한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 고생 많았어. “
김태형이 내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학사모를 쓰고, 한 품엔 꽃다발과 졸업장을 들고. 같은 물음에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두 팔을 벌려보였다. 6년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기분좋은 섬유 유연제 향이 코 끝에 걸렸다. 어째 애가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키 차이 덕분에 태형이의 가슴 언저리에 갇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지만,
“ 좋다. “
머리 위에서 낮게 울려오는 김태형의 목소리를 마다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
“ 시간 늦었다, 데려다줄게. “
눈을 감고 걸었던 그 길을 돌아가면서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쳐다보며 걸었다. 우리의 이 우연의 우연같은 재회를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 뭘 그렇게 두리번 거리냐는 태형이의 물음에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깍지를 끼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김태형은 손을 더욱 세게 고쳐 쥘 뿐, 굳이 다시 묻지 않았다. 너를 다시 만난 지금을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어서 그렇게 쳐다본다고 대답할만한 용기는 아직 없지만, 마음으로라도 전달이 되었길 바랐다.
올 때 신명나게 꿈까지 꾸며 졸았던 튜브에서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조잘대며 이야기를 나눴다.
“ 너도 나 좋아했었다고...? “
“ 왜 자꾸 물어봐... “
“ 솔직하게 말 해봐. 뻥이지? 그냥 나 민망할까봐 하는 말 아냐? “
“ 아 진짜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었...! “
" ...ㅎㅎㅎ "
오케이, 인정. 얼떨결에 해버린 고백 아닌 고백에 대한 김태형의 반응은,
“ 태형아. “
“ 응. “
“ 너 귀 빨개졌다. “
아.
꽤나 귀여웠다. 본인도 몰랐던 듯 내 이야기를 들은 김태형은 멍청한 소리를 내더니 황급히 양 손으로 두 귀를 가렸다. 태형아. 내가 너 좋아해서 좋았어? 너만 좋아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나도 그랬었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가 식을 틈도 주지 않고 웃으며 몰아붙이자 김태형은 이내 얼굴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너 진짜... “
태형이에게 한 말은 어쩌면 나에게 하고싶던 말일지도 모른다. 내 말을 듣고 김태형의 두 손은 귀에서 얼굴로 옮겨갔지만, 손 틈 사이로 볼록 솟은 광대와 삐죽 튀어나온 입꼬리는 채 가리지 못했던 것 같다. 긍정의 대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참 야속하게도 시간은 이럴 때만 빠르게 흘러갔다. 20분 정도만 지난 것 같은데 벌써 호텔 앞이라니. 벌써 헤어지기 싫어 발걸음을 늦춰봐도 결국엔 로비였다. 호텔 정문에서 밍기적대며 어디 공원에라도 있다 가지 않겠냐는 나에게 김태형은 시간이 늦었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얘는 맨날 이럴 때만 단호해.
“ 나 가기 싫은데. “
“ 내일 너 나올 때 여기 있을게. “
“ 내일 내가 언제 나올 줄 알고? “
나는 다 알아. 내일 내가 어디를 언제 갈 건지 나도 모르는데 자기가 어떻게 알고 데리러 온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믿어주기로 했다. 이유는... 뭐, 여기는 런던이니까. 김태형과 내가 6년만에 마법처럼 재회한 런던이니까. 오늘 피곤할텐데 얼른 들어가서 씻고 쉬라며 내일 보자고 인사하는 김태형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호텔 앞에서 오도카니 서서 태형이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당연하게 내일을 약속하는 우리가 너무 좋아서 지금 들어가면 호텔 침대를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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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본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일단 지금은 못 보잖아. 아쉬움을 가득 안고 호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음... 아까부터 뭔가 계속 잊고 있는 느낌인데. 혼자 타있는 엘레베이터가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원래 혼자 타지 않았던 것... 아, 미친.
왜인지 모르게 계속해서 느껴지던 허전함. 그 원인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마크야... 너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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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금방 온다구 해놓고 넘 늦었죠...
죄송해여... 제가 바빠두... 완결은 꼭 내고 싶우니까... ㅋㅋㅋㅋ큐ㅠㅠㅠ (머리를 박는다)
죄송해서 구독료 0원임 따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