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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씨?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연이군요. 식사는 하셨나요." 

 

느긋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다니엘 린데만은 가만히,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뒤를 돌아보면, 목소리만큼이나 속터지는 얼굴을 한 이태리 남자가 저를 보고 있을 것이다. 보자마자 터질 욕설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그저, 심호흡을 하는것 뿐이었다. 다니엘 린데만은 이토록 감정표현에 연약했다. 우연은 무슨. 뻔뻔하게도 우연을 입에 담는 남자의 태도에 다니엘은 화가 났다. 

 

 

 

"이런, 안 하셨나보네요, 잭씨." 

 

 

-이자식은, 

 

 

 

"같이 밥이라도 먹죠. 잭, 음, 잭다니엘씨?" 

 

 

분명히 스토커야. 

 

차로 40분 거리의 마을까지 쫓아온 이태리 남자는 느긋하게 건너편에 앉아 술을 시켰다. 다니엘의 어설픈 가짜 이름을 입에 담으며. 

 

 

 

 

다니엘 린데만은 평소 사감 유니폼을 벗으면 유독 인상이 뒤바뀐다. 그것은 옷이 주는 느낌보다도, 표정, 분위기, 제스쳐까지 모두 딴사람 같기 때문이었다. 특히 평소 사감으로서 행동하는 모습을 본다면 결코 상상할 수 없을만큼 공과 사의 구분이 정확하고 종이의 양면처럼 달랐다.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넘긴 머리와, 가볍고 캐주얼한 옷차림, 자연스럽게 게이바를 들어가고, 붉은 조명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다. 게이바 내에서도 뉴페이스의 등장에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그는 제게 집중된 시선이 익숙한듯, 태연하게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이름을 물어오는 상대방에게 듣기에도 우스운 가명을 내뱉는 게 아닌가. 평소답지 않게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 순간 '잭'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다니엘을 보며 알베르토가 결국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오늘의 조사는 이걸로 끝이었다. 

 

 

"잭씨?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연이군요. 식사는 하셨나요." 

 

 

딱, 하니 굳은 남자의 등을 보고 여유롭게 바에 기댔다. 크게 움직이는 그 등이, 심호흡이라도 하는 양 들썩인다. 어렴풋히 훔쳐봤던 다니엘의 '작업'을 떠올린 알베르토가 실소하며 흥미롭게 그를 응시했다. 

 

 

일그러진 눈매 하며, 찡그린 얼굴하며. 

 

 

"같이 밥이라도 먹죠. 잭, 음, 잭니엘씨?" 

 

 

참으로 재밌는 남자가 아닌가. 

 

 

 

 

 

다니엘은 역시나 별다른 대꾸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방금까지 작업하던 남자를 뒤로한 채 주저없이 바를 나올뿐이었다. 알베르토는 저에게 가져오는 칵테일을 '다니엘의 작업 대상'에게 기꺼아 양보하며 재빨리 뒤를 따랐다. 

 

 

다니엘은 자연스럽게 뒤로 바짝 따라오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인기척에 의식적으로 주머니속 호신용 잭나이프를 그러쥐었다. 

 

 

인기척이 없는 주차장에까지 와서야 다니엘은 뒤늦은 반응을 보였다. 

 

 

"뭡니까?" 

 

"그냥 식사부터 합시다. 잭다니엘씨." 

 

 

 

씨익, 웃는 얼굴의 이태리 남자가 다니엘이 한 손에 쥔 차키를 빼앗았다. 성가시다는 얼굴의 다니엘이 평소와 다르게 넘긴 머리를 만졌다. 귀중한 휴일을 이런일에 낭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철저한 약자인 다니엘은 얌전히 그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게이바에 고스란히 두고 온 그 취향의 남자에게 가있었다. 

 

 

 

 

"그런데, 식사로 무얼 드실 생각이셨나요?" 

 

"미국." 

 

 

 

다니엘은 무심코 아까까지 작업중이던 아메리칸 억양의 백인 남자를 떠올리고 말을 뱉았다. 순간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을만큼 충동적인 발언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간신히 꾸며낼 수 있었다. 틀린말도 아니었다. 하얀 피부. 큰 손. 큰 키. 정장 차림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오늘 밤 그의 침대를 데워줄 남자가 될 것이라는 걸. 

 

 

"흠. 미국이요? 셰프로써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지나칠만큼 눈치가 빠른 남자는 다니엘의 숨겨진 뜻을 알아챈듯 짖궃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니엘은 입술에 살짝 이를 올려놓았다가 다시 떼었다. 어린 아이들을 볼때면 그가 느끼는 것은, 표정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시선을 피하고, 눈이 떨리고, 마른 침을 삼키면서, 입술을 축이는 그 행동들은 하나같이 말해준다. 긴장했어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요, 와 같은 표정은, 다니엘이 알기에 가장 연약한 감정 표현이었다. 

 

 

"그렇게 좋은 상태의 식재료는 아니었거든요." 

 

 

다니엘은 성가신 대답을 하는 알베르토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불편한 마음이 먼저였다. 사실, 그가 불편한 것은 아마 직업병에 가까워서이다. 늘 비판 받는 것보다, 비판 하는 것이 익숙한 다니엘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먹게 된 음식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어떠한 사전동의도 없이 진행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생각할 새도 없게 만드는 남자의 능글맞은 태도 탓일 것이다. 

 

 

 

자리에 앉고서 웨이터와의 심도깊은 대화 끝에, 다니엘의 취향은 조금도 반양되지 않는 메뉴를 시킨 후에야 그는 다니엘을 응시했다. 그때까지 다니엘은 식당의 와이파이를 사용하여 스마트폰으로 당장에 부를 수 있을 법한 섹스프렌드를 찾고 있었다. 

 

 

"잭은 또 뭐죠?" 

 

 

"무슨 말씀이신지?" 

 

 

 

한박자 늦은 대답과, 스마트폰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니엘의 시선에 불쾌했는지 알베르토가 탁자를 두드렸다. 다니엘은 무심코 그 소리에 알베르토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고서야 다니엘은 그가 남들을 집중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손에 쥔 스마트폰의 끊임없는 알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알베르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한 채 그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재능이었다. 누군가의 이목을 집줄 시킨다는 것은.. 

 

 

"아까, 그 미국 말입니다. 혹시 잭 린데만, 그게 본명은 아니죠?" 

 

"아." 

 

 

다니엘은 가까스로 자기가 내뱉은 가명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생각했다. 멍청하게 한 번 불리고 말 본명을 솔직히 내뱉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웨이터가 따라주는 물을 움켜쥐며 그가 중얼 거렸다. 

 

 

"다니엘 린데만이 진짜입니다. 물론." 

 

 

다니엘은 앉은 상태여서 유독 튀어나온 잭나이프를 더욱 깊숙히 밀어넣었다. 끝없이 알람이 쏟아지는 휴대폰에 시선을 빼앗길 새도 없었다. 남자의 눈은 그를 세차게 비난하고 있었다. 최소한 다니엘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불편한 남자와, 불편한 자리에 있으니 속이 쓰렸다. 

 

 

"제가 게이인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다니엘은 도전적으로 말하면서 의식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물을 따르던 웨이터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웨이터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쏟아졌다. 시선을 돌리니, 놀란 기색의 웨이터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뒤를 돌았다. 다니엘의 시선이 닿지 않은, 아마도 동료끼리의 술자리에서 쏟아질 독일 출신의 동성애자에 대한 욕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아뇨, 저는 그저 흥미 일뿐입니다." 

 

 

 

뒤이어질 말이 예상되어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아이들의 '감화'에 신경쓰시는 분 아니십니까?" 

 

 

 

담백한 어조의 조롱에 다니엘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언제나 그의 성적 취향은 약점이 되었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마저도 괴롭힐 수 있는 나약한 부분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은 비밀이다. 찔리면, 부셔질까 두려워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그런 약점이다. 늘 그렇듯이 다니엘은 깊게 침묵했다. 

 

 

 

성적 취향이 남다른 아이들은, 차별을 받는다. 

 

 

그들은 기숙사에 룸메이트를 들일 수 없다. 비공식적으로 다니엘 린데만과의 감화 교육을 수강한다. 

 

 

그리고, 그 수업 담장자 다니엘 린데만 사감은 게이다. 

 

 

 

 

 

이따금 감이 좋은 아이들은 그것을 눈치 챈다. 단 둘이서 진행 되는 수업 시간이면, 눈치 빠른 이들은 당돌히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게이야. 그렇죠?" 

 

 

놀란 그가 숨을 몰아쉬면서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말한다. 

 

당신의 눈. 당신의 손. 당신의 입술까지. 모든게 말하고 있죠. 아름다운 소년을 보면, 떨리는 그 눈가가. 잘생긴 청년에게 긴장 하는 당신의 손아귀가. 당신은 우리와 동류에요. 다만 우리는 그 물살에 몸을 맡기지만, 당신은 그 사이를 거슬러 오르죠.. 

 

 

 

반응이 없으니 느낄 재미도 없다. 순식간에 사감의 탈을 쓴 채 숨죽이고 있으니 알베르토로서 건드릴 엄두도 못내었다. 

 

 

 

 

 

"하실말씀은, 그게 끝입니까?" 

 

 

 

알베르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장장 40분 거리의 교외에서 이어진 스토킹 헤프닝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싶었다. 

 

 

 

 

다니엘은 식사를 계산하겠다는 알베르토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쏟아진 알람들을 다시 켜는 다니엘의 앞에, 아까의 웨이터가 섰다. 그는 힐끔, 알베르토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작은 쪽지 조각을 건넸다. 

 

 

다니엘은 마치 시험지를 걷는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을 받아들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달아나는 새하얀 얼굴을 보며 다니엘이 입맛을 다셨다. 

 

 

 

취향이 아닌데. 

 

 

 

게다가 느긋한 건 취향에 맞지 않다. 다니엘은 후식으로 나왔던 치즈 케이크의 맛이 입안 가득 남아있어 기분이 상했다. 펼쳐진 쪽지에 적혀있는 일련번호와, 이름을 중얼 거리면서 다니엘이 휴대폰에 저장했다. 블레어, 블레어. 블레어. 

 

 

 

 

 

"아이들에게 설탕을 주지 마십시오." 

 

 

"뭐라고요?" 

 

알베르토는 조금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다니엘은 짜증난단 얼굴로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설탕 말입니다." 예의 그 일이 있은 직후, 다니엘은 단 한 번도 식당으로 발걸음하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그를 기다리던 알베르토는 맨 처음, 그와의 대화가 어느정도 공적인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주제가 설탕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통솔은 새로 온 일리야 사감에게 마치 일임한듯이 굴던 그는, 새하얀 물통을 손에 쥐고 식당에 달려 온 것 같았다. 

 

 

"지금까지 충치로 외출증 끊은 아이들이 스물 여섯 명 째입니다." 

 

 

그러고보니 그가 들고 있는 하얀 물통은 어느모로 보나 불소 통이었다. 어린 아이들의 불소배급을 하다가 달려온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밖고 뒤를 돌았다. 

 

 

"절대 주지 마십시오." 

 

 

알베르토는 조금 시선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개미 같잖아, 설탕으로 꼬여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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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헐??? 정말 그 기숙사 작가님 맞으신가요....ㅇㅁㅇ 너무 오랜만이잔아요ㅠㅠㅠㅠㅠ 다니엘 사감이라니여ㅠㅠㅠㅠ알독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은혜로운 글 감사히 보겠습니다
9년 전
독자2
헐 기숙사썰... 되게 오랜만이네요ㅠㅠㅠ 알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
9년 전
독자3
헐 기숙사라니 대박 설마 그 기숙사 하고 들어왔는데 진짜 그 기숙사라니 작가님 사랑합니다 일단 큰절받으시고 평생 복받으실겁니다 사랑해요
9년 전
독자4
어머어머 처음 읽었는데 분위기 어쩔ㅠㅠㅠ좋네요ㅠ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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