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다시 화려한 도경수로 돌아갔다. 백현의 자취방에서 생활 하면서 경수의 사치비용은 모두 백현이 담당이었다. 거액의 카드 사용 내역 문자가 백현에게 오면 백현은 한숨만 푹푹 쉬며 그래도 경수가 살아 있구나 하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서빙을 했다. 경수는 그런 백현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작은 자취방에 고가의 옷들이 널렸다. 그리고 백현이가 퇴근해서 오면 그 옆에 붙어선, 우리 꼭 이사 가자. 여긴 답답해. 이 말을 먼저 꺼냈다. 백현은 남은 통장 잔고와 사랑스러운 경수의 표정을 보며 그래, 꼭 가자. 원래 경수 살던 곳으로. 이렇게 경수의 세계에 동조 해줬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경수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탓에 간만에 수트를 차려 입고 경수랑 고급스런 브런치 카페에서 거금을 들여 데이트를 마치고 오는 길이였다. 백현아, 나 딸기 먹고 싶어. 초코 퐁듀에 딸기. 응? 알았어. 사올테니까 위험한 짓 하지말고 집에서 기다려. 금방 갈게. 응, 얼른와. 나 무서우니까. 백현은 과일 가게로 걸음을 돌리고 경수는 집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밟고 집 문 앞에 도착하자 아주 조금 문이 열려 있었다. 별 의심 없이 아까 문을 안 잠그고 갔나 싶어 신발을 벗고 숙인 고개를 들자 제 시야엔 찬열이 들어왔다. 찬열도 경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어, 난 그게, 문이 열려 있길래... 저리가. 미안해, 잘못했어. 응? 미안, 오지마, 다가 오지마. 자신을 경멸하듯, 괴물 보듯이 하는 경수를 보곤 어찌할 수 없었다. 지난 시간에 대해 백현이에게 사과할 목적으로 왔는데 경수까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이왕 경수에게도 용서를 구할려고 한발짝 다가가는데 경수는 소리를 지르며 주저 앉았다. 그리고 고래고래 백현을 불렀다. 백현아, 백현아. 무서워, 백현아. 백현은 딸기가 담긴 검은 비닐 봉지를 내팽겨치곤 급하게 경수를 끌어안았다. 사시나무 떨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수를 품고 괜찮다며 머리를 쓸어 내렸다. 그리고 박찬열을 경멸하듯 째려 보았다. 넌 좀 꺼져 개새끼야. 양심이 있으면 근처에 발 디딛을 생각도 하지마. 박찬열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안하다 이 말만 하곤 자리를 떴다. 경수가 진정이 되는 듯 하다 화장실에 들어 가더니 문을 잠그곤 나올 생각이없었다. 백현은 그 앞에서 브런치 외에 먹지 못한 경수가 걱정이 돼서 계속 기다렸다. 경수야, 나와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등심 스테이크 했어. 경수야, 내가 미안해. 응? 박찬열 다신 못 오게 할게. 도경수, 경수야. 끝내 백현은 침대로 가 잠을 청했다. 경수는 새벽이 돼서야 나와 백현이옆에 꿍츠려서 잠을 청했다. 그런 경수를 백현은 꼭 끌어 안았다. 새근새근 잠이 든 경수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며 백현이도 다시 잠 들었다. 백현이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경수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화려한 수트를 꺼내고, 스테이크를 굽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준비 순서가 조금 달랐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욕조에 물을 받고 스테이크를 구웠다. 왁스로 머리를 정리하고 경수는 화장실에서 가만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식탁을 바라 보았다. 경수의 시선은 스테이크 칼날에 꽂혔다. 성큼성큼 걸어가 스테이크 칼을 손에 쥐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예쁜데, 예쁜데, 안에 피는 안 예뻐. 스테이크 칼날이 경수 손목을 찔렀다. 붉은 피가 욕조의 물과 섞였다. 투두둑 떨어지는 피가 잉크와 섞이는 물에 퍼졌다. 더러워, 백현아 더러워. 그치? 더러워. 더 예뻐져야해. 경수는 더욱 깊게, 많이 찔렀다. 붉은 피는 온데 튀고 마치 수도꼭지에서 애초에 피가 나온 거 마냥 욕조도 붉게 물들었다. 경수는 자신을 그렇게 완전히 놓았다. 그렇게 감당 안될 고통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그 어느때 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욕조에 기대어 잠들었다. 경수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손에 쥐고 골목에 들어 섰을 때, 이 동네에서볼 수 없었던 화려한 불빛들이 집 앞에 있었다. 경찰차와 엠뷸런스가 번쩍이며 집 앞에 있었다. 백현은 천천히 걸음을 떼다 설마하는 생각에 급히 뛰었다. 경수야, 경수야. 아이고, 총각 왜 이제와. 글쎄 아까 물이 새더니... 들것에 사람이 실려있다. 그리고 덮힌 하얀 천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어있다. 삐죽 튀어 나온 손은 난도질 당한 자국이 선명하다. 백현은 경수의 팔을 붙잡았다. 미친듯이 오열하고 붙잡고 경수를 목놓아 불렀다. 그리고 경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망시각 13시 추정, 발견 시각 5월 17일 00시 42분 사망 원인 자살. 백현은 경수의 손을 꼭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오늘 일 나가서 미안해, 못 지켜줘서 미안해, 미안해 경수야. 경수야, 도경수. 그렇게 떠났다. 간만에 집 앞의 화려한 불빛도, 화려했던 경수도. 장례식장은 조촐하디 조촐했다. 빈소엔 넋 놓은 백현만 경수의 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다. 영정 속 경수는 아주 예쁘게 웃고 있었다. 박찬열이 빈소를 찾았다. 두번 절을 올리고 백현에게 갔다. 변백현은 박찬열을 올려다 보곤 살짝 웃었다. 예쁘지? 내 애인이야. 이름은 도경수고 Y대 경영 휴학이래 아버진 외교관이시고 어머닌 복지사업, 아 요즘 경수가 도와드린대. 대박이지? 누난 버클리 다니고. 어, 예쁘네. 진작 소개시켜주지 그랬어. 그러게. 넌 뺏지도 않을 건데. 찬열은 백현의 옆에 앉아 경수의 영정 사진을 바라 보았다. 미웠던게 아니라 연민의 감정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찬열은 고개를 숙였다. 난, 네가 경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거 눈치 챘어. 그런데 감정 접어라. 넌 이미 개새끼야. 개새끼. 그리고 이미 백현과 경수는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찬열은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빈소에서 멀어졌다. 과거와도 분리 되었다. 더이상 과거에 연연할 존재를 떨쳐 버리고 찬열은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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