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이는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학교에 다녀온 뒤, 간식을 먹고, 숙제인지 뭔지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 끄적거리고,
나는 바닥에 누워 그런 호원이의 뒤통수를 마냥 쳐다본다.
그러보니 지금 중학교 다니겠네?
"중딩, 학교 재밌어?"
"응, 재밌지!..근데 계속 중딩중딩하는데 그게 뭐야?"
"아....아냐, 그냥 중학생이라는 거야. 흐하하"
"아-...너는 왜 학교안가?"
"어? 나? 아, 난 사정이 있어서..음...그게.."
"음..대충 알았어."
집요한 이호원의 성격상 치밀하게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고민해서 거짓말을 지어내어 막 해보려는데 내말을 툭, 끊었다.
어물쩡 넘어가는 거 제일 싫어하는 게 웬일이래, 나야 뭐 좋지만…….
괜히 내가 되려 찜찜해진다.
"손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그건 뭐야?"
"아, 이거?"
"어, 별로 예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불편하게시리.."
"어어?!!!!완전 예쁘거든? 완전 멋있고, 어? 그리고 이거는 무려 소원 들어주는 반지거든?!!!!"
"풉,무슨....그 나이 먹고 그러고 싶냐?"
"아니, 진짜야 진짜. 믿을만한 사람이 말해준거야!"
"아, 그걸 어떻게 믿어-"
"확실하다니까!! 야, 너 근데 계속 반말 쓸래?"
"시끄러워, 나 숙제해야 돼."
"아진짜, 이호원아니랄까봐 쏙쏙 빠져나가는 거봐-"
"그럼 내가 이호원이지 누구야, 저리가서 낮잠이나 자-"
"숙제 도와줄까?"
"됐거든요-"
여전히 형 취급 안 해주고 조금은 꺼림칙하다는 듯 보지만 아이답게 호원이는 이틀도 안 되어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도대체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고
나는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평범한척하며 머릿속으로만 골이 빠개지게 고민해야할까 하는 거랑,
어머님도 나를 조카라고 믿는 마당에 왜 호원이만 자기에게는 나 같은 사촌형이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지. 왜, 왜!
"야, 나 연습장이나 공책하나만 찢어줘"
종이에 쓰는 게 낫겠다싶어서 종이 한 장만 달라 그러니 아무 말 없이 죽 찢어준다.
종이를 받아들고, 책꽂이 맨 아래 칸에 있는 학습대백과사전을 들고 방구석으로가 앉았다.
책을 받침삼아 모나미볼펜으로 또박또박, 생각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1012년, 12년 전.
스물여섯, 여기는 열넷.
왜 하필 12년 전일까.
만약진짜 반지 때문이라면 내가 쓴 소원은 여기로 오게 된 거 한번, 의도치 않게 호원이의 사촌형이 되면서 한번, 이제까지 두개.
근데 또 왜 꼭 세 가지야. 막 다섯개,열개씩 들어주면 좀 좋냐.
반지는 또 왜 안 빠지는데, 펜을 놓고 다시 한 번 낑낑대보지만 역시 택도 없다.
분명 딱 맞다 못해 좀 컸는데 말이야.
"뭐해?"
"으악! 어, 어, 아니? 아무것도.."
"낙서해?"
"아,보지마!!! 어...으하하...별거 아냐,"
"내가아니라 니가 더 중딩같은데?"
"하던 거나 마저해, 숙제-"
"치,"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근데 저 중딩은 내가 생각했던 이호원이랑 너무 다르다.
이호원은 꼬맹이일 때도 마냥 무뚝뚝하고 시크할줄 알았지.
그 나이치고는 좀 그런 면이 있지만, 상상도 못했던 해맑음이란.
애니까, 당연한 거지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내 호원이는 어쩌고 있을까.
내 장례는 했을까.
아니, 내가지금 여기 있으니까 그쪽은 내가 사라진 게 되나?
걱정하겠다........아무튼, 조만간에 우리 집도 몰래 가보고....또.....아, 몰라.
역시 난 오래앉아서 생각하고 있을 사람이 못되나보다.
"이호원!!축구하러가자!"
"어? 나, 이거 덜했는데……."
"내가 이따 도와줄게, 해지기전에 가자!!"
어떻게든 되겠지.
/
"나랑 한판 붙자!!!!"
"……."
"반응이 왜 그래, 어서 일어나봐!"
이호원,아니 내가 알던 애말고 꼬맹이중딩 이호원.
나는 걔가 키가 되게 작은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더 쪼그만 게 여기 있네.
더 쪼그만 게 쿵쿵거리며 발을 구르고 있네.
더 쪼그만 게 나한테 소리지르면서 쿵쿵거리며 발을 구르고 있네.
나한테 왜 이러는데 얘는……?
"너, 누군데"
"남우현이라니까 남! 우! 현! 1학년12반 남우현!!"
"12반~? 와-학교 디게 크네, 으하하.."
"아, 당연하지. 누가 세운 학굔데!!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랑 한판 붙자니까?"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이다.
나는 그저 가는 데 없이 집에 있기 민망해서
그저께 나도 모르는 우리 엄마가 보내줬다며 주신 옷을 입고 잠깐 나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원에 앉아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출현한 내가 이 꼬꼬마는 내가 반응도 없이 그냥 쳐다보고만 있은 지가 30분쯤 지났는데도
여전히 짹짹,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다. 너, 나 아니?
이 시대에 흔치않게 수입산 같아 보이는 축구화를 신고,
잘 다려진 교복에 명품로고가 떡하니 박힌 가방을 매고 있는걸 보면 딱 부잣집도련님같은데,
그러면 김기사아저씨 차타고 집에 갈 것이지 아까부터 왜 나한테 한번 붙자말자야,
안 그래도 여기온이후로 긍정마인드가 사라지고 있구만.
............
자, 장동우. 침착해, 침-착-해-
그래도 되게 귀엽잖냐.
눈은 쪼꼬맣게 생겨서 볼살이 아주 알사탕을 한 5개씩 물고 있는 것 같은 게, 키가 작아서 그런지 초딩이라해도 믿겠다.
어우, 그러고 보니 되게 귀엽긴 하다,으하하항.
"당신이 이호원형이라면서!!!"
"어...응????"
"이호원이 계속 자랑했단 말이야!"
"어? 나..?나를? 형이라고?"
당황해서 나를 가리키며 되물으니 고개를 갸우뚱, 하며 아니야? 한다.
아니, 맞긴 한데...걔가 나를 무려 형이라고 했다고? 형?
"우와아...감동이다.."
"그렇지! 우리 형이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인데!"
"어? 어어?"
"그러면, 토요일 4시, 우리중학교운동장이다?"
"야,웬 형? 너랑 붙자며 너랑!"
"나랑 왜, 방금 말했잖아-일대일승부차기!"
무슨 놈의 승부차기. 의문을 가득 담고 쳐다보며 뭐? 그러니까 승부차기!!추꾸!!!!하고 힘차게 외침과 동시에
깜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공을 차는 듯, 앙증맞은 다리를 팍, 뻗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툴툴대며 일어나는 게 어이가 없다.
자기도 부끄럽긴 한지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져서는, 다시 비장하게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니가 이기면 이호원이 형아고, 우리 형이 이기면 내가 형인거야!!!"
"프하-야, 그걸 왜 이런 걸로……."
"몰라,몰라몰라! 토요일에 늦지 말고 와! 늦으면 지는 거야!!"
"아, 야, 잠깐만 어디라고?!"
들리지도 않는 건지 조그만 팔을 휘두르며 또박또박 걸어가 까만 정장입은 여성분의 손을 잡고 타에 올라탄 뒤 사라진다.
진짜 부잣집 애기 맞구나…….
"뭐해?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으왁 깜짝이야, 놀랐잖아-"
"그러니까 진작 때 되면 들어오든가. 엄마가 찾는단 말이야-"
기척도 없이 와서는 팔을 빙빙 돌리면서 먼저 공원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중딩.
진짜 꼭 이호원같은 게 이호원처럼 굴기는.
"중딩-"
"응?"
"중-딩-"
"왜왜-그거 이상해, 그렇게 부르지 좀 마-"
"형, 해봐 형아."
사실 나이는 니가 더 많지만, 이순간만이라도 들어보자.
되게 귀여울 것 같기도 하고-…….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돌아본 호원이에게 해보라는 식으로 빙긋, 웃어 보이니 인상을 팍, 구긴다.
"......안 해."
"아이, 왜~"
참 솔직하게도 금방 정수리까지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
근데 넌 내가 너보다 어린 거 모르잖아..근데 처음부터 왜 계속 반말에, 구박에.....외아들로 자라서 그런가.
"왜왜-형이잖아! 으하하, 빨리해봐-어?"
"아,안해애-……."
"아까 남우현인가 뭔가, 니 친구 만났는데, 그거 내기한 거 진다?"
"남우현 만났어? 아 그거 지면 안 돼!!!!"
"형아 해봐 그러니까-"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 재촉을 하고 따지기도 하고, 회유도 해보고,
그 짧은 호칭하나 듣자고 옆에 붙어 따라가면서 쫑알댔는데,
금지의 한국인, 호원이는 끝까지 내말을 무시했다.
"에이이.....칫"
"형 같지도 않으면서- 어! 민들레다!!"
"응?"
"히히.."
갑자기 신나서 길가의 흙더미 속으로 걸어가더니 민들레줄기를 똑, 꺾어들고 후-불기 시작한다.
이건 또 의외의 모습.
"예쁘다!!"
"음...그럼, 나도 해볼까!"
어디 민들레 없나..고개를 휙휙 돌려 둘러보니 여기저기 참 많이도 피었다.
이거 자 이호원이 씨뿌린거 아냐?
그중에 제일 큰거 하나를 꺾어서 입술 앞에 대고 숨을 모아 부니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리는 민들레홀씨.
하늘에 둥둥 뜬 민들레홀씨를 보며 맑게 웃는 호원이가 꼭 나와 같게 느껴진다.
"나도 더 할래!!!형, 같이해보자! 빨리!"
길가에 있는 민들레 씨가 마르겠는데 아주?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민들레란 민들레는 다 꺾어다가 머리가 핑 돌만큼 후후 불며 뛰었다.
하늘로 멀리 날려올라가는 민들레홀씨가 꼭, 여기 모르는 세상에서도 봄기운에 즐거운 나 같았다.
/
구석지고 꼬불꼬불, 좁은 골목사이로 몇 시간을 헤집고 다녀 겨우 발견한 내 기억 속에만 있던 파란깃발.
흰 줄무늬가 서투르게 칠해진 것으로 보아 내가 알던 것이 맞다.
연회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담과, 연필로 옅게 그려놓은 낙서들. 초록색 대문 위에 잔뜩 핀 장미들.
누가 오지는 않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대문가에서서 까치발을 들고 안을 훔쳐봤다.
아무도 없는 마당에 혼자 대야에 물을 받아 낑낑대며 마루근처로 옮겨오는 아이.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마루 밑에 대야를 가져다놓고는
즐겁게,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토끼가 그려진 신발을 벗고 대야에 발을 담궜다.
몸이 작은 탓에 마루에 앉으니 발이 대야바닥에 닿지 않는지 애써 발을 뻗어보다가 포기하고는 그냥 참방참방, 물장구를 친다.
"...저...우리 집에는 무슨 일이세요?"
"앗, 아...아뇨. 제가 아는 집이 맞나해서, 아닌가보네요 죄송합니다!"
미소를 띠며 내게 물어오는 더 낯익은 얼굴.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제멋대로 뛰는 심장소리에 놀라 두 발짝쯤 물러섰다.
"아-..이 근처는 집이 다 거기서거기라서 찾기 힘드실 거예요. 도와드릴까요?"
"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럼, 잘 찾아가세요―"
"네-감사합니다.."
"동우야, 엄마 왔다-"
"엄마아!!!!!"
철컹, 조용한 소리를 내며 대문이 닫히고 아이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과거로 왔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여기에 어린 나나 살아있는 엄마가 존재한다는 게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냉큼 더 일찍 집을 나와야지, 엄마랑 같이 다 싸들고 나와야지, 하고 밥 먹듯이 생각했는데,
이리로 오는 게 아니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 것을.
병으로 죽든, 목졸려죽든, 집과 함께 불타죽든. 알고 있었다.
근데, 저 행복한 얼굴은 뭔데,
어째서…….
"어머, 동우야, 너 여기서 혼자 뭐하니!"
"어, 이모.."
"곧 비 오려고 하는데, 우산도 없이…….빨리 가자!"
"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아...아뇨, 근데 어디 가신다구요 지금?"
"집, 우리 집-.가자, 아참. 너희 엄마는 여행이 몇 달쯤 더 걸릴 것 같다는 구나.
네 옷이나 용돈은 소현이 시켜서 계속 보내준대, 어휴, 진짜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네,얼른 가자 동우야!"
호원이랑 지내면서 이런 느낌은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나도 참 외로운가보다.
'우리'집이라는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되는걸 보면.
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어, 진짜 비오네요! 빨리 가요 빨리,흐하하.."
괜히 시큰한 눈을 눈으로 문지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빙긋, 웃으시더니 내 손을 잡는 아주머니.
/
"가자, 얼른!"
"네!흐하하....근데 호원이는 어디 갔어요?"
"호원이? 중간고사 공부하고 있을걸?"
"중간고사요?"
"그럼~이주쯤...남았나?"
이호원, 공부한개도 안하고 전교일등 따먹은 것처럼 얘기해놓고는…….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짜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하고 있다.
소심하게 책 밑에 깔아놓은 만화책이란…….
"너 뭐해?"
"으헉,아, 깜짝이야!!"
"뭐냐, 공부한다며."
"하기싫어어-.....오늘 영어해야 되는데……."
"뭐? 영어? 너 영어 좋아하잖아."
"어? 내가 언제……."
"음.......아니면 말고-"
넌 그러면 어떻게 번역가가 된 건데요…….
내가 어쩌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봤는지 발끈해서 공부할거라고 나가란다.
"영어 도와줄까? 나 아는 사람한테 들은 거 많아서 의외로 아는 거 많은데-"
"아이진짜……."
내가 괜히 책을 뒤적거리며 도와줄까? 하고 떠보니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막 밀어서 문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문을 꼭 닫고는 큰소리로 공부할거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 꼬맹이가 자존심은…….
"거기서 안 나올 거야? 축구연습 안 할 거야? 오늘 그거 하기로 했잖아 패스연습-"
문을 똑똑똑, 두드리면서 슬쩍 떠보는데 바로 문이 열리고, 문에 붙어 서서 얼굴을 반쪽만 빼꼼 내민 채로, 오늘 가? 한다.
하지만 난 단호하지.
"아니, 안가지-영어공부 열심히 해"
"아아진짜악!!!!!!!"
"파이팅!흐하하"
오만상,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고 실망한 티를 팍팍내는 모습에
나도 따라 문에 딱 붙어선 채로 이따가 잠깐, 이모 몰래 갔다 오자. 하니까
그게 그렇게 좋은지 씨익-웃으면서 그래!!!!!하고는 책상에 붙어 앉아 진짜 공부를 한다.
저렇게 좋아하면서, 축구는 대체 왜 그만둔 거지, 또 잘 때 혼자 누워 기억을 되살려 봐야하나…….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왔다.
//
안녕하세요~오늘은 낮에뵙네요ㅎㅎㅎㅎㅎㅎㅎ
시험기간이죠?
저도물론...^_^...ㅎㅎㅎㅎ
그래도 맞춰서 열심히쓰고있어요!!!!
아직까지 여유분을 못만들어둔게 함정......ㅋ....ㅋㅋㅋ....
어쨌든,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호원이는 이중인격자가 아닙니다. 조금 타쿠스럽게 표현을하자면, 츤데레예요 츤데레..S2
늘읽어주시는 여러분 감사해요ㅠㅠㅠㅠㅠ....힐링받는느낌입니다. 좋은낮보내세요~
모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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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왜 일본에서 미모 원탑으로 자주 거론되는지 알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