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오알 전체글ll조회 1252l 3


 
HIDDEN 03
 
W. 오알


 

[방탄소년단/민윤기] HIDDEN 03 | 인스티즈


 

 

창 밖으로 풍경들이 휙휙 스쳐지나갔다. 차는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내달렸지만 차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고요한 정적 속에 이 차는 어딜 향하는건지, 점차 마음이 불안해졌다. 옆을 흘낏 쳐다보자 윤기는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제 그 또한 잠을 깊게 자지 못했는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나도 피로가 몰려왔지만 목 뒤까지 뻣뻣하게 만드는 긴장감 때문에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창 밖을 계속 확인하는데 옆에서 한껏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가서 그냥 하고 싶은 얘기 해. 필요한 것만 필터링해서 들을 거니까. "


 
 

윤기가 감겨있던 눈을 어느새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초조한 손놀림을 멈추고 그와 시선을 맞댔다. 잠시 부딪히던 우리 시선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바라봄으로써 갈라졌다. 
 

 
윤기의 말은 충분히 영향력 있었다. 꽉 차 있던 내 머릿속을 정리하는 일이 수월해졌으니까.


 
 
 
 
 
 

차는 부드럽게 모퉁이를 돌아 섰다. 차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내린 나는 눈 앞의 커다란 건물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뜻 봐도 규모가 대단해보이는 고층빌딩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주변에는 건물이 없었고 인적도 드물었다. 그 때문인지 홀로 우뚝 서 있는 그 건물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윤기는 익숙한 듯 회전문을 밀고 건물에 들어섰다. 나도 얼른 그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외부보다 더욱 휘황찬란했다. 환한 조명들과 고급스러운 내부 장식들, 들어오자마자 눈길을 꽂히게 하는 커다란 대리석 계단까지 온통 값비싸보이고 빛나는 것들로 가득했다.
 
 
 
 
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때 아주 빠른 걸음으로 윤기 앞을 스쳐지나가던 누군가가 멈춰섰다. 앳되보이는 얼굴에 양 팔에는 서류뭉치를 가득 든 남자였다.



" 어? 여긴 웬일이세요, 오랜만에 봅니다. "

 

 
" 아, 이번에 우리 팀 일 들어와서. "
 
 
윤기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 아, 한 씨 건 말씀이시죠? 요즘 그거 때문에 본부도 들썩들썩해요. 근데 뒤엔 누구? "
 
 

 
" ..... "
 

 

그가 눈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히죽 웃자, 윤기는 뭐라 말해야할지 고민하는 듯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 여자 데리고 오신 거 처음 봐요. 오, 이런 투샷 신기한데요? "

그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윤기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윤기는 나를 돌아보며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자칫 어색해질 뻔한 상황을 무마했고, 따라오라며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나는 방금 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건물 안을 구경했다. 어딜 가나 반짝거리는 조명들이 켜져 있었다. 게다가 복도는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 길을 찾아 들어가는 윤기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쉴 새 없이 코너를 돌고 끝없이 쭉 뻗어있는 복도를 따라 걷자 마침내 앞서가던 윤기가 나를 돌아보며 어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덩그러니 놓인 회의용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나를 맞았다.

윤기가 의자를 끌어내 털썩 앉았고, 나 또한 맞은 편 의자에 착석했다. 문이 닫히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않았다. 윤기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 여긴 CCTV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하던지 상관 없어, 그냥 말해. "



그의 눈길을 따라 천장을 훑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설치되지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입을 뗐다.




" 어, 일단-. 한 씨를 처음 만난 건 제가 15살 때.. 였던 것 같아요.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뭐든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다 퇴짜 맞았었어요. 그 쯤에 한 씨가 쉬운 일을 시켜줄테니 해보라고 하셨어요. 처음 한 씨 밑에 들어갔을 때는 하는 일이 거의 없었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야 개인비서 일을 시작했어요. 사실 개인비서라고 해봤자, 그냥 손님 오면 커피 나르고 심부름하고 서류작성하고.. 그런 잔 일이 많았지만요. "
 
 

 
 
" 서류작성이라고 함은? "
 
 
 
 

 
" 아, 그냥 알 수 없는 숫자들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한데 그 때는 그냥 시키는 거니까 군 말 없이 했었네요. 어차피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었고, 그 분도 굳이 가르쳐주지 않으셨거든요. 가끔은 돈 액수로 보이는 0이 가득한 숫자들을 적기도 하고 무슨 암호같은 숫자들을 타이핑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자세히 기억은 안 나요. "
 
 
 

 
" 죄송할 것 없어, 계속 해. "
 
 
 

 
그가 하얗고 긴 손가락들 안에서 펜을 굴리면서 대꾸했다. 
 
 
 
 
 

 

" 네, 그렇게 타이핑해놓은 서류들은 도로 가져가셨어요. 사장실로요. 사장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리고 거기서 거의 나오시지도 않으셨구요. 그런데 정말 정말 운 좋게 문이 몇 번 열려있던 적은 있었어요. "
 
 
 

윤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자세히 얘기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 문 틈 사이로 들여다봤을 때 그.. 사무용 책상 옆에 빈 공간이 있거든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그냥 눈으로 쓱 훑고 지나가면 전혀 빈 공간이 있는지 몰라요. 사장실 안이 워낙 빛이 잘 안 들기도 하고, 그 쪽까지 자세히 보기란 쉽지 않거든요. 집중해서 찾는다고 해도 책상이랑 벽이랑 붙어있는 줄로만 알지, 그 곳에 공간이 있는지는 모르거든요. 저는 그 건물 안에서 몇 년을 살면서 수천번 사장실 앞을 지나갔는데, 그 곳에 뭐가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어느새 제스처가 커져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으려고 애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 한 씨가 몸을 숙이고 뭔가를 뒤적거리고 있길래 집중해서 들여다봤어요. 상체를 완전히 그 쪽으로 기울이고 그 공간 속에 아예 머리를 다 집어넣고 있어서 제가 보고 있는 줄은 몰랐을 거에요. 철컥철컥 소리도 나고, 전자음도, 끽하는 쇳소리도 들렸어요. "

 
 

" 금고네. "


" 네, 맞아요. 오, 금고였어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수긍하다가 순간 깜짝 놀라 입을 손으로 가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 어, 어떻게 아셨어요? "

" 금고밖에 더 있어? 쇳소리 나고, 전자음 나고. "

 

 
그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사라졌다. 일이 쉽게 풀려간다고 느끼는지 한결 풀어진 표정이었다.

 
 
 

 
" 그리고 한참 뒤에서야 고개를 들더니 금고를 잠그더라구요. 굉장히 조심스러워보였어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확인하길래 얼른 사장실 앞을 급히 지나가는 척했어요. 혹시 사장실 안을 몰래 들여다본 걸 들켰을까 봐 걱정하면서 데스크에 앉아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와서 묻더라구요. 뭐 본 거 있냐고. 전혀 못 봤다고 대답했어요. 안 믿는 눈치기는 했는데 절대 아니라고 온 힘을 다해서 완강하게 부인하니까 돌아가더라구요. 약간 미심쩍어하는 것 같긴 했어요. 그 뒤로 훔쳐보는 건 꿈도 못 꿨죠. "
 
 
 

 
"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있었지? "

 
 

" 음.. 한.. 3개월 전이었던 것 같아요. "

 
 


" 날짜는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지네. 한 씨가 우리 조직 기밀문서를 빼돌렸던 것도 그쯤이거든. 기밀문서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나서부터 비상이 걸렸지. 우리 조직과 거래하는 모든 거래상들은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되었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한 씨를 우리 팀이 관리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고. 그렇게 점점 범위를 좁혀가다가 결국 한 씨가 걸린 거야. "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결국 맞았다. 한 씨는 규모가 상상도 안 될 만큼 큰 조직과 거래하던 거래상이었고, 그 큰 조직을 상대로 문서를 빼돌린 거였다. 이제야 내가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조직 거래상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구나, 내가.

 
 

 
왜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가 이런 어두운 일을 하는 줄 알았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난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 쪽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냥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고 그저 머리도 마음도 텅 빈 것 같았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기분 나쁘고 심오한 사람이었다. 날 거둬줬었지만 언제든지 날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무서웠다.

 
 
 

 
아니, 그에 대해 감정이 아예 느껴지지않는다는 건 취소다. 꽤 오랜 시간 함께해서 그런지 그에게 조금 배신감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나쁜 일이었을까.
 
 
 
 
각은 깊어져갔다. 한 씨라는 사람에 대해서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벌이고 있던 일들과 그가 내다보던 사악한 거짓말투성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빠진 아이였던 것이었다.

 
 
 

 
" 그냥 갑자기 너무 많은 걸 알게되어서 혼란스러운 거야. 이해해, 나도 그랬어. 어느순간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깊이 생각하려 들지마. 그냥 그랬던 거구나, 하고 넘겨. 우울하게 가라앉아있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
 

 
 
윤기가 심각한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나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듯 정신이 확 드는 느낌에 눈을 굴리면서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래, 오래 생각해봐야 뭐가 달라지겠나. 그의 말이 백번 옳았다.
 
 
 
 
하지만 됐다 됐어, 하고 훌훌 털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모른 채 헛된 시간들을 보냈었다. 무지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방황하고 있을 나에 대한 두려움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날 쓸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냥 머릿속을 지워버렸다. 아무 생각을 갖지 않기로 했다. 한 씨가 잡힘으로써 내 비서 일도 끝난 것 같고. 걱정은 미뤄두기로 했다.
 
 
 
 

 
" 네, 이제 더 이상 기억나는 건 없어요. 덕분에 생각도 좀 정리된 것 같구요, 고마워요. "
 

 
" 나도. 그 쪽이 생각보다 실마리를 많이 던져줘서. "
 

 
" ..... "
 

" 데려오길 잘한 것 같아. "
 
 

 

 
뜻밖의 말에 나는 놀라 커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말을 이었다. " 아, 그리고 집에 먼저 들어가. 난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올라가봐야 해, 여기 구조가 복잡하니까 로비까지는.. "


" 괜찮아요, 바쁠텐데 올라가봐요. 전 기분 전환 겸 구경하면서 천천히 내려갈게요. 차는 건물 앞에 검정색 차 타면 돼요? "


윤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걱정 말라고 손을 내저으면서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윤기와 나는 이내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윤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곳이었다. 매일 봐도 질리지않을 것만 같은 호화스러운 이 곳은 계속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나는 섬세하게 무늬가 새겨진 기둥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보면서 신기해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몇 층 내려오자 한껏 꾸민 여자들이 가득했다. 여자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서 그윽한 향수냄새를 풍겼다.

 
 
 
나는 계단에 멈추어서서 그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비서 일을 할 때 입었던 낡은 정장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순간 창피한 마음에 도망치듯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닿는대로 걷다보니 길게 펼쳐진 복도가 나왔다. 아까 올라올 때 복도를 끝까지 걷고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았던 것 같았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는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서 귓가에는 내 발걸음 소리만 울려퍼졌다.
 
 
나는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휙 돌았다. 
 
 
 

 
당연하게 대리석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내려가면 건물에 들어설 때 처음 보았던 그 홀이 나올 줄 알았던 나는 나를 가로막고 서있는 난간에 당황스러워졌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밑을 내려다보았다. 홀은 보이지않고 어둠만 가득했다. 그 밑은 나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아주 새까맣고 어두컴컴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않는 어둠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돌아서서 복도를 다시 걸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다급해진 걸음이었다. 일이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로비까지 데려다달라고 할 걸,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선 길을 잃은 것이었다.

 
 
 
 
 

 
다시 복도의 끝에서 복도 끝으로 되돌아왔다. 이제는 아까 어느 쪽으로 왔었는지마저 헷갈리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걸었다. 처음 보는 복도가 다시 펼쳐졌다.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걸었다. 그 복도가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완전 미로구나. 이럴 때 주위에는 왜 아무도 없는건지, 조용한 복도에는 나 뿐이었다. 어느새 내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차근차근 왔던 길을 되짚어보자고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타기 전에 오른쪽에서부터 출발했었지. 그렇게 몇 번을 왔다갔다 한 끝에 겨우 그 여자들이 몰려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여자들 중 한 명에게 길을 물어 찾는 편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기둥에 기대어 서서 깔깔거리고 있는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 저어.. "

" 네? "
 
 
 

그 여자는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면서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새카만 눈동자색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 로비로 가는 길이 어떻게 돼요? "

 
 
여자가 붉게 칠한 입술을 깨물면서 다시 물었다. 
 

 
" 뭐라구요? "
 

 
" 로비로 가는 길이 어떻게 되냐구요. "
 

 
" 아아.. "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여자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쿡쿡 웃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덩달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이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나를 비웃는 눈치였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너무 오래 걸어 피곤하고,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뭐라 따질 여유도 없었다. 여자 둘은 둘이서 무어라고 속닥거리더니 옆에 있던 여자가 눈을 반달모양으로 휘어보이며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오른쪽으로 돌아서 복도 따라 그대로 가세요. 그냥 그렇게 쭉 걸으시면 나와요. "
 

 
" 네에, 감사합니다. "
 

그 여자가 키득거리면서 뭘요, 하고 대답했다. 
가르쳐준 길이 어딘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 그렇게 돌아서려는 순간 누가 내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 똑바로 다시 말해. "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여자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입술을 붉게 칠한 여자가 나를 머뭇거리며 쳐다보았다. 내 어깨를 잡은 두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갈 때쯤에야 사태를 파악한 여자가 억지로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 아, 저도 잠깐 착각해서 잘못 알려드린 것 같아요. 이 앞에 계단 타고 내려가서 중앙복도로 가면 돼요. "

 
 
 
" ..재밌나? "

 
 
 
" ..아뇨, 그.. 죄송해요. "

 
 
여자가 눈길을 피해 턱을 밑으로 내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절대, 앞으로 내 눈 앞에 띄지 말고, 가 봐. "
 
 
 
 

 
딱딱 끊어지는 말투는 여자를 주눅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여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곤욕을 치른 게 짜증이 나는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봤다. 윤기가 굳은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어깨에서 천천히 손을 뗀 그가 그 표정 그대로 내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 미안해요. "

 
 
정말 바보같았다. 길을 잃고 온 복도를 헤매고 다닌 게, 여자들이 부러 잘못 알려준 길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 하.. 정말. "
 
 

 
그가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을 때는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 왜 굳이 걱정할 일을 만들어. "

 
 
" ..... "
 

" 바쁜 남 위한답시고 괜한 짓 하지 말고, 내려가. "

 
 

 
그는 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짤막한 복도가 나왔고, 바로 로비로 이어졌다. 이 쉬운 길을 혼자서 왜 그렇게 돌고 돌았었는지, 속상하고 착잡한 마음에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미 시간은 꽤 흘러있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윤기는 건물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나는 거의 뛰듯이 걸어야했다. 그가 차문을 열어놓은 채, 차에 기대 서 있었다. 쭈뼛거리며 차에 올라타 자리에 앉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윤기가 차 문을 조용히 밀어닫았다.
 
 
 
 
 
차는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출발했고 건물로 다시 들어가는 윤기의 모습도 휙 사라졌다.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면서 두 손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선을 그리면서 주르륵 떨어져내렸다. 그렇게 바깥 풍경이 천천히 젖어갔다.
 
 

 

 

 

 

 

 

 

 

짠! 서프라이즈로 찾아왔어요!

며칠만에 왔는데 글 분위기가 어두워서 맘에 쫌 걸리지만요ㅠㅠㅠ

아 그리구! 암호닉! 댓글들 넘넘 고마워요! ♥

[암호닉]

꾹꾸기 / 열렬히 / 삐삐까 / 현기증 / 호비 / 챠이잉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현기증
헐 작가님... 오늘도 분위기 대박이네요......아ㅠㅠㅠㅠㅠㅠ뭐라 그러지 뭐라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조심스러워서ㅠㅠㅠㅠㅠ그냥 이건 대박입니다ㅠㅠㅠㅠㅠ대작이에요ㅠㅠㅠㅠㅠ뭔가 이입되는 것도 대박이고 상황이나 감정을 되게 잘 표현하시는 것 같고요ㅠㅠㅠㅠㅠ그냥 좋습니다ㅠㅠㅠ

7년 전
비회원246.185
챠이잉입니다ㅠㅠㅠㅠ허뉴ㅠㅠㅠ작가님 오셨어요 이렇게 기쁠수가....윤기 넘 멋진거 아닙니까 일단 분위기가 어마어마하구요....읽다보면 제가 글안에 살아숨쉬는 기분이 듭니다ㅠㅠㅠ작가님 The Love...☆
7년 전
독자2
꾹꾸기
와 내 암호닉이 1등이어쒀!!!! 오예~!! 오늘 분위기 완전 맘에들어요ㅠ♥ㅠ 와 진짜 작가님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7년 전
비회원99.168
호비에요!
하...작가님 이런분위기...ㅜㅠ 제가 사랑한다고 말했나요?? 사랑해요 작가님..ㅜㅠ작가님 글 분위기에 감탄하고 필력에 감탄하고..ㅜㅠ
오늘도 글 재미있게읽구가요!

7년 전
독자3
삐삐까에여!!!! 오늘도 윤기는 흫 하.. 진짜 치이고 치여서 제 심장이 남아돌까 걱정일정도에욬ㅋㅋㅋㅋㅋㅋ
7년 전
독자4
미뉸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한테 치여살아 내가ㅠㅠㅠㅠㅠㅠㅠ진짜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5
ㅠㅠㅠㅠ민윤기ㅠㅠㅠ겆나설렌다ㅠㅠㅠ여자글나빠
7년 전
독자6
저 기집애들을 정말..! 부들.. ㅠㅠ 작가님 글은 차분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여!
7년 전
독자7
여자들 나빴다....ㅂㄷㅂㄷ 윤기멋있구요~~
7년 전
독자8
워윤기진짜낮게깔리는목소리음성지원돤더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0
핡..윤기야..멋져..
7년 전
독자11
으윽 윤기 왜 이렇게 멋있나요 나 죽으라고... 범인은 민윤기...
7년 전
독자12
여자 나빠ㅠㅠㅠㅠㅠㅜㅜ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3
아 여자들 괘씸하네요 ㅜㅜ괜히 길을 잃어가지고 ㅠㅠ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강동원 보보경심 려 02 1 02.27 01:26
강동원 보보경심 려 01 1 02.24 00:4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633 1억 02.12 03:01
[이진욱] 호랑이 부장남은 나의 타격_0916 1억 02.08 23:19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817 1억 01.28 23:06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2 예고]8 워커홀릭 01.23 23:54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713 1억 01.23 00:4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615 1억 01.20 23:2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513 1억 01.19 23:2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517 1억 01.14 23:37
이재욱 [이재욱] 1년 전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_0010 1억 01.14 02:52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415 1억 01.12 02:00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420 1억 01.10 22:24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314 1억 01.07 23:00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218 1억 01.04 01:01
윤도운 [데이식스/윤도운] Happy New Year3 01.01 23:59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120 1억 01.01 22:17
준혁 씨 번외 있자나31 1억 12.31 22:07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나의 타격_0319 1억 12.29 23:1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213 1억 12.27 22:4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118 1억 12.27 00:5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end22 1억 12.25 01:21
이진욱 마지막 투표쓰11 1억 12.24 23:02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1]11 워커홀릭 12.24 01:07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1617 1억 12.23 02:39
이준혁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 1억 12.20 02:18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1427 1억 12.19 01:40
전체 인기글 l 안내
4/26 14:36 ~ 4/26 14:38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조각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