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조선 올해 4월 27일자 ‘노무현 패밀리 어떻게 돼가나’라는 기사에서 ‘문재인 전 비서실장, 봉하마을 오가며 여전히 '대외 창구'역’이라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56) 변호사는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해 노 전 대통령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의 입장을 외부에 알리는 언론 창구로도 나서고 있다. 최근 권양숙 여사가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동행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퇴임 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해 왔다. 작년에 재단 ‘봉하’ 설립 사업 등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부산에서 봉하마을 인근의 경남 양산으로 이사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사진)이 “노무현 대통령은 노력하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며 “숱한 좌절을 겪고 낙선했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첫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노무현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다음 노 대통령 퇴임과 함께 야인으로 돌아갔다.
문 이사장은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부장에 대해 “이인규 중수부장은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뉴저지내 주택 구입 사실을 언급한데 대해 "이미 다 나온 내용을 들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느냐 여부인데, 알았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검찰이)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수사 기록은 우리 손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비공개 신청을 했느냐"며 "택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 변호사가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 당시 "예우를 다 했다. 공손하게 잘 모셨다"고 말한 데 대해 "겸손이 뭔지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이 변호사는) 겸손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어제자 그알 노무현 대통령 수사 관련














하지만 봉하와 양산의 이런 소박한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작조차 못했거나 흐지부지된 대통령의 구상들, 봉하에 방문객들이 날로 넘쳐나는 현상, 퇴임 이후 인기가 더 올라가는 기이한 대통령-이런 일들이 하나같이 이명박 정권에게는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이후 시작될 불행한 사태의 전조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이 시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금도 고통스럽다. 온갖 회한이 가슴을 짓누른다. 워낙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일이 많아 한때는 법률적 대응 외에 정치적 대응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정치적 저의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면서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이 귀 기울여 주지 않으리라는 판단과 더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해 오직 인내하면서 철저하게 법률적으로만 대응하려 했다.
문 이사장은 "노 전대통령 서거 당시를 회상하며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 들이었다며 기사는 보수 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며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고 썼다,
“그 자리에서 그런 대화가 있었다는 건 박 회장 말일 뿐이다. 대통령 전화를 받았다는데 통화기록이 없다.”
▼ 박 회장이 약점이 잡혀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했다고 보는가.
“그렇다. 그는 장기간 수사로 압박을 받았다. 딸들까지 소환조사를 당했다. 가정이 풍비박산됐다. 검찰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였다.”
▼ 사건 이후 박 회장 측과 얘기를 나눈 적은 없나.
“없다.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사건이 다 끝나면 모를까. 자신의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으니 우리가 접촉할 수도 없다.”
▼ 뇌물사건에서 유력한 증거가 공여자의 진술이다. (노 전 대통령이 죽지 않았다면) 검찰은 법정에서 그걸 무기로 내세웠을 거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사건들 중에 무죄가 선고된 게 많다. 서로 말이 다를 경우엔 줬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 법정으로 갔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는 건가?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의 자살은 뜻밖이었다. 그 때문에 더 의혹을 산 면도 있고.
“언론에 종사하는 분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그 시절을 마치 잊어버린 것처럼 말하면.”
그가 약간 언성을 높였다.
“당시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했나. 견딜 수 없게 만들지 않았나. 엄청난 모욕을 가하지 않았나. 기정사실화하면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기자님도 그런 선입관에 갇혀 있는 게 아니냐”고 날카롭게 반문했다.

























검찰 조사 20일여일 만에 노대통령의 서거...
"""|작성자 pentatonic
"대통령은 굉장히 강인한 분이다. 법정싸움에서는 자신했다. 그런데 당신 자신의 고통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과 당신을 도왔던 주변사람들이 다 표적이 돼 조사를 받고 기소가 되는 고통을 겪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통이었다. 그런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서거 후 첫 인터뷰
2009.6.1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을 묻자)....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수사 과정이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정말로 세상이 참 싫어졌어요. 세상이 가진 악의들이 무섭구요. 그래서 세상하고 거리를 좀 둬야 되겠다... 오히려 거꾸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님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님 사건을 마지막으로 변호사도 관둬야겠다 했었는데... 어쨌든 이런 일이 또 생겼죠. 하여튼 생각 좀 더 해봐야지요. 어쨌든 지금까지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은... 오히려 세상하고 거리를 좀 두고 싶다... 이런 생각이 더 강한 편이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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