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맑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비가 내려 그대가 또 생각났습니다
전철을 타고 사람들 속에 섞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외려
그런때일수록 그대가 더 생각나더군요
그렇습니다
숱한 날들이 지났습니다만
그대를 잊을 수 있다 생각한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간대도 그대를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날 또한 없을겁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지만
숱하고 숱한 날 속에서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김없이 떠오르던 그대였기에
감히 내 평생 그대를 잊지 못하리라
잊지 못하리라 추측합니다
당신이 내게 남겨 준 모든 것들
하다못해 그대가 내쉬던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이런 뜻은 아닐런지요
언젠가 언뜻 지나는 길에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스치는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마주할 수 있다면
당신께 모조리 쏟아부어 놓고
펑펑 울음이라도
그리하여 담담히 뒤돌아서기 위해섭니다
아시나요 지금 내 앞에는
그것들을 돌려 줄 대상이 없다는 것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 남김없이
들려 주어야 홀가분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엔
장미꽃이 유난히 붉었습니다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 이정하

당신은
내가 당도한 곳.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내 생활의 피난처.
내 정신의 망명정부.
내 생에 대한 작심.
내 생의 슬픔의, 비의의 그리고 환희의 발생 지점.
내가 세상에 보낸 길고도 진지한 입맞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당신은 내 생의 오래된 책갈피.
내가 겪은 일들의 전부.
아, 당신이라는 현기증.
당신이라는 눈물겨운 문장.
나는 오늘도 당신이 사라질까 두려워
당신을 옮겨 적는다네.
- 잘 지내나요 내 인생 中 / 최갑수

무너지는
폭포 속에
탑 하나 서 있네
그 여자
치마를 걷어올리고
폭포 속으로 걸어들어가
탑이 되어
무너지네
- 사랑 / 정호승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길 환하게 밝았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속에 햇살 불꽃이었다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삶에 빛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 햇살 / 신경림

내 사랑하는 것이 때로는 역겨워
짜증이 나기도 하였지요
흐드러진 꽃나무가 머리맡에
늘어져 있었어요
얼어붙은 거리로 나서면
엿판 앞에 서 있는 엄마의 등에
버짐꽃 핀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때로 내 사랑하는 것이 역겨워
떠날 궁리를 해보기도 하지만
엿판 앞에 서성거리는 엄마의 등에
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 거리 / 이성복

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어지고
비밀은 폭로된다
그것이 인생의 세 가지 절망이다
- 그림 같은 세상 中 / 황경신

나의 사랑에선
늘 송진 향기가 난다
끈적거리지만
싫지 않은
아주 특별한 맛
나는 평생
이 향기를 마시기로 한다
아니 열심히 썹어보기로 한다
- 사랑에 대한 단상 中 / 이해인

차마 이별하기에 그 길엔 사람이 너무 많았던가.
그 길은 너무 밝지 않았던가.
비 온 뒤라 길이 질척이지는 않았던가.
어려운 길이었던가.
잊지 못할 길이었는가.
내가 먼저 발걸음을 뗀 길이었는가.
당신이 그 길 위에서 서서 오래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길이었던가.
코끝으로 작약꽃 향이 아스라이 스치고 지나갔던가.
아니 그냥 향수였던가.
아니면 나무 타는 냄새였던가.
정녕 안녕이라고 말한 길이었던가.
한데 왜 나는 그 길 위에 다시 서서 당신을 부르는 걸까.
- 끌림 中 / 이병률

나의 사랑은 떠나갔네
나의 어제는 사라졌네
지구를 따라 도는
저 달 속에 비친 너의 얼굴
- 태양계 中 / 성시경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 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기시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 이별 / 이성복

저렇게 밀려가면서도
당신은 제자리에 계십니다
저렇게 파랑치고 파랑치면서도
당신은 머물러 계십니다
밀려가고 밀려오면서도
나와 함께 계시는 당신당신에게 이끌려 기어코
나는 흐르고야 맙니다
오, 한없이 떨리는 당신
- 강가에서 3 / 이성복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 끌림 中 / 이병률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당신 생에서 간절하고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 잘 지내나요 내 인생 中 / 최갑수

위로가 될까
이해한다는 말
함께 울어도 이 밤 지나면 잊을 말
위로해 줄게
사람이 다 그래
좋은 날만 모여 서롤 위해 기도해
위로가 될까
쉬어 간다는 말
등받이 없는 의자 위 걸친, 짧은 쉼
위로해 줄게
삶은 길지 않아
전화기 약정 몇번 지나면 끝날 삶
위로가 될까
- 위로 / 조정치

이제,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인생의 겨울로 접어들면서
기다림은 먼 소식처럼 아련해지며
가볍게 보다 가볍게
엷게 보다 엷게
부담 없이 보다 부담 없이
스쳐 가는 바람처럼 가물가물하여라긴 생애가 기다리는 세월
기다리면서 기다리던 것을 보내며
기다리던 것을 보내면 다시 기다리며
다시 기다리던 것을 다시 보내면
다시 또다시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어라. 하면서
이 인생의 겨울 저녁 노을
노을이 차가워라기다릴 것도 없이 기다려지는 거
기다려져도 아련한 이 기다림
노을진 겨울이거늘
아, 사랑아
인생이 이러한 것이어라
기다림이 이러한 것이어라
- 기다림은 아련히 / 조병화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 끌림 中 / 이병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고
수첩에 메모를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두고 온 사람에게 엽서를 쓰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를 지켜주는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기도 하고
그러다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생을 향한 나의 고단한 로맨스
인생은 어쩌면 이게 전부일 수 있다고
- 잘 지내나요 내 인생 中 / 최갑수

오래된 찻집에 비스듬히 앉아
메뉴판을 집어 나에게 건네던
어떤 걸로 할까 아무거나 좋아
난 잘 모르니까 너와 같은 걸로
익숙한 자리에 익숙한 음료는
다 그대로지만 사실은 우리 헤어지던 날
- 그대와 나 中 / 10cm

너의 집 밖에서서 나무들이 우는 것을 바라본다
얼은 두 볼로 불 없이 누워있는
너의 마음 가에 바람소리 바람소리
내 너를 부르거든
어두운 뒤꼍으로 나가
한겨울의 꽝꽝한 얼음장을 보여다오
보라, 내 얼굴에서 네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네 말없이 고개를 쳐들 때
하나의 미소가 너의얼굴에, 하나의 겨울이 너의 얼굴에
아는가
그 얼은 얼굴의 미소를 지울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가
- 겨울 노래 中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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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해 못한다는 자고 일어난 후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