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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9/28) 게시물이에요











 벌레가 되었습니다 | 인스티즈

이선이, 초승달

 

 

 

한 사흘

열기운에 쌔근대는 아이 곁에서

눈뜨지 못하고

뜨거워지기만 하는 그믐 지새웠다

 

내 눈 속에도 조그마한 샘 솟아나

가만히

세상을 비쳐보는

만물의 깊은 눈

트인다






 벌레가 되었습니다 | 인스티즈


강윤후, 서울

 

 

 

나이를 먹는 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열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다

변기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스무 살이 수월하게 멀어진다

 

나는 휴대용 녹음기의 테이프를 갈아끼우고

한껏 볼륨을 올린다

리시버는 내 귀에 깊고

서늘한 동굴을 낸다

 

새떼가 우르르 시간을 거슬러 날아가고

철제 계단을 울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구둣발 소리

아우성처럼 쏟아지는 오색종이를 맞으며

살아갈 날들이

완전군장을 한 채 진군해온다

 

열차가 서울역에 닿으면

서른 살이 매춘부처럼 호객하며

나를 따라 붙으리라





 

 벌레가 되었습니다 | 인스티즈


진은영, 벌레가 되었습니다

 

 

 

내 방이었습니다

구석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천장 끝에서 끝까지

수십 개의 발로 기었습니다

다시 벽을 타고 아래로

바닥을 정신없이 기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문을 찾을 수 없다니

 

밖에선 바퀴벌레의 신음 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것입니다

어머니 내 책상 위에

아버지가 피운 모기향 좀 치우세요

시집 위에 몸 약한 날벌레들

다 떨어지잖아

동생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동생이 소리질렀습니다

여기 또 있어






 벌레가 되었습니다 | 인스티즈


조은, 한 번쯤은 죽음을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

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벌레가 되었습니다 | 인스티즈

이경, 세든 봄

 

 

 

세들어 사는 집에 배꽃이 핀다

빈 손으로 이사와 걸식으로 사는 몸이

꽃만도 눈이 부신데 열매 더욱 무거워라

차오르는 단맛을 누구와 나눠볼까

주인은 어디에서 소식이 끊긴 채

해마다 꽃무더기만 실어보내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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