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대숲747
익명으로 올려주세요
저는 친족성폭력 생존자 입니다.
용기 내서 글을 씁니다..
저는 친동생에게 수년동안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으며 임신으로 낙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제 동생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아픈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공부와 숙제를 봐줬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집안일을 배웠습니다.
저는 장애가 있는 동생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늘 동생 자랑을 했고 그것 때문에 장애인 동생이 있다는 이유로 왕따가 됐어도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동생의 추행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브래지어 끈을 만지거나 잡아당기는 '장난'으로 시작됐습니다.
점점 수위가 높아졌고, 제가 고등학교 때는 옷을 올려 가슴을 더듬거나 배를 만지고 입술에 뽀뽀를 하다가 혀를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얼마 뒤에는 강간을 당했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쓰러져서 병원에 갔다가 임신 가능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화들짝 놀라 집으로 그냥 왔습니다. 임신이었습니다.
차마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아파서 그 병원에서 저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먹던 약들 중에 산모와 태아에 대한 부작용이 강하게 언급된 약들, 마약진통제 같은 독한 약들을 사후피임약과 함께 털어넣었습니다. 아니면 죽기라도 하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한달여를 구토와 하혈을 하고서야 낙태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벼르고 별러 결국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일이 부끄러웠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내 상상인지 헷갈렸고, 친동생과 그런 행위를 한 내 자신이 수치스러웠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야 내가 겪었던 일이 친족성폭력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동생은 제 집에 와서도 제 허벅지를 더듬고 저를 껴안는 등 추행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제가 친족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알고서 엄마아빠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엄마아빠는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제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진 않았어요.
장애를 이유로 한 동생에 대한 엄마아빠의 오랜 편애가, 강간을 당할 때조차 저에게 "아 내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거든요. 늘 나는 동생에게 무언가를 해줘야만, 동생을 잘 챙기는 모범생 착한딸이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심한 우울에 시달렸습니다.
동생을 위해서 집안을 위해서라고, 나는 나중에 내 힘으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 하며 대학도 양보했는데.. 내게 돌아온 것은 상처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학도 못 간 채.. 시한부 환자로 사는 삶.. 패배감. 열등감...
그것보다 더한. 의미없이 희생을 했다는 분노... 짓밟혔다는 좌절감.
아직도 동생 꿈을 꾸는 날이면 오늘처럼 하루종일 구토를 하고 두통에 시달립니다. 입원해서 열흘째 금식 중인데 그래도 구토를 하더군요..
동생이 졸업한 학과는 더욱더 저를 옥죄고 들었습니다.
동생은 호남대학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다니는 걸로 압니다.
그 죄의식... 내가 신고를 하지 않아서 성폭력범이 상담사가 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에 끝도 없이 짓눌렸습니다.
왜 신고 안 했냐고요? 이젠 아무 증거가 없으니까요.
동생은 그저 웃는 게 멋진 성격 좋은 안타까운 장애인이니까요. 당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나도 말할 수 있다고.
사회는 대학 졸업장 있는 네 말만 듣겠지만.
나도 말할 수 있다고.
고졸에. 친족성폭력 피해자인 나도 말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에요.
그저.. 두통이 좀 가라앉을 수 있었으면.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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