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정은 심각한 결벽증이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어김없이 나가서 칠판을 닦고 칠판 턱에 떨어진 분필가루를 닦는다. 주번이 아님에도 그랬다. 그리고 물티슈를 꺼내 자신의 책상을 닦고 의자를 닦고 필기구까지 꼼꼼히 닦은 후에 제 손을 씻고 오면 쉬는 시간이 끝난다. 수업이 시작하면 정수정은 깨끗한 공책을 펼쳐서 필기를 한다. 정수정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고 정갈한 글씨가 공책을 가득 메우고 나면 수업은 끝난다.
안 귀찮아?
그렇게 물으면 정수정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붉으르슴한 새빨간 입술이 부러웠다. 괜히 거울을 보고 입술을 매만지다 틴트를 꺼내 바른다. 다시 정수정을 쳐다보는데 또 열심히 물티슈로 필기구를 닦고 있다. 다리를 꼰 상태에서 발을 까딱거리다가 정수정의 맨 다리에 슬리퍼가 닿았다. 순간 불쾌한 얼굴로 쳐다보는 정수정의 얼굴이 매섭다.
미안.
물티슈를 다시 꺼내 기분 나쁜 듯 툭툭 치며 다리를 닦는 정수정의 행동에 괜히 머쓱해졌다. 거울을 보며 어느새 등 반절을 덮은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나름 만족해하며 매만지는데 손가락을 타고 흐른 머리카락 한올이 정수정의 치마 위로 떨어졌다. 회색 치마 위에 떨어진 검은 머리카락을 발견한다면 또 차가운 얼굴을 할 정수정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머리카락을 주우려 손을 뻗었는데, 손가락과 정수정의 허벅지가 맞닿았다.
머리카락이 떨어져서
또 매섭게 쳐다보는 정수정이 달갑지 않아 변명 아닌 변명이 튀어나왔다. 그렇게까지 기분 나쁜 일인가. 또 허벅지를 닦는 정수정을 보고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수정을 힐끔 쳐다보는데 세상에나. 찡그리는 얼굴마저도 예쁘다. 부러운 계집애. 입술이 비죽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