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09
"아깝네. 정맥을 찌를 수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동의 목소리와는 너무 반대돼서 당황했다.
정맥을 찌른다니....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다.
"뭐야?! 동동 아니잖아?! 누구야?!"
"동동 그자식을 영- 믿을 수가 없네. 무능력한 놈 같으니라고.
나같으면 그 7일이란 시간동안 말야, 세명은 죽였을 거라고."
"동동!! 어딨어 동동!!"
"그자식 이름도 부를 줄 아네? 많이 친한가봐?
근데, 이젠 그러면 안 되지. 넌 사냥감이잖아."
낯선 난쟁이가 바늘을 쓱- 들어보였다.
바늘을 잡은 손모양과 자세가 꽤 능숙해보인다.
가늘은 쇳대가 달빛에 비쳐 차갑게 빛났다.
목의 상처가 점점 더 따끔거려왔다.
그때, 책상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동동이 제 보틀 뒤에 숨어 보틀을 끌어안고 울고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모양새가 어둠 속에서도 다 느껴진다.
"그러지마 주네야... 제발..."
"너 임마, 첫임무를 이따구로 망쳐?
넌 짜져있어. 내가 할테니."
"안돼, 그러지마 제발... 흐윽-
주네야 부탁이야... 우리 집주인은 안돼..."
난쟁이는 눈 깜짝할 새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내가 시선을 따라가기도 전에 내 뒷목 언저리를 할퀴었다.
대처를 할 새도 없이 뒷목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어떤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방을 밝히기 위해 형광등 스위치로 향했으나
발걸음을 할 수가 없었다.
저리 버티고 서있는데 어떻게 걸음한단 말인가.
바늘을 8자로 휘두르며 손장난을 치는 모습이 퍽 여유롭다.
"그렇게 얼음- 하고 있어도 되나?
내가 이렇게 공격하면 어쩌려고!"
"주네야, 제발 하지마!"
난쟁이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놀랄 새도 없다.
나는 급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슬픔과 공포와 짜증이 뒤섞인다.
집어던지는 데에는 보틀 뚜껑이 손맛이 좋은데.
나는 책상 위의 보틀 뚜껑을 얼른 집어들어
낯선 난쟁이를 향해 패대기쳤다.
분명 뚜껑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만 할 뿐, 애가 기절을 안 한다.
그때 느꼈다. 아, 얘는 동동하고는 차원이 다르구나.
평균 미달인 동동의 모습만 보고 안일했던 내가 바보였다.
다른 요괴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말을 계속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낯선 난쟁이가 뚜껑을 맞고 넘어진 틈을 타서
나는 재빨리 내 방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불안정한 호흡과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갔다.
원래는 두 손 모두 목을 감싸고 있었으나,
계단에서 넘어질까 걱정되어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았다.
"왜 도망가고 지랄. 귀찮아지게."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계단을 완전히 내려온 나는 두 손으로 목의 상처를 감싸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
호흡이 가빠지고 극도의 긴장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달리는 것도 아닌데 헉헉거리는 숨소리로
왼쪽의 주방 형광등을 간신히 켰다.
이제 막 계단을 내려온 난쟁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목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손을 떼어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점점이 묻은 붉은 선혈이 보였다.
그 핏자국을 보자마자 온몸이 싸아- 하며 식는 듯 하다.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저리 꺼져!!!"
쨍그랑-
나는 납작한 접시를 난쟁이에게 집어던졌다.
사실 옆에 있는 걸 무작위로 잡아챘는데 접시가 당첨된 거다.
던져진 접시가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깨졌다.
그와 동시에 엄마 아빠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과다출혈은 말이 안 되고,
아마도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극도의 긴장 때문일까.
마치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호흡이 어려워졌다.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도 나는 접시가 깨진 자리를 봤다.
난쟁이는 흔적조차 전혀 없었다. 그것마저도 피해버린 것일까.
그럼 나 이제 죽나?
엄마 아빠가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나는 다시 목의 상처를 감싸며 털썩- 주저앉았다.
동동이 흐느끼던 모습을 떠올리는 걸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