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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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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가 부드럽게 비벼졌다. 누군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고, 혀로 핥아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보다 더 어색한 것은 당연 어제까지만 해도 남이던 남자와 알몸으로 마주한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벗겨져 있는 옷들은, 분명 몽롱한 기억 너머의 저가 스스로 벗은 것이었다. 마치 더러운 남창마냥. 

수치라는 감정이 점차 타쿠야를 뒤덮었다. 

눈매를 덮던 입술이 살며시 떨어진다. 하지만 잡혀진 손은 단단했다. 지난밤의 기억이 그를 뒤덮는다. 그래. 이 단단한 손이 타쿠야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저 손이 타쿠야의 침범했고, 그 아래서 여러 번 달뜬 신음을 내 뱉았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적나라한 타쿠야의 나신을 보여준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메가 돌연변이 삶은 그런 것이다. 오메가라는 성질은 늘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개중에서도 타쿠야는 늘 상 약자였다. 이처럼 타쿠야에게는 처음이 많았다. 

 

 

"타쿠야." 

 

 

마치 장위안의 목소리는 설탕 같았다. 이 남자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구나. 타쿠야의 머릿속이 가볍게 흔들렸다. 집중 못하는 타쿠야의 손등을 두드리며 그가 물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 방금 까지 타쿠야의 눈가를 더듬던 입술이 담백하게 떨어져있었고 그것이 움직이며 목소리를 내었다. 타쿠야는 비정상적일정도로 그에게 시선을 빼앗긴 저를 자각했다. 

 

 

"옷부터 입어요. 옷부터요." 

 

 

타쿠야는 마치 어린 소년마냥 얼굴을 붉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판단하기에 타쿠야는 지나치게 경험이 없었고, 눈앞의 남자는 지독하게 눈치가 없어 보였다. 허둥지둥 붉은 색상의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자리를 벗어났다. 

 

생각 없는 행동에 끔찍한 통증이 대가로 뒤따랐지만 타쿠야는 내색 않고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저만치 벗겨져 있는 속옷을 쥐는데, 그 찰나 다리사이로 차가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소름끼치는 감각에 터지려는 비명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처리할 생각은 커녕 내색 안 하려 급급했던 나머지 그대로 속옷에 다리를 넣었다. 찝찝함을 무시한 본능에 가까운 속도였다. 굳이 다리사이에 흐르는 어제 밤의 흔적을 장위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는 긴 대화가 필요했을 뿐이지, 이미 지나가버린 실수에 언급하고 상기시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게다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고, 

 

사실, 무엇보다도 다리사이에 무엇이 흘렀고, 무엇에 자기가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는 우스꽝스러운 사실 따위, 가능하면 장위안이 영원히 알지 못하기를. 마치 초야를 치룬 것 신부 마냥 사소한 거에도 파드득 떠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악이었다. 

 

끔찍한 몸 상태와 엇박자가 나는 행동 속도에 근육세포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속옷을 입는 과정도 마음만 조급 했을 뿐이지 어정쩡하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사실 알고 있다. 이제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남창처럼 옷을 벗어던졌던 밤이 흐릿하게 가라앉는다. 섹스 자체가 처음 인 것 을 장위안이 안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것을 안 그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수치라는 감정은 타쿠야를 좀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나 추파를 던져대는 남창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이중적인 생각이지만 결국 그랬다. 첫 경험에 호들갑을 떠는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이 나이 먹고 이제와 이러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결국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그의 첫 사람이었다. 급하다고 누구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오메가로 남고 싶지 않아. 피가 통하지 않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타쿠야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들키지 않을까. 

 

가장 이상적 인건 몸 상태를 핑계로, 아니. 아니야. 거짓말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 

속옷 근처에 떨어져 있던 바지를 마저 주웠다. 잔뜩 구겨져서 엉망이다. 옷이 저와 같다. 구겨지고, 흩어지고, 형태를 잃고. 어제 밤 어지간히도 급했다. 그래, 그랬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탐했다. 게걸스럽게 원하고, 지독하게 외로웠다. 침대를, 불타는 듯한 몸의 열기를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게 하필 형이었겠지. 

 

빌어먹게도 운이 없던 형이었고, 나였다. 

 

당장에 깨져야 할 관계는 이상하게 유지되고 있다. 얼마간의 평화일까. 

 

사귀는 사이인가요? 내 뱉아진 질문에 부드러운 키스를 받았다. 위태위태한 관계에 올라온 숟가락은 분명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타쿠야는 모르는 척 시건을 내렸다. 

여기저기 남은 생채기에 스치는 옷자락이 달갑지 않다. 사실 육체적으로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서 당장 그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긴 대화가 필요한 둘의 관계였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적당히 판단할 시간이 절실했다. 

 

술기운인지, 약기운인지에 점령당한 머리는 평소보다 배는 그 회전이 느리다. 지금 드는 생각이 옳을까? 당장, 병원부터 달려가야 하는 건가? 

나는 어떤 입장이 되어야 하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공범에 가깝지 않을까? 

셔츠의 단추를 잠그는데, 듬성듬성 단추는 뜯어지고 실밥만 남아있다. 어제의 두사람 중 하나가 뜯은 것이다. 

 

히트싸이클은 이성을 짖 밟는다. 옷의 단추처럼 모든 걸 거칠게 뜯어낸다. 그것이 무엇이건. 하물며 그의 알량한 자존심마저 용납 못한다. 

 

어제 밤은 본능이 명백하게 우위를 차지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 뒷 처리는, 이성이 해야 했다. 

 

지금부터는 이성이 해결할 시간이었다. 

 

옷을 어떻게 입어도 난잡하게 보이니 조금 억울했다.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난잡은 커녕 어지럽게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으니까. 

얼굴을 덮고 근처 화장대에 앉았다. 사실 상황정리 조차 어렵다. 사귀는 건, 아니 그 문제보다도.. 

 

푹신했던 침대에서조차 고통스러웠는데, 딱딱한 의자에 몸을 기대니 더 죽을 맛이었다. 잠시 숨이나 고를까 했던 타쿠야의 생각과는 반대로 비명이나 간신히 삼켜야했다. 

 

뻐근한 고통이 그를 억눌렀다. 그냥 그대로 누워서 자버려. 악마같은 속삭임이 울린다. 

그럼에도 머리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굴러갔다. 형이, 아니, 그전에 내가. 

 

오메가여서, 히트 싸이클이, 약을, 술을.. 

머리가 아프다. 정리하려다 더 꼬인 기분이야. 

구석에 엉망으로 던져져있는 타쿠야의 신발을 챙긴 것은 장위안 이었다. 타쿠야는 화장대에 앉아 몸을 웅크리며 앓았다. 셔츠 너머로 도드라진 허리선이 유난히도 얇아보였다. 

 

한숨을 쉬며 낮은 신음을 내뱉는 건 어제 밤과 닮았으나 달랐다. 사실 장위안은 타쿠야의 눈에서 읽은 선명한 후회라는 감정에 당황했다. 그저 지난 밤의 여파로 정신이 없다고 보기에는 모순이 많았다. 정신이 없다기보다 아파보였고 아파보이기 보다는 슬퍼보였다. 슬픔보다, 분노에 가깝기도 해보였다. 거기에다 자고 일어나서 울음마저 터트렸다. 밤에, 밤이 문제였나? 숙취일까? 아니면 히트 싸이클의 여파? 혹시, 길거리에서 허비한 시간이 너무 길었던가? 그래서 감기에 걸린 건가? 지나치게 짐작 가는 게 많으니 당장 숙취해소 음료를 사와야 하는지, 병원으로 업고 뛰어야 하는지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오, 세상에. 타쿠야에게 연인이 있을 수 도 있지. 장위안은 가장 최악의 상상에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야, 사귀는 사이냐고 의문을 품었다. 짝사랑 대상이 있으면 어떡하지? 

너는 무슨 생각을 해? 무슨 일이야? 누구를 생각하고 있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타쿠야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장위안은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것은 꽤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스스로가 비굴하다고 생각했지만 장위안은 그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의 머리마저 복잡하게 만든 문제였으나 단 한 마디도 입에 담을 수 가 없다. 사실 질문 하나면 해결 될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도와줄까?" 다만 무슨 답이 나오건 죄인은 높은 확률로 장위안에 가까울 것이다. 현명하게도,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타쿠야는 기운 없는 얼굴로 엎드려 있었다. 숨을 고르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데, 사실 옷이 미처 가리지 못한 곳에는 여전히 어제밤의 열꽃이 만개한 채였다. 거칠게 잡아 뜯은 탓에 온전한 단추도 적고 구겨진 상태여서 일까. 유독 야릇하게 느껴졌다. 어제 밤, 저 눈은, 저 몸은 오롯이 그를 향했고 갈구했으며, 어느 순간 그의 것이 되었다. 최소한 장위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몸이 일으킨 본능이지만 결국 타쿠야니까. 그의 본심이라고 착각했다. 타쿠야는 장위안의 귓가로 영원을 속삭였다. 장위안은 그에 영원을 약속했다. 타쿠야는 히트 싸이클이었고, 장위안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서로의 온기를 원했고 게걸스럽기 먹어치웠다. 나의 것, 너의 것. 나눔없이 흐려졌다. 분별없음을 인정했다. 서로 넘어설 안 되는 것을 넘었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죄책감과 관련 없는 머리는 뒤이어 그때, 그 순간, 히트싸이클에 달아올랐던, 하얀 나신을 상상했다. 덩달아 들떴던 자신을 떠올렸다. 하지만 휘어 감겨오던 하얀 손목은 이제 없다. 더운 숨을 뱉으며 사랑을 속삭이던 소년도 이제 없다. 영원을 약속하는 내게 뜨거운 입맞춤을 선사하던 하룻밤의 사랑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그는 오롯이 철옹성같은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흐트러진 옷 너머로 보이는 하얀 몸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저 하얀 몸에 얼굴을 묻었지. 저 손이 내 목을 감아왔고, 내 목덜미로 숨을 내뱉았었다. 그리고, 그리고... 

 

어느새 타쿠야의 그 너머를 관음하고 상상하고 있단걸 자각했고, 곧 지독한 자기혐오가 그를 뒤따랐다. 

 

운동화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영향인지 왼쪽 운동화 끈이 느슨하게 풀려있었다. 끈을 만지며 장위안이 생각했다. 이 끈과 같았다. 타쿠야는 그에게 열려 있었다. 간절하게 그를 원했고 품어주었다. 그건, 설명하기 어려운 충족감이었다. 퍼즐 하나를 완성한 기분처럼. 다만, 타쿠야는 그 풀린 끈에 걸려 넘어진 얼굴이었다. 

 

간신히 시선을 돌리기는 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당장 내일이면 사라질 것처럼 열렬하게 섹스했다. 그게 순수하게 사랑을 나눈거 냐고 묻는다면 감히 죄인인 장위안은 침묵해야겠지만, 어떠한 감정교류도 없이 짐승처럼 해대지는 않았다고 반박을 할 수 있었다. 타쿠야는 영원을 원했다. 그것을, 장위안은 알았다. 다만, 문제는 고약했다. 그 빌어먹을 놈의 히크 싸이클! 사실 어제 밤의 타쿠야는, 그 순간 백치상태에 가까웠다. 그 사실에 주먹을 그러쥐며 분노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울듯이, 그저 본능에 가까운 성욕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아기는 어머니에게 맡겨야 한다. 마찬가지로 급작스러운 히트 싸이클의 오메가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스스로 분유를 타지 않듯, 그 순간 오메가에게 필요한 것은 강제적인 억압이었다. 그 순간만큼의 인권을 억압해야, 일상을 지킬 수 가 있다. 오메가의 히트싸이클 주간은 법적으로 일시적인 금치산자로 관리했다. 이성이 지배하지 못한 본능에서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아주 훌륭한 양심을 가진 한 남자로서는 미쳐버릴 상황임은 분명했다. 

타쿠야의 후회는 결국 자의가 아님을 의미했다. 

 

너와 나는 잘 될 수 있지? 그렇겠지? 

 

사실은 다 잘 풀릴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애달프게 울었던 어제 밤의 타쿠야를 떠올렸다. 사라질까 무섭다는 타쿠야의 손을 잡았었고 입을 맞췄었다. 알고 있었다. 무책임한 관계로 시작하면 분명 위태로워 무너질 것 임을. 특히 그것이 육체적인 사랑이 우선이었다면 확실했다. 둘은 분명 위태롭게 균형을 잡다가 무너질 것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지만, 그나마도 공들이지 못한 관계로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았다. 다만 장위안은 그것을 잘 풀어나갈 자신이 있었다. 긴 시간 대화하고, 교류하다보면 해답이 나올 서로였다. 

 

겨우 저런 얼굴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다. 

타쿠야는 선반 구석에서 신발을 줍는 장위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다지 좋지 않은 몸 상태였는데, 굳이 언급 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건 형이 상냥해서일까, 아니면 모든 베타들은 그런 걸까? 아니면, 그저 다만 궁금하지 않아서? 

 

구겨진 셔츠. 굽혀지는 허리. 손으로 대충 정리했지만 여전히 헝클어진 머리. 운동화를 챙겨오는 손이 크다. 굳은살이 베겨 딱딱한 손이었다. 피곤한 듯 눈을 비비는 손가락. 입술을 덮은 손바닥. 어제밤 원나잇을 즐긴 베타남성. 다리 사이로, 오물이라도 흐르는 것 같다. 

 

자기혐오는 늘, 타쿠야를 피곤하게 만든다. 

타쿠야는 차가운 발에 닿는 따듯한 온기에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오므렸다. 본능적으로 움츠리고 나서야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위안의 손에 타쿠야의 발이 잡혀있다. 놀란 타쿠야가 억지로 발을 빼려 힘주었다. 뭐, 하는 거에요. 

 

 

"왜, 왜요?" 

 

 

타쿠야의 말에 장위안이 시선을 올렸다. 키가 큰 타쿠야 로서는 늘 익숙했다. 많은 사람들은 늘 그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앞에 앉은 장위안은, 그는, 뭐랄까. 웃고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발. 왜 이렇게 차가워." 

 

"형." 

 

"왜." 

 

 

어쩔 줄 몰라서 발을 붙잡힌 채로 있으니 지압하듯 주물러왔다. 발가락을 오므리며 힘을 주었지만 빠지지 않았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형은 원래, 다른 베타 여성한테도 그래요? 

뱉어지지 않는 질문이 입안을 맴돈다. 이게 뭐야. 입밖으로 내뱉기만 했다면 아마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최대치였을 것이다. 

 

장위안은 차가운 타쿠야의 발을 조금 더 주물럭거리다가 신발에 넣었다. 느슨하게 풀린 끈을 다시 메어주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복바지에 묻은 타쿠야의 신발 자국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밥먹자." 

 

 

타쿠야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틀 전만 하더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인 장위안의 급변한 태도와 둘 사이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수 가 없었다. 방금까지 무뤂을 꿇고 끈을 묶고 있는 장위안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지독한 위화감이다. 마치, 마치, 뭐랄까. 마치.. 

..아니야, 모르겠다. 

 

그냥, 그냥 이상한 형이야. 

 

정말, 이상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방열쇠를 반납하는 장위안을 뒤로 한 채 타쿠야가 먼저 모텔 입구를 벗어났다. 방문은 커녕 가까이 와본 것 도 처음이었던 러브호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불편했고, 불투명 유리 너머 여자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밖으로 나오니 잡지에서나 봤던 러브호텔이일렬로 늘어선 거리에 이상하게 주눅이 든다. 싸구려 핑크. 우스꽝스러운 조합. 천박한 네온싸인들이 태양아래 죽어있다. 이상하게 기가 죽는다. 처음이라는 게 티나면 안 되는데. 마른침을 삼키며 조금 주위를 둘러봤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있었어도 곤란했겠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굴고 싶은데 영, 그 분위기에 살갗이 간지럽다. 불편한 공기다. 무거운데, 가볍다. 불편한데, 부드럽고. 처음 느껴보는 공기, 분위기, 장소. 

 

 

"춥네." 

 

 

옷깃을 조금 여미며 타쿠야가 중얼거렸다. 자동차며, 창문이며 할 것 없이 서리가 껴있다. 동장군의 때이른 행차에 몸을 웅크리지만 사실 추위보다야 주눅 들지 않으려고 입을 떼었다. 

 

그 순간 타쿠야의 몸을 무언가가 덮었다. 타쿠야는 잠깐이지만 장위안이 그를 껴안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감싼 짙은 코롱향과 시야를 매꾼 그의 카키색 외투 때문에. 

하지만, 타쿠야는 곧 기억해내야 했다. 

 

타쿠야를 등 뒤에서 안을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았다. 

 

그저, 장위안의 빈 옷에 불과했다. 

 

어느새 뒤에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장위안이 저를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왜 이런데. 낯간지럽게. 

 

 

"뭐에요?" 

 

 

퉁명스러운 말에 장위안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충동적인 행동 뒤의 짙은 후회였다. 

 

타쿠야는 그를 밀어내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을 뒤덮는 타쿠야의 이름 모를 연인 존재 설에 속이 뒤틀렸다. 

 

만약 있다면 알파겠지? 여성체일까? 

 

 

"춥다며." 

 

"아니, 그거는, 아, 됐고요! 이렇게 추운데 셔츠 하나로 어떻게 버티겠다고." 

 

 

타쿠야가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옷을 벗어 그에게 돌려주려했다. 부담스러운 호의가 아닌가. 장위안이 지금까지 숱한 술자리에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옷을 벗어주는 것을 본적 없는 상황이니 더했다. 아예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그는 관망했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2일 전의 타쿠야가 형, 저 추워요. 라고 말했으면 장위란은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단호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니, 아마도 그 말을 들은 시점에서부터 멀뚱하게 그를 쳐다보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위안은 힘주어 그것을 밀어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타쿠야와 달리 단호한 태도였다. 

 

 

"입고 있어." 

 

 

오히려 타쿠야의 옷깃을 여며준 후 앞장서서 걸어간다. 익숙한가봐? 자주 와봤나. 중국에서? 한국에서? 여성체 겠지? 베타일거야. 오메가랑 해본 적 있을까? 

..내가 진짜 미쳤구나. 

근데 옷 벗어주는 건 나말고도...내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 

..아냐, 할 수 있잖아. 이 정도는. 

 

 

장위안이 팔짱을 끼며 몸을 움츠렸다. 추워도 너무 춥다. 

 

모텔 거리를 벗어나니 오픈 준비가 한창인 식당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 입구의 초입에서 타쿠야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술기운 때문인가, 여기저기서 흩어지는 음식냄새에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린다. 이렇게 아파본적도 없고, 하물며 히트싸이클 주간에는 더욱 없었다. 게다가 현재 그에게 어머니도 없다. 그가 열에 달뜬 숨을 내뱉으면 그의 머리맡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차가운 수건을 머리에 올려주는 어머니가. 이렇게 아픈 것 은, 오메가이기 때문일까? 상념이 지나치게 깊어지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렀다. 남자는 타쿠야의 앞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저 아파요." 

 

 

타쿠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위안은 식당으로 뛰어갔다. 바람만 남은 자리를 황망하게 쳐다보며 타쿠야가 생각했다. 

 

저 형 진짜, 아까부터 왜 저래. 

 

아까 모텔에서부터 지금까지. 장위안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안절부절 못했다. 타쿠야의 눈치를 살피고 평소보다 느려진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왔다. 그의 태도가 거슬리는가 싶으면서도 묘한 감정을 일깨웠다. 그러니까, 마치. 마치, 무언가, 충족감 같은, 그런 감정. 게임의 엔딩을 볼 때, 학교의 졸업식 날처럼.. 

식당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던 장위안이 소리쳤다. 

 

 

"여기 식사 된대!" 

 

 

아프다니까. 밥을 챙겨 주는 건 뭐야? 

어렴풋이 보이는 태양을 곁눈질하며 타쿠야가 걸음을 옮겼다. 

 

타쿠야는 제 옷 위로 걸쳐진 장위안의 외투를 조금 더 여몄다. 겨울바람이 차다. 시린 손을 움츠리며 걸어갔다. 입구에서 문을 잡고 있던 장위안이 어느새 다가와 어정쩡하게 손을 뻗었다. 손을 잡으라는 건지, 넘어질까 봐 손을 펼쳐놓은 건지. 아니면 안기라는 제스처인지.. 

 

아, 이 형 진짜 왜 이래. 

찡그린 타쿠야의 표정에 장위안이 어설픈 손을 힘없이 내렸다. 그리고는 지나치게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아프대서.." 

 

 

마치 누군가가 후려치는 듯한 둔통 탓에 애매하게 숙였다. 그래서 아픈 거랑 방금 제스쳐랑 무슨 관계에요. 타쿠야는 겨울날씨에 추워하는 저에게 덥석 외투를 안겨주는 멍청한 남자를 응시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셔츠 차림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귀끝. 코끝. 목덜미. 그러게, 옷 입으라니까. 뭘 자꾸 안겨줘서는. 그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걸로 스친 듯한 생채기가 보였다. 

 

형. 그건 제가 만든 건가요? 아니죠?..아니겠죠? 

 

 

"밥 먹자. 응?" 

 

 

타쿠야는 말없이 목을 움츠렸다. 그래. 어쨋든 지독하게 허기지니까. 병원이든 뭐든 간에..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고, 손이 허공에서 방황한다. 어르고 달래는 목소리가 설탕처럼 달고, 초콜릿처럼 부드러웠다. 어린 아이를 달래듯 군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주사 놓기 전의 아이에게 환심을 사는 양. 이상한 기분이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연인 행세인가 아니면 그저.. 

 

그의 외투는, 어쨌든 따듯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향기는 어제 밤의 그 향기였다. 

 

타쿠야가 더 깊게, 얼굴을 묻었다. 

 

이상하게 어제보다 옅어졌을 냄새인데도, 그 무엇보다 부드럽게 다가왔다. 

 

이 향에 취해서 그를 유혹했어. 히트 싸이클에 취했고 술에 취했고, 향기에도 취했었다, 이것이 좋았던 것 같아. 아마도, 분명히, 나는 향기에 홀린거야.. 

 

 

또렷하면서도 흐릿한 기억 너머에서, 타쿠야는 몇 번이고 그에게 키스하며 이 향을 찾았다. 

 

 

 

 

술기운이 가득한 채의 식사는 역시나 별로였다. 지독한 허기와 별개로 피곤했다. 졸리고 아프고, 찝찝하고. 샤워도 절실했다. 속도 울렁거렸다. 쉬고 싶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뜨거운 물 받아놓고 몸이나 녹이고 싶다. 숟가락을 몇 번 움직였지만 입으로 가져가는 건 적었다. 

 

 

"우욱." 

 

 

숙취가 풀리기도 전에 우겨넣은 식사에 결국 탈이 났는지, 결국 타쿠야가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쯧. 술병이고만." 

 

 

다만 옆 테이블에서 대파를 다듬던 식당 아주머니의 한국어가, 놀란 중국 남성에게 들렸을 리는 만무했다. 

 

장위안은 외투고 뭐고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주울 엄두도 못했다. 얼어붙은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방금 뭐지? 

 

장위안의 뇌리로 스쳐가는 건, 임산부들의 입덧이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거. 그거? 장위안이 냉수 한잔을 겨우 들이켰다. 콘돔 없이, 게다가 히트 싸이클 주간은 임신이 가능한 주기다. 베타, 베타 여성으로 치면, 그래. 그, 배란, 배란기에 섹스 한거지. 콘돔 없이. 피임 없이. 

 

장위안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오메가 연인을 둔 베타 남성이 먹는 피임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장위안에게는 늘, 베타 여성만이 이성이었으니까. 그건, 그러니까, 피임에 있어서는 타쿠야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억제제와 피임약을 같이 먹는 경우는 없다. 

어떡해야하지? 

 

 

"형, 미안해요. 속이 좀 안 좋아서.." 

 

 

타쿠야는 이제 겨우 20대인데. 나를 사랑하지도, 누군가의 부모가 될 생각도 없을 텐데. 

 

 

"형?"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는 타쿠야에게 그는 명백한 죄인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타쿠야는 멍하니 저를 올려다보는 장위안이 이상했지만, 곧 그러려니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서로가 한 행동에 괴짜 짓이 아닌 것은 없었다. 억제제 먹고도 베타랑 히트싸이클을 같이 보낸 미친 오메가도 있는데 더한 싸이코 짓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리에 앉고서 널부러 진 옷들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게워내고 나니 훨씬 입맛이 살아난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까지 넋 나간 얼굴의 장위안 몫까지 야무지게 비워낸 타쿠야가 가만히 배를 두드렸다. 

 

내가 계산해야겠지? 

 

 

"결혼, 결혼하자." 

 

"예?" 

 

 

타쿠야는 순간 그만 일어나자를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술이 덜깼나? 한 그릇에 칠천원이면 만 사 천원인데 지갑이 어딨지? 

 

 

"결혼." 

 

"지갑, 예? 뭐라고요?" 

 

"결혼해줘." 

 

 

하도 황당한 소리를 들으니 이해도 느려졌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초조한 얼굴로 대답을 재촉했다. 

 

 

"응?" 

 

"..저기. 형. 결혼요?" 

 

 

어디 아파요? 미쳤어요? 제정신이세요? 술 덜깨셨어요? 잠시 타쿠야가 말을 고르던 틈을 타 장위안이 말을 이어갔다. 

 

 

"그, 부모님껜..아니. 먼저 병원을.."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선 장위안은 곧 서슬 퍼런 타쿠야의 기세에 눌려 도로 앉았다. 타쿠야의 일그러진 미간에 장위안이 표정이 흐려졌다. 사실 그 선택에 장위안 스스로도 그다지 확신은 없었다. 

 

먼지 같던 지지기반이 무너지니 속절없이 그는 쩔쩔매고 있었다. 

 

아까까지 했던 고민이 의미가 없다. 부담을 주는 건 장위안이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대파를 다듬던 아주머니는 아예 허둥지둥 일어나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요?" 

 

"아기 낳을거지?" 

 

"뭐요? 아기요? Baby?" 

 

 

저 남자도 외국인 나도 외국인. 하도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 영어로 되물었다. 저 단어를 가사가 아닌, 그러니까 연인 사이의 애칭이 아닌 이런 상황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높아지는 타쿠야의 목소리에 장위안은 이제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쿠야는 그 순간, 이남자와 자신의 언어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제 너, 나랑 섹스 했잖아." 

 

"..형. 히트싸이클 기간이라고 무조건 임신이 아니에요. 억제제가 먹었거든요, 저. 거기에 형 은 베타고." 

 

 

이 답답한 남자는 분명 성교육시간에 수업 안 들었겠지? 제대로 듣고도 저런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중국의, 오메가 교육은 이런 식일까? 

 

 

"아니, 아니, 그런데 나, 나랑 섹스 했잖아. 콘돔 없이." 

 

"형, 미쳤," 

 

 

타쿠야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했다. 섹스니, 콘돔이니. 타쿠야의 반사적인 거부감에 튀어나온 거센 반발을 장위안은 더욱 강경하게 대응했다. 

 

 

"셀 수 도 없이 했다고." 

 

 

단호하게 자른 장위안은 도리어 반박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이다. 

장위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타쿠야는 자신의 몸에 관심 한 톨 없어 보였다. 

 

 

"너는 불안하지도 않아? 네가 임신한건 아닌지, 최소한 내가, 그러니까 나라는 베타가 뭐하는 놈인지, 성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안 돼? 너는 억제제를 토해냈어!" 

 

 

임신은 가능성은 적었다. 억제제에는 기본적인 피임성분이 있었다. 거기에 아까까지의 정신없는 과정에서 상대방 평소 성생활에 대한 고찰을 할 정신은 어딨어.. 타쿠야가 다소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있어요?" 

 

 

주어빠진 질문에 잠시 장위안이 말을 멈추었다가 버럭 소리쳤다. 

 

 

"없어!" 

 

"아, 저도요." 

 

"병원부터 가보자." 

 

"병 없다고요." 

 

"아기!" 

 

"아, 그 아기도 없다고요!" 

 

 

타쿠야는 그를 째려보면서 소리 높였다. 평생 해장국집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결혼을 뭐? 성병? 임신이 뭐가 어째? 아기를 뭐를 어떻게 해? 

원래 섹스 후에는 다 이런 소리 듣는 거야? 

 

 

"그래서 병원에서 임신이라고 하면. 지금 애를 낳자고요?" 

 

"그래!" 

 

 

장위안이 단호한 목소리로 되받아친다. 화가 난 얼굴이 타쿠야를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타쿠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미친놈이! 

 

 

"미쳤어요?" 

 

 

버럭 소리치는 타쿠야의 서슬 퍼런 기세에 장위안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당황한 표정의 장위안을 몰아붙이며 타쿠야가 소리 높였다. 

 

 

"그럼 내 의사는 안 중요해요? 임신이라고 애를 낳으라고요? 내가 싫다면?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면요! 아니, 그전에 무슨 애를 낳아요?" 

 

"어, 그, 어.." 

 

 

갑자기 외국인이 된 장위안이 황망한 눈으로 타쿠야를 응시했다. 저 미친 작자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웃어 넘기며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난, 나는 여성이 아니에요. 알아요? 오메가라고 내가 여성은 아니라고요. 당신 여자 취급 하지마요!" 

 

"타쿠, 타쿠야." 

 

"형한테는 쉬워요? 결혼? 내가 무슨 결혼을 해? 이런식으로 누가 책임지랬어요? 아니, 그전에 임신 안 했다고요! 그리고, 했으면! 했으면 뭐, 내가 형한테 뭔데요? 당신하고 내가, 우리 사이가 무슨 관계인데! 원나잇 밖에 더 되냐고!" 

 

 

소리를 치고서야 타쿠야가 아차, 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다. 뭘 잘했다고 어제밤 이야기를 입에 꺼내나. 이러나저러나 결국 장위안은 타쿠야의 페이스에 휘말린것 뿐이었다. 

 

장위안은 흔들리는 눈으로 타쿠야를 응시했다. 명백히 상처받은 눈이었다. 그러나 장위안은 알고 있었다. 놓칠 수 가 없다. 그게 무엇이건. 누구이건. 정확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놓칠지, 누구를 잃을지. 하지만 되는 대로 입은 떠들었다. 머리는 판단능력을 잃었다.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장위안은 소리쳤다. 

 

"내, 내가 잘할게!" 

 

타쿠야의 손을 잡아챘다. 순간 놀라서 그 손을  

쳐낸 타쿠야는 힘 조절을 하지 못한 탓에 생각보다 큰 둔탁한 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장위안은 아랑곳 않으며 더욱 다가가 타쿠야의 어깨를 움켜쥐고 크게 소리쳤다. 

 

 

"정말, 정말 잘해줄게!" 

 

 

쏟아지는 부담감에 저절로 뒤로 물러서는 타쿠야와 달리 그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부담, 부담스럽거든요? 중얼 거리는 타쿠야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장위안은 심취되어 외쳤다. 

 

 

"낳아만 주면, 내가 평생 책임질게! 결혼, 하자!" 

 

 

타쿠야가 기겁하며 몸을 뒤틀었다. 

이 아저씨 히트 싸이클 온 거 아냐? 

억제제! 억제제!! 

 

 

 

 

그가 진정된 건 결국 도착한 병원에서였다. 우습게도, 정밀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장위안은 타쿠야의 손을 쥐고 있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타쿠야였으나 장위안은 그저 힘을 더욱 줄 뿐이었다. 그는 도리어 몸을 꼬며 손 좀 놔달라는 타쿠야의 애원을 모르는 척 했다. 

 

 

"음..억제제에는 피임성분이 들어가 있는데요." 

 

의사의 말에 타쿠야가 시선을 피했다. 그건 이미 오는 내내 수천 번은 말을 한 사항이다. 여전히 둘은 손을 그러쥔 상태였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색할 만큼 장위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도 의사도 할 것 없이 지나치게 진지한 얼굴인 장위안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타쿠야는 그 순간 술기운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저딴 간질간질한 시선 따위 받을 생각 없었다. 예비부모 보는 듯 한 시선으로 날 보지마.. 

 

 

"그런데 술 먹고 토했어요. 술 먹고, 그, 그러니까 최초 술 먹은지 두시간 후에 알약을 억제제 알약을 봤습니다." 

 

"아뇨, 그래도 아침부터 억제제 복용시간을 잘 지키셔서요. 그렇다면 피임 효과가 있습니다." 

 

 

저것도 이미 오는 내내 타쿠야가 설명한 것이었다. 간호사는 웃음을 참느라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타쿠야는 천장 무늬를 세며 진정하려 애썼다. 당장에라도 옆자리 도자기를 들어 머리를 내리친다음에...머릿 속을 알차게 채우는 범죄 과정을 실행하고 싶어 손이 움찔 거렸다. 

 

 

"하지만 피임이 확실하지 않죠? 테스트기는 2주 걸린다고 해서 병원으로 왔어요. 정밀 검사를 하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뇨, 그러니까.." 

 

 

의사는 답답한 얼굴로 정밀 검사지를 넘겼다. 아니라니까. 이 양반아. 의사도, 간호사도, 심지어 오는 길의 택시기사도 참견했던 문제였다. 외국인이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건 아닌 데 자꾸 저런 고집이다. 

임신을 안 했다니까. 

 

 

"아침에 입덧도 했어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남자가! 찡그려지는 의사와 간호사 얼굴을 본 타쿠야가 이상한 오해도 할세라 얼른 내 뱉았다. 화들짝 놀라 손을 홱 빼버리는 바람에, 머릿 속을 비정상적일만큼 채우던 도자기로 머리를 후려친 다음 도망친다는 작전 계획의 작성은 조금 멈추었다. 

 

"그냥 술병이에요! 숙취? 네, 그 숙취!" 

 

"..네. 그러시겠죠. 보호자분. 임신 1일차에 보이는 증상은 입덧이 아닙니다. 사실 임신1일차에는 아무런 증상을 찾을 수 없어요. 그리고, 환자분? 다음부터는 억제제 복용수칙 잘 지키도록 하세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하는 의사의 말에 타쿠야가 시선을 회피했다. 곧 이어지는 침묵에 의사가 가차 없이 소리쳤다. 

 

"다음 환자분!" 

 

명백한 축객령에 둘은 일어서야 했다. 

 

 

 

"봤죠? 아니랬죠! 이게 뭐에요!!" 

 

 

성생활이며, 성향이며 할 것 없이 낱낱히 까발려진 상황에 타쿠야가 화를 냈다. 

 

한 달에 몇 번 성행위를 합니까? 

한 달에 몇 번 자위를 합니까? 

불특정 다수와... 

 

수치스러운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타쿠야가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진료실을 나온 장위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주머니 속의 숙취해소음료를 건넸다. 정밀검사 하는 동안 사온 거 란다. 숙취는 커녕 아프던 것도 날아간 터였다. 이 빌어먹을 남자 덕분에. 

 

그러나, 장위안은 착실하게 절차를 밟으며 타쿠야에게 기어코 감기약 처방까지 받게 했다. 

 

참던 타쿠야는 내과 진료도중 본의 아니게 분노를 터트렸다. 

 

봇물 터지듯 나오는 일본어에 깜짝 놀라는 내과 의사를 본체만체 하며 타쿠야가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리고는 간절하게 옆의 양반에게 수면 마취제를 놔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지극히 정상적인 의사는 감기약을 처방 후에 그들을 내쫓았다. 

 

 

"이야기 좀 하자." 

"할 이야기 없어요." 

 

"어, 많을 텐데." 

 

"저, 쉬고 싶거든요?" 

 

 

피곤함에 벤치에 기대는 타쿠야를 보며 장위안이 말했다. 장위안은 손에 들린 약국봉지를 타쿠야의 주머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결혼해줘." 

 

"또 그 소리.." 

 

하도 들어서기도 신선하지도 않다. 듣는 상대방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대도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는 지금 전진에 엑셀만 밟은 사람이다. 화음이라고는 모르는 음치이고, 모두 군무를 출 때 그는 꼿꼿이 몸을 굳히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임신 안 했다잖아요." 타쿠야는 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지치게 들려서 놀랬다. 스스로가 불쌍해지는 시간이다. 저도 모르게 그는 지금 그를 달래고 있었다. 고집불통, 꽉 막혀가지고 말이야. 

 

"결혼해서 가지면 되지." 

 

얼어붙은 타쿠야가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빨개진 코끝으로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이 아저씨, 설마 제정신으로 하는 진담은 아니겠지? 

 

"결혼 해줘." 

 

"나한테 왜 이래요?" 

 

"잘해줄게." 

 

"미쳤어요?" 

 

"너가 좋," 

 

타쿠야는 힘차게 그를 밀쳐 도망갔다. 얼떨결에 뒤로 물러선 장위안이 미처 잡을 세도 없이 그는 날 듯 이 도망쳤다. 

 

“택시!!” 

 

악을 질러도 스쳐지나가는 야속한 택시들에 타쿠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등 뒤로 익숙해지려는 코롱향이 맡아졌다. 거의 공포를 느끼는 타쿠야이었지만 어느새 자신을 지나쳐 4차선 도로를 막힘없이 건너가는 그를 응시했다. 저 패기를 왜 쓸데없는 프로포즈에다 낭비 하는 거지? 도로 위의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멈추어서 창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장위안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봤다. 

 

택시를 잡아 기어코 타쿠야 앞까지 끌고 온 장위안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약 먹고 쉬고, 자고나서 충분히 생각해." 

 

 

불신에 가득 찬 타쿠야를 택시 안으로 등 떠밀며 장위안이 머리를 긁었다. 그가 지친 얼굴로 느리게 하품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화하자." 

 

오늘 한 말 중 가장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문장에 타쿠야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더 대화하자 라는 말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그런 타쿠야에게, 장위안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청혼은 진담이야. 그것도 고민하고." 

 

타쿠야의 고민 없는 거절을 듣기 싫었는지 장위안은 미련 없이 택시의 문을 닫았다. 

 

아, 춥다. 

 

얇은 셔츠 차림의 장위안이 팔짱을 끼고 택시를 응시했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에서 울리는 타쿠야의 거부의 말을 못들은 척 팔짱을 꼈다. 

 

그러나 택시는 조금 직진하다가 멈추었다. 문제가 생겼나 싶어 다가가던 장위안은 천천히 내려가는 택시의 창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너머의 타쿠야는 문밖으로 손을 들어 무언가를 흔들고 있었다. 익숙한 지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지갑이 외투에 있었다. 

 

병원비도, 식사도, 택시비도. 내리고 뛰는데 급급했던 그의 뒷수습을 타쿠야가 혼자 해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냥 같이 타고가요." 

 

그 생각이 바뀔 새라 얼른 장위안이 택시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조금 모양 빠지나? 

 

훌쩍이며 훔쳐본 백미러 너머의 타쿠야는 그저 한심한 남자를 향한 불신에 가득 차보였다. 

 

“있잖,” 

 

“말 걸지마요.” 

 

장위안은 조용히 택시의 히터에 손을 녹였다. 

 

 

 

 

녹화장에서 만난 타쿠야는 평소를 떠올리기가 까마득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평소처럼 장위안에게 인사했다. 고개를 숙이고, 빈말뿐인 인사를 하고, 퉁명스럽게 뒤를 돌았다. 조금 바뀐 태도를 알아챈 것은 장위안 본인뿐 이었다. 늘 그렇듯 타쿠야는 피곤한 얼굴로 대기실 구석에서 코디에게 얼굴이며 머리를 맡기며 잠에 들어있었다. 

 

여러번 타쿠야의 근처에서 서성이던 장위안이었지만, 정신 사납다는 현무의 호통에 얌전히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 호통에서도 타쿠야는 눈 한 번 떼지 않았다. 

 

물 흐르듯이 이어지던 녹화가 잠시 멈추었다. 각자 앞으로 돌려진 음료수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취하는데, 문득 뭐가 떠오른 듯 세윤이 그들을 집중시켰다. 

 

 

“우리 하는 프로에서 한 게스트가 그러는데, 자기는 원나잇 상대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대.” 

 

“에엥?” 

 

 

알차게 튀어나오는 리액션에 흥이 난 듯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서양 사람이라 그런거야, 아님 알파라 그런 거야?” 세윤은 민감한 주제를 부드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희극적인 태도여서 그런지, 아니면 그 가벼운 말투여서 그런지. 허공에서 빠르게 여러 시선들이 맞부딪힌다. 

 

그 사이, 장위안은 저도 모르는 사이 타쿠야를 응시했다. 타쿠야도 당황한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허공에서 마주한 시선은 누가 눈치챌세라 급하게 빗겨갔지만, 당황한 탓인지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타쿠야는 아까부터 자기 앞의 음료에서 입을 떼질 않았다. 장위안은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니에요! 그건 그냥 그 사람 성격이죠!” 

 

 

줄리안의 투덜거리는 말에 몇몇 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전부 성적으로 개방적인 건 아니에요, 라는 줄리안의 타박에 세윤이 웃음 지었다. “그래? 난 잘 몰라서.” 휙, 하고 빠져나가는 솜씨도 일품이다. 음료수병을 내려놓으며 시경이 짧은 말을 덧붙였다. 행여 남을 불편함 마저 수거 해가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둘이 말을 시작하니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가볍게 입을 떼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그 프로 세 MC모두가 베타여서 우리는 다 놀랬거든. 우리는 베타니까 알파랑 오메가의 생리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정확한 걸 모르잖아.” 

 

“맞아요, 그건 있죠. 알파랑 오메가들을 글로 설명한 걸 읽어보면 저도 다 헷갈린다니까요.” 

 

“난 특히, 히트 싸이클 설명한 거 보면 내 이야기 아닌 거 같어.” 

 

 

로빈에 말에 알파와 오메가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대화의 화두를 던졌던 세윤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마 그 학자라는 사람이 좀 실없는 사람 인가봐. 라쟈냐 좋아하겠지?" 

 

정규과정 속에서의 히트 싸이클은 저명한 일본학자의 책으로 수업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자 서로가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별거 아닌 언급임에도 제발이 저린 타쿠야의 시선이 슬그머니 다시 장위안을 향했다. 부담스럽게도 타쿠야를 응시하고 있는 장위안이 미간을 찌푸린다. 

 

저러다, 들키면 어떡하지? 저도 모르게 빨대를 잘근거리며 타쿠야가 불안해했다. 제발 시선 좀 돌려요, 형. 저런 연결 고리를 누군가에게 들키는 건 사양의, 사양이다. 

 

“베타가 이해 못해?” 

 

마치 어린 아이의 질문을 들은 양 줄리안은 장위안을 돌아봤다. 불만족스러운 얼굴의 장위안이 도전적으로 그를 마주하자 줄리안은 손가락을 펼쳤다. 

 

 

“개랑 고양이가 네발로 다닌다고 서로 사귀지는 않잖아요.” 

 

“같은 사람이잖아.” 

 

"아, 그러면 베타가 여기, 손등에 달라붙은 검지부터 약지라고 하면 우리 알파 오메가들은 여기 엄지손가락이에요. 크게 보면 같죠. 팔에 붙어있는 거니까. 근데 움직이는 뼈의 시작이 달라요." 

 

“그래서 이해를 못한다고?” 

 

“알파랑 오메가는 자석 같아요, 서로가 편하죠. 베타는 비교하자면 철가루인거고. 본능이 그래요. 베타보다 알파를, 오메가를 더 선택하는 게 우리 본능이에요. 베타에서 여성체가 난자를, 남성체가 정자를 생산하듯이. 알파는 오메가를 위해, 오메가는 알파를 위해 몸이 만들어졌죠. 안 맞은 퍼즐조각 억지로 맞추려는 건 서로 괴로운 일이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줄리안.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는 라이거가 나오잖아. 그것처럼, 베타와의 관계에서 알파랑 오메가 노력이 더 필요할 뿐 인거고.” 

 

성급한 논리를 틀어쥔 것은 알베르토였다. 그 말에 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했다. 어째 더 복잡해진 장위안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알베르토에게 물었다. 

 

“알베, 그러면 같은 조건이면?” 

 

“어?” 

 

“오메가랑 베타가 한명씩 있어. 조건이 똑같아. 그러면 네 입장에서는 누구 고르겠어?” 

 

“글세, 그런식의 논리라면 아무래도 오메가겠지. 잔인하지만 그래. 알파 입장에서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을테니까.” 

 

“모험..” 

 

 

장위안이 중얼 거렸다. 그 곁의 줄리안이 덧붙였다. 

 

 

“베타는 평생 이해 못해요. 알파랑 오메가의 일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그냥,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면 또 모를까..” 

 

 

타쿠야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떨어진 시선이, 다시 타쿠야에게로 향할 때까지, 타쿠야는 음료에 얼굴을 묻었다. 

 

형은 이해 못 하겠지. 

 

 

어느새 새해였다. 

 

당장에 풍비박산이 나던가,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나겠구나 하고 지레 겁먹었던 것과 상관없이 연말이 후딱 지나버렸다. 

 

어색하건 민망하건, 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주 세트장에서는 "후미진 구석방.."멘트가 쏟아졌다. 

 

알파와 오메가들 사이의 기묘한 기류. 특히 알파들의 뒤바뀐 태도는 장위안으로서는 거슬리는 행동이었다. 타쿠야 본인이야 익숙한 듯 굴어대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었다. 일이 터지고서 벌써 3주. 부랴부랴 망가진 휴대폰을 바꿨지만 타쿠야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겨울철 칼바람 같은 냉대였다. 그토록 매몰차게 굴어버리니 애가 닳아 어쩔 줄 몰랐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굴 입장이 아니어서 여러 번 참고 참았다. 

 

그리고 오늘. 

 

공교롭게도 자리를 비운 오메가들과 맞물려, 한자리에 모인 알파들 간에는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리고, 대화너머에서 소외된 유일한 오메가 타쿠야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장위안이 세트장으로 들어섰다. 

 

벌써 삼 주, 야구로 치면 쓰리아웃, 이제는 작전을 바꿀 시간이었다. 

 

타쿠야는 그 분위기가 익숙한 듯 평온한 표정으로 코디의 손에 머리를 손질 받고 있었다. 도리어 경험적은 베타 여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왕따 당하는 걸 목격한 양 속이 불편한 얼굴이었다. 장위안은 굳이 타쿠야 옆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알게 모르게 스치는 시선들이 은근하게 머물다 떠나가자 장위안의 눈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공교롭게도 모여 있는 몇 안 되는 알파들은 장위안보다 어린 동생들이었다. 드넓은 세트장에 굳이 그 자리를 고르니 아는 척 조차 않고 어설프게 대화 볼륨을 낮추는 것이다. 장위안에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넘겨줄 자비는 없었다. 

 

 

"형을 보면 인사가 먼저 아냐?" 

 

 

크지 않은 목소리여도 장위안은 이목을 집중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순간 세트장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어설프게 숙여오는 고개들을 보며 불만스럽게 장위안이 팔짱을 꼈다. 마치 말 안듣는 맹랑한 학생들을 보는 듯 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직업병같았다. 그는 교탁 앞의 선생님처럼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황한 타쿠야의 시선이 장위안을 향했다. 친절한 코디의 손이 떨어졌다. 저 상당히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 괴짜에게 트집잡히기 전에 인사하라는 의미였다. 어설프게 고개를 숙이자, 장위안이 고개를 돌려 타쿠야의 인사만 유일하게 받았다. 

 

 

"형, 안녕하세요.." 

 

"어. 안녕해." 

 

 

장위안의 시선이 불편한 기류의 알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도끼눈을 말리려는 듯 타쿠야가 입을 달싹이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장위안이 투덜거렸다. 

 

 

"난 알파가 제일 싫어." 

 

 

타쿠야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 형이 미쳤나봐. 당장 쏟아지는 이목에 타쿠야가 몸을 움츠렸다. 가만있는 알파들을 상대로, 아니, 왜 갑자기, 하필 알파들에게 칼을 갈고 있는 거야. 어리둥절한 시선들이 장위안에게 몰렸지만 그는 더욱 도전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왜 오메가의 짝은 베타가 아니라 알파인거야?" 

 

 

건너편 알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타쿠야는 손톱을 보는 척, 시선을 내렸다. 

저 아저씨가 미쳤나봐. 

 

왜? 나랑 원나잇 하루 했다고 아주 대자보를 붙이지. 

 

 

 

"형, 혹시 베타라고 차였어요?" 

 

 

친근하게 물어오는 동생들의 질문에 장위안이 불쾌한 듯 그를 째려봤다. 저 난봉꾼도 알파지. 

 

 

"그래, 어쩔래? 이 알파야." 

 

 

쓰리아웃을 만든 당사자는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쓰리아웃을 당한 사람은 되려 당당했다. 

 

 

"뭐, 그 오메가는 제가 좋대요? 내가 알파인 게 죄인감. 그리고 언제는 또 베타 여성 아님 싫다면서요." 

 

 

맞아. 그래놓고서는. 타쿠야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걸 본 장위안이 도끼눈을 뜨며 버럭 소리쳤다. 

 

 

"그땐 얘랑, 이런 관계 아니었어." 

 

"오! 역시 로맨티스트~" 

 

 

타쿠야는 이 세트장에서 “얘”가 타쿠야이고 “이런 관계”를 원나잇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냥 이 아저씨의 서툰 한국어에 그려려니 넘어가주세요. 제발. 

 

얄궂은 놀림에 장위안이 그를 위협하듯 주먹을 흔들었다. 너, 조심해. 타쿠야는 마른 침을 삼키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나를 돌아보며 원나잇 이야기를 떠드는 거 아냐? 

 

 

"예뻐요?" 

 

"뭐." 

 

"아, 그 형 찬 사람. 예뻐요? 아니, 예쁘겠지. 쭉쭉빵빵 스타일이에요? 아님 귀여운 쪽이 취향이신가?" 

 

 

빵빵은 안돼고 쭉쭉 뿐인 자신의 몸 탓에 타쿠야가 손가락을 모았다. 귀여운 쪽도 되지 못하는 제 스타일이 떠오르니 더욱 민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위안은 미간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너는 몰라도 돼. 영원히. 안 알려줘. 머리카락 하나도 안 알려줄 거야." 

 

"왜요!" 

 

"오메가는 알파를 더 좋아한다며. 나는 손등이고 넌 엄지라며? 나는 철가루, 넌 자석, 넌 알파, 걘 오메가. 난 베타." 

 

“헐, 형 지금 저 라이벌로 인정한 거?” 

 

“웃기지마. 너 알파인거 빼면 내가 더 훨씬 더 멋진이거든.” 

 

“멋진이는 또 뭐에요?” 

 

 

장위안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말 걸지마, 알파야. 그래도 안 알려줘.” 

 

“에이, 치사하다.” 

 

타쿠야는 그들이 키득거리며 농담을 나누는 걸 자연스러울 때까지 지켜보다가 마무리 하는 코디누나에게 간신히 화장실을 핑계로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연히 등 뒤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쿠," 

 

"할 말 없어요. 오늘 시간 없어요. 바빠요." 

 

 

등 뒤로 바짝 붙은 장위안을 노려보며 타쿠야가 말했다. 거울 너머의 장위안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거절하는 타쿠야의 불성실한 태도에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냐며?" 

 

"그땐 맨 정신 아니었어요!" 

 

"아, 그럼 맨 정신으로 밥 먹을래?" 

 

 

타쿠야는 세면대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었다. 거울 너머의 장위안이 타쿠야를 응시하고 있었다. 끈질기다, 끈질겨. 저러다가 진짜 대자보라도 붙이는 거 아냐? 

 

타쿠야, 보아라. 이러면서. 

 

 

"밥 말고, 술이나 먹죠." 

 

 

팔자 좋게 밥 넘어갈 시간이 없다. 술이라도 넘어가야 이야기가 통할 상대다. 

 

최소한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이 괴상한 관계를 매듭지어야 했다. 

 

 

 

 

눈을 떳을 때 문득 소름끼치는 데자뷰를 느꼈다. 낯선 천장. 옆자리의 더운 온기. 

깨질 듯 한 두통, 울렁이는 속. 

타쿠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데자뷰는 무슨. 삼주전이랑 똑같잖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또 잤어? 또, 또 섹스했다고? 또? 

 

 

"안 했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깬 장위안이 더듬더듬 휴대폰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패닉에 빠진 타쿠야의 어깨를 두드렸다. 

 

타쿠야는 장위안의 두드림이 마치 천둥처럼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타쿠야에게 단호히 말했다. 잠긴 목소리가 타쿠야의 귀를 두드렸다. 축제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퍼졌다. 

 

 

"그냥 이야기하다 술 마셨고, 서로 취했고. 너무 취해서 숙소를 기억하지 못했고." 

 

 

기지개를 펴며 장위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제야 타쿠야는 스스로가 외투를 제외한 옷들, 허리띠며 양말이며 할 것 없이 전부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가 후회할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 

 

 

혼란스러운 얼굴의 타쿠야가 이불을 그러쥐었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으려 애썼다. 억제제가 뒤섞였던 지난번과는 훨씬 양호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거의 전무했다. 

 

 

"앉아." 

 

 

타쿠야의 눈을 곧게 응시하며 장위안이 말했다. 장위안의 눈을 보고서야 타쿠야는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타쿠야는 장위안이 또 다시 결혼하자며 몰아붙일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는 사뭇 진지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대화를 시작했다. 마치 휩쓸리는 기분이었으나, 결국 타쿠야도 그를 따라 진지하게 대화에 임했다. 대화의 시작은 장위안의 사과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당시의 감정, 생각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장위안은 더욱 솔직 하려 애썼다. 꾸밈없는 말투였기에 오해할 것 같아서 그는 여러 번이고 말을 멈추며 생각에 잠겼다. 마찬가지로, 타쿠야도 진솔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은 스스로를 방어하려 어설프게 가시들을 내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 없이 증흑적 으로 대답했다. 

 

장위안은 충동적인 감정은 어쨋든 진실이라 호소했다. 지루한 설득과 공방이 대화로 이어졌다. 

 

그러던중, 여전히 필터 없이 이어지던 대화에서 타쿠야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내가 아니었어도 됐잖아요?" 

 

 

그 순간 장위안은 명백히 상처받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눈을 보니 후회라는 감정이 타쿠야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오메가였다면. 그랬어도 당신은 이랬을까? 이랬겠지. 결혼하자고, 임신이었는지 확인하려 병원을 들락거렸겠지. 

 

 

"그럴지도 모르지." 

 

 

솔직했고 진솔했지만 결국 타쿠야의 답은 '아니다'였다. 이쯤 되면 고집은 누가 부리는지도 헷갈렸다. 개중 가장 어지러운 것은 눈앞의 타쿠야였다. 그것이 장위안을 힘들게 했다. 

 

 

"그랬을지도 몰라." 

 

 

마치 맞불이라고 놓듯 장위안이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었고, 속이 배배꼬인 말을 한 건 타쿠야가 먼저였지만, 결국 상처받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장위안은 도전적으로 타투야를 쏘아보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장위안은 저도 모르게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눈물을 보면 바닥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장위안을 깊은 심연으로 내쫓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막연한 감정이 느껴질 리가 없다. 

 

 

"미안, 미안해. 거짓말이야." 

 

 

어설프게 사과는 이어졌다. 

 

 

 

타쿠야는 자리를 도망치려 했다. 겨우 이런 일에 눈물을 터트린 게 수치스럽고, 불편한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았다. 현관으로 몸을 던지는 타쿠야를 마찬가지로 몸을 던져 막아낸 장위안 이었다. 

 

 

"잠깐, 잠깐만.." 

 

"뭔데요!" 

 

 

날카롭게 치켜뜬 눈, 새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에 장위안이 잠시 말을 멈췄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타쿠야는 소리쳤다. 

 

 

"그러면 됐어요, 이걸로 끝내면 되지! 그냥 모른 척 해요, 서로 영원히 없던 일로 하면 되잖아요!" 

 

 

서로 상처 되는 말이 자꾸만 쏟아지고 깨졌다. 

장위안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 입을 덮었다. 그것은 충동이었다. 영원을 약속하던 일이 어제 같은데 그 끝이 너무 짧다.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 입을 막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의 머리 속을 덮은 것은 우습게도 영화였다. 진정 시키려 남자 주인공의 멋드러진 키스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더욱 좋아지는 두 사람의 관계.. 

 

다만 허락받지 못한 입맞춤의 대가는 막연한 상상만큼 가벼운 뺨 한대 수준이 아니었다. 

 

장위안은 시야 일부에서 보인 명치로 날아온 무릎에 어, 하는 짧은 반응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인 장위안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시야가 암전 됐다. 

 

장위안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수 분 후였다. 알싸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배를 웅크리다가, 힘겹게 눈을 뜨니 타쿠야가 침대에 기대어 몸을 저를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울었어?" 

 

 

동시에 뱉어진 물음에 서로가 가볍게 실소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쓸면서 장위안이 말했다. 타쿠야는 지친 얼굴로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내가 죽었을까봐 무서웠어?" 

 

 

장난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타쿠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스해도 돼?"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선 타쿠야가 급하게 외투를 입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냉정한 거부가 익숙해진 장위안은 순순히 손을 떼었다. 

 

 

"잘 가." 

 

 

사실 붙잡았다가 당한 상처가 크다. 그러다보니 잡을 엄두도 못 내고 장위안은 누워서 배웅했다. 듣는 둥 마는 둥 날듯이 도망친 타쿠야 대신, 멍든 명치를 쓰다듬으며 장위안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날 밤 큰 결심을 하고 들춰본 상의자락 아래의 배에는 흉한 멍이 들어있었다. 

 

이거 어디 낯부끄러워서 병원이라도 가겠나.. 

 

 

 

 

"나, 아파." 

 

 

장위안의 말에 타쿠야가 그를 흘겨보며 엄살을 부리지 말라 타박했다. 방송국의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장위안이 스스럼없이 옷을 올려보였다. 험할 만큼 크게 잡힌 멍자국을 멍하게 보던 타쿠야가 곧 그것의 출처를 떠올리고 경악했다. 

한국어를 잊기라도 한 듯이 덜덜 떨던 타쿠야가 간신히 속삭이듯 물었다. 

 

 

"병원 가봤어요? 뭐래요? 괜찮아요?" 

 

 

장위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죽을 거 같다니까. 

 

타쿠야는 어쩔 줄 몰랐다. 배가 아파서 크게 웃으면 아프고, 밥 먹어도 아프고 뒤척여도 아프다는 장위안의 말이 이어질수록 타쿠야의 시선이 흔들렸다. 허공에서 엉거주춤 멈춰있던 타쿠야가 조심스럽게 그 멍 위로 손을 얹었다. 

 

찡그리는 장위안의 미간을 보고서야 타쿠야는 손을 떼고, 그대로 도망쳤다. 

 

 

 

멍 없애는 법. 

멍 지우는 법. 

..컨실러로 그 경계를 지우면 돼! 선배들한테 많이 맞은 신입생들에게 꿀팁~ 서이추는 비댓! 

...가리는 법 말고 지우는 법.. 

타쿠야는 그날 밤 잠을 못 이루었다. 그나마도 신빙성 없는 생활정보 글들을 읽으며 그는 시간을 보냈다. 일본어로 검색해야 하는데 매니저 형의 휴대폰은 일본어 검색이 안 된다. 

 

 

“형, 여기를 쎄게 때리면..” 

 

“명치? 거기는 맞으면 죽어.” 

 

 

단호한 매니저 형의 말에 타쿠야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타쿠야는 이전처럼 날카롭게 그를 대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관계는 그렇게 지속 되었다. 죄책감을 가질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따금 장위안이 웃다가 땡기는 배를 쓰다듬으면 타쿠야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생각했던 전개는 달랐지만 확실히 키스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장위안은 이왕 터진 일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질척한 키스로 이어진 효과는 아이고, 그의 몸을 희생하여 만들어진 결과였지만 어쨌든 조금 관계가 풀린 기분이었다. 다만 철옹성의 주인이 대포를 잠시 성 안으로 들렸다 뿐이지 여전히 대치상태는 이어졌다. 

 

어설프게 이어지던 관계의 종지부는 결국 마무리 지어졌다. 철문을 두드리니 결국 열린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예 퇴근길의 수순이 타쿠야의 숙소를 향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관계의 진전은 점차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지진부진 이어지던 관계를 오로지 직진과 엑셀을 밟으며 끌어가던 장위안에게 타쿠야는 점차 휘말리는 자신을 깨달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은 후였다. 

 

 

 

 

*아쉬워서 더 쓰는 그 후의 관계* 

 

 

타쿠야는 그대로 벌렁, 침대에 누워버렸다. 밥이고 뭐고 간에 허리가 아프다. 출렁이는 침대마저도 고통스럽다.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반은 강요였다. 반은 자의였다. 

 

이렇든 저렇든 그다지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방금의 섹스는 나름대로 기준에 부합되는, 뭐랄까. 어느 정도 틀에 들어가는 섹스였던 것 같다. 평범한 연인처럼. 

 

장위안은 가만히 숨을 골랐다. 부드러운 이불 위로 웅크린 타쿠야의 등을 응시했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흔적들, 여러번 훑었던 척추, 입을 맞추었던 갈비뼈. 

 

이불이 부드러운 재질임에도 스칠 때 마다 괴로웠다. 

 

 

“아파?” 

 

어느새 죄인이 된 남자가 말을 건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침대가 조심스럽게 출렁거렸다. 타쿠야는 웅크렸던 몸을 폈다. 이불에 얼굴을 묻었는데, 온몸이 쓰라렸다. 

 

"배고픈데." 

 

"조금만." 

 

남자의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 허벅지, 종아리, 허리에 어깨까지. 새벽까지 이어졌던 관계였다. 게걸스럽게 발끝까지 타쿠야를 탐했던 밤의 기억을 떠올리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장위안을 차곡차곡 메꾸어 갔다. 

 

담백하게 주물러오는 안마는 아릿한 고통을 주었지만 편안했다.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사람이야. 미친 짓이야. 

 

 

“결혼, 할래?” 

 

“하아..” 

 

 

다시 몸을 웅크리며 타쿠야가 한숨을 쉬었다. 이 미친 아저씨, 진짜. 

 

 

그때 알베르토가 말했다. 자기는 사귀는 내내 프로포즈를 제외하면 결혼을 암시하는 단어조차 안 썼다고. 

 

친하게 지내면서 저거나 좀 본받아라. 타쿠야는 장위안을 노려보며 짜증을 냈다. 

 

 

“말 걸지 마요.” 

 

 

*쓰고 나니 더 아쉬워 더 쓰는 그 후의 관계* 

 

 

"아직도 결혼 하고 싶어요?" 

 

 

저질렀다. 타쿠야를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정리했다. 

추운 겨울, 따듯한 입김을 뱉어내던 남자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순간 얼어붙었다. 놀란 기색의 남자가 삐그덕 거리는 몸짓으로 타쿠야를 돌아봤다. 

타쿠야는 그 순간, 분하게도 스스로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해줄꺼야?"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타쿠야를 응시했다. 조금 올라간 목소리가 기뻐보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큰 것은, 마치 심술궂은 어린 아이를 달래는 듯한 표정이었다. 

 

 

"싫어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타쿠야를 원망하며 그가 투덜거렸다. 

 

 

"왜?" 

 

"내 나이에 무슨.." 

 

 

힘없이 이어지는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장위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사실, 타쿠야의 변명은 막무가내인 장위안에게 점차 힘을 잃고 있었다. 이따금 장위안의 이론을 듣고 있노라면, 

그래, 나이가 무슨 상관있나, 같은 어설픈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힘이 없더라도 표정만은 단호한 타쿠야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장위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린 아이를 살살 달래는 듯한 표정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되려 심통난 얼굴에 가까웠다. 

 

 

"아! 같이 살고 싶다!" 

 

 

버럭,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장위안의 모습에 놀라 타쿠야가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 기백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타쿠야를 내버려 둔 채 장위안이 회한에 젖었다. 

흐지부지 새해가 되어버렸다. 나이도 먹었다. 타쿠야와 같이 있다. 결혼하고 싶다. 옆에 있는 남자의 온기가 필요했다. 

차가운 겨울, 검은 하늘을 노려보던 장위안이 곧 시선을 타쿠야에게로 돌렸다. 

씩씩 거리는데서 뿜어지는 입김 사이로 장위안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얼른 장 타쿠야로 만들고 싶다!" 

 

"뭐, 뭐라는 거에요." 

 

 

목도리 아래로 얼굴을 묻으며 장위안이 빠르게 그를 스쳐지나가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올해 안에는 테라다 위안 되고 싶다!!" 

 

"이 아저씨, 진짜 미쳤나봐!" 

 

"같이 좀 살자, 좀! 장 타쿠야로 한 번만  

 

 

살아봐, 좀! 테라다 위안으로 한 번만 살게 해줘라, 좀!" 

 

 

"아, 형! 왜 그래요, 진짜!" 

 

 

낯선 충동질이 건드려놓은 벌집에 타쿠야는 진땀을 빼야 했다. 

빠르게 달려가며 소리 지르는 장위안의 입을 막으려 타쿠야도 달렸다. 나이는 못 속이듯, 금세 붙잡힌 장위안은 자신의 허리춤에 닿은 타쿠야의 손에 힘을 주었다. 

진심인데. 

목도리 아래로 얼굴을 가리며 장위안이 투덜거렸다. 결혼 좀 하자, 내꺼라고 자랑 좀 해보자. 그 손가락에 가락지 한 번 끼워보자, 좀! 

장위안은 같이 있기 부끄러운 남자다. 눈치도 없고 고집도 세다. 직설적으로 대화하고, 꾸밈이 적어 오해를 많이 산다. 그의 선택은 늘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타쿠야는 그 순간 안심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결국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과 달리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손을 잡는 남자를 보면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남자는 늘 그렇듯, 직설적으로 타쿠야에게 고백해왔다. 

 

 

"너랑 결혼할거야." 

 

 

이런 고집도 결국 받아들일 날이 올 것 같았다. 

 

 

"너랑 결혼 하고 싶으니까." 

 

"형은 좀 미친 거 같아요." 

 

타쿠야는 첫 관계부터 지금까지 생각했던 말을 내뱉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다이어트 한답시고 고구마만 먹다가 사이다 한 캔 한 것 처럼. 

 

"알아." 

 

 

*** 

 

..뭔가 아쉬워서 살을 덧붙이고 그러다보니 어색해서 뼈대 다시 세우고 

 

독자입장에서 제글을 읽으며 독자님들이 원하는 글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는데..하.. 

 

그래도 역시 원나잇이다보니까..그 불편한 관계를 쓰도 싶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를 쓰다보니까 의미없이 길어지고 재미없길래 과감하게 자르고 그냥 급하게 마무리한거 같네요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럼20000 

 

ㅅㅅ묘사는 너무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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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장탘의 매력을 몽땅 드러내는 글이네여 진짜. 포인트가 아깝지않슴다 무엇보더 캐릭터가 개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갖춰서 진짜 기쁨다 이거는아마 제 레전드로남을것같네여 쓰니 좋은 글 고마워요~~~!!
9년 전
독자2
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이공ㅠㅠㅠㅠㅠㅠㅠ최고예요최고!!ㅠㅠㅠ 보통 타쿠야는 버림받고 상처받고ㅠㅠㅠ 그래서 안타깝기도하고 속상했는데!!ㅠㅠㅠㅋㅋㅋ 여기선 위안이 계속 배려해주려고 하고 사랑주는 모습이 넘 보기 좋았어용ㅎㅎㅎ 계속 튕기는 타쿠야ㅎㅎ 지금 상황에 당연한 반응인데 귀여운건 왜죠?ㅋㅋㅋ 둘이 아웅다웅 하는거 사랑스럽기도 하고 재밌었어용ㅎㅎㅎ 이런 불편한 관계(?)ㅎㅎ 다뤄주셔서 더 현실감도 느껴지구요~ 생각해보니 원나잇으로 시작한 관계라 이런 과정 충분히 거쳐야 더 견고해지겠더라구요 마지막 대화까지 투닥투닥ㅋㅋ 웃기면서도 달달한 그런 느낌!!ㅎㅎㅎ 그렇지만 가볍지 않고 진지한 느낌이 드는게~ 암튼 다! 짱짱입니닷!!ㅠㅠ
9년 전
독자3
휴ㅠㅠㅠㅠㅠㅠ베타오메가ㅜㅜㅜ기다렸는데 기다리길잘했네요ㅠㅠㅠㅜ타쿠야 이제 행복해ㅜㅜㅜ
9년 전
독자4
겨론해라그냥ㅠㅠㅠㅠㅠ내가 예식장도 빌리고 웨딩드레스도 빌리고 신혼여행도 보내줄게ㅠㅠㅠㅠㅠ그냥 겨론해라!!!!!!!ㅠㅠ장탘 행쇼해서 다행이야ㅠㅠㅠ번외까지 써주실 줄은몰랐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려요ㅎㅎ
9년 전
독자5
베타오메가!!!!!!!!!!!! 이 명작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ㅠㅜㅜㅜ 뒷편이 나올줄은 몰랐는데 완전 명작이네요ㅠㅠㅜㅜㅜㅡㅜㅜㅜ
9년 전
독자6
ㅜㅜㅜㅜㅜ너네가 결혼안하면 누가 결혼하겠니ㅜㅜㅜㅜ타쿠야 너 너무 튕기는거 아니니 싶다가도 이해가되고 직설적인 장위안도 귀엽고..잘봤어요!!
9년 전
독자7
장위안과 타쿠야의 성격케미가 아주ㅠㅠㅠㅠㅠ 장탘이들의 모든 매력을 끌어모으면 이런 느낌일까요. 한동안 앓덕... 앓앓...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장탘수니로써 이런 글 읽을 수 있다는게 감사해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빕니다. 문체도 캐릭터도 모두 취향저격... 윽...
9년 전
독자8
으앜ㅋㅋㅋㅋ 순탄하지 못한 연애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거야? 완결이라니 아쉽지만 뒷편을 봐서 너무 좋다ㅠㅠㅠㅠ
9년 전
독자9
와 이게 제 장탘 영업글이라 계속 외전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드디어 외전이 나오다니ㅠㅠ 타쿠야가 좋다며 끝까지 책임지려고 쫓아다니는 슈슈나 그런 슈슈가 부담스러워 도망가는 탁구나 너무 귀여워요 여기선 두 사람의 현실적인 성격이 엿보여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ㅠㅠㅠ 특히 슈슈 같은 남자가 답답하기도 한데 그 책임감이 귀엽기도 하고 그래서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어요. 알오물인데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예요ㅠㅠㅠㅠㅠ 보통 원나잇이라고 하면 쾌락 하나로 맺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여기서는 우연히 갖은 원나잇 하나로 얽히고 섥히다가 결국 행쇼로 이어지는, 그런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이 글을 완결 지어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ㅠㅠㅠ
9년 전
독자10
진짜 그 뒤가 어떻게 될까 진짜 궁금했는데 이렇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11
와.. 진짜 대박이예요 무지막지하게 들이대는 장위안이라니ㅋㅋㅋ 진짜 이렇게 심하게 귀여우면 불법 아닌가요?ㅋㅋ 타쿠도 이제 사랑 받으며 행복할 일만 남았고.. 진짜 너무나 사랑스런 커플 잘봤어요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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