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는 레지던트가 되고 좀 여유로워질까 싶었는데 더 바빠졌어. 아무래도 인턴때는 없었던 수술부담이 많이 커져버린거지. 인턴 때는 수술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옆에서 거드는 수준이지만 레지던트들은 많이들 참여하는 수준까지 가버리거든. 게다가 백현이 성격에 설렁설렁 할 리도 없었고 매일같이 다크서클을 분신처럼 달고 살았어. 게다가 레지던트들은 병원에서 숙식해결하며 살아야했거든.
"선생님, 응급수술 잡혔대요. 들으셨어요?"
"..네,"
"그럼 먼저 퇴근할게요, 수고하세요."
우리 결혼하고 집에 들일 가구를 보러가는 날이었는데, 내가 막 퇴근하려던 찰나에 응급수술이 잡혔다고 인턴들이 죄다 불려가는거야. 퇴근시간 1시간 남긴 백현이도 꼼짝없이 수술들어가서 밤 늦게야 나오겠구나하고 생각하는데 백현이를 마주친거지.
"저기,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수술 들어가셔야죠, 늦겠는데."
"..."
"그런 표정 말구, 후딱 끝내고 오세요. 얼른."
지나치려고 하는 나를 붙잡고 백현이가 미안한듯 이야기하는데 백현이가 미안해 할 일도, 내가 섭섭해 할 일도 아니었어. 그냥 우리 약속이 깨져버린 아쉬움 정도였지. 그렇게 바쁜 백현이를 보내고 종대한테 전화를 걸었어. 내일은 백현이 쉬어야하는 날이니 가구보러 기자고 끄집고 다닐 수가 없었거든.
"아우, 야, 내가 너네 혼수준비까지 이렇게, 어? 이게 야, 말이나 돼?"
"넌 그냥 내 옆에서 맞장구나 쳐. 혼자가면 처량해보여서 부른 거니까."
"처량? 처어량? 지금 김종대앞에서 니가 처,량, 이라고 한거야?"
시끌시끌, 내 옆에 딱 붙어서 떠드는 김종대를 끄집고 백현이가 말했던 가구점으로 들어갔어. 변백현이 바쁜 탓이었으니까 내 취향으로 죄다 골라버릴 셈이었지.
"어서오세요~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그냥 집에 들여놓을 가구 좀 보려구요."
"아, 두분 신혼이시구나, 뭐 부터 보여드릴까요?"
신혼이라는 말에 경악하며 나를 쳐다보는 김종대를 눈빛으로 다독이고 안쪽으로 들어갔어. 제일 눈에 들어오던게 침대라 침대먼저 보기로했어.
"침대는 깔끔한 스타일로 보여드릴까요?"
"네, 깔끔하고..좀 컸으면 좋겠는데."
내 말에 직원이 잠시 기다려달라며 사이즈표를 가지러 창고 쪽으로 들어갔어. 그 틈을 타 김종대가 깐족거리기 시작했지.
"왜 큰 침대를 찾으실까아~? 침대가 작아야 둘이 딱 붙어서 잘텐데에?"
"침대 좁으면 나 출근할 때 변백현도 같이 일어나."
"그걸 왜 벌써 아실까아? 둘이 벌써 살림 차리셨나봐?"
"넌 입 다물고 맞장구만 쳐."
"침대는 적당한 걸로 해라, 어차피 너 사람 등판 껴안고 자는 게 잠버릇 아니야?"
김종대 의견은 싸그리 무시하고, 어차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사이즈표를 들고 온 직원한테 내가 고른 디자인에서 조금 더 큰걸로 주문하겠다고 이야기한 뒤 식탁, 옷장, 선반 같은 걸 하나씩 점찍어뒀어. 내 스타일로 고르는 건 침대에서 만족해야지, 다른 건 나중에 백현이한테도 보여주고 주문할 생각이었어.
"이 의자는 어때, 둘이 싸우면 들어가있게."
"어..좋은데?"
김종대가 말한 의자는 동그란 공을 뚫어놓은 듯한 모양의 의자였어. 쏙 들어가면 마치 동굴속에 들어간듯한 그런 의자. 김종대는 장난처럼 던진 말을 내가 덥썩 문게 꽤나 당황스러웠던지 어색한 웃음을 흘려.
"변백현이랑 싸우고 서로 여기 들어가있으면 각방쓰는 거랑 비슷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너는 무슨..혼수준비를 싸움 생각하면서 하냐?"
ㅡ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노래란 노래는 다 부르고 다닌 탓인지, 신혼여행지는 프랑스로 정했어. 일단 신혼여행으로는 자주 가는 도시가 아니지만 우리는 신혼여행겸 관광을 제대로 하고 오고 싶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비행기도 예약하고 방도 미리잡고 들떠있었지. 결정적인 건 여행지에 입고 갈 옷이었는데, 아무래도 여행은 화려하고 샤랄라한 옷을 입고 가는게 제맛이잖아.
"내가 변백현 피팅까지 해줘야되냐, 친구야."
"너네 둘이 키 비슷하잖아."
"내가 더 큰데?"
"변백현이 더 컸으면 더 컸지, 솔직해져라, 김종대."
끝까지 제가 일센티 더 크다며 우기던 김종대는 그렇게 백현이 피팅모델이 되었어.
"어, 이거 예쁘다."
"이게 더 나은데, 이거 입어볼까?"
"그런가? 한번 입어봐."
김종대가 옷을 수도 없이 입어보고 대충 예쁘게 입혀지는 걸로 골랐어. 김종대가 입었을 때 조금 헐렁하거나 딱 맞으면 백현이한테도 잘 맞거든.
"야 이거 진짜, 진짜 변백현 스타일."
"그게 무슨 변백현 스타일이야?"
"변백현 이런거 진짜 좋아해. 몰라?"
"그 쪽이 사고 싶으신거 이야기하지 마시구요, 정말 좋아해?"
"응 좋아해!"
김종대가 자꾸 자기 취향을 백현이한테로 전이시키는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같이 질러버렸어. 오늘 같이 쇼핑해줬으니 김종대한테도 옷 선물 하나 할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싶었지.
대충 백현이 옷을 보고 내 옷도 본다고 이것 저것 골래댔어.
"이거 예뻐?"
"변백현이 좋아하겠다."
"이거 살까? 아니면 아까 그거?"
"변백현은 아까 그거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난 이게 더 예쁜 것 같은데."
그럴거면 왜 물어보냐는 김종대의 질타도 받고 무조건 예쁘다는 답 듣고 싶은거아니냐며, 그 유명한 답정너가 자기 친군줄은 몰랐다며..무튼 백현이가 청순한 걸 그렇게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었지. 덕분에 김종대가 골라댄 옷도 청순청순st였고 내가 여행은 화려한걸 입어야한다고 주장해서 화려한 원피스도 하나 샀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쇼핑백을 확인해본 결과, 내 옷보다 백현이 옷이 훨씬 많은 걸 보고 씁쓸하게 웃었어. 결혼 준비는 백현이랑 오붓하게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ㅡ
"오늘 종인이가 사고를 쳐서.."
오늘은 결혼식장 예약하는 날이었어. 결혼준비에 마가 낀 것도 아니고 무슨 일정이 있을 때마다 일이 터지는거야.
"김종인한테, 밤길 조심하라고 전해."
이미 예식장이랑 시간 약속을 잡아놓은 탓에 취소할 수도 없고 결혼을 늦출 수도 없어서 나 혼자 예식장으로 향했어. 오늘은 김종대도 일하느라 시간을 못내고 혼자 처량하게 갔지. 예식장 예약은 백현이가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었고. 나름 씩씩하게 갔어.
"어제 예약하셨죠?"
"네."
"남편 분은요?"
"사정이 생겨서 못 올 것 같아요."
"아,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직원이 안내해주는 의자에 앉아서 이것저것 설명을 들었어. 기본 패키지는 이렇게 나가구요, 옵션은 여기서 선택을 하실 수 있는데 가장 잘 나가는 옵션은 이거랑, 이거랑. 직원이 빠르게 하는 설명에 넋놓고 듣고 있다가 빠르게 결정을 내렸어.
"기본에, 제일 잘 나가는 옵션 두개. 그걸로 해주세요."
"네. 날짜는 변경사항 없으시구요?"
그렇게 결혼식장 예약도 전부 끝냈어.
ㅡ
"다 입어보면 안돼요?"
"야, 뭘 다 입어..몇개만 골라봐."
드디어 백현이랑 둘이 오게 된 웨딩샵에서 책자를 보며 티격태격하고 있었어. 나랑 백현이 스타일이 확고하게 달랐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했지.
"너무 답답해보이잖아."
"그건 너무 야해."
"원래 드레스는 어깨트임이 예쁜거야."
"어깨만 트인 게 아닌데?"
아까는 뭘 입어도 예쁠거라 그러더니, 이제 와서 이건 안되고, 이것도 안되고. 죄다 안된다는거야.
"그럼 니꺼 먼저 골라."
"다 똑같은데?"
"나비넥타이 해."
"나비 넥타이..?"
"제일 큰 거. 이거."
"자기야, 이건 내 얼굴만한데.."
백현이의 웨딩드레스 철벽에 나도 제일 큰 나비넥타이를 골랐더니 백현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려. 그런데 정말 남자 예복은 딱히 다르다 할 게 없어서 깔끔한 걸로 골랐어. 나비 넥타이는 적당한 크기로.
"그래도 한번 입어봐."
"꼭?"
"응, 꼭."
안 입어보면 안되냐는 백현이 등을 떠밀었어. 그 사이에 나는 내가 점찍어뒀던 드레스를 직원한테 이야기하곤 여유롭게 기다렸지.
조금 기다렸더니 탈의실 문을 직접 연 백현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와.
"이거, 입었더니 조금.."
"아이 예쁘다, 진짜 예쁜데?"
쑥쓰러워하다가 잘어울린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은지 함박 웃음을 지어. 정말로 옷이 백현이빨을 받은 건지, 사진으로 볼때보다 훨씬 예쁜거야.
"되게 어색해."
"아냐, 잘어울려. 완전."
디자인도 그게 제일 괜찮아보여서 고른건데 잘 어울리기까지 했으니, 더도 고민말고 그걸루 하자, 했지. 백현이가 많이 민망했던지 옷 갈아입겠다고 나보고 이제 피팅하라며 등 떠밀길래 탈의실로 들어갔어.
"이게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드레스인데, 신부님 안목이 좋으세요."
"그쵸, 쟤가 자꾸 어깨 파였다고 싫어해서 아까도 엄청 싸웠어요."
드레스는 입는게 굉장히 복잡하더라구. 백현이가 질색할만한 탑드레스였지만. 그래도 결혼식 환상이라는 게 있잖아. 인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인데 예쁜 드레스 입고 결혼하고 싶은.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드레스를 입고 커텐을 젖혔는데, 백현이가 주먹을 꼬옥 말아쥐고 기다리고 있는거야.
"야, 변백현."
"야, 내가 너 그거 안된.."
보자마자 잔소리를 하려고 입을 열며 나를 스윽 훑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웃음을 참는거야. 친구들 결혼준비할 때 수없이 들었던 드레스 피팅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백현이도 어쩔 수 없는 내 남자친구구나 싶었어.
"그래서 안 예뻐?"
"그럴리가요."
"나 이거 해도 되지, 자기야?"
"..음.."
"이거 입고, 결혼식.."
"해,해."
백현이가 애교에 약한 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조금만 말투 끌어줘도 끔뻑 죽는 앤데 자기야스킬 시전했을 때부터 이미 절반은 넘어왔었어. 거기다가 결혼식이라는 단어까지 나와버리니 우르르 무너지는 변백현이었어.
결국 면사포는 길게길게 뽑자는 백현이의 의견까지 수용해주고, 몇가지 드레스를 더 입어봤어.
"나 진짜 못 고르겠어, 다 예뻐."
"아니.. 그러니까, 나랑 제일 잘 어울리는 게 뭐냐고."
"우리 자기가 입는데 뭔들 안예뻐요?"
"...그래서 다섯벌을 다 입고 결혼 다섯번 할까?응?"
"응급실에 환자 5명이 실려왔는데 누구부터 수술실로 보내야겠는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야."
내 드레스 5개를 놓고 응급환자까지 꺼내는 변백현덕에 결국 첫 드레스를 골랐어. 처음 입은 게 아무래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거니까.
예복 예약까지 마치고 백현이랑 손 붙든 채로 집까지 운전해가는데, 또 팔불출같은 소리를 하는거야.
"있지."
"응?"
"너 진짜 예쁘다."
진짜 예쁘다는 말이 되게 흔한 말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잖아. 근데 또 그걸 백현이 입으로 직접들으니까 나도 주책맞게 웃음이 막 흘러나오는거야.
"뭐래, 진짜.."
"왜, 맞는데?"
"나 예쁜거 하루이틀도 아니구.."
"...?"
"이제 좀 지겹다, 예쁜거."
뻔뻔하게 나오는 내가 웃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던 백현이가 신호 걸린 틈을 타서 쪽쪽 입을 맞춰왔어. 운전하는데 뭐하는 짓이냐고 밀었지만 이 구간 신호가 길다는 건 백현이도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매일 이렇게 다녔어야 했는데, 미안해."
오랜만에 백현이랑 결혼준비다운 결혼준비를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내가 하루종일 웃고있었거든. 그래서 백현이도 유독 기분이 좋아보였는데 그게 또 끝에는 미안해졌나봐.
"뭘, 내가 레지던트 한두번 본 것도 아니구."
"아, 옷 사고 싶다더니. 지금 갈까?"
"옷 다 샀는데?"
"다 샀다고?"
"응 너 수영복 없다해서 그것도 사구, 티셔츠도 많이 샀어."
"언제?"
"저번주에."
"혼자?"
"아니, 김종대랑."
김종대 이름이 나오니까 웃음을 터뜨리더니 바로 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아무리 미안해하지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백현이 입장에서는 계속 미안했던 거지. 내가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한번씩 외로움을 느꼈던 것 처럼.
"다음 주 목요일부터 쉴거야."
"아 진짜?"
"응. 청첩장 드렸더니 교수님이 너 이름보고 좋아하시더라."
"교수님? 누구?"
"너희학교 생리학 교수님이었다는 그 분."
"아아, 내가 찾아뵀어야했는데. 섭섭하시겠다."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하시던데?"
백현이 말에 이번에는 내가 민망하게 웃었어. 우리학교 생리학 교수님이 우리병원에서 진료보시거든. 내가 학교다닐 때 조용히 다녔던 게 아니라서 교수님이 유독 나를 예뻐하셨어. 의대교수님인데도 간호학과학생들을 더 챙겨주시기도 했고. 백현이 레지던트 되고나서 그 교수님이 직속교수님이라길래 기억해뒀다가 카페에서 만났을 때 백현이 잘 봐달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어. 그 때도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요즘 만나는 사람이냐고 그러셨는데, 그 때는 결혼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었거든.
무튼 백현이는 도둑놈이라는 소리가 그렇게 좋았는지 웃음을 얼굴에서 숨기지 못했어. 안그래도 백현이가 요즘 청첩장 병원에 돌리면서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었는데, 그 때마다 팔불출처럼 좋아해서 병동 사람들이 다 웃을 정도였거든. 도둑놈이라는 소릴 들으면 자기가 정말 나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면서, 그렇게 좋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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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하고 파워비지걸이 되었어요..! 파워전공 파워교양 파워재수강 파워통학!
곧 추석이니 글 푹푹 쪄서 가져올게요! 추석은 잉여잉ㅇㅕ한 기간이니까요..! 다들 개강병 잘 이겨내시구 고삼분들은 9평병을 잘 이겨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