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PISTOLS 퀴퀴한 냄새가 종인의 코를 찔렀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짐승 특유의. 종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시달린 냄새라 더 이상 맡고 싶지 않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며 발걸음을 빨리 하는 동안 앞도 보지 않고 달리는 모양인지 자신을 눈 앞에 두고도 서둘러 달려오는 형체에 종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머리와 배가 충돌하려는 순간 종인이 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게 영 이상한 모양이었다. 한참동안 달리던 남자아이가 얼굴을 번떡 쳐들었다. 그와 함께 풍겨오는 개 특유의 냄새에 종인이 제 코를 쥐었다. 남자아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다.가슴께에 달린 도경수, 이름 세 글자. 자신을 동글동글한 눈으로 쳐다본 남자아이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는지 입을 크게 벌렸다.
" 고,고고고,고양이? "
고,고고고,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 종인의 눈이 흥미롭다는듯 물들었다. 박찬열에게 속아서 외국으로 나갔다 온 지 2년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괴상한 걸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개와 고양이의 혼현이라니. 경수는 한참동안 큰 눈으로 종인을 쳐다보더니 손목에 차인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화들짝 뛰었다. 무슨 바쁜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종인은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경수를 특유의 나른한 눈으로 쳐다봤다. 한참동안 안절부절 못하다 앞도 안 보고 달려온 것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눈을 굴려가며 주머니를 뒤지나 싶더니, 종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죄송합니다! 하며 종인의 눈 앞에서 멀어졌다. 종인이 의아한 눈으로 제 손에 쥐어진 물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츄파춥스 사탕. 종인의 눈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아직도 개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종인이 빙글빙글 미소지었다. 개 냄새가 더 강하네. 종인은 여러 동물들 냄새 중에서도 유독 개의 냄새를 제일 싫어했다. 호랑이가 속된 말로 고양이 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치 개에 대해 민감했다. 아까 부딪힌 경수도 그랬다. 몸도 쪼그맣고 꼬리도 잘 흔들게 생긴게 영락없는 개 과인데 약간의 고양이의 피가 섞여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양이의 피가 섞여있다면 순진해도 저렇게 순진 해 보일 수는 없을텐데. 아마 고양이의 피가 제대로 섞이지 않았거나, 너무 잘 섞여서 사람을 놀려먹는데 재주가 있는 것, 그 둘 중 하나일테다. 경수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종인이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동안 주위의 온도가 높게 올랐다. 여름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나른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조금 더 나른해진 기분이었다. 종인이 나른한 몸뚱아리를 움직였다. 박찬열에게 빨리 가 볼 생각이었다.
종인이 오피스텔 문을 발로 쾅쾅 차올렸다. 밖에서 들리는 소음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누군가가 후닥닥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특유의 저음과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찬열의 표정이 180도로 달라졌다. 영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종인이 살벌하게 웃으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 종인의 손짓에 한참 쳐다보던 찬열이 따라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참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나 싶더니 찬열이 재빨리 문을 닫으려 문고리를 잡았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종인이 문 틈 사이로 발을 끼워넣었다. 문 안 쪽으로 찬열의 절망섞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종인이 발로 현관문을 걷어내고 오피스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쭐래쭐래 들어온 찬열이 무슨일인데, 응? 하며 연신 불안하게 물어왔다. 너 아직도 해외에 있어야 되잖아. 왜 이렇게 일찍왔어? 하는 찬열의 물음에 종인이 찬열을 쳐다봤다.
" 니가 속였잖아. 해외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며. " " 해외는 넓잖아. 2년만에 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한국에서 찾는게 더 힘들어. 우리나라는 좁잖아. "
찬열의 불만어린 어조에 종인이 눈을 감았다. 어찌됐든 다시 한국을 뜰 생각은 없었다. 타지에서 생고생하느니 차라리 한국에서 반려를 못 찾는게 나았다. 꼭 대를 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종인에게 결혼하라며 보챌 사람도 없었다. 종인이 찬열의 침대 위로 드러눕자 찬열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건데? 자포자기한 심정의 찬열이 종인에게 물어오자 종인이 글쎄. 하며 휘파람을 두어번 불었다. 아직 학교도 입학하지 못했으니 학교에 입학할 생각이었다. " 이 주변에 가까운 학교 있어? " " 내가 다니는 학교… 너 학교 나오게? " 찬열의 물음에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 집에 있어 봤자 도움도 안 될 테고 차라리 학교에나 나갈 생각이었다. 종인이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알았는지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집에 혼자 두는 것보다야 학교에 같이 나가는게 더 마음 편했다. 혼자 있는 동안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그럴 바에야 학교랑 집에 같이 있는게 낫지. 찬열이 종인의 옷매무새를 흘겼다.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한 수트. 어떻게 바뀐게 하나도 없었다. 2년전 한국을 떠난 그 날 부터. 의외인게 경수의 주위에는 맡기 좋은 페로몬이 둥둥 떠다녔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숨기지도 않은. 그런게 더 암컷들에게는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지일관 뚱한 표정으로 자리에 누워있는 모습에 찬열이 기가 막히다는듯 물어왔다. " 너 페로몬 아직 다 제어 못 해? "
" 할 수 있어. " " 그럼 너 일부러 이러고 다닌다고? " 찬열의 멍청한 웃음에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페로몬을 풍기는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찬열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열여덟정도면 충분한 발정기였다. 성인으로 올라가는 단계고, 심각하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언제 어디서든 적정량의 암컷이 꼬일 수 있게 해 놓으려는 수작이었다. 종인의 속셈을 다 알았는지 찬열이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반려를 찾아오라고 타국에 보내놨더니 암컷 꼬시는 방법만 잔뜩 알아온게 괘씸했다. 됐어, 학교에 오지 마. 찬열의 목소리에 종인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떠올렸다. 또 삐졌다. 덩치만 컸지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항상 열등감을 느끼는건지 찬열은 이상하리만치 종인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에 집착했다. 2년 정도 지났으면 다 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천성이 착한 놈이라, 종인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을 것이었다.
" 너 이민 수속은 다 밟았어? "
" 해외에서 친구가. "
끙. 찬열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종인이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아까 부딪힌 아이 이름이 도경수. 경수. 종인이 아, 하고 작게 탄성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경수가 건네 준 츄파춥스를 꺼내들었다. 딸기맛. 입맛도 애기 입맛인 모양이었다. 껍질을 조심스레 까서 입에 집어넣었다. 사탕 특유의 달큰한 향이 입 안을 타고 퍼졌다. 종인이 눈을 감았다. 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종인을 쳐다보던 찬열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때까지 종인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사탕을 우물거렸다. 달콤한 맛이 입 안을 타고 퍼질때마다 종인의 심장이 기분좋게 울렸다. 단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쁘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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