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현남친 사이 06 삐잉 시점 혹시라도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조금 빠른 걸음으로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카페 앞에 도착하니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에 심호흡도 몇 번 하고, 유리문을 거울 삼아 얼굴도 비추어 봤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역시 김한빈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나와 헤어진 뒤 크게 상심이라도 한 건지 꽤나 수척해져 있었다. 걸쳐 입은 헐렁한 후드집업 안으로 앙상한 팔뚝이 보이는 듯 했다. 멀리서부터 나를 쳐다보는 김한빈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곤 김한빈이 앉아있는 2인용 테이블로 걸어갔다. 패브릭 소재의 쇼파에 털썩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놨다. 그리곤 김한빈과 눈을 마주했다. 헤어진 주제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퍽 다정했다. 전과 같은 눈을 굳이 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 김한빈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한참동안이나 입술을 오물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리지 않는 김한빈의 목소리에 지루함을 느끼곤 주위를 둘러보려 고개를 돌렸는데, 구준회? 캐주얼한 차림으로 느릿느릿 걷는 저 남자는 구준회였다. 틀림없이. 아 좆됐다. 구준회가 카페에 남자와 단 둘이 앉아있는 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제발 옆을 돌아보지 말고 온리 직진만 해주라. 제발.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에 잠시 심장이 멈춘 듯 했다. 아 잠깐, 설마 구준회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여야만 돼.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아주 살짝만 틀고 문 쪽을 쳐다보는데. "누나 거기서 뭐해요." 준회야 안녕. 준회 시점 김동혁의 부름에 나간 가로수길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좀 보자며 날 부르는 김동혁에게 오늘은 놀 기분이 아니라며 극구사양 했지만 술을 사준다며 날 유혹했다. 똑똑한 놈. 별 수 없는 척 하곤 재빨리 아무 옷이나 집어 입곤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로수길에 도착했다. 햇살이 따스한 게 몸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할 겸,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딱, 틀었는데. 내 눈에 보인 게 뭐였냐면. 아마 나의 사랑스러운 그녀와 마주 앉은 남자였다. 그것도 단 둘이. 나는 거의 눈이 반 쯤 돌아가 내 의지가 아닌 본능으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목에 담이라도 걸린 것 처럼 앞만 보고 있다가 슬쩍 고개를 내 쪽으로 향했다. "누나 거기서 뭐해요." "준회야 안녕." "인사 말구요. 지금 뭐하냐구요. 남자랑 단 둘이." 내 말에 당황한건지 아님 할 말이 없는건지 그녀는 머리만 긁적였다. 그녀의 앞에 앉아있던 남자도 내 쪽을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확신을 했다. 아마 그녀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 나를 올려다 보는 그 눈에 순간 무장해제를 당할 뻔 했지만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억울한지 눈썹을 휘며 내게 뭐라고 말을 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그런 말을 해요? 물어보니 그녀가 어? 하며 답지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또 한번 무장해제를 당할 위기에 놓였다. 올라가는 광대를 티 안나게 내리고 있는데, "삐잉아." 그녀의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삐잉아? 성 떼고 이름 부르는 거 보면 아는 사인가? 그녀의 시선이 다시 그 남자에게로 향하고, 그녀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생각 많이 해봤어. 이제 와서 말하는 거 웃긴 것도 알아. 근데, 음..솔직히 말하면 너랑 헤어진 거 아직도 납득이 안 돼.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구차해 보일수도 있겠는데 나 그 날 카톡으로 말했던 것 처럼 아직 너한테 마음 있거든. 니가 정말 내가 싫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니라면 우리 다시 잘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거잖아. 소문으로는 너 남친 있다던데. 세월은 세월을 못 이긴다고, 오 년 사귄 거랑 고작 한 달 조금 넘게 사귄거랑 어떻게 비교해, 어? 그러니까 내 말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달라고. 나는 니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렇구나. 저 남자가 그녀의 오 년 사귄 '구남친' 이구나. 생각보다 놀랍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예전 일이야 어찌 되었건 지금의 그녀는 나와 사귀고 있으니까. 남자의 말이 끝나고 나와 그녀, 그리고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나 없었다. 서 있는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할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니가 좋지 않아. 그 말에 내 얼굴에 웃음이 핀 듯 했다. 반면에 남자의 표정은 한 없이 굳어져 갔다. 그러나 또 한 번 들려온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싫은 것도 아니야." 한빈 시점 나는 니가 좋지 않아. 그런데 싫은 것도 아니야. 그 말에 담긴 뜻을 해석하느라 머리를 바삐 굴렸다. 그래봤자 알아먹은 건 겨우 좋 과 싫 의 차이지만. 슬쩍 눈을 흘기니 김삐잉의 옆에 서 있는 남자의 표정이 썩어있다. 그제서야 눈치 챘다. 아, 저 남자가 김삐잉의 한 달 가량 사귄 '현남친' 이구나. 꽤 잘생겼다. 키도 크고. 무엇보다 어려보이고. 괜시리 느껴지는 자괴감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앞에서 김삐잉의 목소리가 또 한번 들려온다. 진짜 미친년인거 아는데, 니 말이 맞아. 한 달 정이 오 년 정은 못 이겨. 그래서 아직까지도 너랑 구준회 사이에서 많이 헷갈려.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눈을 돌려 김삐잉의 현남친을 바라보니 나와 똑같은 심정인 듯 하다. 잠시만, 그럼 니 말은. "그럼 다시 시작 할 마음 있는거야?" 내 말에 김삐잉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젓는다. 성급하게 굴지 마 김한빈.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명령조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삐잉이 말을 시작한다. "너랑 다시 시작 할 마음 없어.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는 이미 오래전에 너한테 질렸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니 말대로 오 년이라는 시간은 한 달과는 비교도 안 되게 긴 시간이야. 어떻게 사람이 그 긴 시간동안 안 질리겠어? 너는 너무 한결같아. 사귈 때도, 헤어지고 나서 한 달 뒤인 오늘까지도." 김삐잉은 말을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아직까지도 멍하니 서있는 현남친의 팔짱을 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김삐잉을 따라 카페를 나가려는 현남친을 보며 나는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잠깐만!"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 본 김삐잉이 인상을 찌푸리곤 나를 쳐다본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부터라도 전과 다른 모습 보여줄테니까, 그러니까. "나랑 데이트 한 번만 해주라!" 죄송해요 이틀? 정도 못 왔네요ㅠㅠ 동생 고등학교 면접 도와주느라 많이 바빴어요 뿌요 님 일이세개 님 나로수길 님 감사합니다~♥ 댓글 달고 구독료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