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가 죽었다.
그 아이가 가고 여드레, 그 아이가 머물던 처소를 정리하였다.
처소에서 나온 그 아이의 짐은 상궁 복 2벌과 궁에 들어올 때 가져온 봇짐 하나.
그리 오래토록 궁 안에 있었으면서 그 아이가 남긴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멍하니 그 것만을 바라보았다. 그래야 그 아이의 얼굴이 계속 생각날 것만 같았다.
죽은 자의 물건이라 태워야 한다며 말리던 최지몽의 목소리가 어딘가 들려오는 듯 싶었다.
죽은 자의 물건이라 불길하다 하였다.
해수, 너의 물건인데. 어째서 불길할까.
봇짐을 풀기 전 그 아이가 생전 입던 상궁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닳고 닳아 헤져있었다. 욱의 사가에서는 곱게 비단 옷만 입던 아이였는데.
내 너에게 예쁜 비단 옷을 입혀주리라 다짐했거늘, 그리 갈 때도 너는 이리 헤진 옷을 입고 떠났더냐.
색이 바랜 보라색 봇짐을 풀었다.
그 아이 특유의 향내가 흘러들어왔다.
한참을 그 아이의 물건을 보며 그 아이를 그리다, 순간 무언가 눈에 띄었다.
짐과 짐 사이에 껴 조그마하게 끄트머리가 보이는 것을 꺼내 들었다.
서찰인듯 싶었다.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만 서찰.
해수 네가 누구에게 서찰을 보내려고 했던 것일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서찰을 받을 뻔한 사람에게 퍽 질투심이 생겼다.
꽤나 오래 전에 쓰고선 보내지 않은 듯 서찰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서찰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뒤에도 글이 써져있는 것 같아 서찰을 뒤집었다.
헌데 뒤집지 말 것을 그랬다.
소 황자님께.
투박하고 서툴게 쓰여 있었다. 글을 막 배운 어린 아이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못난 글씨가 지칭하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아이가 나에게 보내려던 것.
머지않아 그 사실을 깨닫자, 온 몸이 떨렸다.
갓 낳은 핏덩이를 만지듯 조심스레 곱게 접혀있던 서찰을 폈다.
戀 慕
연모. 그 단 두 글자만이 낡은 서찰 안에 담겨 있었다.
이 두 글자를 쓰려고 노력했을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수야. 나의 해수야.
어찌 그리 떠났느냐.
나를 버리고 떠나 행복하느냐.
그런데, 수야.
나는 너와 함께 있던 그 시간에 멈춘 듯 싶다.
축시. 시각이 꽤나 늦은 탓에 아직 편전에 있을 황제에게 가는 사천공봉 최지몽의 발걸음이 빠르다.
그리 한참을 걸었을까. 이내 황제가 있을 편전에 도착해 한껏 흐트러진 품새를 다듬고 있을 때,
어디선가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어 왔다. 편전 근처에 있던 궁인들과 병사들을 잠시 물리고
굳게 닫혀있던 편전의 문을 조심스레 여는 최지몽의 눈에 닿은 것은, 다름 아닌 한 사내였다.
허망히 떠난 제 정인이 남겨 주고 간 마음이 담긴 종이를 품에 꼭 안고
끝끝내 울음을 토해내고 마는
사랑하는 정인을 잃어버린 한 사내.
그 곳에는 황제가 아닌 한 사내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죽은 해수를 그리워하며 울음을 토해내는 황제가 아닌 해수의 사내인 소 x 그걸 지켜보는 불안한 눈빛의 지몽
한자도 모르던 해수가 서툴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쓴 서찰을 해수가 죽어서야 받는 소가 포인트 8ㅅ8
소해 진짜 현망진창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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