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놓인 아메리카노에 끼워진 빨대로 음료를 한 번 쭉 들이켰다. 맞은 편에 앉은 한빈이는 제가 시킨 모카의 휘핑크림이 꽤나 마음에 드는 듯, 자꾸만 같이 나온 숟가락으로 음료 대신 휘핑 크림만 한 숟가락씩 떠먹고 있다. 입맛도 애기 같아. 휘핑 크림에 집중한 그 모습이 귀여워서 턱을 괴곤 한빈이를 바라보았다.
" 맛있어? "
내 물음에 한빈이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응, 하고 짧게 답하곤 휘핑 크림을 한 숟가락 가득 떠서 내게 내밀었다. 안 먹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더니 망설임 없이 제 입으로 숟가락을 가져간다. 평소였으면 몇 번은 먹어보라고 했을 텐데. 뭐야, 나보다 휘핑 크림이 더 좋은 거야? 하는 되지 않는 질투도 조금 나고.
때 마침 짧은 알람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테이블 위에 뒤집어진 채로 놓여져 있던 휴대폰을 확인하니 조금 친하던 동기의 메세지가 휴대폰을 반짝였다. 무슨 문자지. 비밀번호를 해제하곤 휴대폰 메세지를 천천히 읽는데, 나도 모르게 허!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결혼이라니!
" 왜. 뭐야? "
" 어? 아, 동기가 결혼한대. "
" 결혼? "
" 응. "
한빈이의 물음에 짧게 답하곤 휴대폰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데 으,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왜 결혼을 선택했나 싶었더니 이유는 다름이 아닌 속도 위반이다. 속도 위반이구나…. 왠지 모르게 조금은 충격을 받아서 혼자 중얼거리는데, 날 물끄러미 보고 있던 한빈이가 천진난만하게 물어온다.
" 속도 위반이 뭐야? "
휴대폰을 잡고 있는 손이 아닌 테이블 위에 놓여진 내 손을 잡은 한빈이가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툭툭 쳤다가, 괜히 간지럽혔다가. 속도 위반을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하지. 한참을 말 없이 한빈이만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결혼 하기 전에 애기 먼저….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서 그 끝을 흐리며 말했더니, 한빈이가 대충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 속도 위반을 하면 결혼을 해야 해? "
" 해야 하는 건 아닌데, 대부분 그렇지. "
" 누나는 결혼 안 하고 싶어? "
내 손가락을 꼭 잡곤 물어오는 한빈이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아직은 할 일이 많은걸. "
그리고 우린 아직 결혼하기엔 너무 어린 거 같아. 내 말에 한빈이가 그 예쁜 입꼬리를 살짝 올리곤 내게 물어온다.
" 우리면, 나랑 할 거야? "
" 어? "
" 방금 '우리' 라고 했잖아. "
한빈이의 장난 담긴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뭐야, 내가 너랑 안 하면 누구랑 해. 내 말에 한빈이가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는 듯 씩 웃고는 내 앞에 놓인 음료의 빨대를 제 쪽으로 가져갔다. 한 입 먹으려는 한빈이에게 그거 써, 하고 말하는데도 한빈이는 내가 쓴 빨대를 그대로 제 입에 물곤 음료를 한 모금 쭉 들이킨다. 그와 동시에 찡그려지는 한빈이의 얼굴.
킥킥 웃으며 거 봐, 그거 쓰다니까, 하고 말하는 내 말에 한빈이가 빨대를 입에서 떼곤 혀를 쭉 내밀어 보인다. 맛 없어.
한빈이의 반응이 귀여워서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는데 눈을 찌를 듯한 앞머리가 신경쓰인다. 손을 뻗어서 한빈이의 앞머리가 눈을 찌르지 않게 살짝 넘겨주었다. 언제 저렇게 머리가 많이 긴 거지.
' 딸랑 '
카페의 입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곳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커플을 잠깐 바라보는데, 그 중 여자의 머리에 괜히 눈이 간다. 저 여자 머리 되게 길다. 저렇게까지 머리를 길러본 적은 없어서 그 모습이 신기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빈이는 어떤 여자 스타일을 좋아하려나.
" 너는 어떤 여자가 좋아? "
고개를 다시 한빈이에게로 돌려 한빈이를 바라보곤 묻는데, 한빈이가 나? 하고 되물어 온다. 고개를 끄덕이니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답해온다.
" 누나. "
고민도 없이 나오는 한빈이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져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 말고, 음… 이상형은? 하고 다시 되묻자 한빈이가 글쎄, 하고 짧게 답해온다.
" 사실은 머리 짧은 여자가 좋아. "
" 왜? "
" 그냥. 귓가에서 달랑달랑 거리는 게 귀여워서. "
꼭 달랑거리는 걸 쫓아다니고 좋아하는 고양이나 강아지와 같은 대답이다. 왠지 김한빈 다운 대답이란 느낌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괜히 내 머리카락 끝을 한 번 만지작 거렸다. 짧은 머리가 좋다는 말이 신경쓰였는지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였다.
" 나 머리 자를까? "
내 물음에 한빈이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는 아까 전에 내가 했던 것 처럼 어깨를 한 번 으쓱인다.
" 누나는 뭘 해도 좋아. "
못 살겠어. 저 팔불출, 진짜.
서로 바라보며 베시시 웃곤 다시 울리는 휴대폰에 그 화면을 바라보았다. 동기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같이 가자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휴대폰이 자꾸만 울린다. 나도 가야겠지. 친구들의 톡을 물끄러미 읽고만 있는데, 무슨 옷을 입고 가야할까에 대한 이야기들로 열을 올리고 있다. 덕분에 뭘 입고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결혼식 가는 건 처음인데….
" 너도 같이 갈래? "
한빈이에게 물었더니 한빈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응, 하고 답해온다.
" 뭐 입고가야 할지 모르겠어. 같이 옷도 사러 갈까? "
" 응. "
뭐라고 물어도 또 다시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치곤, 응 하고 짧게 답해오는 한빈이에 입술을 삐죽였다.
" 장난 그만 치구. "
내 말 다 듣곤 '응' 이라고 답하는거야? 자꾸 그렇게 응이라고만 대답 할래? 퉁한 표정으로 한빈이를 바라보는데 한빈이가 정말 의아하고도 당연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 그치만 응, 말고는 할 대답이 없는 걸 어떡해. "
" ……. "
" 누나가 하자는 건 뭐든 다 좋은걸. "
그리고는 장난을 치던 내 손을 제 쪽으로 조금 당겨서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잡아온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쪽 자리라 그런지, 빛을 받은 한빈이의 얼굴이 참 반짝 반짝.
* * *
수업을 마치고 한빈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재빨리 책을 챙겼다. 강의실 밖을 나가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정문 쪽으로 내려가는데, 저 멀리 한빈이가 보인다. 그 모습만 보아도 절로 웃음이 나서 조금은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문득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진다. 혼자 서있는 줄 알았던 한빈이는 어떤 여자와 마주보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레… 저 여자는 누구지.
괜히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이야기가 끝난 듯, 여자가 한빈이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한빈이에게 도착해서 그 어깨를 툭툭 치니 뒤돌아서 날 바라보곤 웃어온다.
" 수업 잘 듣고 왔어? "
" 응. 근데 조금 전에 그 여자는 누구야? "
" 같이 교양 듣는 사람. "
같은 조인데 먼저 인사하길래 나도 인사 했어. 다음에 밥 먹으면서 과제 얘기나 같이 하재.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순진하게 내게 얘기해오는 한빈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인상이 써졌다.
뭐야.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살살 웃으면서 살짝씩 한빈이를 터치하고 있었는데. 꼭 한빈이를 꼬시는 것 처럼.
괜히 예민하게 느끼는 건가. 뭐… 아닐 수도 있는 거지만 괜한 여자의 직감에, 자꾸만 찜찜한 기분.
학교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도착하자 한빈이가 내 팔에 끼워져 있던 책을 제 손으로 들고 간다. 그리고는 비어있는 내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왔다. 꽉 잡아오는 한빈이의 손이 따뜻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의 쇼핑이라 뭘 사야할지 몰라서 이곳 저곳을 천천히 돌아다니는데, 문득 눈에 띄는 원피스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멈춰 선 채로 원피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한빈이가 나를 살짝 흔든다.
" 예쁘다. 그치? "
" 응. 입어봐. "
" …그럴까? "
조금 망설이다 그 곳의 직원에게 입어볼 수 있냐고 묻곤, 옷을 받아 탈의실에 들어갔다.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딱 맞는 옷에 살이 조금 빠진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심스럽게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더니 한빈이가 원피스를 입은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한가? 왜 아무런 말도 없지.
" 어때? "
" 글쎄. "
" 안 어울려? …별로인가? "
내 말에 한빈이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오더니 그대로 날 품에 꼭 안아버린다. 뭐야, 하는 내 말에 날 품에 더 꼬옥 안은 한빈이가 안 되겠다, 하고 말했다.
" 예뻐서 안 되겠어. 이거 말고 다른 거 사. "
" 예쁜데 왜 이거 사면 안 돼? "
" 다른 사람들도 이런 예쁜 모습 보게 될 거 아냐. "
그런 건 나만 볼 거야. 날 품에서 떼곤 인상을 쓴 채로 칭얼거리는 한빈이가 귀엽다. 인상을 쓴 한빈이의 이마를 꾹 눌러 찡그려진 표정을 펴주었다. 하여튼, 김한빈!
다시 옷을 갈아 입고 나와서 옷을 점원에게 건네곤 한빈이에게 돌아가자 한빈이가 안 살거야? 하고 물어온다. 사고 싶긴 한데 조금 더 둘러보게. 대충 답을 하긴 했지만 이 이유가 절반, 나머지 절반은 가격 때문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기엔 가격이 좀 있는 걸. 이번 달의 용돈을 머리 속으로 한 번 계산해 보다가 조금 더 고민하고 사야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거 구경하러 가자.
그렇게 또 옷가게를 지나가는데 문득 눈에 띄는 남자 옷 하나에 내 걸음이 멈췄다. 내 손을 잡고 걸어오던 한빈이가 왜? 하고 묻길래 마음에 드는 옷을 손으로 가리켰다.
" 이거 예쁘다. "
" 그런가. "
" 한 번 입어봐. 너랑 잘 어울릴 거 같아. "
" 싫어. "
왜? 하고 물으려는데 누가 봐도 귀찮아 보이는 한빈이의 표정에 한 번만, 응? 하고 졸랐더니 한빈이가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한 번 헝크러트리곤 알았다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들어가면 될 걸 머리는 왜 자꾸 건드려…. 이렇게 머리 헝크러트리는 거 내 꺼래도 자꾸만 쓰네. 헝크러진 머리를 제대로 정리하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한빈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 가게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따라 발을 까딱이며 흥얼거리는데, 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빈이가 밖으로 나왔다.
" 괜찮아? "
어색한지 거울 앞에 조금은 쭈뼛쭈뼛 서선 날 바라보는 한빈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뭐야, 저렇게 옷을 입혀도 잘 어울리고. 자주 입는 옷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한빈이에게 꽤나 잘 어울리는 옷에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곤 한빈이를 바라보았다.
" 완전 괜찮아. 멋있어. "
" 진짜? 나 멋있어? "
멋있다는 내 말이 마음에 드는지 진짜? 하고 되물어 오는 한빈이에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멋있어. 내 말에 기분 좋게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한빈이를 기다리며 가게 안의 옷을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곧장 내게로 올 줄 알았던 한빈이가 오지 않길래 뒤를 돌아 한빈이 쪽을 바라보니 웬 꼬마와 한빈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빠는 여기 왜 왔어? "
" 옷 구경하러 왔어. 엄마랑 온 거야? "
" 응! "
여자아이와 몇 마디 나누던 한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내 시선을 느낀 한빈이가 웃으며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날 이끌었다. 언제 온 건지 여자아이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도 한 분 함께 서있는 것이 보인다. 한빈이의 손에 이끌려 두 사람의 앞에 서자 한빈이가 웃으며 내게 소개를 해온다.
" 우리 옆집에 사는 분이랑, 그 집 꼬마야. "
" 아. 안녕하세요. "
한빈이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더니 여자아이의 엄마도 나를 향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온다. 꼬마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날 올려다 보기만 했다.
잡고 있던 손을 더 꽉 잡아오는 한빈이가 이번에는 두 사람을 향해 나를 소개했다.
" 이 쪽은 제 여자친구에요. "
한빈이의 말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더 쿵쿵거리는 게 느껴진다. 한빈이가 날 이렇게 누군가에게 소개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손까지 꼭 잡곤, 여자 친구라니…
여자 친구… 괜히 그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보는데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난다. 오늘 자꾸만 이렇게 웃음이 나서 어떡해.
" 안 돼. 오빠는 내 꺼야. "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꼬마의 목소리에 시선이 꼬마를 향했다. 응?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서 물끄러미 내려다 봤더니 퉁한 표정의 꼬마가 날 째려보고 있다.
" 오빠 내 꺼야. "
" 아니야. 오빠는 이 언니 꺼야. "
" 아니야, 내 꺼야. 나 오빠랑 결혼할 거란 말야! "
꼬마의 말에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꽤나 진지하게 칭얼대던 아이는 언니 꺼라는 한빈이의 말에 이번엔 한빈이를 째려본다. 그리고는 칭얼대기 시작했다. 싫어어, 하고 불만 가득한 소리로 한빈이를 향해 웅얼거렸다.
" 오빠가 나한테 뽀뽀도 해줬다구! "
자랑하듯 말하는 꼬마의 말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한빈이를 바라보니 한빈이가 어색하게 하하, 하고 웃고 있다. 그런 한빈이도 귀엽고 아이도 귀엽고. 둘 다 마냥 귀여워서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살짝 웃었더니 아주머니가 꼬마의 손을 잡았다.
" 어휴. 얘가 또 이러네. 미안해, 학생. 여자친구랑 재밌게 놀다가 들어가요. "
" 네. 안녕히 가세요. "
꼬마와 함께 아주머니가 자리를 뜨자 한빈이가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얼굴을 나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한빈이가 참 잘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꼬마한테도 그렇고, 아까 그 여자에게도 그렇고.
뭐야… 생각해 보면 꽤나 인기 많잖아, 김한빈.
한빈이가 늑대일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된 지금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겨선, 언제든지 한빈이를 꼬시려는 여자들이 많겠구나 싶은 생각. 다시 한 번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을 뻗어 쓸어넘겨 주는데 한빈이가 살살 내 눈치를 본다.
" 화났어? "
" 어? 왜? "
" 저 꼬마한테 뽀뽀해줘서. "
뭐 그런 걸로 화를 내. 내 말에 한빈이는 안심한 건지 씨익 웃어온다. 뭐야. 나 콩깍지 씌었나 봐. 안 그래도 잘생겨 보이던 김한빈이 웃으니까 더 잘생겨 보이는 건 뭐야. 진짜, 김한빈이랑 늘 붙어있다 보니까 팔불출 기질도 옮아온 것 같았다.
가만히 내 손길을 받고 있는 한빈이에게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말을 꺼냈다.
" 인기 많다, 너. "
" 응? "
" 꼬마도 너 좋아하고, 아까 그 여자도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고. "
" ……. "
" 내 껀데. "
내 껀데. 다들 건들면 어떡해. 내 말에 한빈이가 멍하니 날 바라보길래, 그 이마를 아프지 않게 꾹 누르고는 한빈이와 잡았던 손을 풀고 먼저 앞을 향해 걸었다. 말하고 보니 더 억울한 기분이다. 늑대일 때는 이런 걱정 안 해도 됐잖아. 온전히 나만의 한빈이었는데. 별 것 아니지만 괜히 퉁퉁.
이런 내 반응에 내 뒤로 금방 쪼르르 달려온 한빈이가 날 뒤에서 안아 온다. 뭐야, 하고 싫지 않은 목소리로 한빈이에게 칭얼거렸더니 한빈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어온다.
지금 질투해? 하고 물어오는 한빈이에 뭐라고 답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 응. "
내 솔직한 대답에 김한빈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또 웃음만 실실.
지금 웃음이 나냔 말야. 나는 이렇게나 질투가 나는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한빈은 자꾸만 기분 좋은 소리를 흥얼거렸다. 뒤에서 꼭 안은 한빈이 덕분에 내 귓가에서 김한빈의 흥얼거림이 울렸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쇼핑을 끝내고 1층 입구로 내려왔다.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한빈이의 옆에 꼭 붙어서서 나란히 걷는데, 하필이면 아까 전에 봤던 그 여자와 마주쳤다. 여자는 뭐가 그렇게 반가운 건지 한빈이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이 바보같은 김한빈은 그걸 보고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까딱이고.
" 어, 여기서도 또 만나네! "
" 그러게. "
" 아까 물어보려고 했는데 까먹고 못 물어봤어. 혹시 번호 좀 줄 수 있어? "
내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 여자는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한빈이만 바라보며 실실 웃는다. 왜 저렇게 살살 웃는데. 왜 그렇게 한빈이에게 가까이 붙어서…. 저 여자의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저 여자는 왜 머리가 단발 머리인 거야.
신경쓰여서 나도 모르게 또 내 머리를 한 번 만지작거리는데 한빈이가 어, 하고 날 힐끔 바라보다가 그 여자를 향해 고개와 손을 함께 젓는다.
" 나 휴대폰 없어. "
" 진짜? "
" 응. 진짜로. "
놀란 듯 되물어 오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한빈이가 나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딱히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서 한빈이를 바라보다가 괜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한빈이가 내 손을 슬그머니 잡아온다.
" 먼저 가도 돼? 여자친구가 화난 거 같아서. "
여자를 향해 슬며시 웃어보인 한빈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곤 날 천천히 잡아 이끌었다. 가자, 누나. 한빈이의 손에 이끌려 여자를 지나치는데 여자가 날 살짝 흘겨보는게 느껴진다. 왜 날 그렇게 봐. 내 남자인데, 꼬리친 건 자기면서….
한빈이의 손을 꼭 잡고 걷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울적하다. 내 남자친구인데. 한빈이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더니 더 울적해진다. 몇 걸음 걷던 한빈이가 멈춰서선 뒤를 돌아 나와 마주섰다. 내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빈이가 무릎을 살짝 구부려 나와 눈을 맞춰온다.
" 표정이 왜 그래. "
그냥. 대충 대답을 웅얼거리니 한빈이가 갑작스럽게 내 이마에 제 이마를 콩, 부딫혀왔다. 아파. 이마를 괜히 문지르며 한빈이의 눈을 봤다가 시선을 피했다가. 오래 눈을 맞추지 못하고 괜한 걱정에 삼켜질 때 즈음, 한빈이가 씩 웃어온다.
" 또 질투하지? "
" 몰라. "
" 좋아해. "
" …갑자기 뭐야. "
" 얼굴에 다 티나. 괜한 걱정하고 있는 거. "
" ……. "
" 그 걱정이 뭐든 간에 난 누나 꺼야. "
" ……. "
그러니까 기분 풀어. 질투하는 거 귀엽긴 한데 난 누나 웃는게 더 좋아. 말을 마친 한빈이가 손을 뻗어 내 입꼬리를 양쪽으로 당겨 올렸다. 억지로 웃는 모습이 된 내 표정이 웃긴지 터져버린 한빈이의 웃음에 나도 덩달아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 * *
" 나 왔어. "
" 빨리 왔네. "
" 윤형이 형이 태워다줬어. "
코와 귀 끝이 빨개진 채로 한빈이가 우리 집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들고 있던 책을 그대로 쇼파에 엎어두곤 한빈이를 향해 쪼르르 달려가서, 발을 들고 마주선 한빈이의 귀 끝을 손으로 꼭 잡았다. 내 손이 따뜻한 건지 한빈이가 제 볼을 내 손 쪽으로 더 밀었다. 손에 닿은 한빈이의 얼굴이 차가워서 괜히 그 곳을 몇 번 쓰다듬었다.
" 이거. "
아직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로 갑자기 한빈이가 손에 든 쇼핑백을 내민다. 어? 뭐야?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를 올려다보는 내게 쇼핑백을 한 번 더 흔들어 보이길래, 한빈이의 손에 있는 가방을 받아들었다. 열어봐. 짧게 대답하곤 신발을 벗는 한빈이에 이게 뭐야, 하고 거실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렸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조금은 큰 상자. 상자를 열자마자 순간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상자 속만 바라보았다.
" 갑자기 이게 뭐야. "
" 사고 싶어 했잖아. "
어느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온 한빈이가 겉옷을 쇼파에 대충 걸쳐두곤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옆에 앉은 한빈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상자 속에 있는 그 때 보았던 그 원피스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언제는 예뻐서 안 된다고 사지 말라며…. 내 웅얼거림에 한빈이가 픽 웃었다.
" 사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너무 예뻐서. 자꾸 생각났어. "
선물이야. 한빈이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끌어안아 온다. 한빈이의 닿은 손이 간지러워서 잠깐 움찔거렸다가, 그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 돈이 어디서 생겨서? "
" 송윤형 돈이야. "
" 뭐야. 그럼 이거, 따지고 보면 윤형 씨가 준 거네? "
내 말에 한빈이가 내 허리에 감았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윤형 씨? 하고 되물어온다. 응.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한빈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진다. 그 호칭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부르지 마.
" 그럼 뭐라고 불러. "
" 윤형 씨는 안 돼. "
" 또, 억지야. "
" 나한테도 그거 한 번 불러봐. "
뭘 말야. 내 물음에 한빈이가 말해온다. 방금 그 거. 윤형 씨, 그거.
" 한빈 씨. "
한빈이를 바라보며 한빈 씨, 하고 짧게 말을 하는데, 하는 나도 이상하고 듣는 한빈이도 어색하고 이상한 건지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둘 다 기다렸다는 듯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뭐야. 완전 안 어울려.
" 이상해. "
" 그냥 한빈아, 하고 부르는게 더 좋다. 그치? "
" 응. "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빈이가 내 어깨에 제 고개를 기대온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듯, 누나, 하고 불러온다.
" 근데 내 이름은 왜 한빈이라고 지었어? "
" 빨리도 물어본다. "
한빈이의 물음에 순간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한빈이로 지냈으면서 이제야 궁금해 하긴. 한빈이의 물음에 원피스를 꺼내 한 번 펼쳐보며 답했다.
"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
" ……. "
" 사실 한빈이라는 이름, 나중에 내가 아들 낳으면 지어주고 싶은 이름이었는데. "
한빈이에게 대답하며 펼쳐진 원피스를 한 번 훑어보는데, 지금 여기서 봐도 이 옷은 참 예쁘다. 한 번 더 입어볼까 싶어서 괜히 그 옷을 만지작거렸다. 이 옷 진짜 예쁘다. 그치? 하고 물어보는데 한빈이는 내 물음엔 관심이 없다. 제 이름에 대한 얘기가 더 궁금한 건지, 옷을 내 손에서 떼어내곤 날 보며 재촉하듯 묻는다.
" 왜 하필 한빈이었어? "
" 그냥 이름이 예뻐서. 너한테 내 아들 이름 뺏겼어. "
괜히 칭얼대듯 뱉어낸 내 말에 한빈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온다.
" 그럼 다시 짓지 뭐. 우리 아들 이름은 뭘로 할까? "
한빈이의 말에 원피스를 테이블 위에 두곤 한빈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우리 아들이야? "
" 나중에 결혼 할 거잖아, 우리. "
당연한 듯 얘기하는 한빈이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내가 당연히 너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저렇게 씩 웃는 한빈이가 예뻐서 괜히 그 볼을 한 번 쿡 찔렀다 뗐다. 그러자 한빈이가 한 마디 더 이어온다. 꼭 결혼 안해도 뭐…. 설마 지금 속도위반 얘기 하는 거야? 싶어서 한빈이를 바라보았더니 내 짐작이 맞는 건지 장난 가득 담은 얼굴로 웃고 있다.
" 누나. "
" 응? "
" 우리도 속도 위반이나 할까? "
왠지 농담만은 아닌 것 같은 한빈이의 말에 절로 눈이 크게 떠진다. 뭐?
아, 정말. 김한빈 너!
♡
![[IKON/김한빈] 새내기의 로맨스 3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4122121/6a09ea93494794bdf409e01d2946bf56.jpg)
흐,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아주 아주 오랜만에 새내기로 돌아왔어요
한빈이가 너무 보고 싶은 밤이라 ㅠ_ㅠ.. 엉엉..♡
저 안 잊고 기다려주신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아가씨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아가씨가 아니라서 실망하셨으려나요.......
그래도 새내기도 좋아해줘요..♡
날이 참 춥습니다! 따뜻하게 해서 다니셔야 해요, 감기 걸리면 다들 호온낼거에요!
오늘도 제 이쁜이들 ♡the love♡
조만간 암호닉 정리를 하도록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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