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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의 무리

1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 가만히 있으면, 잔잔한 도성이 느껴지고는 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바다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있질 않았지만 나는 귓전을 파고드는 이것의 소리가 파도이리라고 막연히 확신했다. 이것 말고는 들리는 게 얼마 없으므로, 나는 가끔이라고 할 수도 없는 가끔에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하얀 갈매기 몇 쌍을 떠올렸다. 화창한 날씨에 짙푸른 바다 위를 날렵하게 부유하는 그 작고 순결한 몸집을. 그러면 또 가끔이라고 할 수도 없는 가끔씩, 갈매기가 우는 소리가 도뢰에 휩쓸려 아주 작게 들리고는 했다. 이걸 사람들한테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마, 의사라면, 또 온갖 해괴한 의학적 용어를 갖다 붙여 내게 새로운 병명을 추가할 것이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 누구의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다. 사실, 아주 듣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겐 그 청력의 범주가 너무나도 좁아서, 모두가 내가 귀를 잃었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도 그렇게 맹신하고 있다. 나는 아주 미약하게만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상대가 고함을 내질러야만 내게 겨우 희미하게나마 전달될 수 있는 정도다. 이게 내 장애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나를 상대하고자 하려면 반드시 보통 사람보다는 두 배의 힘이 소비된다는 것.
  그런데 김동혁은 그 두 배의 소모적인 일을 이 년 동안이나 반복했다. 더 놀라운 점은, 그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인천에서 다녔던 농아들이 모인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려야 했다. 그런데, 김동혁은,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내 신념을 차근히 깨뜨려버렸다.
  내 기억에 김동혁은 아마 중학교 내내 반장이었다. 그리고 그 때도 김동혁은 우리 반의 반장을 맡고 있었다. 중학교 일 학년에서 이 학년으로, 열 넷에서 열 다섯이 되던 해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김동혁은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나와 같은 짝이 되거나, 도시락을 싸와서 나와 같이 밥을 먹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단순히 한 반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막막한 의무감 때문이었더라면, 나는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시 인천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눈은 달랐다. 그 눈은 그렇게 간결한 감정을 섞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걸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김동혁은 짧다고 의미될 수 없는 시간 동안 나를 어떤 감정으로 돌봐줬고 나는 그걸 한낱 동정으로만 착각했다. 나한테 김동혁은 내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믿을 수 있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일부러 김동혁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여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고, 김동혁은 이런 나를 별 대꾸 없이 친절하게 보살폈다. 이건 나 자신조차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했다. 그렇게 여겼다.
  이 학년이 됐다. 작년과는 다르게 우리는 같은 반이 됐고 붙어있는 시간은 전과 빗댈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김동혁은 나한테 새 친구를 사귀라고 했지만 나는 그건 아직 어렵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김동혁은 익숙한 표정으로 내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라는 뜻이었다. 김동혁의 눈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언제나 따뜻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를 볼 때는 늘 진심이 갸륵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게 좋아서 일부러 김동혁의 눈을 빤히 바라볼 때가 있었다.

 


  -학생회 모임이 있대. 오늘은 같이 못 갈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적혀있는 김동혁의 글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래 전부터 많이 다듬어진 것만 같은 노련한 서체였다. 고등학교 이 학년 일 학기가 시작되고 몇 주, 창 밖으로는 때 늦은 봄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가 쪽지에서 시선을 돌려 김동혁을 쳐다봤을 땐 김동혁은 생각이 많은 눈으로 그걸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러면 김동혁이 여길 바라봐줄 것 같아서.
  예상처럼 김동혁은 바로 나를 쳐다봤다. 우중충한 하늘은 교실의 채광마저 흐리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래선지 김동혁의 표정이 평소보다 미묘하게 다르게 보였다. 미안한 것 같기도, 어딘가가 불편한 것 같기도 한 그 표정은 유별나게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속삭였다. 그게 과연 김동혁한테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항상 미지수였지만, 김동혁은 언제나처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배운 건 태어나서부터 계속. 귀를 잃어버린 건 초등학생 저학년 무렵.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는 평생을 약 구 년 정도의 어휘력으로만 보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에도 김동혁은 항상 그 서툴고 어눌할 발음을 용케도 알아들었다. 내가 말하는 건 아주 가끔이고 그 상대들은 항상 소수였다. 그리고 김동혁은, 늘 그 모든 것의 중심지였다.
  이제 곧 담임이 종례를 하러 교실로 올 것이었다. 나는 내 책상 앞에서 할 것 없이 서 있기만 하는 김동혁을 쳐다봤다. 그는 갑자기 내 책상 위에 놓인 필통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더니, 내가 쥐고 있던 쪽지를 앗아가 다시 한 번 무언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하나 둘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지 않고 있는 건 반장, 김동혁이 전부였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김동혁의 팔뚝을 잡았다. 김동혁은 만족스러운 얼굴, 그래도 걱정이 담겨있는 얼굴로 내 이마에 쪽지를 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창문이 붙어있는 왼쪽 벽의 가장 첫 줄. 창문을 열면 몰아치는 햇살 덕분에 교실에서 가장 밝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눈이 마주치는 곳이기도 했다.
  살며시 이마에 붙은 쪽지를 떼어냈다.

 


  -학생회 모임이 있대. 오늘은 같이 못 갈 것 같아.
  -비 와서 추우니까 곧장 집으로 가.

 


  퍽 다정스러운 챙김에 나도 모를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김동혁은 곧장 학생회실로 가지 않고 나를 본관까지 데려다줬다.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멀리서 김동혁이 손을 흔든다. 나도 그 손을 따라 인사를 건넨다. 차게 쏟아지는 빗물이 얼굴을 튕기고 사라졌다. 뺨에 묻은 빗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무심코 뒤를 돌자 김동혁은 아직도 본관 입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에 얼룩진 운동장을 반 쯤 걸어 나왔을 적이었다.
  비가 내는 소리가 어떤 느낌이었더라?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시에선 비가 그대를 닮았다고 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때가 없었다고 했다. 비가 오는 것처럼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시인은 비가 내리는 소리에도 영영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었다. 그렇게 비에도, 그토록 감정을 적시게 하는 소리의 힘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그런 소리의 힘은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집으로, 한참을 걷다가 무심코 하늘을 쳐다봤다. 어두웠던 김동혁의 표정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맑았던 어제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흐린 오늘의 날씨를 보고 있자니 끝도 없이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축축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자 낯설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나보다 키가 컸다. 어쩌면 김동혁보다도, 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내 바로 앞으로 검은 승용차 하나가 맹렬히 지나갔다. 어느 틈엔가 나는 횡단보도 안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비를 맞고 있었다. 승용차가 지나가면서 튀긴 빗방울이 교복 치마에 튀었다. 그 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표정이 그랬다. 세심하게 찢어진 눈이 잔뜩 화로 뒤덮여 있었다. 간혹 호흡이 당기는지 부족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서 그 애는 내 손을 비틀어 잡고 나를 인도 위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서서 그 애의 입술을 쳐다봤다. 입술의 모양이 딱딱한 게 아무래도 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더 집중해서 그 애의 입술을 쳐다봤다.
  미.
  쳤.
  냐.
  너.
  지.
  금.
  죽.
  을.
  뻔.
  했.
  어.
  그 애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각이 났다. 같은 반이었다. 항상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는.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결석을 하는. 그 애였다.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애는 나한테 몇 번 더 화를 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비는 전보다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푹 젖어버린 그 애의 머리칼이 안쓰러웠다. 그 애의 교복 또한 거슬렸다. 속이 그대로 보일 정도인 그 애의 셔츠는 대체 얼마나 많은 비를 맞았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 애가 다시 짜증이 섞인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는데, 왜인지 김동혁이 떠올랐다. 김동혁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산을 내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그 애는 뒤를 돌아버렸다.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나는 방금 그 애의 그것이 동정일지 단순한 호의일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정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내 귀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그런 표정으로 굳이 목소리를 써서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그 애에 대한 생각도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이름이,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일 학교에 가서 그 애의 이름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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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신 두 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문에서 나온 시의 구체적인 뜻은 유하 님의 '비가'에서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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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분위기 너무 좋아요ㅠ 저도 모르게 한 글자 한 글자 다 열심히 읽었네요
다음 화 기다릴게요! ♥

9년 전
비회원200.86
와...진짜 좋다..그러면 그 여주..?는 말도 잘못하는 거네요?허류ㅠㅠ안타깝다..진짜 되게 집중해서 읽게되는것같이요 지난편도 그렇고 정말 좋아요ㅎㅎ 작가님 짱!ㅋㅋ[손가락 근육]으로 암호닉 신청하고 싶습니다!!작가님의 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ㅋㅋ그럼 이만!!
9년 전
독자2
작가님..이런 글 진짜 취향저격..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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