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분위기도 잠시, '야식 먹자', '치킨 시킬래', '뭐 시켜' 이런 대화들로 북적이는 거실에 정윤오 문만 노려 보고 있고, 그것 본 김도영 한숨 쉬면서 김정우 하고 소리치겠지. 퉁퉁 부은 눈으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네, 나가요" 실실 웃으면서 오는 꼴 보고 속 터진다. 재현이 옆에 앉더니 눈치 보다가 한다는 말이.
B 형, 누나한테 지금 연락해도 될까요.
X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는데.
B 된다고 해 주라, 형.
X 할 거면 빨리해, 너.
B 형, 저는 오늘 죽어도 치킨 먹어야 되니까 시켜 주세요. 아시죠, 저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 진짜로, 치킨!
재현이한테 치킨 주문해 놓고 정우는 폰 들고 2 층 올라간다. (애들 이야기 듣고 대충 머리로 그린 숙소 궁예 파티) 2 층 거실 소파에 누워서 폰 만지작거리다가 자기가 마지막 카톡이랑 누나가 생일 맞춰서 보낸 문자 한참을 보겠지. 그러면서 후회 엄청 했을 거야. 누나랑 보낸 4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 번째로 맞는 자기 생일인데, 누나 아무리 스케줄에 작업에 바쁘게 지내도 항상 열두 시에 장문의 편지 남기고도 손편지 써 주던 사람인데. 이거 분명 종일 고민하다가 겨우 생일 끝자락에 겨우 '생일 축하해' 이 다섯 글자 남긴 거 생각하니까 또 울컥한다. 열두 시다 돼가는 시간이라 연락했다가 방해라도 되는 건 아닌지 망설이다가 문자 남기겠지. '누나 보는 대로 전화 주세요.' 남기면서도 낯선 상황인게, 원래였음 누나 작업실에 있을 시간인데 하면서도 속으로는 '활동 끝난지도 얼마 안 됐고,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잘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니까 누나 스케줄 하나도 모르네.'
한편, 연상은 집 도착하자마자 잘 챙기지도 않던 저녁 챙길 거라고 라면 끓였다가 한 젓가락 먹고 변기 직행하고서 머리 말리지도 않고 침대에 등 기대고 있을 거다. 컴백 준비한다고 다이어트는 물론, 방송에 예쁘게 안 나온다고 매일 저녁 금식까지. 근 세 달을 정상적인 식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그럴만도 하지. 점심은 셋이랑 먹고 하도 돌아다녀서 소화된 줄 알았는데 127 숙소 들어가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힌 건 아무도 몰랐을 거다. 윤오 ,도영 올라가자마자 담벼락에 기대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거 겨우 삭히고 출발했겠지. 이번 활동 스케줄도 전보다 많이 줄었는데 성적도 대중 반응도 다 좋아서 소속사 팬들 전부 만족하는 활동이었지만, 여주한테는 이번이 제일 힘들었을 것 같다. 그냥 자기가 쉴 공간이 없었거든. 불면증에 시달리던 연상, 연화 목소리에 잠드는 게 일과의 마무리였는데 그 당연한 과정 하나 생략됐다고 다 망가진 자기가 같잖았을 거야. 내가 렇게 약해빠진 인간이었나 싶고, 이런 생각하는 와중에 알림 때문에 반짝이는 폰 보고 '아, 저거 정우가 해 준 건데.' 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확인했는데 하트 이모티콘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거 김정우거든. 곧장 폰 들어서 문자 확인하고, 목 가다듬다 전화걸겠지. 그 시간, 연락 없는 폰에 '아, 오늘은 아닌가 보다.' 하고 내려갈라던 차, 울리는 벨소리에 연하 벌떡 일어나 전화 받을 것 같다.
A 여보세요.
B … 여보세요.
A ………
이여주 말 없는 거 저거 울컥해서, 그거 들키기 싫어서 그런 거야. 자기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사람인데도 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소리라, 그냥 그 한 마디일지라도 너무 간절했거든. 이여주 이번 활동 내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데뷔 때부터 같이한 매니저가 오죽하면 정신 차리라는 쓴소리를 했겠냐고.
B 누나, 제가 깨웠어요?
A 아니, 씻고 나왔어.
뚝뚝 끊어지는 대화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 건, 이번에는 정우 몫이니까.
B 누나, 머리 안 말렸죠. 감기 걸린다니까, 말 안 듣고 또. 한창 꽃 필 시기인 건 맞는데 꽃샘추위라는 말이 왜 있겠어요. 얼른 일어나서 머리 말리자, 얼른요. 누나 눕기 전에 창문 닫았는지 확인하고요. 이불 따뜻하게 덮고.
A 정우야, 김정우. 누나 머리 말리고 올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안 돼?
B 왜 안 돼요. 돼, 진짜 되니까, 얼른 다녀오세요.
울음 참느라 푹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서, 진짜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겠지. 두피 쪽 다 말리고 머리카락에서는 물 떨어지지 않게 말리고 자리 찾겠지. 그 사이에 일정한 소음에 눈 살짝 감고 기다리던 정우 부르는 소리에 계단 밖으로 고개 내미는데, 치킨 보고 실실 웃을 것 같다. 그거 정윤오 작품이거든. 떡볶이를 먹니, 피자를 먹니 하며 혼란스러운 와중에 조용히 김정우 최애 치킨 시켰을 거다. 미안하기도 했고, 빨리 누나랑 화해하라는 마음에서 치킨 사수하고 있을 꼴 (생각하니까 귀엽네) 이 웃기겠지. 사촌이라면서 접점이 많은 둘이 김정우 입장에서는 제일 흥미로운 요소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