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너무 지루하다. 똑같은 하루의 시작과 끝. 이것이 누군가에겐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남들보다 모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평범함. 그것이 바로 나를 정의하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인것 같았다. 반복되는 나날속에 저런 쓸모없는 단어따위는 지루하다. 모범생 타이틀을 달고 매일을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과는 이제 지겹다는것이다. 그래서 난, 작은 일탈을 결심했다. 이름없는 너에게 01 차렷. 선생님께 경례. 역시 항상 똑같은 끝이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과연 이 아이들 중에서 진심으로 선생님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다들 하니까 혹은 빨리 끝내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간더던지 하는 쓸데없는 이유로 그런거겠지. 실없는 생각을하며 가방속에 문제집들을 챙겨넣었다. 오늘 해야할 공부가 뭐더라. 국어 모의고사 하나 풀고, 그 다음이 뭐였지? “영어 단어 200개 암기. 외운 후, 수학 150문제 풀기. 맞지?” “그래, 영어단어 암기. 어떻게 알았어?” “너야 뭐, 늘 똑같지. 어떻게 하루도 안거르고 그걸 그대로 실천하냐? 볼때마다 대단하다니까.” 늘 똑같다라. 역시 남들 눈에도 내가 그렇게 비춰보였나보다. 하긴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다른사람 눈에는 안그럴리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똑같은 일과. 가방을 챙기는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왠지 오늘은 집에 빨리 가고싶다. 아니, 가야만할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필통까지 챙겨넣고 서둘러 가방을 멨다. “벌써 가?” “왜?” “아니...너 항상 선생님한테 질문하러 갔잖아. 뭔놈의 질문이 그리 많은지 매일 거르지도않고. 근데 오늘은 그냥 가네?” 이상하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이미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찬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변화. 항상 똑같은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미묘한 쾌락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를 내색하지 않은채 인사를 건네고 가방끈을 꽉 쥔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글쎄. 내가 이래도 되는걸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메고있던 가방을 내팽겨쳤다. 입었던 교복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편한옷으로 갈아입은 후, 컴퓨터를 켰다. 원래라면 국어 모의고사를 풀고있을 시간인데 말이다. 변화의 달콤함은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그 미묘한 쾌락이 날 집어삼키는 기분이였다. 한번 시작된 변화는 나를 일탈로 이끌었다. 익숙함. 그것엔 이미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예고치 못한 일탈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정해진 계획은 없었다. 막연하게 아 어디로든 떠나고싶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서 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게 어디든지 지금보다야 낫겠지. 서랍속을 뒤져 통장을 꺼내었다. 쓸일이 있으면 직접 벌어다 썼지 그것에 손을 댄적은 없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돈을 쓸일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열여덟, 그 어린시기에 가족의 부재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대로 나는 내 할일만 하면 될 뿐이였다. 친척들은 이런 날보고 어린애가 벌써 너무 어른스러워졌다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곤했다. 그런 친척들의 도움으로 난 제법 유복하게 지낼수 있었다. “해외로 떠날까? 아니면 그냥 시골로 내려갈까?” 바다 보고싶다. 정해진건 없다. 그냥 내가 내키는대로 하면 될뿐이다. 사이트에 접속해 부산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다. 기차나 버스. 이왕이면 기차가 더 낭만적일것 같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봤다. 복잡했다. 정말 내가 이래도 되는건지. 그냥 늦은 사춘기가 온셈 치자. “작은 일탈일 뿐이에요. 금방 돌아올게요. 미안해요 엄마” 거실 벽면에 걸린 엄마의 사진에 대고 사과를했다. 그래봤자 돌아올 대답이 없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핸드폰시계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6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지금쯤 난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 영어단어를 외우느라 골머리를 앓고있겠지. 이런 생각은 그만하는게 낫겠다. 이미 놓친 일이니까. “부산이 좋겠어. 바다가 참 예쁠테니 말이야. 하지만 사람이 많은건 딱 질색인데.” 부산에 도착하면 배를 빌리던지 해서 섬이나 어디든 떠나야겠다. 워낙 조용한것을 좋아하는터라 사람이 북적이는곳은 좀 곤란했다. 학교에서도 친한 친구 몇명만 남기고 모두 거리를 두니까. 뭐, 그들도 날 친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지금 박찬열은 뭐하려나.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는걸 알까? 알게된다면 반응이 어떨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잠시 고민하다 박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신호음. 이내 그 신호음이 끊기고는 전화기 너머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찬열아, 나 민석이.” “나도 알아. 번호 뜨잖아. 근데 무슨일로 니가 나한테 전화를 다했어?” “그냥. 물어볼게 좀 있어서.” “나한테? 진짜 오늘 무슨 날인가? 김민석이 평소와 다른짓들을 하고.” “장난치지 말고.” “알겠어. 물어볼게 뭔데?” “있잖아.” 만약 내가 똑같은 일상을 탈피하기위해서. 이 지겨운 쳇바퀴를 벗어나기위해서 말이야. “내가 지금 어디론가 떠난다면 어떡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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