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6월 28일, 인민군의 전격전으로 서울이 함락된다.
국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고, 나머지 전선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6월 28일, 한국을 지원한다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후,
트루먼은 극동군사령관 맥아더를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한국 방어에 관한 전권을 준다.
그는 가장 먼저 일본에 주둔중인 미 육군 24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당시 국무부 고문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국전을 이렇게 예상했다.

"한 손을 등에 묶어놓고도 승리할 수 있다." >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미 24사단 스미스 대대 장병들도 생각은 같았다.
그들은 인민군이 자신들을 보면 허겁지겁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군의 판단은 심각한 착오였다.
스미스부대는 오산-평택-천안-대전 등 방어전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뒤이어 미군 24사단 본대가 증원에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전 전투에 참가한 미 24사단 병력 3천 933명 중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자는 1천 150명이었으며,
생존한 병사들도 대부분 군 장비를 잃었다.
사단장 윌리엄 딘은 대전에서 후퇴할 때에 길을 잘못 들어 36일 동안이나 변장을 하고
산 속을 헤매다가 8월 25일 인민군의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24사단의 패퇴 이후 맥아더는 인민군의 전투력을 다시금 평가하기 시작한다.

“북한 병사를 결코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조직력이 강하고, 일본의 침투술과 2차대전 당시 러시아의 탱크술을 결합한 전술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 진격과 기동작전에도 능하며, 우리로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야간기습 작전을 결속력 있게 전개한다. (중략)탱크를 운용하는 능력은 탁월하며 기술이 대단하다.”

뉴욕타임즈 역시 “소련의 가장 약한 위성국가가 우리를 이렇게 지독하게 괴롭힌다는 것 을 믿기 어렵다.”면서 그들의 존재를 재평가한다. (물론 워딩에서 보다시피 과장이 포함된 감이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야만인으로 구성된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 그들은 훈련이 잘 돼있고 무자비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칭기즈칸의 군대와 같이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전술에 익숙한 야만인들이다. 그들은 나치의 전격전(Blitzkrieg)을 이어받아 온갖 두려움과 공포의 무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 인민군의 주력은 중일전쟁부터 국공내전에 이르기까지 11년 간의 전투를
치러온 한인 부대들. 여기에 소련의 무기 지원과 전술 교육으로 소련식 전격전까지 몸에 익힌다.
반면, 미군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대규모의 군비 삭감과 주둔군 임무 수행으로
제대로 된 훈련 조차 받지 못한 상황.
국군은 체계, 편제, 사기, 훈련 상태 모두 엉망이었고
심지어 탱크, 자주포를 처음 본 간부도 많았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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