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쫓기듯이 대문을 나섰다. 머뭇거리면 마음이 약해져 다시 돌아갈것 같으니까. 항상 그랬다. 엄마의 눈빛을 보면 발가벗겨진 느낌이였다. 그래서 난 어릴적 그 흔한 거짓말 한번 해본적이 없었다. 손목시계를 흘끗 보니 벌써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역에 도착하면 10시쯤 되겠네. 가방을 고쳐메고는 서둘러 역으로 출발했다. “청량리역이요.” 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탄 후 간단히 목적지를 말했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택시 미터기의 숫자가 올랐다. 멍하니 숫자들이 바뀌는걸 보고있으니, 심심하셨는지 아저씨가 대화를 걸어왔다.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이야기. 당신의 젊었을 적이 어땠는지, 지금 아이가 어떤지.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마땅히 할 얘기가 없으니 이에 적당히 대꾸했다. 아, 그래요? 저도요.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에 동조해주면 더 신이나기 마련이다. 한껏 기분이 업된 아저씨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근데 학생은 청량리역에 왜 가는거야?” “저요?” 하마터면 네 그래요 하고 대답할뻔했다. 계속 자기 이야기만 하시더니. 내가 대화를 듣고있지 않은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보듯 뻔했다. “그냥 여행차 가는거에요.” “여행 좋지! 어디로 갈지는 정했나?” “글쎄요. 부산?” “부산 하면 해운대지.” 또 자신이 지난 여름에 해운대를 갔는데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에 머리가 어질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원했는데. 이를 모르고 쉴새없이 말하는 아저씨가 야속하다. 그냥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벌써 목 관절이 뻐근해지는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했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부산가서는...아이고, 벌써 도착해버렸네.” “얼마에요?” 아저씨는 간만에 말동무가 있어서 좋았다며 아쉬운 내색을 비췄다.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더니 아저씨도 따라 웃으셨다. 아저씨는 끝까지 아쉬워하며 막대사탕 하나를 손에 쥐어주셨다. 금액을 지불하고 나서니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맞았다. 시원하네.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유있는 시간에 천천히 광장을 거닐었다. 부산행 열차 승객분들께서는 지금부터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에 따라 승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산한 밖과는 달리 안은 꽤나 북적였다. 뽑아온 예매표를 들고 자리를 하나하나 짚으며 내 자리를 찾았다. 이쯤일텐데, 어디지? “찾았다!” 열차칸 맨 뒤의 구석진 자리. 그곳에 내 표와 똑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굳이 이 자리를 고른 이유는 복잡한걸 싫어하는 내 탓이 컸달까. 짐칸에 가방을 올려두고 자리에 앉으니, 큰 유리창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를 쫓다보니 어느새 출발할 시간이 임박했다. 곧 열차가 출발하오니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벨트를 메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출발이다. 안내방송을 마지막으로 열차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천천히 바뀌는 창밖 풍경은 지하를 벗어나 밤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본게 얼마만이더라. 마지막으로 가족끼리 갔던 여행을 떠올리려다 곧 그만뒀다. 다 부질없는 짓이지. 밤의 도시는 화려했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고요하고 캄캄한 도시와 같은곳이라고 생각할수 없을만큼. 항상 이 시간이면 방에서 인강을 듣고 있을테지. “쓸데없는 생각말고 눈좀 붙여야지.” 앞으로 뭘 해야할지 무슨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지금이 좋았다. 자유는 생각보다 더 달콤했으니까. 내일 학교에서 담임이 한소리 하겠군. 아니면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내 사진을 바라보던지. 어차피 지금은 내 알바 아니잖아? 잠이나 자자. 그 생각을 끝으로 창가에 기대 눈을 붙였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민디] 이름없는 너에게 03 6
12년 전공지사항

인스티즈앱
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