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라야 한다고
장애'우'라는 호칭까지 붙여가면서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함께 생활하도록 했지만.
정작 그 어린 나이에,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성숙하지 못 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이해와 무조건적 배려를 강요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 모르겠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직도 생생해
선생님께 혼나고 혼자 울면서
조금 늦은 하교를 하던 학교 계단 밑.
왜 우냐고 달래주겠다면서
싫다는 내 손을 꼭 잡고 볼에 억지로 입술을 갖다 부비던 5학년 남자애.
엉엉 울면서 학교에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직 성에 대해 인지하지도 못 하는
순수한 아이고,
조금 부족한 장애우니까 똑똑하고 착한 네가 이해하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이었어.
그 땐, 내가 기분이 더럽고 수치스러워 하는 마음이,
착한 오빠를 미워하는 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자조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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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여자반이었던 우리 반 내에는
지체 장애인 여자 애 하나가 있었어.
머리도 안 감고, 교복 셔츠조차 빨아입지 않아 냄새가 진동했던 아이.
반에 한 두명 씩 존재하는 일진 애들은
일부러 그 여자애를 놀리고 비웃으며 데리고 놀았고,
반장이었던 나는 장애인 아이를 도우라는 선생님의 암묵적인 부탁 아닌 강요에
1년 내내 짝꿍을 도맡아 했어.
물론 늘 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챙겨주고
감싸주고 가끔은 대신해서 화내주기도 했지.
그럴 줄은 몰랐지.
내가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노트에 적어두고
내 입에서 나온 남자 아이들의 이름과 정보를 다 적어놓을 줄은.
내 남자친구와 겪었던 일과 관찰했던 모든 것을 적어놓고
온갖 성적 희롱과 쌍욕을 적어놓고 혼자 낄낄댔을 줄은.
별 생각 없이 친구라고 생각해 맺고 있던 페북 친구,
그 친구 목록을 이용해서
200명 가까이 되는 내 친구들에게 새벽 3시에 연락했던 그 아이는
내가 본인의 시녀라면서 자기와 만나서 데이트 하지 않으면 날 때리겠다는 식의 이상한 말들을 뱉어냈고
난 새벽 4시 5시에 쏟아지는 도대체 얘가 누구냐는 메세지들과 전화에
며칠 간 사과만 반복해야 했어.
그리고 학교 담임 선생님과 장애인 전담 반 선생님의 대답은 이거였지.
그러니까 sns 하지 말지 그랬어, 얘는 조절 능력이 부족한데 네가 받아주지 말지 친구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네가 이해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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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동네에서 꽤 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
원래 알고 지냈던 오빠가 잘 챙겨주는 덕에
금방 적응하고 잘 다닐 수 있었지.
당시 고3이었던 그 사람만 빼면.
정신 지체를 앓고 있었어, 지능이 6세 가까이밖에 안된다고 했어.
체중은 120 kg 을 넘어갔고
분노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서
그 핀트가 어긋나면 교회 예배당 안에서도
무력을 이용해 주변 사람들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울기도 했어.
교회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 ㅇㅇ이는 예쁜 여자애들을 되게 좋아해~ 괜히 눈에 띄면 조금 피곤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 "
괜찮다고, 오빠 착하니까, 잘 지내겠다고 했던 대답.
여느 날 날 보고 이름을 묻던 그 시점 이후로
같은 학교였던 상황에서, 매일 하교할 때마다 뛰어서 날 쫓아오더라.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옆에서 서성이고,
돌연 상의를 훅 벗어서 자기 몸을 보라고 하지 않나
손잡자고 끌어당기지 않나
입술이 예쁘다고 너는 입술이 예뻐 하고 씩 웃던 얼굴.
그 사람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져 내 셀카를 다 저장해뒀고
페이스북, 카톡, 배경화면을 다 나로 바꿨어.
교회 고등부 사람들이 다 모여서 찬양하는 자리에서
내 이름을 소리 질러 부르면서
같이 집에 가자고 울며 보챘고
내가 이따금씩 정말 못이기겠어서 싫은 표정을 지으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어.
내가 다 이해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
다 내 잘못이 되는 기분이었어.
참다 못한 우리 엄마가 전화를 걸어
제발 우리 딸 건드리지 말라고 한 말에
교회 사람들은 유난이라고,
그 남자 엄마는 안 그래도 힘들다고 되려 성을 냈지.
내 잘못이었어, 또.
그리고 오늘...
우리 집 바로 앞에 몇 달 전 들어선 장애인 복지센터.
꽤 한적한 주택 단지인 터라,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난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센터 직원과 가끔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걸 몇 번 본 다운 증후군이 있는 것 같은 남자가 맞은 편 횡단보도에 서 있더라.
아무 생각 없이 걸어 오는데,
졸졸 따라오면서 자기 손 잡아 달라고.
음악 듣는데 같이 들어 달라고.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그 덩치에, 작지도 않은 몸으로,
어깨를 끌어당기는데,
그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라.
내 집이 어딘지 알면 위험해질까봐.
그렇게 20분을 도로변을 서성거리면서 누가 좀 도와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집 주위를 돌았어.
말을 들어주지 않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팔을 세게 잡고 흔들던,
그렇게 위압적으로 보이기만 하던 남자는
결국 내 남자친구를 부르고 나서야 사라지더라고.
그것도 한순간에 모르는 체 하면서 사라지더라.
길지 않았던 인생이었지만
나한테 장애인들과 교류했던 기억 모든게 다 끔찍해
난 피해자였지만 누누히 이해하고 참아야 했던 역할에 매여 있었어.
누군가는 날 보고 장애인 혐오라고 손가락 질 하겠지.
그 시선이 두려워서 늘 괜찮다고 내가 이해해야 되는 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스스로를 속였지만,
그렇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어봤으면 좋겠어.
그 상황을 겪으면,
이성적으로,
미숙한 대처의 책임, 선생님의 잘못된 대처, 미비한 정부의 역량...
이렇게 다른 곳으로 내 모든 상처의 책임을 돌릴 수 있을지.
나도 어렸고, 나도 미성숙했던 때였는데,
모든 책임과 이해를 내게 돌렸던 세상과,
아직도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그 때의 기억들,
그 모든 행동의 가해자,
너무 싫어.
나는 지체 장애인을 보면 눈을 질끈 감고 피하고 싶어.
엮이고 싶지도 않아, 살면서 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