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어깨 사이에 끼우고 눈 옆을 문질렀다.
"엄마..."
"케이시, 제발, 이미 다 결정 된거야. 네 아버지가 정류장으로 데리러 가실거야."
"엄마."
"그리고 앤더슨네가 개들도 데려왔어! 너 그집 강아지들엄청 좋아하잖니."
"엄마."
"휴일이잖니, 그리고 케이시, 우리는 그냥... 네 아버지가 너를 위해서 보트까지 빌려놨어. 제발 오렴. 벤도 데려오고!"
전화기에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휴일 겹친 주말에 - 특히나 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무런 선택 사항이 없을 때나 고려해볼 법한 것이었으니까. "다른 주말은 안 되나요, 엄마. 다음 주말이면 갈 수 있는데."
"얘, 무슨 일 있어? 우리 안 보고싶은가봐? 아버지가 폭죽도 준비해두셨데."
"알아요, 아니 그냥... 시기가 별로야."
"기말 끝났다며?"
"맞아요."
"흠, 엄마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페이스페이지에 내가 올린 사진 보고 후회하지나 말려무나."
"페이스북이에요, 엄마."
"그래, 스페이스북. 어쨌든 사랑한다 - 혹시나 마음 바뀌면 꼭 알려주렴. 그리고 벤도 같이 와야해!"
"저도요, 엄마. 끊을게요."
전화를 끊고 돌아보니 책상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나무라듯 고개를 젓는 니콜이 보였다. "쯧쯧, 잘한다 케이시 그레이스."
"뭐?" 내가 반박했다. "내가 부모님 사랑하는거 너도 알지. 아 그냥 호수 따라가기가 싫다고 지금은."
"아니 왜? 칼훈 호수 좋아하잖아. 너 크리스마스 이후로 부모님도 못 뵀고. 전화 너머로 너네 어머니께서 실망하시는거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어."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괜찮으실거야. 다음에 간다고 했으니까."
"나도 들었네요. 이건 벤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장난해, 벤이랑은 완전 상관있거든? 우리 부모님이 벤을 겁나 좋아하셔." 나는 안락의자에 털썩 걸쳐 앉아 창틀에 발을 걸치곤 7층 아래로 보이는 캠퍼스 전경을 내려다 보았다.
"음, 언젠가는 말씀드려야하잖아." 니콜이 말했다.
"언젠가는.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술마시는 날이지."
니콜은 노트북을 닫더니 말했다. "그래야 말이 통하지."
*
전화가 다시 온 것은 느지막한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시청과 잠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상태였다. 반쯤 차있는 물병이 내 옆에 있었지만 머리를 들어 마실 힘조차 없었다. 니콜은 방 저편에 누워 탈선한 폭주기관차처럼 코를 골아댔다.
갑자기 울린 시끄러운 내 폰소리가 폭탄마냥 이 적막을 깨버렸다. 관자놀이를 지압하며 들고있던 리모콘을 저 멀리 바닥에 굴러다니는 안드로이드 폰에 집어 던졌다.
"닥쳐 좀!"
마치 내 명령을 받들이기라도 하듯 울리던 벨이 갑자기 뚝 끊겼지만 곧이어 MC크리스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미련퉁이같이 침대에서 굴러 내려와 천천히 방바닥을 기어 핸드폰에 다가갔다. 핸드폰이 손에 닿자마자 나는 방바닥에 무너졌다.
핸드폰을 열고는 발신자 확인할 여력도 없이 통화를 눌렀다. 그리곤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여보세요?" 죽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케이시?'
"네네넹 저효. 접니다. 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말도 아니네. 내가 깨웠어?"
"그런듯."
"케이시, 지금 시간이 벌써 오후 4시야."
"아이고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벤찡." 옹알이하듯 말했다.
"케이시 그레이스 밀리어드!"
이런 잦같은. "이비 고모에요?" 나는 눈을 뜨고 턱받침을 해 자세를 바꿨다."
"그래, 나다! 케이시 이녀석," 고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너...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얼굴을 문지르며 집중을 기했다. "아, 네에."
"아가, 너네 부모님이 이번 주말에 호수 가신거 알고 있지. 기억하지?"
"넵."
"그러니까 얘야... 거기서 사고가 좀 있었어."
"사고요?" 뭔 소리야? 왜 전화한거야?
"칼훈 호수에서 다른 보트와 사고가 있었다는구나. 어떤 애가, 술 취한 어떤 멍청한 놈이, 너네 부모님이 타고 계신 보트를 쳤다고 해. 정말 끔찍하게도."
"부모님은 보트 안 가지고 계신데요." 나는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머리를 바닥에 기댔다. "고모, 그거 너무한 이야기네."
"보트를 빌렸데. 너 설마 지금 취했니?"
"아뇨. 아니 그런가."
"얘야, 너네 부모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네?" 아니, 그럴 수 없는데.
"정말 유감이구나. 케이시, 집에 좀 와야할 것 같아."
*
장례식은 수요일에 이뤄졌고 비용은 내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찰만큼 높았다. 이비 고모가 대부분의 비용을 대주었다. 사실, 아빠의 동생이 전부 다 처리해줬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 신께서는 내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
그날은 하루종일 멍한 상태로 보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 말하는데 집중하려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들의 위로에 기계적인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네.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저도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항상 좋아하셨어요.
짧은 예배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여꾼을 따라 교회 밖으로 향했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그랬던 것처럼 그저 내 두 다리만 바라보며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장지하는 곳으로 그들을 따라갈 힘이 나기를 바랬다.
누군가 옆에 다가와 앉더니 내 손을 잡았다. 이비 고모는 53세의 백금발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오늘 고모의 모습은 피곤하고, 슬프고, 심지어 약간 초췌하기까지 했다.
"케이시... 좀 어떻니?"
고모의 여리디 여린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댔다. "오늘에야 든 생각인데요, 이제 저한테는 고모가 전부네요."
고모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모 하나만으로도 든든하다는걸 꼭 알려줘야겠구나. 나에게도 가족은 네가 전부란다."
사실이었다. 고모는 결혼을 한 이력이 있었지만 불임임을 깨달은 고모부가 결국 떠났던 것이다. 고모에게 있어 불임은 언제나 가장 큰 상처였다.
"아가... 이 이야기를 언제 해야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만, 부모님 사유지에 대한 집행권이 나에게 있다는거 알고 있니?"
"그게 맞는것 같아요."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그냥 집만 있으면 돼요. 제가 자라난 그 집요. 그 집 외에는 관심도 없어요. 나머지는..." 대충 손을 휘저어보였다.
고모는 나를 똑바로 앉히더니 말했다. "얘야, 있지, 부모님께선 그 집을 이미 오래 전에 잃으셨단다. 내가 알기로는 계속 집을 빌려서 사는 방법은 구했지만... 얘야, 집은 상속 대상이 아니란다."
이건 마치 확인사살 같았다.
"집주인에게 말해서 그 집을 다시 너에게 팔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구나. 아버지의 보험금이라면 집값을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것 같아."
"네, 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전 그냥 우리집을 원해요. 원래 전- 여름에 집에 와서 좀 쉴까 했는데. 그 집에서라면 부모님을 추억하는데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볼을 따라 눈물이 한 방울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나도 알고 있단다, 케이시. 하지만 한 가지 더 있어."
"아, 뭐 그렇겠죠."
"케이시."
"그냥 말하세요." 나는 손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사이드트랙 말이다."
"사이드트랙이요?"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
"아버지가 그걸 계속 가지고 계셨더구나."
몸을 일으켰다. "아뇨, 팔았어요. 그... 마이크 사건 이후로 팔았어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 세월동안 계속 소유를 하고 있었나봐. 심지어 세금도 유효하고. 그 길에 있는 오두막은 가질 수 있어, 케이시."
세상에, 사이드트랙이라고? 난 어린 시절 매 여름마다 카가샨트 호수에서 보내왔다. 아주 따뜻하고 행복한 장소; 가장 친한 친구를 사귀었고... 잃은 장소. 미카 - 나는 마이크라고 불렀지만 - 10년이 되도록 남동생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마이크가 죽고 나서 아빠는 그 오두막을 팔아버렸다고 했다 - 그리고 이제와서 안 팔았다고? 그럼 엄마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좋아. 그러니까 집 대신 오두막이네. "그럼 고모, 이번 여름 거기서 보내도 괜찮을까요? 학교로 돌아가고싶지 않아요. 그냥, 못 가겠어."
"전적으로 네 선택에 달린 것 같구나." 고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열쇠부터 찾고, 어쩌면 청소 해야할 수도 있어 - 거기 간지도 꽤 됐으니까 말이야 - 그래도 너가 그곳에 가고 싶다면 거기로 가야지."
나는 반짝거리는 호수와 벌새들의 소리, 그리고 최고를 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오두막의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저녁이면 커튼을 간지럽히는 신선한 바람까지. 마이크에게 일어났던 사건은 슬픈 일이지만 그건 이미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그 호수가 뿜어내는 마성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 카가샨트야말로 지금 내가 있어야할 곳이다.
*
고모와 내가 오두막으로 향하는 그 익숙한 길로 들어서자 저 건너편에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 보였다.
"라스트 콜이네!" 나름 신난듯 말했다.
"그게 뭐니?" 고모는 코너에 있는 낡은 싸구려 술집에 제대로 된 눈길도 주지 않으며 물었다.
"바에요. 예전에 부모님이 멧츠네 가족이랑 맨날 저기 갔었는데. 마이크네 누나가 우리 봐주고 그랬어요. 걔네 누나가 항상 늦게까지 잠 안 자도 뭐라고 안했었는데.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고모는 여린 눈썹을 세워보이더니 말했다. "응. 너네 부모님은 항상 독특한 취향을 가졌었지. 완전 폐허 되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구만. 옛날에는 좀 괜찮았나보지?"
"에... 아니요, 딱히 그렇지도 않았어요."
"케이시, 설마 저기 가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어때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차피 걸어갈 수 있는 거린데."
"케이시, 아직 오두막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어. 이런 곳에서 누가 갑자기 공격할 수도 있단 말이야."
어찌나 눈알을 굴려댔는지 하마터면 눈알이 빠져나올뻔 했다. 고모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여자는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3년을 살아남았다면 이렇게 길이 잘 나있는 흙길 오다니는건 정말 식은 죽 먹기인데.
오두막은 아버지의 소유이기 이전에 조부모님의 소유였다. 고모도 어릴적부터 수도 없이 그 오두막에 드나들었지만 이제는 오두막에 가는 길 이외의 호수라던가 하는 기억은 다 잊은 듯 했다.
창백하게 비추던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자 마침내 고모의 벤츠가 숲으로 에워싸진 호수가 있는 공간에 도달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어두운 호수는 마치 어두운 공허처럼 보였다. 마치 바닥에 있는 거대한 구멍을 향해 우리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호수 주변에 위치한 다른 오두막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지만 내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소유 가족들의 이름 또한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멧츠네 오두막에만 불이 켜져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사레가 들렀다. 설마 아직까지 마이크네 가족이 카가샨트에 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고모는 호수 주변을 돌아 우리 오두막 옆에 차를 댔다. 내 기억에 존재하던 오두막보다 훨씬 작아보였기에 문에 붙어있는 사이드트랙이라는 글자가 아니었더라면 잘못 온 줄 알았을 것이다.
일단 차에서 짐을 내리고 고모는 윗층 침실에 새로 시트를 깔러 올라갔다. 나는 부엌 창 아래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는 해변에 난 풀을 열심히 덮치는 호수의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이 밤의 평화를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기를 바랬다.
두어 번 창가에서 졸다 결국 윗층 침실을 찾아 들어갔다. 어릴적 내가 쓰던 그 침실 그대로 고모가 꾸며둔 것을 보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딱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 튼튼한 트윈 베드, 그리고 그와 마주보고 있는 하얀색 더블 도어 옷장. 벽을 따라 놓여진 책장, 그리고 벽지는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내가 어릴 적 낙서해놓은 그림들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크레파스로 온갖 벽에 낙서를 해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이 오두막에는 따스하고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가득했다. 나는 몸을 숙여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아빠와 내가 노란 태양 아래 나룻배에 앉아 쉬는 모습, 말을 타러 갔던 모습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었고, 초록색으로 아주 크게 부모님과 내가 모닥불에 둘러 앉아 스모어 (s'more: 캠프용 간식; 구운 마시멜로를 초콜릿과 함께 크래커 사이에 끼워 먹음)를 만드는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철퇴가 내 가슴팍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의 행복이 담겨있는 그림을 등지고는 침대에 무너져내려 과연 이 달갑지 않은 고통을 없애려면 다른데서 자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잠에 들고 말았다.
*
"정말 여기 혼자 있어도 괜찮겠니? 차도 없이 여기에 너만 두고 가는게 정말 마음에 걸리는구나, 케이시."
고모가 건네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나는 손을 내저었다.
"혹시나 필요한게 있으면 꼭 전화해..."
"혹시나 필요한게 있으면 이웃집에다 물어보면 되지. 걱정 말아요, 진짜 괜찮으니까."
"29일날 데리러 올게. 여기 있는 동안 오두막 전화 연결할 수 있으면 해봐. 핸드폰은 잘 안 터지더라고."
"정말 괜찮아요. 이렇게 속세 떠나서 사는것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 고모는 식탁 너머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슬픔과 동정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의자 뒤로 조금 기대어 앉아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런류의 감정은 항상 날 어색하게 만든단 말이야.
고모는 그런 나를 알아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다. 점심 미팅이 있어서 세인트폴에 가기로 해놨어. 널 두고 이렇게 일찍 가기가 정말 싫구나."
"가요, 가." 나는 미소 지으며 같이 일어났다. "아니, 사고를 쳐도 여기서 내가 얼마나 치겠어?"
고모가 웃었다. "니가 어렸을 적엔 어땠는줄 알아? 장난 아니었어. 너네 꼬맹이들 진짜 여기저기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면서 장난치고 저기 아래 베이 호수에 있는 사람들 엄청 괴롭히고 그랬잖아."
"참내," 나는 콧웃음을 치며 말했다. "베이 호수라니." 그 바보들.
"아무튼, 장도 봐놨고 아침 일찍부터 좀 치웠다. 물도 제대로 나오고 짐들은 전부 지하실에 뒀어. 찬장에 음식도 있고 난... 난..."
고모가 갑자기 날 당겨 안는 바람에 머그컵 주변으로 커피가 흘러 내렸다. 행여 고모가 입고 있는 정장에 튀지 않게 컵을 멀리 들다보니 포옹자세가 영 어색하게 나와버렸다.
"곧 올게." 고모는 포옹을 풀며 말했다.
"알겠슈. 고모, 정말 고마워요."
고모는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롤러보드를 잡고는 현관으로 나갔다. 나는 그 어색한 자세 그대로 서서 고모의 차가 흙길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고모가 떠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제 뭐하지? 술 마시긴 너무 이른 시간인데... 그럼 담배?
나는 현관 앞으로 나가 호수를 마주보고 있는 끝이 다 휜 벤치에 걸터 앉았다. 무릎을 가슴에 대고 말보로 라이트에 불을 붙였다. 약간의 신선한 공기만큼 좋은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아직까지 꽤나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호수는 여전히 무겁고 뿌연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부두 위로 간간히 넘어오는 파도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정말 평화로웠다. 눈을 감고 몇 년 전 여기서 보냇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개구리를 잡고, 바베큐 파이하고, 아빠랑 같이 보트타고 호수 주변으로 마이크랑 같이 뛰어놀고... 기억은 그렇게 빨리 다가왔다.
손에는 폭죽을 쥔 마이크가 나를 뒤쫓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고함을 치고 나는 꺄르륵 웃으면서 - 하지만 그 웃음소리가 비명으로 바뀌게 된 것은 물에 빠진 마이크가 무언가에 잡혀가기라도 하듯 수면에서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그리곤 화면이 바뀌더니 나 또한 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그의 고통을, 그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 기억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돌풍이 돌더니 아침의 적막을 깨고 무언가 내 발 아래로 떨어져 깨졌다. 내려다보니 내가 들고있던 머그잔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크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들고있던 담배를 오래된 커피캔에 던져버렸다. 그 소용돌이는 멧츠네로부터 왔는데, 멧츠네 오두막 내부에선 건물을 부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어제부터 있는 사람들이 마이크네 부모님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날은 하루종일 읽고, 치우고는 이웃집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소리지르며 뛰쳐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냈다. 하지만 호수는 여전히 잠잠했고 점심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늦게까지 놀았나보지? 한번 쭉 돌아보기로 했다.
호수 전체를 다 돌려면 총 9km가 나온다. 다시 내 오두막에 다다를 쯤 이미 그림자가 길어지고 해는 나무 뒤로 들어간 뒤였다. 여길 돌면서 단 한 명도, 심지어 자동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나랑 멧츠네 오두막을 부수고 있던 누군가를 빼면 카가샨트는 황량했다.
마이크네 오두막은 사이드트랙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 집이었기에 그곳을 지날 때는 최대한 조용히, 아주 희박하지만서도 행여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멧츠 가족일지 몰라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마이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여전했기에 - 그리고 그들에게 내 부모님의 부고를 알린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 그들과 나 사이는 멀찌감치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집 근처 코너에 다다를 무렵, 무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 조지아주 번호판이 달려있는 크고 더러운 초록색 픽업트럭이 오두막 옆에 주차되어 있었다. 내성적이고 예의바른 멧츠네 가족들이 저런 차를 몰고다니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작은 한숨을 쉬곤 사이드트랙으로 향하는 약간 경사진 길을 서둘러 올라갔다.
*
그 다음날도 첫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 춥고 조용할 뿐. 아침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내다 핸드폰을 꺼내 앵그리버드를 했다. 점심이 오기 전 이미 배터리는 18%까지 떨어졌기에 가방에서 충천기를 꺼내기 위해 지하실로의 탐험을 해야만 했다.
어렸을 적부터 지하실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내려가는게 마뜩치 않았다. 대체 왜 고모는 내 가방을 지하실에 넣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고모니까 - 어질러진 것들은 다 치우고 깔끔함을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지하실 문을 열고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거렸다. 물론 스위치는 계단 아래에 있었다. 내 뒤로 비치는 적은 양의 햇빛에 힘입어 계단 중반까지 보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내 가방들은 계단 바닥에 있었다. 지하는 어둡고 들통 몇 개와 벽에 달린 공구들을 제외하면 비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충전기를 찾아 후다닥 올라와 지하실 문을 닫아버렸다. 그날 저녁 대부분은 아버미스트 와인을 마시며 노트북으로 왕좌의 게임을 보며 간간히 니콜에게 문자를 하려 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평소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옆집에서 누군가 매장하는 듯 일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내 스스로 다른것에 몰두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슬픔은 마치 관심을 얻고자 하는 두살 배기 아이처럼 나를 파고 들었다. 부모님의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 완벽한 날인것 같아 해가 떨어질 무렵 청바지에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라스트콜로 향했다.
알고보니 바까지는 약 4.8km나 되는 거리여서 도착하고 보니 이미 달이 떠버렸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돌아봤고, 순간적으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칠어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바에 앉았다.
몇 분 뒤 바텐더가 다가왔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 뭐뭐 있어요?"
"버드와이저. 버드 라이트. 쿠얼스." 그는 잘라내듯 대답했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 뒤에 있는 냉장고 안에 들어찬 맥주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럼 블루문 주세요."
그는 내가 익숙해져 있는, 주문하면 으례 나오는 오렌지 조각 따위는 없이 맥주를 갖다줬다.
나는 의자를 돌려 술집을 둘러보며 부모님이 여기 앉아있는 상상을 했다: 부스에 앉아 멧츠네 가족과 호탕하게 웃으며 무례한 바텐더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
그 생각에 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병을 내려놓을 쯤, 누군가가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져 몸을 돌려 핸드폰을 꺼냈다. 일단 마을로 돌아왔으니 니콜에게 문자를 보내려 했지만 여기 신호도 호수에서의 그것만큼이나 구려서 잡히질 않았다. 몇 분 간 설정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 앵그리버드를 실행했다. 점점 녹색 돼시새끼들에게 화가 나고 있었다.
"어이 이쁜이, 남자친구한테 문자해요?" 내 옆에서 들려왔다.
"아뇨, 앵그리버드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음. 남자친구가 여기 바에 혼자 있는거 알고 있어요?"
"혼자 온거 아닌데요."
"당연히 아니겠지, 내가 있으니까. 이쪽 테이블에 와서 앉을래? 아니면 내 무릎에 앉던가." 그는 거친 목소리르 그릉대더니 내 개인적인 공간으로 침범해왔다.
나는 쥐고 있던 마지막 새를 날렸다 - 임페리얼 타워를 향해 콰이곤 진을 날린 것이다. 성은 몇 초간 흔들리더니 베이컨 제국 위로 넘어가지 않았다. 콰이곤은 건물 공격에는 취약한 새였던 것이다. 초짜같은 실수를 하다니, 훨씬 잘할 수 있는데. 나는 바에다 대고 내려치지 않게 손을 쥐락펴락할 뿐이었다. 이 게임 겁나 짜증나네.
"어때, 이쁜이?"
"됐어요." 재시도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뭐라고 했지, 이쁜아?" 그의 목소리가 좀 더 낮고 협박조로 바뀌었다.
"저기, 아까 말했듯이 지금 앵그리버드 하고 있거든요."
"앵그리버드보다 내가 더 재밌을거야."
"이해를 못 하는가본데요. 이건 스타워즈 버전이거든요."
"내가 신경이나 쓰는줄 알아 ?" 그가 가까이 다가와 나는 강제적으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신경을 좀 썼어야 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술집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간할 확률이 높아보이는 남자의 성질을 긁고 있었다. 이런 잦같은 시츄에이션이라니.
"에... " 내가 입을 뗐다.
"AJ, 여기서 보다니 놀랍네. 마리사가 접근금지명령 내린게 아직 유효한 줄 알았는데." 내 뒤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내 다른 쪽에서 왠 남자 하나가 'AJ'라 불리운 사내를 향해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사가 여기 있어?" 남자는 깍깍대더니 나에게서 멀어졌다.
"당연하지, 여기 술집 현관에 릭 클라임이랑 같이 있던데,"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리 봐도 이 술집 안에서 당신이 90m 가량 떨어질 순 없을 것 같은데." 새로운 남자는 강한 남부 억양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위스키 잔을 홀짝이면서도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까, 젠장할. 그 망할년이 쫓아온다고 내가 여기서 나갈 줄 아나."
"또다른 지혜의 구슬이구만, 고마워 알려줘서. 이봐, 아직 가석방 아닌가?"
"로즈, 이 개새야." AJ는 10불 짜리 지폐를 던지더니 앞문으로 나가 문을 쾅 닫고는 사라졌다.
행여나 그놈이 다시 들어올까 싶어 문을 계속 응시하며, 나는 내 뒤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저한테 이런 곳에 여자 혼자 오면 안 된다고 말할 건가요?"
그는 웃더니 말했다. "당신에게 아무런 말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그를 쳐다보자 그는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나는 살짝, 하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미소를 보였다. 그는 여전히 바에 앉아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며 적절치 않은 즐거움을 즐기던 바텐더에게 또다른 위스키 사워를 주문했다.
저거 내가 사줘야하나? 이런 상황에선 그렇게 하는게 맞나? 내 소개도 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 위스키 사워는 나보다 한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방금 대화 이상했나? 내가 이상했나?
나 혼자 상황을 곱씹는 동안 그는 자기 술을 들고는 돈을 낸 뒤 아까부터 치고 있는 듯한 당구대로 가버렸다.
나는 핸드폰에 떠있는 얄밉게 웃고 있는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만 쳐웃어, 이 거지같은 쓰레기야/." 그렇게 투덜대며 화면을 꺼버렸다. 오늘 밤은 이 정도 즐겼으면 충분한 것 같아. 남은 맥주를 마시며 바텐더에게 계산서를 요구했다.
오두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술집을 나오면서 여전히 바 뒷편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 위스키 사워를 흘끔 쳐다봤다. 그는 스틱에 기대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한쪽 입가에는 즐거운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내가 문으로 가는 동안 눈길을 거두지 않고 쳐다보았다. 문을 열기 전 그에게 어색한 목례를 하고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갔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멀고 - 훨씬 추웠다. 부드러운 여름 산들바람이어야하는데 오히려 느지막한 겨울바람처럼 느껴졌다 - 내 옷을 잡아당기고 드러난 내 살을 에리다니. 호수로 가는 마지막 코너를 돌자마자 갑자기 나는 전혀 생소한 장소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길도 어색하거니와 호수 자체도 물이라기보다는 크게 갈라진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마침내 카가샨트 주변으로 늘어진 오두막 길로 접어들어서 해변을 따라 걸으며 바람소리가 마치 종이가방에 갇힌 고양이가 부시럭대는 소리같다는 점을 이상하게 느꼈지만 호수는 마치 유리 판처럼 평평하게 있었다. 이 호수는 이상한거 빼면 시체야.
걸음을 재촉해 얼른 안전하고 견고한 사이드트랙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문을 따고 밀어 열고 곧장 벽난로를 향해 갔다. 미네소타에서 6월 중순에 벽난로를 켜려 한다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젠장할, 너무 추웠다. 아빠가 알려준대로 불쏘시개를 작게 쌓아 올린 뒤 고모가 사다준 부싯돌 역할을 할 나무도 함께 얹었다.
그렇게 20분을 씨름을 했지만 결국 좌절해 포기하고 말았다. 바람이 굴뚝을 타고 내려와 영 좋지 않는 휘파람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전혀 맞설 기분이 아니었다.
핸드폰 충전기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야. 몸을 일으켜 앉아 등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맥주 4병 먹고 아버미스트 한 병 먹었다고 이렇게 취할 수가 없는데... 가능한가.
내 신음소리는 이내 자조적인 웃음으로 바뀌었다. "넌 완전 바보이야." 스스로에게 알려주었다.
그 순간,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 같았지만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자 내가 있던 곳에 물웅덩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엥?"
왜 물이 여기에 엎질러져 있는지 생각하던 중, 지하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단 다가가 문을 닫았다. 그 웃음소리는 굴뚝에서 난 바람소리라 쳐도... 물이랑 열린 문은? 일단 이건 내일 생각해볼 미스터리로 둬야겠다.
나는 우악스럽게 계단을 올라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내 방에 있는 옷장이 단단히 닫혀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열려있으면 절대 잘 수가 없어. 속옷만 빼놓고 싹 다 벗은 뒤 이불을 덮어 애벌레처럼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끙하는 소리를 냈다.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소리로 봐서 내 방 창문이 아직 열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자면 분명 몇 시간 뒤 얼어서 깨어나겠지만 당장은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뒤집어 어릴적 내가 그렸던 벽그림을 바라보았다. 나와 아빠가 부두 끝에 앉아 낚시를 하는 모습이었다. 잠이 들기 직전 마지막 생각은 하하, 어쩜 바보같아 - 어차피 저 호수에는 생명체가 없는데 말이야.
*
카가샨트가 어떤지 그리는 것은 두통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그려도 전날 밤에 본 모습과 같았다 - 지구로 빠져버린 무시무시한 검은 구멍.
방금 연필로 그려나간 그림을 보고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린 그림은 내가 보고 있는 모습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지만 분명 아주 사소한 차이로 뭔갈 더 그렸건 빠뜨렸건 내 그림의 호수를 더 불길하게끔 보이게 만드는 요소가 있음에 분명했다.
나는 우리 집 부두를 따라 달려있는 티키 모양의 횃불에 기대어 옆에 두었던 커피잔을 들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렇게 마음이 가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라.
부두 끝에 앉아 잔물결이 일렁이며 푸른 철썩임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호수의 이미지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내 감정이 내 스케치에 고스란히 드러나는게 아닐까, 호수의 원래 모습보다 더 악하고 위협적으로 그리는 이유가.
맞는 말 같았다. 마이크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부두 끝에서부터 약 3m 거리에서 익사했다. 나는 달디 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기둥에 머리를 댔다. 그리고는 혹시나 그들이 마이크의 시신을 찾았는지, 아니면 지금 내가 그 몸뚱아리 위에 앉아있는 것인지 하릴없이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려서 뭘 들을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내 의식의 끈을 잡고 원치 않는 기억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날 아침, 두 명의 아이가 잠자리를 향해 막대기를 집어 던지고 그 근처에서 부모들이 블러디 메리를 마시는 모습. 그날은 긴 여름의 끝자락이었고 21살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더이상 할 것이 없었다.
"너무 지겨워." 내가 마이크에게 말했다. "오늘 진짜 할 게 아무것도 없어."
"베이 호수에 놀러가면 되지."
"또 가면 경찰 부른다고 했잖아."
"아니면 나룻배를 타던가?" 그가 다시 시도했다.
"어른이랑 같이 가는거 아니면 아빠가 허락 안 해주실거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좋아... 거북이 잡으러 갈까?"
"작년에 물린 뒤로 그거 하지 말랬어."
"아오, 케이시. 그럼 대체 너가 해도 되는게 뭐야?"
"없어." 나는 징징거리며 뒤에서 우리에게는 전혀 관심 없이 술을 마시는 부모님을 흘긋 바라보았다. "근데 어른들이 어차피 우리 안 보고 있잖아, 그치?"
"응," 마이크는 웃었다. "애초에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었어. 우리가 저녁 때까지 여기에 있었다는 것도 기억 못 할걸."
"그럼... 하면 안 되는 짓을 좀 해보자." 나는 마치 유치한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예를 들면?"
"음... 수영?" 내가 말했다.
"우리 베이 호수 가면 안 된다며."
"거기 말고. 여기."
우리는 호수에 들어갈 수 없었다 - 절대로. 부모님은 여기 물이 너무 차서 발가락이라도 하나 넣었다간 분명 저체온증에 걸릴 것이라 여겨 만약 수영을 하고 싶다 말하면 근처에 있는 베이 호수까지 데려다주시곤 했다. 어느 누구도 카가샨트 호수에서는 수영을 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얼굴을 구겼다. "겁나 좋네, 케이시. 여긴 너무 추워."
"애같이 굴지 말어." 내가 말했다.
"나 애 아니거든!"
"너 수영이나 할 줄 알아?"
"당연하지!"
"그럼 같이 들어가지 왜? 진짜 빨리 다녀오면 되잖아. 한 2분?" 나는 발로 땅을 차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러면?"
"나는 별로..." 마이크는 불안한 눈으로 양말을 벗는 나를 지켜보았다. "알았어. 그럼 딱 2분만, 해변 근처에서 놀기야. 그니까 여기 바로 큰 잡초 난 거기서 노는거야. 그래야 부모님도 우리 못 보실테고."
"싫거든, 거기는 완전 얕다고. 봐봐, 어른들 지금 안에 들어가잖아. 빨리, 부두에서 뛰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잖아!"
"수영할 줄 안다며."
"할 줄 알아! 좋아, 그냥 가자 그럼." 마이크는 거칠게 스니커즈 운동화를 벗더니 언덕으로 던졌다. 나는 그를 따라 부두 끝으로 가서 물을 살폈다. 밀물 타이밍이라 물이 깊었다.
"어때?" 내가 물었다.
"너 먼저 들어가," 마이크는 팔을 꼬더니 나를 향해 웃었다. 아마 내가 물러설 줄 알았겠지. 하지만 그럴 내가 아니었다.
"좋아," 나는 건방지게 말했다. "비켜라, 이 거지같은 반역자야."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부두 끝으로 달려 점프했다. 그리고 물에 닿는 순간 내가 정말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수는 너무나 차가웠고 마치 악당처럼 나에게 몰려왔다. 즉시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더니 호수에서 배를 타면서 물을 뿌리면 그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나를 떨게 만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이건 진짜 멍청한 것도 죄라면 잡혀갈 급으로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가려 애쓰며 얼음장에 숨을 헐떡거리다 결국 고통스러움을 맛보았다. 마침내 따뜻한 바람을 내 폐에 집어넣자마자 나는 고개를 돌려 부두를 바라보았지만, 마이크는 이미 내 머리 위에 떠있는 상태였다.
그는 마치 포탄처럼 떨어지더니 잠시 뒤 수면을 깨고 나타나 나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공포와 고통을 잔뜩 안고 떠올랐다.
"수영해!" 나는 미친듯이 떨리는 치아 사이로 그를 향해 외쳤다. 내 팔다리에 피가 다 얼어붙기 전에 얼른 해변에 있는 부두를 잡고 싶었다. 2m만 가면 된다. 1.5m. 뒤로 마이크가 다가오는게, 곧 추월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나에게 단편적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비명소리, 울음소리, 사이렌 소리와 정신 없이 번쩍이는 불빛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다른 오두막에서 나온 아이들이 전부 두려움에 차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경비들 사이를 뚫고 불신의 눈빛으로 나를 훑는 어른들의 눈빛과 조
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젠 안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나는 몸을 흔들어 기억을 떨쳐버리고 차가워진 얼굴을 따뜻하게 하려 손을 움직였다. 무언가 내 볼을 찔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아직 연필이 들려 있었다.
다시 스케치북을 내려다보고는 그제야 기억에 사로잡혀 그림을 한량같이 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그림 속 부두 끝자락에서 몇 m 떨어진 곳에 누군가의 작은 손이 도움을 바라듯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건 그 때문이 아니다.
그림 배경에 키가 아주 크고 마른 형체가 홀로 서있었는데, 호수 반대편에서 물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형체는 아주 간결하게 검은색으로 어떤 디테일도 없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스케치북을 발로 차 부두를 따라 미끄러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케치북은 불안불안하게 서더니 결국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안녕, 앵그리버드." 고개를 홱 돌리자 부두 저쪽에서 걸어오는 위스키 사워가 보였다. 이 상황 정말 진심이냐?
나는 재빨리 눈썹을 세워 놀란 흔적을 지웠다. 그는 청바지에 메탈리카 셔츠를 입고는 자신의 강한 남부 억양을 돋우기 위함인 듯 우스꽝스러운 검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걸어오면서 담배를 꺼내더니 이로 하나를 물어 꺼내곤 지포 라이터로 아주 재빨리 불을 붙였는데 너무 빨라서 내가 라이터를 보긴 한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세상에,"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체 누가 당신을 메이슨 딕슨 선 (역자 주: 미국 남북부의 경계)을 넘게 해준걸까요?"
"아, 모자가 마음에 들어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앵그리버드씨, 저한테 상처를 주는군요," 그는 웃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뉘예 뉘예." 나는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당신이 205호를 부수고 있던 사람이군요. 멧츠네 가족한테서 샀나보죠?"
"그랬죠. 사실, 205호는 내가 여기서 산 세 번째 공간이에요. 저기 베이 호수 근처에 하나 있는데 그건 작년에 다 엎어놨죠," 그는 호수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 한 채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203호도 사려고 했는데 주인이 팔려는 생각이 없더군요."
"흠. 어, 저는 아마 있을 수도 있어요."
"아, 당신이 새로운 주인이군요." 그의 눈에 이제 흥미가 담겼고 그렇게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맞아요," 한숨이 나왔다. "저죠."
"혹시나 팔려고 한다면 행운을 빌어요. 214호는 근 10개월 동안 계속 매물이 나와있었거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뭘 사기 전에 검색 좀 해보시지 그랬어요."
"아, 왜요. 제가 뭘 놓치고 있죠?"
"일단 여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전형적인' 레크리에이션 장소가 아니랍니다," 나는 무릎을 당기며 말했다. "이미 카가샨트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죠."
"물론이죠, 그러니까, 여기는 확실히 조용하고 저 호수도... 음..." 그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확실하게 집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죠," 내가 마무리 지어줬다. "조류 본적 있나요?"
"못 보고 지나치기는 힘들죠." 위스키 사워는 담배를 튕겨내며 대답했다.
"맞아요, 장난 아니죠. 많은 호수들이 만만한 조수를 가지는데 여긴 상당해요. 여기는 2m나 차이 나거든요."
"그러게요, 참 신기하죠.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왜 사람들이 안 오는지 그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왜냐하면 자연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물이 얼마나 찬지 아세요? 그것도 한여름에 말이에요."
"네. 낚시하기는 좋던데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생각은 들겠지만 여기에는 물고기가 아예 없어요." 내가 답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수영도 못 하고 낚시도 안 되고. 젠장, 완전 강매 당했네." 그는 불편한 듯 그의 뒷목을 문질렀다.
"제가 어릴적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으론 이 지역에 살던 라코타족이 이 호수 아래에는 악마의 심장이 펄떡이고 있다고 믿는다 하셨죠. 그래서 호수에 조수가 강한거라고."
위스키 사워는 나를 향해 눈썹을 들어보였다. "악마요?"
"그래서 라코타족이 이 호수 이름을 카가샨트라고 지은거래요. 그 뜻이 '악마의 심장'이라고."
"그렇겠죠." 그는 심각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린 채 대답했다.
"비웃지 말아요, 당신이야말로 이 지역에 수 천 만원을 날린 사람이니까."
"그러게요,"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러니 손해만 본 건 아니라고 칩시다."
"제 이름도 아예 모르잖아요."
"흠, 저는 제시에요."
"세상에, 그러시겠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케이시에요."
"마음에 드는 이름이군요. 케이시라니."
"윤허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티키 모양의 기둥이 팔꿈치를 뻗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 듯 모자로 쓸었다.
"이봐요, 어쨌든 이제 우리 여기 이웃인것 같은데, 내일 우리 집에서 바베큐 파티 어때요?"
"흠, 잘 모르겠네요. 일단 스케쥴 확인부터 해야하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꺼내 들고 차가워진 커피를 호수에 부었다."
"저 못된 사람 아니에요, 케이시. 뭘 더 알고 싶어요?"
"흠." 나는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턱을 두드렸다.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거라... 몇 살?"
"29."
"출신지는?"
"조지아."
"미들네임은?"
"데빈."
"좋아하는 색깔?"
그의 눈이 내 몸을 내려다 보았다. "초록색."
내가 온통 초록초록한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깨닫지 못하는 척 계속 물었다.
"좋아하는 동물은?"
"소고기."
웃겼다. "조지아 남아의 A to Z." 그는 나를 향해 모자를 기울였다. "좋아요, 당신이 이겼네요. 내일 저녁에 봐요. 뭘 가져갈까요?"
"통닭이요."
"통닭 없어요. 차도 없고."
제시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냥 가셔야겠는데요."
나는 비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지금 닭 사냥 가라고요."
그는 기둥을 밀어 일어서며 미소를 짓더니 해변을 향해 부두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음, 달걀은 좀 있는데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달걀을 그릴링할 순 없잖아요, 케이시."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호일에다가 해!" 내가 외쳤다.
제시는 멧츠네 오두막으로 가면서 마구 웃었다. 아니, 그의 오두막이지.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전에 그를 한번 보고 다시 사이드트랙을 향해 언덕을 올랐다. 뱃속에서 익숙하게 끌리는 듯 간지러움과 연애의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 남자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다른 몰두 대상이거나 혹은 내가 상대하기 벅찬 사람일 수 있다.
*
뒹굴거리다 보니 무릎에 껴둔 베개가 떨어지고 말았다. 욕을 해대며 눈을 살짝 뜨고는 쏟아지는 빛 사이로 침실을 찾으려 애썼다. 굿모닝. 내 오래된 적이여.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잡으려 허우적 대며 몇 분간 - 혹은 몇 시간 동안 - 의 단잠을 청했다. 그리고 집어든 베개를 무릎 사이에 끼워 넣는 순간 얇은 퀼트 재질의 커버가 흠뻑 젖어있음을 느끼고 비명을 꽥 질렀다. "아 또 왜 이래, 진짜 짜증나네." 방을 향해 외쳤다.
몸을 일으켜 앉아 눈이 햇살에 적응하기까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렸다가 닿는 순간 재빨리 다시 올렸다. 침대 바로 옆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 엄청 차가웠다.
퀼트 이불을 어깨에 감싸고 집 곳곳에 퍼진 물웅덩이를 따라 나갔다. 물은 복도를 따라 1층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고, 내려가보니 지하실로 이어져 있었다 - 어째서인지 지난 밤 사이에 문이 또 열려 있었다.
나는 지하실 문을 활짝 열고 층계참까지 내려간 뒤 아침 시작을 위한 첫 네 글자를 말했다 (F U C K). 지하실이 침수가 된 것이다. 지하실 바닥에 있던 내 빈 가방들은 이미 몇 cm 잠겨잇는 상태였다. 아래로 내려가 가방을 층계참에 올려두었다. 그냥 내 운이 더러운거지, 안 그래? 내 소유의 첫 번째 집이라니 - 증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배관이 터졌어. 나는 쿵쾅거리며 1층으로 올라와 복도의 벽장에서 수건을 꺼내들었다.
다음 한 시간 동안 물을 닦고 윗층 복도에 있는 카페트에서 물기를 제거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니, 이게 가능키나 한 일이야? 아니면 물이 어떻게 역류라도 한거야? 어쩌면 옆집 위스키 사워라면 대답을 알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 저녁에 가기로 했으니 그때까지는 기다려야겠다 싶었다.
막 마지막 수건을 창틀에 말리던 그때, 1층에서 귀가 먹먹할 정도로 쾅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둔 문은 지하실 문 하나였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서 닫힌 지하실을 봤을때는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분명 열려있는 창문으로 불어든 바람이 범인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날 하루종일 지하실 문을 잠궈버렸다.
터무니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집에 나 혼자만 있는게 아니라는 기분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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