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세즈윅은 1943년 산타바바라의 코티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았고, 슈퍼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거액의 유산으로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세즈윅은 뉴욕에서 TIME, LIFE, VOUGE의 표지 모델을 장식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65년 레스터 퍼키스의 아파트에서 열린 파티에서 앤디 워홀을 소개받는다.
앤디 워홀&에디 세즈윅
앤디 워홀은 미모와 톡톡 튀는 사고방식을 보여준 세즈윅에게 “슈퍼스타의 꿈을 이뤄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녀는 척 웨인과 함께 앤디 워홀의 작업그룹 ‘더 팩토리’를 만들게 된다. 세즈윅은 더 팩토리에서 앤디 워홀이 제작한 13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앤디워홀의 뮤즈’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미국 대중문화의 패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그녀는 단편 영화 ‘Beauty No.2’를 통해 미국 역사상 최고의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에 버금가는 여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에디 세즈윅
워홀과 늘 함께했던 세즈윅은 은빛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와 파격적인 미니스커트 패션을 선보이면서 화려한 뉴욕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워홀과 세즈윅은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한다.
앤디 워홀의 작업실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앤디 워홀의 곁을 떠나 진정한 배우가 되라고 부추긴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워홀과 세즈윅의 관계가 파경을 맞은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밥 딜런
세즈윅에게 싫증난 워홀이 그녀가 팩토리에서 떠나도록 종용했다는 설과 그녀의 두 번째 연인이었던 밥 딜런이 그녀를 유혹해 팩토리를 떠나게 했다는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어쨌든 세즈윅은 앤디 워홀의 곁을 떠나 밥 딜런과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동거도 오래가지 못했다. 워홀을 통해 밥 딜런이 비밀 결혼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밥 딜런과 헤어진다.
이 모든 사건이 지난 후 세즈윅의 말년은 비참했다. 당시 세즈윅은 이미 마약과 알코올에 중증으로 중독된 상태였다. 이미 거식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력이 있는 세즈윅은 교통사고로 아기를 낙태한 후, 마약과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에디 세즈윅
그곳에서 세즈윅은 20차례 이상의 고문에 가까운 전기치료를 받았지만 끝낸 술과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결국 1971년 그녀는 술에 취한 뒤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다. 사인은 ‘음주 후 약물과다복용에 의한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슈퍼스타를 꿈꾸며 뉴욕으로 향했던 부유한 상속녀에게 술과 마약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 가족과 지인들의 주장대로 앤디 워홀에게 버림 받은 상처를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을 뒤로한 채 그녀는 재활병원에서 만나 결혼한 마이클 브렛 포스트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묘지에 묻혀있다.
영원할것만 같았던 앤디워홀과 에디세즈윅,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그들도 영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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