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암호닉 *
암호닉은 언제든지 신청가능하며, 최신글에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호닉을 참 제가 좋아하는데요...<3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암호닉은 매번 댓글로만 적어주시면 그 다음편에 올려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댓글에 일일히 답글 못드려서 죄송해요... 항상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덕분에 작가는 힘이납니다.
브금은 필수인거 아시죠?
후은
주네야
구릴라
지나니
닭다리
찌푸
기맘빈과김밥
보리차
쿠쿠
분홍양말
꽁냥꽁냥
뜟
밤비
파랑짹짹이
콩듀
뿌요
bobb_y
뿌리부터햫기가동동나네
비니비니한비니
슬리데린
갓빈워더
우현동자
조으디
눈이, 아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따갑다.
3구의 시체가 깔려있는, 서늘한 공기가 감싸도는 이 숲 속에서 나 홀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
그리고 적막한 밤, 여기저기서 들리는 나무들의 속삭임에 눈은 오롯이 허공을 응시했다.
손승완도 망설임없이 떠나버렸다. 낮에 죽여버린 이홍빈의 최후와 초아, 김기범이 당한 살인에 마음한켠이 들끓었던 그 시간에.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이였던걸까 하고 죄책감을 느껴보기도 했고, 애써 침착하게 자기위로를 하며 토닥이기도 했다.
뻑뻑해진 눈가를 쓸어내리고 목을 죄여오는 것같은 공기들의 달라붙음은 12구역만큼 친숙하지가 않았다.
가방을 여는 과정에서 또 다시 따끔거리는 느낌에 인상을 자동으로 찌푸리고 손바닥을 쳐다봤다.
달빛이 들어오는 덕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손바닥은 흉물스럽게도, 민망하게도 상처가 더럽게 나있었다.
하나하나 긁혀있는 자국들과 피딱지가 얹혀져있는 두 개의 손,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주는 동안 다시 피가 나는듯한 느낌을.
누구라도 내 손을 보고 연속적으로 찔러댄다면 짧은순간 벌어질것만 같아 주먹을 움켜쥐었다.
김지원도, 김한빈도. 김진환도, 김동혁도. 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밤은 어두워져만 가는데 내 정신은 피곤할만큼 육체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프다라는 느낌은 언제든지 생각해도 낯설다.
순간 웅장한음악이 다시한번 들렸다. 게임장 전체를 뒤흔든 음악에 멍하니 있던 나는 깜짝 놀라서 풀어져있던 자세를 고쳤다.
이어 하늘에 뜨는 참가자들의 얼굴들. 구역들의 숫자가 참가자들 얼굴 옆에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었고, 참가자들의 얼굴들은 모두 무표정이였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얼굴로 날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화면 안의 참가자들은 누구도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첫 번째, 1구역의 배주현.
3초 가량 나와 눈을 맞추다가 사라져버렸고, 이어 나온 2구역의 김기범.
김기범- 김기범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순식간에 나무로 바싹 등을 붙혔다.
덜덜 떨리는 두 입술 사이에서는 아..아아.. 라는 뭣도모를 신음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참 잔인하게도 추모한다는 말도, 애도한다는 말 따위는 없이 묵묵하게 얼굴만 보여줄 셈이였다.
3구역의 김남준, 4구역의 이혜리.
...이혜리. 내가 처음으로 총을 쐈던 상대였는데, 어느새 죽은자로 올라가있었다.
총구를 들이밀었던 그 순간 내가 도망쳤고, 그 틈에 그녀는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것같았다.
착잡한 마음이 물씬 풍겨져 나와서 애꿎은 총 ㅡ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ㅡ 을 부여잡았다.
김남준은 몸 자체가 터져나갔고 형체가 알아볼수도 없게 죽은 사람이라 다시 그 피냄새가 올라오는 느낌이였다.
헛구역질을 할 뻔했지만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골랐다. 빨라져오는 심장박동소리에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5구역의 박수영, 6구역의 전정국.
7구역의 이홍빈, 초아.
8구역의 최진리.
9구역의 현아.
10구역의 김성규.
그리고 화면에는 다시 죽은 11명을 한꺼번에 보여주고서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첫 날의 결과였다. 자잘한 전투와 신경전 덕분에 11명은 한순간에 골로 가버렸고, 다시 되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 가버렸다.
김한빈과 김지원이 뜨지않는 걸 보아하니 살아남은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족했다. 살아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우리 꼭 이기자. 김지원의 마지막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고, 나는 아닌 줄 알면서도 고개를 틀어 옆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뭘 기대했던걸까. 한참동안 김지원의 얼굴과 김한빈의 얼굴을 더듬다가 공기의 습격에 몸을 떨고 가방을 꺼내들었다.
부우욱- 하는 지퍼 소리와함께 열리는 가방 속. 오면서 대충 확인한 물품들은 당연히 들어있었고, 좀더 자세히 살폈다.
짧은 칼 한 개가 들어있는 것 빼고는 뭐든 특별하지 않았다.
입가를 훔쳐 그저 닦아내고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아껴두는 것이 좋겠다.
식량... 식량은 아직 먹지않아야겠다. 정말 배고파 미칠때 야금야금 먹어둬야겠다.
두툼한 담요 빼고 나머지는 다시 가방안에 집어넣었다. 짧은 칼은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서 잠시 당황했으나 수트 안쪽에 집어넣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렸으나 신경쓰지 않을 만큼의 데시벨이라 가방을 등 뒤에 두고 내 몸에 담요를 덮었다.
김한빈.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트레이닝 때 까진 손바닥을 보고 주던 연고, 그리고 직접 발라준 그의 배려.
끝까지 잘 바르고 다니라는 그의 말과 상황이 생각나서 담요를 꾸욱 잡았다.
지금 이렇게 추운데 너는 자고있을까, 눈 뜨고 나처럼 달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남몰래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정신을 잃고 있을까.
눈가에는 알지못할 아련함이 가득 담겨 달을 응시했다.
우리 구역에서는 달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내려져오고 있다.
우습고 유치하다. 어렸을 때는 정말이라고 믿었던 로맨틱하고도, 가식적인 전설이야기를 나는 어린마음에 믿었다.
엄마와 아빠 품에서 종대와나는 잔뜩 몰입해서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었던 어린 이야기.
순수한 마음에 나는 전설을 믿고 달을 동경했으며 밝은 해를 좋아했던 종대와 달리 나는 어두침침한 달을 좋아해서 자주 윤형이와 거닐곤 했다.
이후에 윤형이에게 말해주니, 윤형이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머쓱해하던 나를 안아줬었다.
옛날 옛적에, 달과 결혼을 약속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밤마다 달에게 사랑을 속삭였고, 달은 일을 거듭할수록 소년의 고백에 부응하여 더욱 밝은 빛을 뽐냈다.
달은 소년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눈부시도록 광채를 발휘했다. 소년은 달의 그런점이 마음에 들어서 열정적이게 재 대답을 했다.
가끔 달과 멀어지는 날에는 잔뜩 슬퍼하며 어서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달이 나타나는 날에는 소년은 뛸듯이 기뻐하며 수줍은 키스를 날렸고, 달은 행복했다.
하지만 소년은 성장하는 과정 중 크게 다쳐 몇 주동안 정신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고, 달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소년이 나타나지않았고 아픈 모습에 더욱 가슴이 미어져갔다. 달은 하루빨리 소년이 병상에서 일어나길 기도했다.
그러기를 몇 주 뒤, 소년은 거짓말같이 정신을 차렸다. 달은 이제 소년이 자신을 찾아올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소년은 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않았다. 오히려 달을 본척만척 하고 옆 마을의 소녀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달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미어졌지만 소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소년은 정말로 더이상 달을 찾아오지 않았고,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으며, 키스도 날리지않았고,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보기만했다.
달은 소년의 행동에 다시한번 깊은 상처를 받았고 하늘이 태양을 불러 대지를 비추게 할 시간에 남몰래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그러던 중 소년과 소녀의 결혼식이 올려졌고, 그 모습을 지켜본 태양은 뒤늦게 달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달은 태양의 소식에 크게 상심하여 몇일간 나타나지않았다. 서로 사랑하던 시간은 이제 없어졌기 때문이였다.
몇 일 뒤, 다시 나타난 달은 영롱하게 빛을 발했다. 달을 숭배하던 그 마을 사람들은 안도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달은 웃었다.
소년의 모습을 보며.
누구나 화가 나고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달의 이상한 행동에 달의 친구 태양은 물었다.
달아, 너는 왜 소년에게 화를 내지않는거야?
태양의 질문에 달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건말이지.
내가 소년을 너무 사랑해서, 저런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태양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물었다.
너희는 약속도 했잖아. 그런데도... 너는 소년을 이해할 수 있어?
달은 태양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아파. 가슴이... 하지만, 저 아이는 나 보다 저 소년을 좋아하고 있잖아. 내가 진정으로 소년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이해해줘야 해.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야. 달은 쓰게 웃으며 행복한 소년의 가정을 바라보았다.
얘야, 잘 살고있구나.
나와 사랑을 속삭이던 시간보다 너의 그녀와 지내는 시간이 더 행복해 보여서 나는 안심이 되고있어.
아이가 곧 태어나겠지? 그럼 나한테 다시 와서 얘기해줄래.
구구절절,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께. 이젠 너와 사랑을 속삭이지 못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할터이니.
사랑한다, 얘야.
엄마, 왜 달은 소년을 용서한거야?
내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엄마는 고민을 하더니,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달은, 소년을 너무나 사랑했단다.
사랑했기 때문에자신이 다쳐도 그 사람을 위해서 모든걸 희생했어.
이런 사랑은 흔치않단다, 얘야. 사랑 속에는 이기심이 존재하는데 달은 소년을 위해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줬어.
달은 소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란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요, 김진환."
동혁은 진환에게 간곡히 부탁한다며 입을 열었다.
진환은 동혁의 행동에 눈을 갸늘게 뜨고 필터를 빨았다. 동혁은 화면을 가르키며 손을 덜덜 떨었다.
화면 속을 보세요. 쟤가 지금, 사람 죽였다고 저렇게 공황장애를 앓고있는 중이잖아요.
정신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는거 너도 알지않아?
김진환의 냉정한 대답에 동혁은 잠시 멈칫하고는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멘토."
"..."
"이 단어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난, 저 아이에게 김동혁일 뿐이니까."
"..."
"나보다 저 아이를 오래알아온건 알고있어요. 멘토라는 명성하에 저 아이를 지지해야 하잖습니까."
동혁의 말에 진환은 눈썹을 찌푸렸다.
손이 모두 까졌어요. 피떡이 되버렸고, 아침이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게 변해있을지 몰라요.
동혁의 덧붙인 말에 진환은 조용히 담배를 입에서 빼냈다.
뿌옇게 변한 입가 속의 연기는 하늘하늘 공기중에서 춤을 추며 사라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있지만, 김진환의 동공은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동혁은 진환과 눈을 맞춘채 주먹을 꽉 쥐었다.
김진환... 나는 저 아이에게 김동혁일 뿐이라는 말이 무슨 의민지 아세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
"나는, 저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나는 성공했기 때문에."
"..."
"하지만 내가 실패 한건 딱 한 가지예요."
내가 유일하게 저 아이 곁을 지키고있었을 때 망설였던 것.
그게 지금 너무나 후회되고, 아무리 돈지랄을 해도 얻을 수 없는 유일한 '마음'으로써 나는 실패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나였지만 나는 내 본 목적을 이루지못해서 나는, 머저리라고요.
김진환은 동혁의 처음듣는 이야기에 담배를 다시 물고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지금 이렇게 빌게요, 김진환. 제발 저 아이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김진환은 동혁의 말에 담배를 빠르게 지져끄고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동혁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한번 최후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난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뭘 말이지?"
그제서야 말을 꺼내는 진환의 태도에 동혁은 탁자를 엎어버리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말을 잇지 않는 동혁의 태도에 진환은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사납게 돌변한 얼굴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화를 겨우 참으며 그는 마저 말을 꺼냈다.
"오래 알아온 것도, 그리고."
"..."
"...나보다 저 아이에 대한 생각이 깊다는 것을."
"...허,"
"나는, 알고 있었어요."
그 아이는 그럴 수 밖에없어요.
모두의 존재 이유가 될 아이니까.
김진환은 동혁의 말에 미세하게 표정을 풀었다. 담배필터는 고꾸라진 채 형체가 분산되었다.
숨기려고 했는데. 진환의 표정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으나 싸늘하게 대답했다.
내가 가장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해주겠어.
김진환의 말에도 동혁은 곧바로 표정을 환하게 풀며 고맙다고 연속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보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부럽다라는생각이 들었다. 멘토로써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지않았다.
김동혁은 반대로 자신이 표출해내고 싶은감정은 모조리다 표출할 수 있었기에 조금은, 조금은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싶지않아.
아직... 아니, 평생.
김진환은 이 감정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정이라고 일부러 치부하고, 굳게 믿었다. 아니,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입술이 바르르 떨려왔다.
비교적 따스한 바람이 내 콧등을 지나쳐가서, 나는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아침이 밝아왔다. 푸르딩딩한 느낌은 물씬 배겨있는 것 빼고는 밝아진 것은 아침임을 내포했다.
갈증에 물을 다시 한모금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었다. 나무에 걸터앉아 하룻밤을 지낸 것치고는 괜찮은 결과였다.
저기 멀리서 뭔가가 둥둥 떠오길래 곧바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투욱, 하고 나무에 걸린 무언가는 작은 낙하산 형태로 되있는 봉쇄된 원형 통이였다.
까치발을 들어서 겨우 꺼내고 힘겹게 열었다.
힘없이 열리는 뚜껑 안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와 약간 작은 형태의 마카롱처럼 생긴 통이 들어있었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종이를 눈앞에 들었다.
빳빳한 종이에 고급스러운 문체로 적혀있는 문구, 그리고 마카롱처럼 생긴 통을 급하게 여니 화악 풍겨져나오는 약냄새.
옅은 꿀 색을 띄고있는 약은 어렴풋한 향기를 감고있었다.
'그렇게 다치지마라. 정말 꼴사나워서 원.'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스폰서들 중 한명이 보낸 듯했다.
동혁아, 정말 구한거야?
이걸 분명 동혁이와 김진환이 보고 있을걸 알기에 주위를 두리번 거려서 아무곳이나 시선을 뒀다.
그리고 일부러 잘 보이는 각도로 통을 들어 듬뿍 발랐다.
번들거리는 손바닥은 순식간에 상처를 빨아먹었고, 그 과정이 너무나 신기해서 계속 들여다 보고있었다.
스폰서 구할때까지 기다려달라던 김동혁의 목소리.
예민하게 곤두세웠던 내 손바닥은 점차 원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담요를 곱게 접고 가방을 툭툭 친 뒤 조심스럽게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어제 3구의 시신들로 차있을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핏자국이 남아있는 것 빼고는. 나는 꼴보기가 싫어서 칼로 마구 잘라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말끔한 기운이 돌지않았다.
눈이 자꾸 따가운것도 있었고, 덕분에 비틀거리면서 나무를 잡고 속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이대론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한발 두발 씩 나아가면서 다시한번 김지원과 김한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포소리가 오늘은 들려오더라도 밤에 뜨는 화면에 그 둘이 없길 바랬다.
철컥 거리는 총 소리에 내가 더 깜짝놀랬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중앙지로 향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지는 여기서 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법했으니 빠르게 갈 수록 이득이였다.
하지만 나는 얼마못가 헉헉대며 숨을 골라내지 못했다.
정신이 피곤하면 육체도 피곤해지는 타입인 나는, 얼마 못가서 몸이 저절로 내려앉았다.
털썩 거리는 소리와함께 주저앉은 내 두 무릎.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나무 줄기들에 엉금엉금 겨우 기어가 몸을 기댔다.
세상이 팽글팽글- 도는 것 같다.
근데 왜 자꾸 엄마가 해주던 달 이야기가 떠오르는거지.
김지원의 보라색 비니 보고싶다.
김한빈이 발라주던 약이 이런 약인가 싶어.
종대야, 보고싶다아. 이런 누나 보고있냐.
기억도 나지않는 윤형이의 목소리가 선명해질까 싶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럼 안돼는데.
정신을 놓고있으면... 질텐데.
그리고 6발밖에 남지않은 총알탄으로 몇일을 세기는 무리고.
중앙지로 돌아가서 챙겨와야한다는 답밖에 내리지 못했다.
중간에 부득이하게 싸움이 벌어져도 김한빈한테 배운 기술들을 동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김한빈, 김지원.
잊고있었는데 둘다 서로 죽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급한 성격인데, 특히 김지원은.
끝도없는 생각과 망상, 추억, 그리고 걱정에 정말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꼬리를 간신히 들었다.
이걸 보면 윤형이가 뭐라고 할까?
꼴 사납다고, 정신차리라고 할텐데.
종대는 뭐라고 생각할까, 우리 누나 힘내라고 할까.
동혁이도, 김진환도 갑자기 유난히 떠오르는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책이야.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킬려고 했으나 바로 주저앉았다.
정말 안돼겠다 싶었다. 힘이 안들어가지고, 속도 약간 메슥한게- 조금은 기분이 나빴다.
하는 수 없이 꼼짝없이 또 앉아야만했다. 혹시나해서 비상식량을 약간 까서 야금야금 먹었다.
물은 한 모금씩만. 나는 다시끔 차가워져 오는 공기를 느끼며 수트를 매만졌다.
다른 구역 아이들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걸까?
13명밖에 남지 않은 이틀 째날, 모두들 비교적 신경을 더욱 곤두세울 것이다.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무 뒤에서들려왔다.
먹고있던 자세를 그대로 멈추고 혹여나 소리를 낼까봐 천천히 식량을 내려놓았다.
불규칙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무로 몸을 바싹 기댔다.
찰캉, 찰캉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을 신발로 밟는 특유의 소리가 퍼져나갔다.
발자국 소리와 강도를 추적해본 결과 남자 참가자고, 칼을 쓴댔으니까 손승완은 아니고.
남자참가자 중에서 활을 쏜다는 애는 없었고, 김지원은 그래도 여기까지 올 애가 아니였다.
누구지.
"...거기 누구야."
남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