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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꽃-제1화 

 

 

 

 

 

 

 

 

 

 

 

 

 

w.화양동탄소 

 

 

 

 

 

*BGM.호랑이수월가-침대정령 

 

 

 

 

 

 

 

 

 

 

 

 

 

 

 

 

띠링-, 띠링-. 

 

 

 

 

 

요란한 알람 소리에 나는 몸을 비비적대며 눈을 떴다.  

오전 6시. 오늘은 토요일이다. 워낙 교칙이 엄한 학교에 다니느라 휴일에도 평일과 마찬가지로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 좀 더 잘걸 하는 후회감이 느껴지지만 이미 잠은 다 깼다.  

 

방 밖으로 나오니 이미 엄마가 있는 주방은 소란스러웠다. 항상 그렇듯 아빠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신문을 읽다 잠 깬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다. 

 

 

 

 

 

 

"여보 탄소 좀 봐. 여자애가 어떻게 잤길래 한 쪽으로 묶고 잤던 머리가 다 풀어 헤쳐져 있을까? 하하." 

 

"그러게요. 누굴 닮았길래 잠버릇이 요란한지. 옆에서 자다가 발로 차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니까요~." 

 

 

 

 

 

매일 보는 데도 매일 놀린다. 내 모습이 그렇게 웃긴가.  

내가 사춘기가 심하게 오지 않아 2차로 부모님께 화를 내거나 말대꾸를 하지 않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까지 이 말에 합세해 요란 하고도 시끄러운 아침을 맞겠지. 

 

화목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 편은 외롭다 못해 쓸쓸한 느낌이 잔잔히 존재한다. 사실, 이런 느낌을 받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달이 유난히도 크고 밝게 떴던 그날 밤에 꿈을 꾼 후로는 아니 정확히는 한 남자를 본 후로 기억나지 않는 그의 얼굴, 목소리가 내 맘 속 깊은 곳에 머물며 도통 잊혀지지도 떠나지도 않고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그 꿈의 내용으로는·····. 

 

 

 

 

이름 모를 새하얀 꽃들이 가득한 꽃밭이었다. 그 꽃발 한가운데 갓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뒷모습만 보여서,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는 천천히 꽃밭 안으로 들 

어섰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던 어느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남자가 입은 도포자락은 물론이고 쓰고 있던 갓까지 벗겨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사내는 한 손으로 갓의 끝을 고정시키는 듯 잡고는 내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그 순간 우린 어느새 소복히 눈이 쌓인 곳에 서서 서 

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처음 보는 사내였지만 낯이 익었고 내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만큼 한가득 고여 있었다.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국ㅇ··ㅏ··." 

 

 

 

 

 

내 부름의 답을 듣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눈을 떴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갔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날 이후는, 그 꿈을 꾼 이후로는 도저히 내 인생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한이 서려있던 그 사내의 얼굴 때문인가, 이상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사내는 현시대 사람은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옛 사람을 보고 반해(?) 정신을 못 차린다는 것인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그 꿈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나였다.  

 

잊으려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선 말이다. 

 

 

 

 

 

 

 

 

 

전화 왔쭁-, 전화 왔쭁-. 

 

내 10년지기 절친, 세희의 전화였다. 중학교까지 함께 다니다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간간히 연락만 하다 오랜만에 걸려오는 전화에 반가운 목소리로 세희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탄소야?." 

 

"이게 누구야. 새로운 친구 만나더니 옛 친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더냐!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박세희." 

 

 

 

 

 

쌍둥이라 오해를 살 정도로 붙어 다녔던 우리이기에. 거리가 멀어지며 덩달아 마음도 멀어진 것만 같아 괜히 오랜만에 전화한 세희에게 투정을 부렸다.  

 

 

 

 

 

"만나자고 매일 연락해도 공부해야 된다며 피하던 게 누구인데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잔말 말고 30분 후에 집 앞으로 갈 테니깐 오늘은 나랑 시간 보내자. 오늘도 공부할거야?" 

 

"놀고 싶은데 오늘 해야 할 공부가 있기도 하고···아, 세희야 나랑 같이 도서관 갈래?" 

 

"뭐··?" 

 

"오늘 해야 하는 것만 하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자, 응? 응?" 

 

"진짜 못 말린다. 공부가 그렇게 좋아? 딱, 3시간만 있을 거다. 그 이상은 나한테 너무 고난이야··· 알겠지?" 

 

"그래, 그래. 얼른 할 것만 하고 놀자." 

 

 

 

 

 

 

 

난 2018년을 기준으로 올해 열여덟의 평범한 여학생이다.  

다만, 특목고에 진학하고 있어 공부에 관심이 조금 많을 뿐 이성에게 관심도 호기심도 많은 그저 평범한 열여덟일 뿐이다.  

 

 

[오후 1시] 하루 종일 여유부리며 하고자 세웠던 목표들을 세 시간 안에 끝내야 하니 시작 전부터 거부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놀 생각을 하니 기분 좋게 공부를 시작했다. 중간 중간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세희를 뿌리치며 힘겹게 세시간을 딱채워 공부를 마쳤다. 이제 마음 편히 놀 생각으로 도서관을 문을 나서는 데 대뜸 떠오르는 사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볼이 발그레졌다.  

 

이를 본 세희가 당황한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빨개졌냐 물었지만 차마 이유는 말하지 못하고 덥다며 추궁하려드는 세희를 이리저리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우리는 오랜만에 오늘이 마지막이라도 된 듯 미친 듯이 놀았다. 딱 이 표현이 우리를 설명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놀았다. 떡볶이 집에도 가고 노래방, 피씨방도 갔다. 뭐 항상 그렇듯 마지막 코스는 카페였다. 그동안 각자의 삶을 살며 느꼈던 수 많은 감정들을 대화로 풀어 공유했다.  

 

 

 

[오후 10시] 시간이 빠르다 늦은 밤 아쉬워하는 세희를 집에 데려다 주고는 오랜만에 산책이라도 할겸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다. 사실, 머리 정리를 하고 싶었다. 고3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대학'에 관련된 생각을 제외하고서는 머리에 두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꿈에서 봤던 그 소년도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다리 중간을 건너고 있는데 다리의 난간에 비틀거리며 위험하게 서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딱 봐도 앳된 얼굴에 나보다 어린 혹은 많아봐야 한 살이나 많을 얼굴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내가 그냥 지나간다면 분명 이 아이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거란 생각에 조심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야, 너 뭐하고 있어?" 

 

"......" 

 

"사람이 말을 걸었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네. 왜,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교복을 입고 위험하게 다리 난간에 서있는 거지?" 

 

 

 

 

 

다시 한 번 질문을 했지만 처음 말 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길도 주지 않는 남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가 보고 있을 거라 예상되는 곳을 쳐다보려 노력했다. 내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걸 본인도 느꼈는지 긴 정적을 깨고 들린 그의 말은 차가웠다. 

 

 

 

 

 

"난 오늘 죽을거야." 

 

 

 

 

'죽는다'는 흔히 듣지만 언제 들으나 진지하게 말하자며 어색한 그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하지 않은 척 하려 애썼지만 당황스러움이 묻어난 얼굴이 티가 났을 것이다. 대화가 끝나면 이 아이의 삶고 끝나버릴 것 같아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도 전에 난 말을 이었다.  

 

 

 

 

 

"···왜,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건데?" 

 

"···선택이라 선택이란 말은 자유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정작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에게는 억압을 하는 말인 것 같아. 안 그래?" 

 

"어, 어어 맞아. 선택이란 게··참····." 

 

 

 

 

 

 

선택이란 말이 그 아이에겐 억압을 느낄 정도로 무거운 단어인가 생각 할 틈도 주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당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지 못했다. 그 후로 꽤 영양가 없는 대화가 이어졌고 여전히 난간에 서있는 아이와 난 같은 곳을 보며 대화를 나눴고 문득 말을 꽤 나눈 아이의 이름을 모른단 사실을 알고는 망설임 없이 물어봤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이름은 알아서 뭐하려고? 아, 나 죽으면 네가 최초 신고자이자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니 이름정도는 알고 있는 게 낫겟지?" 

 

"왜··자꾸 죽는단 말을, 아무튼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지민, 박 지민이야." 

 

"지민이,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하네. 박 지민 내 이름은 탄소, 김 탄소야." 

 

 

 

 

 

 

그는 난간에 서있는 상태로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지만 그 웃음 속에서도 슬픔이 묻어나왔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꽤 말이 잘 통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 하나 빼고. 왜 지민이가 난간에 서있게 되었는지. 

 

 

 

 

 

 

 

"···지민아, 어쩌다 넌 지금의 선택을 한 거야? 왜··?" 

 

"흠···탄소야··나중에, 나중에 이야기 해주··ㄹ··" 

 

 

 

 

 

 

 

아주 잠깐, 지나치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맞는 바람도 사람에 따라 다른 강도인지 위태롭게 나마 다리의 난간에 서있던 지민이는 순간 깊고도 차가운, 어쩌면 자유로움의 상징인 물 속으로 중심이 기울었다.. 놓칠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지민이가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런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라도 살아야 한다며 도와주려 마음 먹었다. 

 

 

 

 

 

눈 한 번 깜빡 했더니 지민이는 다행히 다리 위로 떨어졌다.  

 

 

 

 

 

 

 

지민이가 날 쳐다본다. 내게 다급하게 손짓을 한다. 점점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렇다. 내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급한 그의 얼굴도 표정도 모두 똑똑히 보인다. 18년 인생 중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데 방금 행동이 약간은 후회된다. 그래도 괜찮다. 지민이를 구했으니. 11m, 인간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그 높이에서 난 떨어지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며 추락하고 있다. 

 

이 높이에서 맨몸으로 떨어지면 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제정신인 상태에서 지금 내 삶을 돌아보자면 내 삶은 항상 적당했다. 물론, 상대적이므로 오해 없길 바란다. 가족도 적당히 화목했고 내 학교생활도 적당히 재밌었고 내 성적도 적당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거기다 사람 한 명 살리고 희생하는 건데 가치 있는 죽음이라 생각한다. 허나 단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부모님도 친구도 아니고, 꿈에서 봤던 그 남자, 그 남자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쉽다.  

 

 

 

 

 

마지막 순간, 물에 몸이 들어갔고 내 몸에는 긴장과 전율이 흘렀다. 물에 빠지면 바로 숨이 멎을 줄 알았는데 숨이 막힌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 살기 위해 공기를 마시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의미한다. 물 위로 떠오르려 힘껏 팔을 위로 휘저었다. 그 순간 주변을 감싸 안았던 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거센 소용돌이로 변하더니 나를 삼켜버렸다.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온 몸이 다 쑤시고 아프다. 눈을 뜨지 않아 어딘 지 알 수 없지만 정확한 건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것.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정신이 돌아올 때쯤 익숙하지 않는 천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겁게 감겨있던 눈에 힘을 주었다. 초승달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주변을 보자니 내 옆에는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의사...?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보통 의사는 흰 가운을 걸치고 있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는 겉옷 위에 붉은 도포를 걸쳐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온갖 시도를 했다. 이곳이 어디든 간에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때 밖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저하, 의녀를 데려왔사옵니다." 

 

'세자····?' 

 

"들어오너라." 

 

"예, 저하." 

 

 

 

 

작은 쇠로 만든 문고리가 달각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온 힘을 다해 버텼고 다행히 방금 들어온 이들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남자와 여자가 각 한명씩 들어왔고 그들은 조선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복식을 갖추고 있었다. 

 

 

 

 

"민의관은 어찌되었더냐?" 

 

 

 

 

 

붉은 도포를 걸치고 있던 이가 들어온 남자에게 물었다.  

 

 

 

 

"민의관은 도성 안에 진료가 있어 오지 못했다 하옵니다. 그나마 도성에 있던 의녀를 데려왔사옵니다." 

 

"알겠다. 의녀는 어서 이 여인을 살피어라." 

 

"예, 저하." 

 

 

 

 

 

명을 받자마자 의녀는 내게 다가와 몸을 굽히고 살피는 듯 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가늘게 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의녀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뒤를 돌아보며 말을 했다. 

 

 

 

 

 

"정신을 차린 듯합니다." 

 

"정신을 차렸다고?" 

 

 

 

 

그 말을 들은 붉은 도포에 갓을 쓴 남자는 의녀를 뒤로 물리고는 내 앞에 얼굴을 보였다. 그제야 나는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잇었다. 그는 다름 아닌 '그 남자'였다. 옷차림이 같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나도 참 무딘 사람인가 보다. 

 

 

 

 

"당신, 당신은·····."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나는 주변을 살피었고 마치 한옥마을에서 봤던 초가집의 안쪽 풍경처럼 생긴 곳. 거기에 붉은 도포를 걸친 사내와 의녀라 불리는 여자까지 이곳은 조선시대 모습인 게 틀림없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님 사극 촬영장..? 밖으로 나가려는 의지로 몸에 힘을 주었지만 곧바로 알 수 없는 도포의 사내에게 저지당했다. 

 

 

 

 

"쉬어라. 아직 움직이기에는 네 상태가 온전치 않구나." 

 

"저, 여기는 어디고 당신은 누구세요?" 

 

"이곳은 조선이고, 난 세ㅈ··ㅏㅈ." 

 

 

 

 

뭐라고, 뭐라는 거야? 빌어먹을 왜 하필 지금 다시 눈이 감겨오는 것일까. 그 녀석의 정체를 알아야 하는데. 내 꿈에 나온 남자가 맞는지.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조선이라는 이곳에 있는지부터 밝혀야하는데···. 자꾸만 눈 앞이 아른해졌다. 

 

다시 정신이 들며 희미하게 도포에 갓을 쓴 남자가 보였고 옆은 또다른 알 수 없는 이가 와있었다. 

 

 

 

 

 

"저하, 속히 이곳에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이 여인에게 군졸 둘을 붙여주게. 후에 정신이 들면 양연군에게 데려다주시오. 내 알아서 말을 전해 놓을테니." 

 

"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양연군은 또 누구며 날 어디로 데려가냐 말이다. 누가 이 상황설명 좀 해줘. 내가 죽은 건지, 산지는 본인이 알아야 하잖아.  

 

 

 

 

 

 

 

 

 

 

콕콕····콕··코옥····. 

 

차갑고도 작은 손이 내 볼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잠을 자는 구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까? 김상궁, 여기 민 내원을 다시 불ㄹ···ㅓ." 

 

"괜찮아요···. 정신 들어요, ···이제."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나는 마치 잠에서 깨듯 번쩍 두 눈이 떴다. 주변을 보니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부부 한 쌍이 동시에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잠시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이자 놀란 눈으로 부부로 보이던 그들 중 여자는 내가 누워있던 이불 발치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히며 말했다. 

 

 

 

 

 

"괜찮은가?" 

 

"아, 네···." 

 

 

 

 

그녀는 내가 정신 차린 것을 파악하고는 상궁을 불러 이부자리를 치우고 의복으로 갈아입히라 명령을 내렸다. 

몇 명 상궁들이 들어와 나를 부축해 나가는 도중 조금 소리를 쳐 그들에게 말을 전했다. 

 

 

 

 

"저, 이곳이 어디예요? 의복은 또 뭐고, 뭐라 설명 좀 해주세요···! 예? 제발요. 누구든 설명 좀 해달라구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눈을 떠 정신이 들자마자 끌려가니 내 생애 가장 무서운 순간 중 하나였다. 지금 외치지 않으며 다시는 이럴 수 없을 거란 직감에 무작정 소리를 쳤고 두려움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까 다가와 날 살피던 여자는 다시 다가와 몸을 내게 굽히며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이곳은 궁궐입니다." 

 

"여기가 궁궐이라고요..? 제가···어째서 여기에 있죠?" 

 

"곧 사정을 알려줄 터이니 먼저 의복으로 갈아입고 오세요." 

 

 

 

 

 

차분하다 못해 다정하기까지 한 그녀 목소리에 일말의 긴장과 두려움이 사그라들고 조용히 상궁이란 작자들의 손길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내가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쯤, 높아 보이는 한 상궁이 들어와 마주 섰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 절대 잊지 말고 들은대로 행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얼굴을 꽤 의미심장했다.  

 

 

 

 

"이 곳은 양연군 마마와 부인 김씨께서 거주하고 계시며 외각이지만 어디까지나 궁 안에 있으므로 함부로 말을 해도, 돌아다녀서도 안 됩니다." 

 

"진짜 궁이라고요? 그, 그러니깐 이 곳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왕이랑 막 중전마마, 후궁들이 사는 곳이라는 말씀이세요?" 

 

"예, 주상전하와 중전마마, 세자저하와 세자빈마마를 비롯하여 왕족 식솔들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드린 말씀 항상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에 왜 온지도 모ㄹ···ㅡㄱ." 

 

 

 

 

"으흠." 

 

 

답답한 마음에 내 앞에 서있는 그녀에게 따지려 드는데 문 밖에서 남자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상궁은 곧바로 몸을 문으로 방향을 틀고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지요." 

 

 

 

 

 

문이 열리고 아까 본 부부 중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고 남자는 상궁을 향해 자리를 피해달라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수고 많았네. 이 일은 철저히 입단속 되어야 한다는 것 잊지 않도록." 

 

"예, 명 받잡겠나이다." 

 

 

 

 

 

 

눈치 빠른 상궁을 남자가 들어온 문으로 간단한 인사 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분명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가 누구인지 궁금함에 고개를 들었고 대략 20대쯤 되었으며 많아야 나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크흠, 흠·· 몸은 좀 괜찮소?" 

 

 

 

주먹으로 입을 막고는 누가 봐도 억지 기침을 한두 번 하더니 내 몸상태를 물어보았다. 

 

 

 

 

"전 괜찮은데. 여기가 진짜, 진짜 조선이에요? 장난 아니고?" 

 

"폐하 말씀이 거짓이 아니로구나. 그대 진심으로 여기가 어딘 줄 모르겠습니까?" 

 

"말도 안 돼. 내가 왜 여기에 있어. 내가 왜···. 아, 폐하라니 폐하가 절 아세요?" 

 

"그럴 수밖에요. 그대를 처음으로 발견하신 분이 폐하시니····." 

 

"저, 저 폐하 좀 만날래요. 제발 만나게 도와주세요. 처음 저와 만난 분이라면 뭔가 알고 계시겠죠." 

 

"그 분은 그대가 만나고 싶다하여 만나 뵐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 나라의 지존이신 분을 어찌 함부로 입에 올리십니까." 

 

"그건 제 알바가 아니에요. 저 이 나라 사람이 아니ㄴ, 아 그러니깐 전 이 시대 사람이 아니니깐 폐하의 사람이 아니죠." 

 

 

 

 

 

어안이 벙벙해 벙진 얼굴로 날 쳐다보는 그는 막무가내로 따지고 드는 여인은 처음 본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평온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며 잔뜩 흥분한 내가 어느  

정도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일단 내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자.' 

 

 

 

 

 

난 산책을 하며 한강대교를 걸었고, 걷다가 누구를 만났는데···. 확실한데 그게 누구였더라, 만난 게 누구지··. 도통 만났던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퇴화되었던 사람인가. 자괴감마저 들만큼 난 절박했다. 문득, 날 처음 발견한 사람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절 발견하신 분이 누구죠?" 

 

"그분은 내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분이니··." 

 

"세자신가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나온 '세자'라는 말에 그는 표정이 굳으며 꽤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이런 반응이라면 내 말이 사실이란 건가? 

 

 

 

 

 

 

"붉은 도포를 입고 있어 말해봤는데 맞나보네요. 세자라는 그 분 지금 어디 계세요? 그 분을 만나야겠어요.! 지금요!" 

 

 

 

 

 

 

이 근방에 세자가 있다고만 하면 바로 뛰쳐나갈 기세로 묻는 날 보며 그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낭자께서 만나고 싶다하여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오. 그러니 잠시만 ㄱ ㅣ···." 

 

"전 돌아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그 세자라는 분이 필요해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절 처음 발견한 그 사람을 지금 만나게 해 주세요." 

 

 

 

 

 

 

 

남자는 사내를 대하는 태도며 말투, 행동. 모든 것이 수상한 날 의아하게 쳐다보다 단호하게 내 부탁을 거절했다. 

 

 

 

 

 

 

"그것은 불가하오." 

 

 

 

 

 

 

 

여자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는 데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며 부탁을 거절하다니. 나로서는 세자가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기에 절망에 휩싸여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꽤 오랜 시간 날 쳐다보며 서있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김 탄소.' 

 

 

 

 

 

 

나가기 직전 뒤를 돌아 이름을 들은 뒤 그는 나갔다. 잠시 지났을까, 날 부르는 듯한 소리에 얼굴을 드니 김 상궁이라는 여자가 간단한 상을 차려 내게 가져다 주었다. 이불 위에 두고는 인사한 후 방을 나가는 상궁을 붙잡고 잠시 전에 방에 들어왔던 남자는 누구냐 묻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내게 대답했다. 

 

 

 

 

 

 

"그 분은 양연군이십니다." 

 

 

 

 

 

양연군이라면 아마 세자가 날 부탁한 그 사람인가. 이 곳이 양연군과 그의 부인이 거주하는 곳이라니 꽤 비싼 가격의 비단옷을 입고있었으니 맞은 것 같았다. 김 상궁은  

식사 후에 양연군이 다시 올 거라는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배고프다 못 느꼈는데 음식을 보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한참을 먹다 사래가 들려 물을 벌컥 마시고 있는데 양연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사람은 노크라는 현대식 매너는 없는 건가. 입 옆을 정리한 후 이불에서 내려와 양연군이 앉아있는 책상으로 가 앉았다. 

 

굳은 얼굴로 한참 말이 없다 무뚝뚝하게 말을 시작하는 양연군이었다. 

 

 

 

 

 

 

"낭자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란건 알겠소. 허나, 이미 조선 땅에 와 있으니 이 나라의 법도를 따라야 하오. 알겠소?" 

 

"···알겠어요." 

 

"낭자가 그토록 만나 뵙고 싶은 분은 이 나라의 세자저하십니다." 

 

"그럼 언제 그 분을 만날 수 있죠?" 

 

"지금 조정이 시끄러워 시기를 봐야 할 것 같소만. 확신할 수 없소." 

 

"조정과 세자저하가 무슨 관계인데요?" 

 

"이 나라의 세자저하이신, 아 낭자에게 그것까지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소."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앞에 놓인 차를 마시는 양연군에게 찬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다. 꿈이라면 이제 깨라며 열심히 손등을 꼬집었지만 눈물만 찔끔날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마신 후 고개를 드니 찔끔흘린 눈물이 보였는지 양연군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을 압니까. 하지만 궁은 낮말에 쥐도 듣고 밤말도 새가 듣소."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자 한 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소문이 나기 쉽다는 말이오. 조정이 시끄러운 지금 세자저하와 낭자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주상전하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하단 말이오. 세자저하를 만나게 도와주겠소. 허나 지금은 불가하오. 때가 되면 약조를 지킬터이니 기다리시오." 

 

 

 

 

 

 

 

세자저하에 주상전하까지 이 곳이 조선임을 내게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다리라···'. 당장 갈 곳도 없는 나에게, 아니 그 전에 최첨단 IT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서 살아가던 난 눈앞이 캄캄했다. 

 

 

 

 

 

"오래 기다릴 순 없어요. 난 이 나라에서 살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깐···." 

 

"그거라면 내 생각해둔 것이 있소." 

 

"그게 뭐죠?" 

 

"마침 내 장자의 보모상궁을 찾던 중이니 그 아이의 보모상궁으로 이 궁에 지내면 될 것 같소." 

 

"지금 저보고 아이를 돌보라는 건가요?" 

 

"혼자 돌보는 것이 아니니 그리 놀랄 필요는 없소. 내 부인을 도와 아이를 돌보며 말동무나 되어주소." 

 

 

 

 

한국 나이로 따지면 19살, 한참 공부할 시기에 아이를 돌보라니. 당황스럽지만 세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내 고민의 결과였다. 궁에 지내다보면 양연군이 도와주지 않아도 한 번쯤 세자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천운적인 희망을 품은 채였다. 양연군이 방을 나가고 혼자 보내는 밤은 이상하리만큼 한 없이 춥고 외롭게 느껴졌다. 

 

 

 

 

 

 

 

 

 

 

콕콕····콕··코옥····. 

 

볼을 콕콕 찌르는 느낌에 눈을 뜬 난 장난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찌르는 남자아이와 희미한 미소를 띄운 채 나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는 여인을 보았다.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양연군의 김씨 부인께서 오셨다..!" 

 

 

 

 

 

 

따끔하게 소리치는 유 상궁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이 이른 아침 기상을 기억하는 지 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어제 준 상궁의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양연군의 부인과 그들의 아들이 기다린다는 방으로 갔다. 

 

 

 

 

 

 

"···자네가 우리 아이의 보모상궁인가?" 

 

"예, 맞습니다." 

 

"내가 뭐라 부르면 되겠는가?" 

 

"김상궁이라 불러주시면 되옵니다." 

 

 

 

 

 

 

 

대답을 하며 쳐다본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 내 친구 세희와 똑같았다. 아니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건강미 넘쳤던 세희와는 달리 그녀는 무서우리만큼 창백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과 입술조차 핏기하나 없어 보였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내게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다정하게 조목조목 말을 시작했다. 

 

 

 

 

"김상궁, 우리 연이가 아직 많이 어려 심술궂네. 자네에게 못되게 굴면 호되게 혼을 내주게. 어미가 되어 자식 버릇장머리 하나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탁하네." 

 

"예, 마마." 

 

 

 

 

 

 

유난히 역사를 좋아했던 내가 텔레비전에서 하는 사극은 빠짐없이 챙겨본 터라 간단한 말 정도는 눈치껏 할 수 있었다. 내 대답을 듣고 잠시 말을 멈춘 부인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자네 꽤 어려보이는 데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열아홉이옵니다." 

 

"동갑이라 낯설지 않았던게로구나. 어렵겠지만 김상궁 내 동무가 되어주겠는가?" 

 

 

 

 

 

세희와 같은 얼굴을 한 그녀를 마주한 후 놀란 심장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내게 동무가 되어달라 부탁하는 부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조선시대이다. 어면한 양반신분인 그녀와 어떤 신분인지도 모를 내가 동무가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 난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하므로 쉽게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마의 청을 거절하겠습니다. 소녀가 감히 마마와 동무가 되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또한 내 최선의 방법이었다. 궁에서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며 신신당부하던 양연군을 봐서라도 궁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선을 지켜야겠다 생각했다. 

 

 

 

 

"동무도 안 한다는 네게 말을 편히 하라해도 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내 말동무나 되어주게. 굳이 답을 원하지는 않으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네. 이  

정도는 내 부탁해도 되겠지?" 

 

"예, 마마." 

 

 

 

두 번째 청을 받아들인 나를 힘껏 웃으며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 한 편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녀와 양연군의 아들, 연이를 낳으면서 크게 병을 앓았고 나았다 하지만 이미 허약해진 몸 상태는 나아질 도리가 없었다. 연이를 봐서라도 탕약으로 기력을 회복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큰 편차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내 할일은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며 연이의 보모상궁으로 식사와 놀이를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아, 저녁식사 후에는 양연군 부인과 연이는 매일같이 출궁을 하여 산책을 하는 것에 따라가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며칠 후 다름없이 저녁식사 후 출궁을 하여 궁에서 멀리 떨어진 호화원()이라는 곳에 갔다. 1년 내내 호랑이꽃이 만개하는 곳이라나. 호랑이꽃은 처음들어보는 지라 양연군 부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말동무 역할을 열심히 하던 중이었다. 호화원에 도착했고 만개한 꽃을 보는 순간 난 놀라움에 입 벌린 것도 잊은 채 호화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곳은 내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꿈의 일부 조각 중 배경이었던 곳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잠에 깬 후로도 잊지 못한 꿈말이다. 꿈대로라면 드넓은 꽃밭의 언덕너머에 한 남자가 서있어야 한다. 열심히 꽃구경 중인 모자를 뒤로하고 천천히 고개 넘어로 발걸음을 넘기는 데 고개 넘어 한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심장의 소리를 이미 가슴을 뚫고 나오기 직전이었고 내가 이 곳에 온 것과 연관되어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돌아갈 수 있을까 한 껏 기대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고개 넘어있던 이도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뒤를 돌려는 순간 내 앞의 가로막는 이가 있었으니, 양연군이었다.  

 

 

 

 

 

"낭자, 아니 김 상궁이 여긴 어인 일이오? 부인과 연이는 어디에 두고." 

 

"마마와 아기씨는 꽃구경에 한참 이십니다. 그것보다 양연군 잠시 나와주시겠어요? 제가 꼭 봐야하는 사람이····." 

 

 

 

 

 

양연군을 살짝 밀며 뒤를 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사람의 형태는 이미 없어지고 나서였다. 실망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양연군은 의아했으나 내가 왜 실망했는지는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느꼈다. 오붓하게 꽃구경 중인 모자에게 돌아가려 양연군께 인사를 올리고 뒤로 돌아선 순간. 

 

 

 

 

 

 

"··잠시 나와 걷겠소?" 

 

"···마마와 아기씨께 가보아야합니다." 

 

"둘은 꽃을 좋아하니 꽤 걸릴 것이오. 잠시면 되니 잠시 걷소." 

 

 

 

 

조선에 왔던 첫 날밤 세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세상에 있는 억지란 억지는 다 부렸던 내가 떠올라 양연군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민망했다. 자리를 피하려 했건만 나와 이야기 나누겠다는 그의 의지도 대단했다.  

 

꽃밭을 나란히 걸으며 양연군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양연군의 말투와 행동, 이 모든 것이 낯설지 않는 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려는 기억의 조각이 느껴졌지만 끝내 떠오르지 않아 대화 도중 나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놀란 양연군이 내게 시선을 맞추며 앉아 팔뚝을 잡아줬다. 

 

 

 

 

 

"괜찮느냐?" 

 

 

 

 

 

양연군의 팔목을 잡고 일어나려는 그때였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지민, 박 지민이야.' 

 

 

 

 

 

믿을 수 없었다.양연군의 얼굴이 지민이의 얼굴과 겹쳐보였다. 아니 같은 사람이라 확신했다.  

 

 

 

 

 

"지민아···?" 

 

 

 

 

 

나보다 더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는 양연군을 덥석 안았다. 내가 조선으로 오게 된 순간에 함께 있던 사람이 지민이였고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난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바로 행동으로 실천해버린 것이다. 

 

 

 

 

 

"지민아·····, 지민아···." 

 

 

 

 

 

사내의 품에 그것도 본처에 아이까지 낳은 사내의 품에 안긴 여인은 내가 처음이겠지. 날 일으켜 세우려던 팔을 차마 움직이지 못한 채 굳어있는 지민이를 힘껏 안고 난 펑펑 울어버렸다. 비록 조선에 있지만 현재 시대에서도 지민이가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이게 무슨 일일까. 벌써 두 번째이다. 나의 현재와 같은 얼굴의 조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들과 어떤 인연이길래 천 년을 넘어 나와 만난 걸까. 순간 내가 조선에 온 것이 간단한 신의 장난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얽히고 설힌 것같은 이 상황들이 길고 긴 여정이 될 것만 같아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한 편으로 난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호랑이 꽃》 2화에서 계속  

 

 

 

 

 

 

 

 

 

 

 

안녕하세요. 작가 화양동탄소입니다. 

참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글이 많이 깁니다(제가 독자님들을 사랑하는 만큼 쓴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에서 한 번 말했지만 돌아왔고 이젠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긴 말 필요없고 대명절인 설인만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늘도 해피데이,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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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20.178
ㅜㅜㅜㅜ작가님ㅜㅜㅜ첫화인데도 불구하고 엄청 좋아요! 노래랑 너무 분위기 잘 어울려서 제가 여주가 된 마냥 몰입해서 봤어요!!다음화가 정말 기대됩니당 혹시 암호닉 받으신다면 하루로 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
5년 전
화양동 탄소
물론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1
잘봤습니다~~ 다음화 완전 기대되여ㅠㅠㅠ
5년 전
독자2
작가님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다음 편도 기대가 됩니다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3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억력이 짧은 사람이라 금방 잊어버릴 수 있답니다..ㅎ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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