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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고래는 하수구에 | 인스티즈


BGM

악동뮤지션 - 뱃노래



고래는 하수구에











아, 비다. 기어이 비까지 합세했다. 이 처절하고 애달픈 하루에 기어이. 찰랑이던 머리칼이 가닥가닥 빗물에 젖어가는 와중에도 가방에 들은 편지 한 통 만큼은 지키겠다며 잔뜩 웅크린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참 처절했다. 해준 거라곤 이름 석 자 지어준 게 다인 그 여자가 얼마나 소중하다고. 가방을 머리 위에 얹었다면 조금 나았겠지만 가방 깊숙이 든 종이 한 장을 위해서 피하지도 못하고 내리는 빗방울을 오롯이 맞으며 걸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만약 내 인생이 드라마였다면 누구라도 이 장면을 보고 저 대사를 내뱉을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이건 현실이라 동정해줄 누군가따위 또한, 없다.






안 그래도 눈 뜨기가 힘든 장대비 속에 시야가 흐려져 앞길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다 헤진 소매로 벅벅 문질러도 이미 다 젖은 소매는 흡수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물기를 뱉어내기만 했다. 그 꼴이 꼭 엉엉 우는 것만 같더라. 소매가 나보다 더 슬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닦는 것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울분이 치밀어 죄 없는 소매에게 뭐가 그리 서러워서 그렇게 울고 있냐며 속으로 유치한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오르막을 걸었다. 꾸역꾸역 계단을 오르고 꾸역꾸역 물길을 건넜다. 항상 힘들던 길인데도 괜시리 더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마지막 계단만 오르면 집이었다. 저 앞에 보이는 익숙한 대문에 마음을 놓는 순간,




" ... 아 "




얼마 전부터 덜렁거리며 위태롭던 계단이 발을 딛자마자 무너져내렸다. 화룡점정. 그래, 화룡점정이었다. 흙탕물이 흘러내리는 바닥 위에 누워 뭐 하나 빠진 사람처럼 웃었다. 넘어지는 순간까지 가방을 끌어안아 팔꿈치와 턱으로 바닥을 쓸었다. 모서리에 부딪힌 무릎은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토록 지키려고 애지중지 안아온 것은 웅덩이에 착지했다. 스멀스멀 색이 짙어지는 꼴을 보니 그 편지 또한 익사중인 것이 분명했다. 마라도 낀 건가. 아니, 마가 낀 날이어야만 했다. 마가 낀 게 아니고서야 이런 불행이 성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 집에는 가야겠다 싶어 일어나려 했지만 땅을 딛자마자 몰려오는 고통에 그대로 다시 엎어졌다. 그리고 울었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비참할 수가 있나' 싶은 마음과 동시에 지금 얼굴에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비인지 모르겠다는 그 뻔한 대사가 마냥 픽션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미 푹 젖은 얼굴이지만 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차가운 게 흐르면 빗물이고 뜨끈한 게 흐르면 눈물이었다. 아까 넘어질 때 쓸린 곳들이 너무 아파서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 참아왔던 설움을 한 번에 토해내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울었다. 누구 하나 위로해주는 이 없이, 나름 보송했던 가방이 아주 젖을 때까지.






저기 보이는 하수구에 머리를 박아서 죽을 수 있다면 그러고만 싶었다. 이 생각을 하자마자 무엇에 홀린 것마냥 하수구 앞까지 기어가서 피가 맺힌 손으로 철장을 붙들었다. 여전히 거센 빗살에 계속해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그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하수구 깊은 곳에서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래?


고래인가?



빗물이 흘러들어가 더러운 물이 출렁였지만 그 속에서도 고고()함을 잃지 않던 그 눈빛이 마치 고고(槁)*한 내 모습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큰 물살을 일으키며 헤엄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 되게 부럽네, 난 이 넓은 하늘 아래에서도 단칸방에 갇혀 살아가는데 저 비좁은 오물 속에서도 여유로워서. 유유히 움직이는 꼬리를 낚아 묻고 싶었다. 그 더러운 물에서 헤엄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빛날 수 있냐고, 어떻게 그렇게 꿋꿋할 수 있냐고, 어떻게 그렇게... 선연(娟)**할 수 있냐고.


* 신세 따위가 형편없다

** 얼굴이 곱고 아름답다







좁디 좁은 하수구 안을 마음껏 헤엄치는 고래를 보고있자니 하수구 안에 고래가 갇힌 게 아니라 내가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철창을 붙들고 내보내달라 소리치는 죄수마냥 하수구를 붙들고 그 고고함을을 동경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하수구에 대고 중얼이다보니 고래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온갖 더러운 것들이 섞여있어야 할 물이 맑아보였다. 물이 투명해지니 그제서야 고래 등에 타고있는 웬 어린 애가 보였다.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고래가 수면 쪽 위로 올라오자 파도에 머리칼이 출렁이는 모습이 꼭 퍽 아름다워 보였다. 똑같이 젖었는데 왜 그 앤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데 내 머리카락은 가닥가닥 뭉쳐 축 늘어지기만 하는 걸까, 그 애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등바등하지 않고서도 가만히 앉아 넓은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 아이라면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 것만 같았다.


어느 곳 하나 묶이지 않아도 자유하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점점 가까워오던 고래가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올라왔다. 날 향해 손을 뻗는 아이가 보였다. 물거품과 이리저리 춤을 추는 머리칼 덕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저 흰 손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하수구 틈새에 손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기엔 문은 너무 작았고, 나는 너무 컸다. 뼈가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혹여나 기분이 바뀌어 손을 거둬버리진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까진 상처가 다시금 긁히는 중이라 미간이 잔뜩 일그러지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아야만 했다. 이유가 필요한 물음이 아니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확신이 들었다. 저 안에서 고래를 타고 이쪽으로 손을 내밀고있는 저 애는 분명히,









[방탄소년단] 고래는 하수구에 | 인스티즈


너도,

' 자유할 수 있어. '








나였으니까.











/











아, 어쩐지.




손 끝이 닿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한 천장이 시야를 채웠다. 아무리 꿈이래도 생생함의 정도가 실감을 넘어 진짜같았던 나머지 거기에서 오는 찝찝함을 쉬이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꿈을 꿔도 하필 이렇게 비참한 꿈을 꾸냐, 무슨 영화인 줄. 비척비척 이불을 걷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자 익숙한 듯 낯선 아릿함이 몽롱함을 깨웠다. 근육통인가? 어제 내가 뭘 했더라? 근데 나 집에 어떻게 들어왔었지. 생각 정리를 하려다가 밀려오는 허기에 뭐라도 해먹을 작정으로 일어났더니 예고 없이 접힌 무릎에서 피딱지가 뜯어져 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에이씨. 이불에 흐르지 않게 휴지를 대고 절뚝이며 구급상자를 찾았다. 어제 그 여자에게서 받은 편지를 이제야 읽어보려 가방을 찾았으나 항상 놓던 자리에 있어야 할 가방이 없었다. 라면으로 대충 배를 떄운 뒤 절뚝거리며 온 집안을 뒤적였지만 아무래도 어디에 떨어트리고 온 모양이었다. 그건 또 어디에 놓고 왔지.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와중에 젓가락질을 할 때나 물건을 들출 때마다 누가 손을 밟기라도 한 것처럼 마디 하나하나가 아픈 것도 성가시기 시작했다.








아.




저 흰 손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하수구 틈새에 손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기엔 문은 너무 작았고, 나는 너무 컸다. 뼈가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혹여나 기분이 바뀌어 손을 거둬버리진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까진 상처가 다시금 긁히는 중이라 미간이 잔뜩 일그러지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아야만 했다.





꿈이라면 성가시면 안될 것이 성가셨다.











/











집히는대로 아무렇게나 옷을 꿰어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앞에 있는 계단 저 아래 물웅덩이 안에 익숙한 가방이 보였다. 하나하나 내려가고 있으면서도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익숙하면서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어젯밤 꿈 속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보였다. 가방을 건져내자 질질 흐르는 물줄기를 보아하니 편지는 이미 운명을 달리한듯 싶었다. 스스로가 미친놈 같았지만 하수구도 확인했다. 꿈 속의 에메랄드빛 고래의 눈동자 따위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가까이서 보려고 자세를 낮추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만 반복했다.






 축축한 가방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빨라지는 발걸음과 함께 심장 박동도 박차를 가했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어제 그게 진짜였다고?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수구 속의 고래, 그리고 그 위의 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해봐도 주먹 한 번 쥐기 힘든 손이 계속해서 긍정의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은 가방과 무릎, 팔꿈치와 턱에 생긴 상처까지였다. 이젠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도 헷갈렸다. 그 애와 손끝이 닿자마자 난 집에서 일어났고, 상처들은 그대로지만 어제 입었던 옷은 얼룩 하나 없이 보송했다.











/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물 웅덩이 안에 처박힌 가방이 소년을 반겼다.


고래는 멍해보이는 표정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신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비틀거리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방탄소년단] 고래는 하수구에 | 인스티즈



" 가자, 이제. "










-


fin.



너무나 오랜만이여요 여러분... ㅁ7ㅁ8

타 사이트에 올렸던 글 업그레이드(?) 해서 왔읍니다 ㅎㅎㅎ...

제 글 아무도 안 읽어주실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ㅋㅋㅋ큐ㅠㅠㅠㅠ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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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뭔가 심오한 작품 같아서 섣불리 댓글을 달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대되는 작품임은 확실한 것 같아서 댓글 남기고 신알신 하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4년 전
비회원72.238
헐... 작가님 필력무엇 ....!!
기분좋은맘으로읽고갑니다
다음편도 빨리보고싶어요!!

4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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