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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학연이가 나왔다. 학연이는 웃고 있었다. 아니 웃고 있는건지 울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차학연은. 모를 놈이다. 입은 웃고있는데 눈은 울고있다. 안다, 내가 쓴 기사를 차학연이 싫어할거라는 거는. 그래서 저렇게 꿈에서라도 나와 나한테 시위하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또 모진 성격이 아니라 화도 못내고 저렇게 웃는 지 우는 지 분간도 못하게 물렁하게 있는 거 겠지.
".."
저 멀리서 너가 나에게 뭐라고 한다. 차학연이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알아 들을 수 가 없다. 너의 입 모양에 집중 하지만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차학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마."
울고 있었나보다. 나도 차학연처럼 눈은 우는데 입은 웃고 있었나보다. 너랑 나랑은 참 많이 닮게 되었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픈 모습조차 보여주기 싫어 자살을 택한 너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너의 선택이니까, 너가 고민했을 결과니까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래서 해 줄 말이 이것 밖에 없었다.
"너도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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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났다. 사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잠깐 잠든 사이에 인터넷은 차학연의 진실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폭행, 마약, 불화를 조장했던 한 스타는 어느 새 불쌍하고 가엾던 한 시대의 별이 되있었다. 우습다, 사람들은 정말 진실을 믿는 것인가 진실이라고 포장된 글을 믿는 것인가.
빅스 소속사의 사장은 구속 입건 처리가 되어 벌써부터 압수수색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래, 이거면 됐지 싶으면서도 가슴 한 켠이 찝찝하다. 꿈에서 학연이가 울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찝찝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찾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지만 직감적으로 안다. 이 번호가 누구의 번호인지.
"여보세요. 네, 택운씨. 아 기사 봤어요? 미안해요, 학연이가 지키고 싶어하던 빅스 이름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버려서. 회사도 난리 났을텐데. 아, 지금요? 네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볍게 세수를 했다. 다시 옷을 챙겨 입고 학연이의 집으로 향했다. 학연이 집에는 빅스 멤버들이 다 모여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에는 학연이의 유서로 보이는 종이들이 있었다. 다들 감히 읽어보려는 생각도 못한 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상혁이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은 어쩌면 우리 엄마일수도, 우리 형일수도, 하연이일수도.. 어쩌면 택운이, 재환이, 원식이, 홍빈이, 상혁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읽든 제 짧지만은 않았던 긴 인생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상혁이는 학연이의 유서를 다 읽지 못했다. 주저 앉아 펑펑 우는 상혁이의 등을 멤버들 또한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으며 울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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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정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학연이가 쓴 편지가 학연이의 어머니에게 전해지면서 학연이가 이 생에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이 정리 되었다. 학연이 어머님과 형이 떠난 그 자리, 학연이의 집에 남은 우리들 또한 그 곳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학연이의 흔적을 눈에 담기 위해 우리는 아주 천천히 그 집을 나왔다.
"고맙다, 학연아."
들리지 않을 말을 내뱉는 택운, 그 뒤에서 울고있는 홍빈, 재환, 원식. 그리고 부은 눈으로 멍하니 빅스 앨범을 바라보는 상혁.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나. 나와 빅스의 인연은 그게 끝이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그들이 팬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주었고, 나는 또 나의 위치에서 그들이 좀 더 멋있게 빛날 수 있도록 정직한 기사를 쓰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꽤나 빠르게 잊혀져 갔다. 학연이라는 사람이, N이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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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은 어쩌면 우리 엄마일수도, 우리 형일수도, 하연이일수도.. 어쩌면 택운이, 재환이, 원식이, 홍빈이, 상혁이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읽든 제 짧지만은 않았던 긴 인생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엄마가 편지 보면 속상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 편지 우리 멤버들이 제일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엄마 사랑하는거 알죠? 못난 막내아들이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아빠한테 엄마보다 먼저 갔다고 혼나지나 않을까 모르겠네.
참 야속하게도 먼저 떠난 큰 형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있을 우리 상혁이, 상혁아 늦게 들어왔음에도 형 말 잘 들어준 거 고맙다, 늘 어른스러운 널 볼 때마다 형은 너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 너가 타주는 꿀우유 다시 한 번 먹고 싶더라 혼자 있으니까. 내가 타보기도 하고, 사먹어보기도 했는데 영 너가 타주는 맛은 안나더라고. 나중에 만나면 꼭 타줘 맛있게. 그리고 우리 재환이. 너랑 함께 했던 방송 하나하나가 참 즐거웠어. 너랑 할 때면 항상 힘났거든, 허허벌판에 내 편하나 있는 느낌이여서. 너 없이 방송 하는 날은 전쟁터에 혼자 남겨진 것 같더라. 또, 우리 동갑내기 원식이랑 홍빈이. 형이 많이 예민해져있을 때 별것도 아닌 일에 화내는 못난 형인데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면서 받아주던 거 고마워. 나보다 어른스러운 너희들에게 형이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이 없네. 택운이 말 잘 듣고, 형이 많이 밉더라도 빅스라는 이름 하나만큼은 오래오래 지켜주라, 그거하나만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그리고, 택운아. 너에게는 참 할 말이 많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남자끼리 부끄럽지만 사랑해. 그냥 너한테 모든 짐을 떠넘기고 가는 기분이라 마음이 많이 아프다. 염치없지만 동생들 잘 챙겨줘 그리고 꼭 콘서트도 하고, 앨범도 내고, 대상도 다시 받고, 내가 위에서 우리 아빠한테 빅스라는 그룹 자랑 할 수 있게 그렇게 해줄 수 있지? 너라서 이런 부탁 마음 편하게 하고 간다, 택운아. 항상 고마웠고 또 지금도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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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Real V, VIXX 빅스입니다. 진짜 숨가쁘게 달려와서 이제 마지막곡 하나 남겨져있네요. 저희 10주년 콘서트에 와주신 여러분들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들려드릴 곡은 뭔가요, 상혁씨?"
"네, 저희 10주년 콘서트 'True or False, VIXX' 의 마지막 곡은 저희 레오씨가 작사 작곡하고, 라비씨가 랩메이킹에 참여한 'True or False'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저희를 10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주시고 계신 별빛분들과 그리고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저희들의 영원한 리더를 위해 만들었으니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맑은 선율로 시작되는 전혀 어둡지 않은 곡을 들으며 나는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팬들 때문에 붐빌 것을 예상해 미리 나왔지만 후회는 없다. 저들은 항상 저자리에서 저렇게 빛나고 있을테니까. 콘서트 장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감싼다. 오늘따라 왜이리도 하늘에 별이 많은건지.
"...잘 살고 있겠지, 뭐."
투덜거리는 듯한 겉과는 달리 속으로나마 말해본다. 차학연이, 빅스의 리더 N이 보고 싶다고. 정말 미친듯이 보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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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항상. 너무 늦게와서 정말정말 죄송할따름이에요. 다른 글보다 이 글은 정말 마무리를 짓고 싶었어요. 이렇게 늦게나마 마무리를 짓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학연이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