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현남친 사이 07 삐잉 시점 지금 뭐라고 했어?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니까 방금 김한빈이 내게 한 말은 일종의 데이트 신청인가? 데이트, 좋지. 근데 중요한 건 우리 사이란 걸 왜 몰라. 우린 이미 헤어진 사이잖아. 나는 내 손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구준회의 큰 손을 더 꽉 쥐었다. 구준회의 표정은 안 봐도 뻔해서, 굳이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대신 나는 김한빈의 눈을 마주했다. 김한빈은 자신이 한 말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생각하는걸까, 표정이 답지 않게 여유로워 또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김한빈, 하고 이름을 부르려는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저기요." 구준회의 목소리. 김한빈은 향해 내뱉는 언제나와 같은 무심한 목소리.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그 목소리에서 심기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이 가장 어이없을 사람은 역시 구준회 일테니까. 김한빈이 구준회의 말에 대답한다. 네? 그럼 구준회는 또 한 번 말한다. 그 쪽 뭐세요. 그 말에 구준회를 제외한 김한빈과 나는 벙쪘다. 잠깐만, 구준회가 지금 김한빈한테 그 쪽 뭐세요 라고 한 거야? 거의 경악 수준의 표정을 짓곤 김한빈의 얼굴을 보니 역시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다. 김한빈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버릇없는 사람인데. 헐, 싸움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앞에 김한빈을 두고 바로 옆엔 구준회를 두었다. 따라서 나는 엄한 눈치만 봤다. 구준회는 심히 찌그러진 얼굴, 김한빈은 어이없다는 표정. 나는 짜증난다는 표정. 둘 사이에 껴서 뭐하는 거지? 아니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은 나니까 누굴 탓 할 수도 없고. 괜히 김한빈은 만나러 온 내가 싫어져 자책 하고 있는데, "김삐잉 구남친인데요. 그러는 그 쪽은 뭔데요?" 김한빈이 입을 열었다. 제발 그 입 좀 닥쳐주면 안 돼? 제발. 내 손에 잡힌 구준회의 손이 말려 들어가더니, 부들부들 떤다. 잠깐만 준회야, 때리지 말고. 어? 꽉 쥔 주먹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부들부들 떨림에 거의 애원하다시피 준회에게 부탁했다. "잠깐만 놔 봐." 그 말만 하고 내게 잡힌 자기 손을 뺀 구준회가 김한빈에게 다가갔다. 오 시발, 신이시여. 제발 이 손님 없는 카페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발. 김한빈은 김한빈대로 버릇없는 구준회에 화난 것 같고, 구준회는 구준회대로 깊이 빡친 것 같고. 나는 어떡하지 이제. 답답한 마음에 팔짱을 낀 채 저 둘이 대화를 몸으로 나누는 지 입으로 나누는 지 지켜봤다. 다행히도 후자인 것 같다. 둘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얘길 나눈다. 근데 이상하게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어두웠던 표정이 밝아진다. 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왜때문에 광대가 올라가요? 준회 시점 누구냐는 내 질문에 당당하게 '김삐잉 구남친인데요.' 라고 말하는 저 남자가 싫었다. 그 뒤에 딸려오는 '그러는 그 쪽은 뭔데요?' 라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알아요? 라는 유치한 답을 할 뻔했다. 밀려오는 빡침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고 부들거렸다. 그러자 옆의 그녀가 내게 제발 사람 때리지 말라며 울상으로 말해온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녀의 앞에서 싸움을 벌일까. 절대 그럴일은 없다. 그녀의 모습에 화가 좀 가라 앉으려다가, 앞에서 멀뚱히 우리 둘을 보고 있는 구남친새끼를 보니 또 한 번 빡침이 몰려왔다. 뭐 시발, 부럽냐? 마음 같아선 킥킥대며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나는 카리스마를 지키기 위해 내적웃음만 흘렸다. 그녀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잠깐만 놔 보라고 말한 뒤 구남친 새끼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안절부절하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날 뻔 했지만, 앞에서 정색하곤 날 쳐다보는 구남친 새끼가 재수없어 기분이 또 한 번 상했다. 그녀의 부탁도 있고, 또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폭력은 안 써야겠다 싶어 구남친 새끼를 데리고 얘기를 시작했다. 저기요. 그 쪽이 누나 전남친이라구요? "전남친 아닌데요." "그럼 뭔데요?" "구남친인데요." "그게 그거잖아요. 지금 저랑 말장난하세요?" "말장난 아닙니다. 사귈 때 삐잉이가 가장 재미있게 보던 카톡 드립이 항상 구남친 드립이어서 그런거예요. 구남친 자니 드립이요." 이 미친놈은 뭐지? 나는 뭔지 모를 감정에 순간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완전 순정파네 이 새끼. 모든 것이 그녀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어떻게 헤어진 여자가 좋아하던 드립을, 하 말을 잇지 못 했다. 왠지 모를 동정심도 느껴지고. "그 쪽이 김한빈이죠?" "어떻게 아세요." 또 정색하네. 저 새끼 정색하는 얼굴이 나 못지 않게 무섭다. 내가 니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차마 그녀의 페북을 뒤졌다곤 죽어도 말 못 하겠다. 이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 둘러대지, 음. "그, 그, 그쪽한테 관심이 있어서요. 그래서 어, 어쩌다가 알게됐어요." 아 씨발. 말이 헛 나왔다. 관심은 무슨 얼어죽을 관심? 한빈 시점 그, 그, 그쪽한테 관심이 있어서요. 그래서 어, 어쩌다가 알게됐어요. 병신이 뭐라고 짖는거지?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나는 경악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바이인가. 여자인 김삐잉과 사귀면서 남자인 내게 관심을 가지다니. 뭐라고 말을 하고 싶긴 한데, 뭐라고 말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존나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지가 말 해놓고도 놀랐는지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며 우물쭈물대는 김삐잉의 현남친. 김삐잉은 자기랑 정반대인 남자 만나는 게 취미인가. "그 관심이 그 관심이 아니라, 그니까, 노래!" "네?" "아니 그 노래, 노래를 잘 만드신다면서요. 저도 노래 괜찮게 하거든요." 미친. 이 새끼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황당한 발언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현남친 새끼도 웃는다. 적을 마주하고 실실 쪼갰다. 헛웃음이 현실 웃음이 되었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거야. 웃으며 슬쩍 고개를 들어 현남친 새끼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김삐잉을 쳐다보니, 정확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저기요, 삐잉이가 쳐다봐요. 현남친 새끼에게 일러주니 마찬가지로 웃음을 멈춘다. 웃음이 멎음과 동시에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저 누나랑 사귀거든요." "그 쪽이 그 한 달 정도 사귄 남친이예요? 하긴, 예상은 했어요." "예상 했는데 왜 데이트 신청해요? 미쳤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한 달은 오 년을 못 이긴다고." "그래서 그 쪽이 지금 누나를 뺏어가겠다는 거예요?" "김삐잉을 뺏는 게 아니라, 김삐잉 마음을 뺏으려는 거예요. 이미 쟤는 나한테 더 익숙해져 있으니까, 나한테서 멀어진 마음만 돌리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데이트 신청 한거예요. 예전이랑 다른 모습 보여주려고." 현남친 새끼는 한 참 말이 없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솔직히 그 모습이 날 한 대 칠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가볍게 오줌? 뭐 그 정도. 그러더니 말 한다. 그럼 해 봐요. 안녕하세여...매번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 항상 받아요 뿌요 님 일이세개 님 나로수길 님 뿌요구르트 님 감사합니다! 댓글 달고 구독료 받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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