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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홍 전체글ll조회 725

 “…….”

 

 

 ……여긴…어디지? 눈을뜨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것은, 온통 새하얀 천장……아, 그 유명한 천국이라는 곳인가? 아까의 기억대로라면 나는 분명히 죽어서 그런 끔찍한 ‘고통’을 당한것이 맞을테니까…….…그러고보니 승현이는, 역시 죽었을까…아니, 아니야. 잘만하면 미수에 그쳐버렸을수도 있어. 아직 살아있을수도 있어.…애써 작은 희망에 매달려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만약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라고 생각하니 가슴한켠이 욱신거리는게, 이제 더이상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곳이 천국일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다른사람에게 그렇게 끔찍한 고통을 겪게만든 나같은 인간이……천국에 올 수있을리가 없잖아.

 

 

 “…아,아…….”

 

 

 …그리고, 조금 갈라지기는 했지만 목소리도 멀쩡히 나오는 걸 보니, 일단 천국이든 지옥이든 일단 죽은 건 확실한 것 같아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이래뵈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송승현이 죽는다고 그렇게 좌절했으면서, ‘그런 장면’을 본 주제에, 상당히 멀쩡하잖아.…그 장면을 떠올려도, 그때와 같은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된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에대한 회의감이 다리부터 온몸을 감싸며 올라오는것을, 어리석게도 나는 모르는척하고 있을수 없었다.

 

 

 “…씨발…….”

 

 

 지독한 혐오감과 자기회의에 낮게 읊조리며, 이 와중에도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어차피 평범한곳이 아닐것은 뻔하지만, 아까부터 소독약 냄새가 코끝에서부터 진동을 하고있는게 굉장히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지옥주제에 새하얀 천장을 하고있는것도 웃기고, 거기에 끔찍이도 싫어하는 소독약 냄새라니……아, 혹시 내가 싫어하는걸 알고 일부러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도록 만들어놓은걸까. 지옥이니까. 그래, 옆에 가습기도 보이고 그 옆에는 링겔병도……뭐?

 

 

 “……!”

 

 

 흠칫 놀라 나도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니, 그제서야 주위의 풍경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링겔? 가습기? 그런게 왜 이런데있는거야?……거기다 링겔은, 내 팔에 연결되어있기까지 했다. 확실히, 나는 병원을 끔찍이도 싫어했다.……어렸을적 병이걸린 아버지때문에, 거의 매일이다 시피 병원에 들락날락거리며 혹여나 오늘 돌아가시는게아닐까, 오늘은 아니니 내일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속에 파묻힌채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그렇기때문에 입원실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코끝을 자극하던 빌어먹을 소독약냄새도, 거의 혐오한다싶을정도로 싫어하게 되어버린것이고.

 

 

 “…으…응?……뭐야, 방금 뭐가 움직인거야…….”

 “……?!”

 

 

 ……송승현?…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도대체……. 만약 이게 지옥이 맞다면, 아마 내 생각보다 지옥을 관리하는 ㅜ군가들은 상당히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더불어 심리학개론까지 전공했을것이고. 심각하기 짝이없는 상황과는 꽤 어울리지 않는 안이한 생각이었지만, 우습게도 그것은 한점의 거짓도 없이 정말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아니라면 말이야, 이렇게 절묘한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리가……없는거잖아.

 

 

 “……홍기형?”

 

 

 새카만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만큼, 승현이는 이상할정도로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한 채 마치 이세상에 없는것을 보기라도 한 듯 몽롱한 말투로 그렇게 물어왔다. 여기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으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갈 것 같고, 그렇다고 말을 하자니 무슨말을 해야할지 감을 잡을수가 없고. 점점 더 새하얗게 질려가는 승현이의 안색에, 더이상 가만히 있었다가는 일이 생겨도 제대로된 일이 하나 터져버릴 것 같아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던 승현이는 그대로 일어나 문으로보이는것을 쾅, 하고 열어젖히며 그대로 달려나가버렸다.

 

 

 “선생님!!!!!!!”

 

 

 ……어떤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애타게 찾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뛰쳐나간 승현이가 똑바로 닫지도 않아 닫히려다말고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금새 다시 열려버린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걸까. 나는 죽어서 지옥에 왔고, 그 지옥에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며 괴롭혀왔던 송승현과 함께 하필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병원에서 가장 싫어하는 냄새를 맡으며, 평생 살아가기라도 하라는 형벌을 받기라도 한것인걸까. 피식, 바람빠진 웃음이 흘러나왔다.……명색이 형벌인데, 지은죄에 비해서…너무 시시하잖아.

 

 

 “선생님, 여기요! 여기!!!”

 

 

 빨리오세요!! 하는 승현이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복도에서는 탁 탁 탁 탁 하고 순서대로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는 몇개의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곧이어 승현이가 사라졌던 입구에 나타난 의사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숨을 삼켰고, 그것은 뒤따라오던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치 신기한 생물을 관찰하기라도 하듯 위아래로 나를 주욱 훑어보던 의사가 곧이어 무슨 기계같은것을 끌고온 간호사들과 함께 병실 안으로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놀라울 정도군요. 어제만해도 상태가 심각했었는데…이렇게 갑자기…….”

 “…….”

 “…아무튼, 계속 이 상태로만 간다면 며칠정도만 안정을취하고 금방퇴원하실 수 있을겁니다.”

 

 

 기계로 몸을 검사하기도 하고, 놀란듯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맥박을 만져보기도 하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밖에 나가있던 승현이가 어느새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내 침대 옆에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말을 마친 의사는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병실 문을 빠져나가고, 간호사들도 기계들을 전부 챙겨 금새 의사의 뒤를 따라나가니 결국 남은것은 승현이와 나 단둘 뿐…아니, 아까의 그 소동에 뭔가 하고 달려나와 내 병실 문 앞에 진을치고있는 환자들까지……꽤 다수가 될 수도 있는건가.

 

 

 “…….”

 “…….”

 

 

 무슨말을 해야할 지 알수가 없어서, 또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하는지도 도저히 감을 잡을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떨군 채 그저 손가락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복도 밖에서 간호사들이 웅성거리는 환자들을 자신들의 병실로 돌려보는소리와 밀려난 환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마저 사라지고 나자 새카맣게 불이꺼진 복도는 다시 침묵속에 물이들었고, 우리 둘은 그렇게 몇분이고 아무말도 하지않은 채 고개를 떨구고만 있을뿐이었다.

 

 

 “…홍…기혀엉…….”

 

 

 먼저 선수를 친 것은, 끝도없이 계속될 것 같은 그 침묵을 뒤로한채 느닷없이 고개를 치켜들었던 승현이었다. 그리고 그 울먹이는듯한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며 나도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나고 말았다.……울지마, 제발, 나때문에 싸우지마, 내가, 내가 전부다, 전부다……잘못했어. 잊고있던 고통이, 바로 방금 전까지만해도 몰랐던 흐느낌이, 중얼거림이……다시한번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채, 나를 불안감에 떨도록 만든다.…확실히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면, 이곳이 정말 지옥이 맞기는…맞는 모양이었다.

 

 

 “형…나는, 형이 정말, 정말 죽어버리는 줄 알고…….”

 “……어?”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와, 마디가 새하얗게 질릴정도로 꽉 쥐고있는 주먹을 보며 불안감에 떨고있던 귓가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흘러들어와 일순 놀라면서도 나는 멍청하게 되물어보고 말았다.…아니, 하지만 방금 뭐라고……그런말은, 지금에와서 이상하잖아……나는 정말로, ‘죽어’버렸을텐데…. 승현이의 얼굴과 그 말을 듣는순간, 마치 손목을 긋고 막 '죽었을 때'와 같은 완벽한 혼란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분명히 죽은게 맞을텐데…그냥 조금 리얼했을 뿐인 꿈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이렇게 멀쩡하게 나오는 목소리도……아직까지도 소름이 돋으리만치 생생한 괴로움도……모두 너무나 이상할 따름인데.

 


 “……홍기형은, 일년동안이나 잠들어있었어.”

 “……?”

 “…저녁을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길래…문까지 잠궈놓고. 왠지 걱정이되서 비상열쇠를 찾아…원빈이형이 데리고 나오려고 들어갔는데…데리고 나오라는 사람은 안나오고 홍기형 이름만 미친사람처럼 게속 불러대는거야…….”

 

 

 ……같았다. 내가, 그곳에서 '고통'을 받을때 보게 된 장면과. 완전히라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것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지옥……인건가? 정말 내가 죽었고, 승현이는 혹시 기억을 조작이라도 당해서…착각이라도 하고있는건가? 멍청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끝은, 결국 그것이 한계였다.…죽지 않은것이라 간단히 넘기기엔, 석연치않은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고……또, 또……

 

 

 “그래서 구급차에 실려가고 수술실에 들어가서 몇시간이나 나오지 않았었어…굉장히 힘든 수술이었다고…겨우 살아나긴 했지만 혼수상태에 빠져서…언제 깨어날지 모르고……또, 또…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상태가 급변하고……당장 어제만해도 사경을 해맸었는데…끄윽, 끅,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승현이,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미안해서……고마워서. 일단 나는 생각하는 것을 제쳐둔채 가만히 승현이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억누른 흐느낌만을 잇사이로 겨우 흘려대던 승현이는 내가 자신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한것을 경계로 어느순간부터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으어어엉- 하는 커다란 울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형…형, 정말 다행이야……정말…죽지않아서……정말 다행이야…….”

 “……응…응, 미안해…미안해……형이 정말…미안해.”

 

 

 등을 토닥거리고, 스무살이 넘어서 멀쩡한 떡대를 가지고있는 두 남자가 부둥켜안은채 엉엉 울고있는 풍경이 가히 보기좋은것만은 아니겠지만……어쩔 수 없었다.…그래, 잊자. 잊어버리자. 그건 그냥 악몽이었고, 개 꿈일 뿐이었던거야. 그냥 잊어버리고, 그런일은 없었던것처럼……그렇게 살자. 목소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나오는 점도, 지금까지 가슴 한켠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고통도……전부 넘겨버리자. 모르는척 지나쳐버리자…그래. 그러는거야. 그리고, 또 하나. 나를 억누른채, 묘한 감정으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 한심하게도 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고 있었던……

 

 

 “……내가 정말, 미안해…….”

 

 

 ……‘그’에대한 미련까지도, 전부…지워버리는거야.

 

 

 

 

 

***

 

 

 

 

 

 “이제 몸은 좀 괜찮아?”

 

 

 꽤나 다정한 말투로 물어오는 재진이에게,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하자 재진이도 따라 웃어주며 사과 하나를 입에 넣어주었다. 입안에 퍼지는 시원하고 달달한 감각에 나도모르게 작게 미소지으며 우물우물 사과를 씹고있자니, 어쩐지 힘이 풀린 듯 허탈하게 미소짓고있는 원빈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에 말은 하지 않고 ─사과가 입에 있었으니까.─ 고개만 갸웃거려 궁금하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다시한번 허탈하게 미소지으며,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것으로 원빈은 대답을대신하고 있었다.

 

 

 “…….”

 

 

 …놀랐다. 밤에는 면회시간이 벌써 지나서 ─승현이가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미인계 같았다.─ 다른 멤버들은 차마 달려오지 못하고 대신 새벽부터 츄리닝 바람으로 달려든 멤버들을 끌어안고 우는 재진이와 민환이를 달래주고, 희철이형과 함께 득달같이 달려와 너 머리통을 사정없이 휘갈기는 원빈이, 준형이를 비롯한 쪼코볼 멤버들한테도 사과하고. 울먹거리는 희철이형을 보며 문득 어렸을적 아버지를 보며 느꼈을 불안을 이사람들이 나때문에 고스란히 느꼈을것이 미안해……나는 다시한번, 사람들 앞에서 엉엉 목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음-.”

 

 

 그리고 아마도 내가 제일 궁금해했을, 목소리가 멀쩡히 나오는 이유는……기적이라고 했다. 그냥, 기적이라고. 분명히 완벽하게 목소리를 잃었어야만 하는 병이고…고칠 수 있는 방법도, 나을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었는데……어느날 갑자기. 정말 거짓말처럼 씻은듯이 목 정가운데에 떡하니 자리잡고있던 병의 원인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고. 믿을 수 없는말이란 걸 알지만 정말이라고. 의사선생님도 당황하며 말했다고…횡설수설 설명하는 민환이를 웃으며 쓰다듬는 것으로 나는 ‘믿는다’고 말해주었고, 민환이는 다시금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에 안기는것으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그건 단순히, 꿈이었던걸까……. 조그맣게 중얼거리고선 "뭐?"하고 물어오는 원빈이에게 웃으며 아니- 아무것도- 하고 대답해주고선, 싱거운놈. 중얼거리는 원빈이에게 시선만은 고정시키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몸의 의지를 배반한채 다른생각으로 돌아가기 바빴다.……최종훈, 이라는 이름이었지…진짜 엄청 잘생겼었는데……다리도 길고 몸도 날렵하게 빠져서, 구김살 하나 없는 블랙수트가 굉장히 잘어울렸고 조각같은 새하얀 얼굴로 차가워보이는 은테안경까지…완전 예술이었지…^.

 

 

 “……아!”

 

 

 아니,글쎄. 이러면 안된다니까! 생각하지 말라니까, 정말 꿈일 뿐이었다고! 그냥 꿈도아니고 완벽한 개.꿈!! 스스로를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고 심지어는 미친놈처럼 혼자 화를 내기까지 해 봐도…안 돼는건, 그냥 안돼는거였던 모양이다. 조금만 멍때릴 시간이 나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그의 흔적들을 쫓아가기 바빴고,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보려 병실에서조차 몸을 바쁘게 움직여보고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 멍때릴 시간을 만들어버리게 된달까, 빌어먹을 이홍기가.

 

 

 “…안녕히…주무십시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었지. 아까부터 계속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원빈이는 오만상을 찡그린채 옆에 다소곳이 앉아 사과를 깎고있는 재진이에게 야, 저놈 진짜 미친거 아니냐? 후유증으로 머리가 이상해졌다든지…. 하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신경쓸 겨를조차 남아있지 않고있었다.…맞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계속 벽을 두드리는 나를 끌어안고……나즈막히 그렇게 속삭였었……어라.

 

 

 “……!”

 

 

 그래, 맞아. 피투성이 손! 그렇게까지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면, 큰 상처까진 아니더라도 은흉터 비슷한것 정도는 남아있겠지! 어쩐지 기쁨에 잔뜩 들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나는 이불속에 숨어있던 오른손을 꺼내들어 고통은 느끼지 못했지만 분명히 피가 흘렀었던 그 부분을 왼손으로 감싸안은채 눈을감고 작게 쉼호흡을했다. 그 모습이 어지간히도 이상해 보였는지, 줄곧 원빈이의 말을 무시하던 재진이조차 형…진짜 위험한거 아니에요? 하고 슬그머니 원빈에게 귓속말을 보낼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

 

 

 …아아…, 역시. 상처는 없구나. 피식. 바람빠진 웃음을 지으며 아까까지만해도 그렇게 쿵쾅거리고 생기있게 뛰었던게 거짓말같아보일만큼, 심장은 재빠르게 식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그래, 남아있을리가 없지……그건 역시, 꿈일 뿐이었는데. 바보같이…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기대를 해버린걸까……어차피, 헛된 기대에 실망하면서 혼자…아파할게 뻔했을텐데.…보통 꿈은, 쉽게 잊혀진다고들 하는데……역시 일년에 걸쳐서 꾼 장기적인거라 그런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쉽게……잊혀져 줄 생각을 안하네. 하하.

 

 

 “여어- 홍시홍시 이홍시- 형님이 오셨다-”

 

 

 역시, 저 복도 끝에서부터 어쩐지 시끄럽더라니.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기분이 좋지 않을때의 버릇이다. 아무래도 내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자기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아 토라진 모양이었다.─ 투덜거리는 원빈이를 이건뭐야? 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가볍게 무시한 희철이형이 웃으며 과일바구니를 불쑥 내밀었다. 니가 좋아하는, 메론이다! 이 형님의 은총을 받들거라! 하는 말에, 평소같았으면 신이나 맞장구쳤겠지만……이상했다. 온 몸에 바람이 빠져버린 행사장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져서 기운은 하나도 없고, 일상이 시시하게만 느껴진다. 지금만큼은.

 

 

 “아…고마워요, 형.”

 

 

 결국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모으고 또 모아 바람빠진 웃음을 지으며 과일바구니를 받아 옆 테이블에 올려놓는것으로 장난을 대신하자, 꽤 병신같은 개드립을 기대했던 ─그만큼 내가 메론을 좋아하는것도 있었다.─ 것인지 의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유있는 동작으로 옆에 놓여있던 간병인용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서, 장난이라도 치듯 웃으며 묻는다. 우리 이쁜 홍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왜그렇게 풀이죽어있어?”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기운이 좀 없어서…….”

 

 

 그리고 다시 웃어보이자, 희철이형도 내가 쉽사리 얘기해주지 않을것이란걸 눈치챘는지 그 문제에 대해 더이상 언급해오지는 않았다.……이래서 내가, 희철이형을 좋아할 수 밖에는 없는거야. 아까만 해도 그렇게 맛있었던 사과가 맛기는 한걸까 싶을만큼 아무맛도 나지 않는 사과를 한입 더 깨물어먹으며,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최대한 머릿속에서 그에관련된 일을 밀어내보려 애를 쓰고 또 썼지만, 언제나 그렇듯……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하게 몸을 조여오는 거미줄처럼…오히려 머리 한구석에 참 깊숙하게도 박혀버린 채, 빠질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그’는.

 

 

 “……오-호라-”

 “……? 뭐야, 형 왜그래요? 아까부터 이홍기를 계속 훑어보더니, 이제는 변태같이 웃기까지 하면서……”

 “변태라니, 우주 대 스타 희철님한테 그런소리는 함부로 하는게 아니야-.”

 “…그치만 우주 대스타라기보다는 누가봐도 옆집 변태아저ㅆ……”

 “시끄럽고!…우리홍기, 아까부터 왜그렇게 기운이 없나- 했더니, 연애고민이구나?”

 

 

 흠칫, 놀라 나도모르게 어깨를 굳히며 습관처럼 뒤로 물러나자 무슨 헛소리에요. 하고 낮게 읊조리고있던 원빈이도, 사과를 깎다말고 잠깐 멈칫했던 재진이도, 심지어는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낸 희철이형까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말았다.…아……짜증나, 쪽팔려. 사람도 얼마 없는데 왜이렇게 쪽팔리지? 거기다 이건 연애고민같은게 아니라……그냥, 그러니까, 그냥……으아아악!!!

 

 

 “……흐-응, 우리 홍시. 좋아하는 사람 생겼구나?”

 “아…그, 그런거 아니에요!!!”

 “얼굴이 빨개져서 진짜 홍시같이 익어버렸는데 뭐- 숨길필요 없어. 자, 이제 모두 다 이 형아에게 털어놓아라.”

 “그,글쎄 그런게 아니라…!!”

 “그래, 예를들자면-”

 

 

 이 새빨간 키스마크의 주인까지 말이야!! 아까 혼자 발버둥치다 단추가 하나 풀려있었던건지, 병원복 사이로 훤히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씨익 웃는 희철이형의 말에 재진이는 과일을 깎던 칼을 챙, 소리가 나도록 병실 바닥에 떨어트리고, 원빈이는 무심하게 넘기고 있던 잡지책을 찢어버리고, 나는 손에 들고있던 사과를 침대에 떨어트려버리고 말았다.……키스…마크? 잠…깐만요 형님, 지금 그게 무슨 봉창두드리는 소리……인건가요?

 

 

 “……네?”

 “에이- 시치미때시기는, 여기 우리 홍시의 예쁜 목덜미에 떡 하니 자리잡고있는 붉은 자국이 이렇게 훤히 보이는데도 부정하려는건가!”

 “아니,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키스마크 같은걸 모르는걸요…. 중얼거리는 내말은 완전히 무시해버린 채, 달려들어 내 목덜미를 확인하던 재진이와 원빈이가 어쩐지 불편해보이는 기색으로 입을열었다.…진짜네, 이거……누가보나 완벽한 키스마크잖아. 그 작은 동의의 표시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희철이형이 자, 누구냐! 이런 기막힌 테크닉을 가진 누님은! 앗, 혹시 내가 찜해놨던 옆병동에 쭉쭉빵빵 간호사누님은 아니겠지? 하며 넉살좋게 웃는것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멍해져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원빈이면 몰라도 재진이가 이런걸로 장난칠만큼 짓궃은 애는 아닌데……혹시, 모기에라도 물린건가?

 

 

 “저기, 그러니까 키스마크같은건-”

 

 

 ……난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요? 하고 다시한번 더 부정하려는데, 굳게 닫혀있던 병실의 문이 드르륵- 하고 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 소리에 내 모기소리만한 주장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 뭐야. 하필이면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문을 연게 누구냐고. 아직 회진을 돌 시간은 한참이나 더 남아있었기에, 나는 당연히 문병인일것이라 단정지으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는 재진이와 원빈이, 희철이형을 따라 이제는 부드럽게 밀려닫히고 있는 병실 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

 “…어라? 처음보는 얼굴인데…우리 홍시한테 이렇게 미남친구도 있었나? 너네는 알아?”

 “……누구?”

 “원빈이형…몰라? 이상하네…나도 처음보는 얼굴인데……?”

 

 

 놀라서 굳어진것은, 당연하겠지만 오로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여전히 몸에 딱맞춘듯 구김살하나 없는 블랙수트를 걸치고, 그 조각같은 얼굴에 차가운 인상을 심어주는 은테안경을 쓴채. 손에들고있는 어울리지도 않는 푸짐한 꽃다발을 어깨에 걸치고, 보기만해도 사람하나는 족히 홀리고 말아버릴 것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있네……저런 미소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 그러고보니. 굉장히 가식적인 냉랭한 미소나…혹은 찡그리고 있는 얼굴이거나.

 

 

 “……저는 자살체험과 한국지부 3-2번실 3680번 소속 사자(死者) 최종훈입니다.”

 “……?…뭐…무슨과?”

 “뭔소리를 하고있는거야…”

 

 

 멍하니 중얼거리는 원빈이와 재진이의 말에도 아랑곳않은채, 한번 열린 그의 입술은 닫힐줄은 몰랐다. “지금부터 당신을 저승으로 인도할 소위 저승사자이며,”…그 나즈막한 목소리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나는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병실 바닥에 발을 내딛어 그의 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신이내린 목숨을 겁없이 함부로 내던져버린 당신에게, 그에 합당한 고통을 내릴 고문관이기도 하지요.”

 

 

 ……저기 있잖아, 지금에서야 하는말인데. 나, 당신이랑 있는동안 절실하게 깨달았다? 인간의 자살(自殺)이…또다른 인간에게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수 있는지를 말이야.…그것은 기쁨이 될 수 도 있었고, 혹은 슬픔이 될 수도 있고, 끝없는 괴로움이 될 수도 있고, 지독한 후회도 될 수 있었지. 그리고……때로는, 다른이의 또다른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말이야.……하지만, 굳이 나쁘다고 몰아붙일것만은 아닌건지도몰라. 어떤인간이든 너무나 괴로워서 모든것으로부터 도망치고싶을 때가 있었으며, 가장 손쉬운 방법이잖아?……거기다…‘죽음’이라는 건 말이야……적당한 대가를 조금만 치를 각오가 되어있다면, 평생 다시없을……수많은 가능성과 행복을 만나볼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

 

 

 “…나의……인간.”

 

 

 ……나의, 저승사자님

 

 

 

 

 

fin_

 

 

오늘의 교훈.

 

「그을거면 깔끔하게 긋자.」

 

번외로 옵니다

이제 인티에서 팬픽은 안쓸래요

엡픽따위...엡픽따위....ㅎㅏ...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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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을꺼면깔끔하게긋잨ㅋㅋㅋㅋㅋㅋㅋ완전진지하게보다가빵터졌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센스쟁이..암전히 번외를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작가그대..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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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훈홍팬픽 있는줄 알았으면 볼텐데...................................................볼텐데가 아니라 봤을텐데...............정주행해야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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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살아서다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마지막교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인상쓰고 보다가 마지막에 웃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결이빨라서좀 아쉽지만 번외를 기다리겠어요 !!! ㅎㅎㅎㅎ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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