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들 하이루

나는 오늘도 평안하게 폰여시를 하면서 잠을 자려다가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쩌리에 핫플난거 보구 화들짝 놀래서 이렇게 글을 찌러 왔습니당.
자! 그럼 오늘 내가 할 얘기는 뭐냐면
바로
시란 무엇인가!
입니다!
저는 일개 전공자이기 때문에 저의 주장의 모든 (거의 모든) 근거는
권혁웅 씨의 <시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당.
권혁웅 씨는 하이데거의 시론을 바탕으로 시를 정의하고 있어요, 시에 대한 정의는 이외에도 다양하지만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엄연히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한 정의가 있다는 사실 입니다.

네 바로 요 책
사실 시론, 평론이라는 것은 고정되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야.
이 시론 역시 포스트 담론을 적극! 수용한 현대시론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 권혁웅씨의 시론은 전위적인 시인들을 지지하고 있는 아주 핫! 한 시론이라고 할 수 있어
네, 그럼 제가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냐
1. 시란 무엇인가
2. 왜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하지 않는가
3. 그럼 또 다시 시란 무엇인가
입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레쯔고!
1. 시란 무엇인가
네, 그럼 제일 먼저 '시'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해보도록 하죠.
자, 언니들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읽었을때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글?
언니들 이 시 한 번 봐봐

자, 언니 무슨 생각이 들어요?
어이가 없지?
제목만 있고 아무것도 안 써있는데 이게 시래
;아 땀난다 안그래?
자, 우리가 이 시를 시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시의 본질에 있습니다.
그럼 시가 대체 뭐냐?!하면
시란 바로
존재의 진리를 열어서 밝히는 언어
입니다.
자, 이게 무슨 까만건 글씨고 하얀건 종이냐 요런 말씀을 해주신 분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하이데거 아자씨죠

요래요래 생긴 아자씨
자 이 아자씨가 무슨 말을 했냐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요런 말을 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인간은 언어가 없이 사유가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어가 나를 만든다는 거에요.
그래서 언어는 생각의 본질인 동시에 나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럼 언니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아니 나는 한국말로 생각하고, 쟤는 중국인이라 중국말로 생각하는데, 그럼 나랑 루한은 달라? 그래?
그렇잖아여
이 아자씨가 지금 나랑 장난하시나
뭐 그래서 어쩌라고
가 아니라,
이 아자씨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면,
인간은 언어로 구성되죠
근데 언어는 불완전합니다.
언어는 하나의 기호에 불과할뿐 존재의 본질을 모두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아자씨가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언어와 달리 진짜로 존재의 본질을 말하는 것! 그게 뭘까?
그게 바로 뭐겠어요?
그게 바로 시! 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이렇게 정의하는 거에요
시란, 존재의 진리를 열어서 밝히는 언어! 라고.
그래서 문인들은 종종 말하곤 해요,
존재의 진리를 밝히지 않으려는 시는 죽어도 싸다고
이게 진짜 어렵고 복잡하고 사정이 긴 얘긴데
이걸 마음으로 느끼고 싶은 언니들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 수가 있어요.
그럼 우리 이제 '시'가 무엇인지 정의했네요?
다음 챕터로 고고!
2. 왜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하지 않는가
자, 그러면 이제 우리 언니들이 하상욱 씨의 글을 보면서
맨날 생각하는 그거! 바로 그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그래, 이제 나는 시가 뭔지 알았어
오우케이 시가 응 그래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열어 밝히는 것을 적는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하상욱씨의 글을 왜 시가 아닐까요?
자 우리는 이 질문을 2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2.1 왜 문단에서는 하상욱씨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2.2 왜 우리는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명명하기 껄끄러워 하는가?
하상욱씨의 글과 관련되서
사람들이 전공자들에 대해 혹은 문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몇가지 오해가 있어요!
나는 하상욱트위터보면서 완전 공감했는데, 쟤네는 그게 시가 아니래
아니 웃기네 쟤네 왜 맨날 웃긴 거만 들고와서는 하상욱글은 시가 아니래? 진지한 글도 많은데
내가 보기엔 시라고 하는 것도 뭐 별로 안달라 보이던데, 왜 진지한 것만 시래? 웃겨 진짜 시부심 쩐다
뭐 이정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언니들 나 일단 좀 울고갈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 얘기 들으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여 ㅠㅠ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자, 이런 오해가 발생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위에 언급했던
2.1 왜 문단에서는 하상욱씨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2.2 왜 우리는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명명하기 껄끄러워 하는가?
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그 차이가 뭔지 우리 이야기를 해볼게요!
2.1 왜 문단에서는 하상욱씨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자,언니들 그럼 문단에서는 하상욱씨를 왜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가 무엇인지 정의했으니까 한 번 생각해 볼까요?
....
네, 어렵죠? 그래요 어려워요
이거 진짜 어려운 문제에요.
근데요 언니들 사실 문인들이 하상욱씨를 시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요,
바로 본인이 시인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자, 이거는 하상욱씨가 인터뷰했던 내용중에 하나에요.
하상욱씨는 본인을 뭐라고 얘기하나요 언니들?
글쓰는 직장인 이라고 얘기를 하죠, 나는 시인이 아니고 글쓰는 직장인이래요.
그 말은 무슨 소리에요, 하상욱씨 본인은 시인이 아니래요.
시인이란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를 거치고 글을 써내는 사람이죠.
다시 말해, 나를 시인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은,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열어 밝히는 것을 들었습니다."
라고 시인하는 거에요.
다시말해, 내가 쓴 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거죠.
그럼 이제 우리는 시인에게 이야기하는 거죠,
아~ 진짜? 너 진짜 그랬어? 너 정말 니가 생각하고 느낀 걸 쓴 것이 아니라, 온전히 타자가 되어서 그 마음을 썼어? 라구요
그 사람의 시를 시로써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얼마만큼 존재의 사건에 충실했는지,
은폐되어 있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정말로 들었는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모두 죽이고 진짜 타자가 되어 썼는지
우리가 평가할 수 있죠.
왜냐? 그 사람이 나는 시인입니다~ 나는 내 글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한거니까요.
그런데,
하상욱씨는 본인이 시인이 아니래요.
그 말은 무슨 소리에요?
나는 시인이 아니니까, 내 글은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는 글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한테 왜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는 글을 쓰지 않았어? 하고 묻지마 라고 해버리는 거에요.
이 말은
하상욱씨가 글을 쉽게 쓴다는 말이 아니에요.
실제로 본인도 쉽지가 않다, 오래 고민한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이야기도 했구요.
그가 쓰는 글이 시가 아닌 이유의 핵심은,
본인이 시인이 아니라고 시인함과 동시에.하상욱씨는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는 시의 본질 역시 부정해버렸다는 거죠.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나는 시인이 아니에요
= 나는 시인의 자세로 시를 쓰지 않았어요
= 존재의 진리를 듣는 자세를 가지는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요
의 삼단논법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 추가
하상욱 시인이 나는 시인이 아니에요 라고 한 말에 대해서 언니들이 혼란스러워 하길래,
1. 하상욱 본인이 시를 쓴다는 것 = 시인의 자세를 가진다는 것 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면
본인은 시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것이 당연
히 시인의 자세로 시를 쓴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되겠고,
2. 만약에 하상욱 본인이 시인의 자세를 모르고 시를 썼다면, 그건 정말 시가 아닌거지.
개인적으로 나는 하상욱 본인이 시인의 자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
그 분의 인터뷰를 읽을수록 '시'를 쓴다는 것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상욱씨가 시인이 되는 것의 무게로부터는 빗겨나면서 시가 가진 위상은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더 보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네..............
본인이 말씀하시네요.
시는 글로 하는 디자인이고, 나는 그래서 한글로 디자인을 해서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분명하게
존재의 진리를 열어서 밝히는 언어! 로써 시를 쓴 게 아니네요?
어쩌면, 이 과정을 보고 언니들은 또 어이가 없을수도 있어요.
시가 그렇게 고고해? 대단해?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언니들,
시인이기를 거부한 사람이 쓰는 글을 시라고 인정할수는 없어요.
자, 그러면 하상욱씨는 왜 본인이 시인이 아니라고 했느냐
왜냐면 사실은 하상욱씨는 그 누구보다도 시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흥미돋] 하상욱 시가 문학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jpg [1165]
![]()
언니들 이 글 봤죠?
하상욱씨가 그랬죠, 내가 뭔데 문학을 망치냐고
본인은 알고 있어요.
시인이라는 직업이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또 시가 무엇인지.
그래서 하상욱씨는 본인이 시인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나는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열어서 밝히는 본질을 듣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서
그래서 언니들,
문인들이 하상욱씨를 시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가 쓴 글을 시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정! 말! 로!
그 사람이 쓴 것이 시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2.2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문인들이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시인의 자세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 시인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2.2 왜 우리는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명명하기 껄끄러워 하는가?
그런데, 우리가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인정하기 껄끄러워지는 순간은 문인들과는 다릅니다.
보통 하상욱씨의 글을 시로 인정하지 않는 비전공자 혹은 비문인들은
1. 시가 형식성이 없어 저게 무슨 시야
2. 뭐야 뭐 저런 공감가게 그냥 얘기하는 건 광고 카피라이터랑 다를 게 뭐야 시는 아니지
3. 뭐 저런 얘기를 하는데 저게 시야? 시면 뭔가 근사한거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민주화 같은거
정도의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렇죠,
언니들 우리가 배운 시는 어떤 시에요?
황지우, 김소월, 한용운....
그렇잖아요?
아니 언니 솔직히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랑 하상욱의 애니팡이랑 놓고 둘 다 시에요 하면 좀
이건 아닌거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근데 언니들 그런 이유로 하상욱 씨의 글을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할수는 없어요.
그럴때는 우리 뭐라고 말하냐면요,
존재의 진리를 밝혀 듣는 자세가 부족해,시 별로 잘 못썼네
라고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시의 형식이나 완결성의 부족을 가지고 우리는 시다! 아니다!를 논하면 안되요.
우리 시가 뭔지 아까 위에서 정의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존재의 진리를 열어서 밝히는 언어 면 전부 뭐라구요? 시인거에요
자, 언니들 이 시를 한 번 봐봐요.

자, 이 시는 일본에 하이쿠 라는 짧은 정형시에요.
두 줄로 우주를 말한다고도 표현하는 시들 인데,
이거 보는데 솔직히 하상욱씨 생각나지 않아요?
이것도 시라며? 근데 왜 하상욱은 아니래?
그런 생각 들잖아요?
그럼 우리는 이제 말해줘야 되죠, 뭐라고?
이 시인들의 시가 잘 쓴지 못 쓴지를 떠나서, 이 사람들은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기 위한 글을 썼고,
하상욱씨는 잘 쓴지 못 쓴지를 떠나서,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는 글을 쓰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사람들은 시인, 하상욱씨는 시인이 아니다.
고로 이건 시
하상욱씨의 글은 시가 아니다! 라구요.
3. 그럼 또 다시 시란 무엇인가
자, 그럼 이제 우리 마지막 파트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럼 또 다시 시란 무엇인가?
쩌~~~위에 보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일개 전공자이기 때문에 저의 주장의 모든 (거의 모든) 근거는
권혁웅씨의 <시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당.

네 바로 요 책
사실 시론, 평론이라는 것은 고정되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야.
이 시론 역시 포스트 담론을 적극! 수용한 현대시론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 권혁웅씨의 시론은 전위적인 시인들을 지지하고 있는 아주 핫! 한 시론이라고 할 수 있어
뭐라구요?
시론, 평론이라는 것은 고정되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냔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지금까지 시가 어쩌고 저쩌고 해놓고는 이제와서 이게 뭔소리야?!
라고 언니들 화내지 마시고 제 얘기를 조금 들어봐봐요.
자, 제가 참고했다는 책 권혁웅씨의 <시론> 에서는 '미래파'라는 시인들을 명명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대표적으로는 시는 죽어도 싸다고 말씀해주신 황병승 시인이 있겠네요,
자 언니들 이 시를 봐봐요,

음...... 그래도 이건 좀 시 같은가요?
사실 이 황병승씨를 포함한 미래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해요,
이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하기도 해요.
모순적이지만 도전적인 이들의 시에 대해서
사람들은 문장의 완벽성이 떨어지고 모순적일지라도 영감을 주는 비수같은 몇 마디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평론가들은
" >시가 다. 음악을 잃었다. 진지한 고민이 없다. 쓸데없이 길기만 하다" 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어떤 평가든 이들의 시를 '시'라고 평하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언니들.
뭐라구요?
바로
존재의 진리를 열어서 밝히는 언어
를 쓰려고 했다는 겁니다.
언니들 이게 바로 '시'에요.
바로 여기서 시의 독특한 위상을 획득하게 되는 거거든요.
단순하게 읽어서 공감이 간다 혹은 재밌다 좋다 하는 것이 시가 아니라
온전히 말하고자 하는 그 대상이 되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명언이나 좋은 가사를 봐도 그것들을 '시'라고 명명하지 않는거에요.
왜냐? 시가 아니니까!
자, 이제 언니들이 시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란 무엇이라구요 언니들? 네, 존재의 진리를 밝혀서 듣는 언어지요 그쵸?
그러니까, 자 마지막으로 정리해드립니다.
하상욱씨의 글이 시가 아닌 이유는 형식이나 내용이 아니라 시를 쓰는 과정 자체에서의 본질!에 있다는 거
1. 오히려 하상욱씨의 글이 짧다거나 형식성이 없어서 시가 아니라는 말은 웃긴거죠 그렇죠? 시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인거지.
하상욱씨의 글은 일본 정형시중에 하나인 하이쿠의 형식에 가깝다고 위에서 그랬죠 그죠?
두 줄로 우주를 말한다는 일본의 하이쿠를 시라고 인정한다면 역시 그 길이나 형식으로 하상욱씨의 글을 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거지.
2.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란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열어 밝히는 것을 들어 적는,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자 자세라고 그랬죠.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의 글을 시라고 명명할 수 없는 거죠.
그가 쓰는 글귀가 주는 공감의 능력이나 창작의 고통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상욱 본인이 자신을 시인이라 명명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그는 시를 쓰기를 거부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 사람의 글이 문장적으로 완벽성이 떨어진다거나 세대론적인 감수성을 건들이는 소재로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 나는 존재의 본질을 들어내기위한 '시'를 쓰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시인한거죠.
네, 이렇게 하상욱씨의 글이 시가 아닌 이유가 정리가 되겠네요.
그럼 우리 번외로 왜 문인들이 하상욱씨를 싫어하느냐? 아니 좀 껄끄러워 하느냐?
이걸 한 번 알아보도록 해요.
이건 아주 간단합니다.
하상욱씨는 본인이 시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본인이 쓰는 글은 시라고 해요
무슨 소리냐 하면,
시를 쓴다는 그 고통의 과정과 시에게 들이대는 가혹한 잣대로부터는 빗겨서 있으면서,
시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의 위치는 향유하고 있다는 거죠.
사실은 진짜 영리한거죠, 똑똑한거에요.
나는 시인이 아니니까,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시인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평가하지 마세요 하는 거에요.
내가 존재의 진리를 밝혀 듣는다고 안했잖아요, 근데 왜 나한테 그거 못했다고 그래요? 나 시인 아니라니까?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본인이 쓴 글은 시라고 하네요, 나 시팔이라고.
그래서 문인들은 혹은 전공자들은 이사람이 조금 얄밉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 영리한 친구다 생각하는거에요.
그러나 절대! 결코!
뭐야 애니팡으로 시를 써 장난해?
이게 무슨 시야, 뭐 이래? 이런 열폭 으로 그 사람이 쓴 글을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네 이상으로 길고 긴 글을 마치려고 해요
사실 전공수업에서도 하상욱씨에 대한 얘기들이 많은데,
물론 언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문인이나 전공자중에는 하상욱씨의 작품의 완결성을 문제로 들어 이건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가 시인의 자세로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아니다! 라고 한다는 거!
정말로 시가 아니라서 시가 아니라고 하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
만약에 하상욱씨가 본인은 시인이다 나는 시를 쓴다! 라고 했으면
문인들은
뭐야! 너 장난해! 시 라면서 너 이렇게 밖에 못 써?! 더 잘 써봐봐! 이러게 되는거지
왜냐?
본인이 시를 쓴다. 나 시인이에요 라고 한다는 건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히는 고통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진정한 시를 쓰기 위한 자세가 되었다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하상욱씨의 작품을 즐겨 보아요.
그의 글이 시가 아니라고 의미가 없나요?
작품이 아닌가요?
감동이 없나요?
아니잖아요.
다만 그의 글이 시가 아닐뿐, 때로는 웃음을 주고 때로는 눈물을 주는 하나의 작품인걸요!
그럼 저는 제 사랑 김수영 시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할게요 언니들 뿅!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 시인 김수영
++++++++++++++++++++++++++++++++++++++++
언니들 근데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존재의 진리를 밝혀 듣는 것이 시라고 해서
그렇게 쓰여진 시가 전부 좋은 시는 아니라는 거, 아시죠?
왜 쉽게 쓰여진 시가 부끄럽겠어요? 내가 아는거죠, 나 제대로 안듣고 쓴 거.
좋은 시다! 아니다! 의 기준은 또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이걸 또 쓸 기회가 있을까.....
아무튼 존재의 진리를 들어 밝혔냐? 이거는 시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일뿐
좋은 시다! 구린 시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거!
++++++++++++++++++++++++++++++++++++++++++++++++++++ 추가
언니들! 내 글의 목적은 하상욱씨의 글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사람의 글은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문단의 주장이 단순히 감정적이거나 형식적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 근거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나는 하이데거의 시론을 가져왔지만
그 어떤 다른 시론을 가져오고 또 다른 '시'에 대한 정의를 가져와도
이론적으로 하상욱씨의 글이 시가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거에요
물론 시의 고결함을 생각해서도 하상욱씨의 글은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론적으로도! 시라는 장르에 대한 정의로도! 그의 글은 시가 아니다!를 말하고 싶었어요
쩌리에 핫플된 글에 하상욱 씨 글이 시가 아니라는 주장을 오해하는 여시들이 많길래 ㅠㅠ
가슴이 너무 아파서 쓴 글이니까 이 기회에 언니들두 '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옹~
+++++++++++++++++++++++++++++++++++++
그리고 언니들이 그게 왜 시야?
내가 마음으로 이게 시라고 느꼈는데 그럼 시 아니야? 라고 말하는 언니들이 많은데
언니들 '시'는 장르에요! 정의된 형식이고!
물론 이건 하이데거의 시론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론에서는 시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분명한건 그 분들 역시 그만큼 시를 연구한 사람들이라는거!
그래서 왜 그게 시냐고 물어보신다면......왜 H2O는 물이냐고 물어보는 거랑 같은거랍니다 여러분..네...그래요...
시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단에서는 하상욱씨의 글을 시라고 인정하지 않는것입니다!
물론 저의 글은 앞에 밝힌바와 같이 권혁웅씨의 <시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언니들도 분명 있을거에요~
나는 내 글에 언니들이 모두 동의하고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쓴 게 아니라,
바로 근거와! 이론을! 바탕으로
문단에서 하상욱씨의 글을 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형식적 완결성이 부족하다거나, 세대론적 감성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수성을 만족시키기 못하기때문에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쓴거랍니당~
그리고 다시 한 번 이것도 권혁웅씨의 <시론>을 바탕으로 하는 이론중 하나라는 거!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마세영 '시'에 대한 정의는 이게 정답이 아니랍니당
시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자면안돼 여시가 설명을 짱짱으로 해줘서 본문에 추가해쪄염 언니 허락댓글아직 못받았는데...언니 괘...괜찮져???...
흥미 돋돋....전공여시들의 글이 진짜 도움 된당!! 근데 여시야 시론은 매번 변하는데 '존재의 진리를 들어 밝히는게 시'라고 어떻게 몇번이고 단언할수있는거야? 그건 변하지 않아? 하상욱시인이 시를 쓰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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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한거라기 보다는 발전에 가까워! 인식론 존재론 현상학 이런 철학 분야가 시랑 깊은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 왔어. 자아를 인식하고, 내 자아의 존재를 설명하고, 그 설명의 방법을 표현하기 위해 철학과 시학이 발맞춤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시의 기반은 자아야. 그 자아를 말하고 싶은데 언어라는 건 정해진 약속이고 기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여시도 평소에 생각은 거창한데 여시 마음을 말로 잘 설명할 수가 없을 때가 있지? 그걸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시론이 많은 시인들의 시를 수집하고 체계화 해서 한계점을 보완하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이 우주와 세상과 내 마음이라고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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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은 어떻게 하면 내 자아와 우주와 세계를 잘 표출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분야이기도 해. 심지어는 인간의 기억과 시간을 방법론화 한 철학자도 있어(베르그송의 기억론 시간론) 현재는 항상 과거와 연관을 맺고 미래로 흘러가고 있는데(항상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시간은 과학에서 계량화한 절대적 시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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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12시에 만나를 한방에 알아듣는 것처럼)우리 자아와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기억과 시간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이 흘러가는 시간을 어찌 표현할지를 설명한 거라고 볼 수 있어. 이런식으로 더 자세히 내 마음을 뜯어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위해서 시론이 항상 발전한다고 보먄 돼ㅠ 너무 말할 것도 많은데 축약해야하고 이래서 너무 횡설수설해 보일수도 있겠다 미안해 여시야 ㅠㅠ
하상욱시인의 시가 왜 시가 아닌지!
타인의방 여시의 보석같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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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상욱 시가 무슨... 문학적으로 부족해서 혹은 예술적이지 않아서.. 이런 차원이 아니고 걍 시가 아니라서 시가 아니라고 하는거... 시를 쓰고싶은 언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그 세계를 나름대로 구축하면 그건 시야. 근데 하상욱은? 코어만, 소재에 대한 짪은생각과 아이디어만... 그걸 시라고 던지는거야. 거기에 처음이나 끝은 없어. 중심이 있지. 광고카피랑 비슷한 힘을 가졌단것도 여기에 있는거고. 장르 자체가 다른거니 가치가 있니없니 할것도 없는듯. 하상욱이 쓰는 건 시가 아닌, 개인이 가진 능력으로 빛난 '찰나'야. 내가 당장은 찰나로 표현했지만 이걸 정의할수있는 용어가 나오면 하상욱은 그 장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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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가 되고 뭐 그러는거겠지. 시가 위대하다고 하는거 절대 아님. 좋은시이기도 이전에 아예, 시라는 문턱에서 원천봉쇄할 생각 꿈에도 없어. 많은 여시들이 시를 했으면 좋겠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은 시를 쓰는게 아닌 '하는것'이라고 정의하셨거든... 그만큼 개인의 의식과 정신이, 그 속에 온전히 배태된 순수한 의미로의 '몸'이 중요하다는 소리겠지... 시적공간을 책임질수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시를 쓴다,고 생각하면 그건 시야. 그 다음 평단의 평가를 받는 건 본인의 몫이지만 애초에 그것이 시가 아니라고 비난할 사람은 없지. 하상욱은 그 경계를 넘지 않았을뿐이야. 그래서 시가 아니라는거고. 시는 누구나 쓸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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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욱이 시를 쓰지않으며, 또한 그것이 시가 아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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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딸이 성심당에 가서 빵을 많이 사와서 친정엄마한테 좀 드렸는데.th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