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에 |
음악방송 녹화를 위해 벤에서 이동중인 세훈은 아까부터 자꾸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어제 늦게까지 있었던 스케쥴과 연습의 피곤함에 쓰러진 것 처럼 잠을 잤다.
"아...어떡하지.."
핸드폰만 계속 보던 세훈은 답답함에 아침 일찍부터 샵에 가서 셋팅한 머리를 헤집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곧바로 떠서 다시 핸드폰을 잡고 문자를 썼다.
[미안한데..오늘도 안될 것 같다..진짜 미안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문자 전송버튼을 터치한 세훈은 피곤함에 잠에 빠졌다.
"얘들아 일어나. 다 왔어"
매니저가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멤버들을 하나하나 흔들어 깨웠다. 멤버들은 눈을 비비며 차에서 나왔다. 차에서 나오자 마자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팬들이 "세훈아!" "크리스오빠!" 하며 멤버들의 이름을 불렀고 수많은 카메라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방송국 건물 안으로 들어온 멤버들은 대기실로 향했고 가자마자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세훈은 오늘 따라 유난히 심하게 느껴지는 피곤함에 온 몸이 뻐근해 미칠 지경이었다.
"세훈아 아까 이부분.이부분 틀렸던거 알지?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어?"
"네 형..."
평소에 실수가 많은 편이 아니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안무를 틀리는 세훈에게 준면이 걱정하며 함께 화이팅하자고 힘을 북돋았다. 세훈도 마음만큼은 정말 잘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질 않으니 스트레스만 쌓일따름이었다.
"팬들이 도시락 보내줬어. 먹자!"
평소 세훈과 각별한 사이인 루한이 세훈에게 맛있는 음식이 담긴 도시락을 하나 건냈다. "고마워요 형" 하고는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먹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고 그 동안 멤버들은 옆 대기실에 있는 다른 가수들과 놀기도하고 항상 열심히인 레이는 대기실 구석에서 안무연습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세훈은 핸드폰을 꺼내 답장이 왔는지 확인했다.
[또 그러네...다음에 봐 스케쥴 잘하고 아프면 안돼]
[전화할게]
"왜이렇게 시무룩이야?"
"형.."
"오늘 만나기로 했었어?"
"어...근데 저녁에 스케쥴 잡혀서.."
"너네 둘 어쩌냐... 너도 힘들겠지만 걔는 더 힘들걸..?"
"저도 알아요.."
루한이 오늘도 데이트를 못하는 세훈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마마로 활동할 때도 물론 바빴지만 음악방송이외에는 별 다른 스케쥴이 없었고 그래서 활동중에도 몇번씩 지금보다 쉽게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몇달 전 부터 컴백 막바지에 이르자 세훈은 연습과 컴백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거의 한달을 얼굴조차 마주보지 못했다. 저번주에도 안됬었고 그래서 바로 오늘 만나기로 했었지만 갑자기 잡힌 저녁스케쥴에 또 다시 데이트는 취소되었다. 그녀를 좋아하지만 다른 남자친구들 처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고 연락도 자주 할 수 없어서 마음 한켠에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훈은 오늘도 미안하다는 문자로 그녀를 힘들게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던 밥을 억지로 먹은 세훈은 화장실에서 몇분을 구토를 했고 온 몸에는 힘이 다 빠져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생방송인 음악방송 때문이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순서 다 됬으니까, 조금만 참자 세훈아. 이거 끝나고 바로 병원가자"
"..네"
매니저가 아픈 세훈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매니저의 말처럼 곧 조연출의 입에서 "EXO스탠바이할게요!" 라는 말이 나왔고 멤버들은 둥글게 모여 "EXO 사랑하자!" 라고 외친 뒤 무대로 향했다. 멤버들이 세훈에게 조금만 힘내라며 응원을 해주었고 멤버들과 팬들에게 실망시켜주기 싫어서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열심히 무대위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엔딩을 위해 남고, 세훈은 매니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마자 세훈은 링거를 맞았다. 차가운 링거액이 혈관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피곤했던 세훈은 곧바로 잠에 빠졌다.
"여보세요? 세훈이가 지금 좀 아파서. 병원으로 좀 와줄래?"
매니저는 세훈이 자는 동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녀가 병원에 도착했고 매니저는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병원 밑에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녀는 매니저가 대답할 새도 업이 세훈의 안부를 물었다.
"많이 안좋아요?"
"오늘 스케쥴 꼭 해야돼요?"
"오늘만 쉬게 해주세요..네?"
"저기...."
"네?"
"미안한 말이지만 서로를 위해서라도 그만 만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
"그 동안은 시간을 낼 수 있었어. 근데 이번엔 그렇게 안돼.진짜, 너희 만날 시간이 없어. 이번 활동 EXO에게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서도 정말 중요해.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더 열심히 활동해야 된다 이말이야. 알지? 너네 둘 솔직히 힘들잖아. 넌 일반인이지만 세훈이는 만천하에 알려진 가수고...이해하지?"
"네..."
그녀는 매니저가 마지막으로 세훈이를 보고 오라는 말에 울컥했지만 눈물을 꾹 참고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는 잠에 빠져있는 세훈에게로 갔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만 더 있다가는 영원히 세훈을 놓아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의자에 앉자마자 일어났다.
"어디가"
갑자기 세훈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더 강하게 잡고있는 세훈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결국 우는 모습을 세훈에게 보여줬다. 그녀가 울자 세훈은 더 울고 싶어졌다.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침대 위에 앉히고는 말 없이 안아주기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보기가 이렇게 힘든 여자가 그녀말고 또 있을까. 이제 갓 스무살인데. 데이트 한 번 제대로 하기가 힘들고 만나는 날이 더 할 수록 더 힘들어지는 이 상황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만 좀 울어..내가 더 울고 싶어..보고싶었어..."
세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손가락으로 슥슥 닦고는 그녀를 달래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왜 아프고 그래 걱정되게..."
"너 못봐서 속상해서 병나서 그래. 그래도 이렇게라도 보니까 얼마나 좋아."
세훈은 그녀의 퉁퉁 부은 두 눈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그러던 세훈이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무슨일인가 싶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우리...그만해"
"....싫어"
"나 힘들어.너도 힘들잖아"
"너 나 좋아하잖아. 사랑하잖아 근데 왜 그만해야되는데?"
"나도 평범하게 데이트하고 싶어. 언제든지 나 마중나와 줄 수 있는 남자친구 만나고싶어"
"나도 힘들어.나도 힘든데 매일 너 생각하면서 버티는거야. 네가 보고있으니까. 내가 네 남자친구니까 열심히 하는거야 어?"
"난 안되겠어. 그냥 같은 가수만나. 이쁜애들 많으니까 아무나 골라서 만나면되잖아."
"넌 무슨 그런 말을 하냐? 넌 내가 다른 애랑 만났으면 좋겠어? 어떻게 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몰라. 우리 그만해"
그녀는 애타게 부르는 세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매정하게 떠났다. 세훈은 멍하니 그녀가 떠난 자리만 바라 볼 뿐이었다. 그녀와 그렇게 헤어지고 마지막 스케쥴을 하러 이동중이었을 때 계속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은 받지를 않더니 이젠 아예 전화기를 꺼놔버렸다.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는 자신이 짜증나고 답답하고 이 모든 상황이 화났지만 차에서 내리자 마자 가면을 쓴 것처럼 웃으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세훈은 이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헷갈리는 것 같았다. 힘들어도 내색한번 하지 못하고 수많은 카메라의 관심에 웃어야만 하는 자신이 점점 싫어졌다.
"약 먹고 왔어?"
"몸은 좀 어때?"
멤버들이 세훈을 진심으로 걱정했지만 그게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어서 스케쥴을 끝나고 그녀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인터넷을 하다가 팬들이 남긴 글을 보았다.
'오늘 세훈이 몸 안좋아보이더라'
'걱정되게ㅠㅠ 세훈아 아프지마'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주었지만 그에 따른 악플도 무시무시했다.
'건강도 자기관리인데 연예인이 그거 하나 못해서 어떻게 가수를 하려고 그러나 모르겠다'
'어쩐지 비실비실하게 생겨서는 춤도 설렁설렁 추고.'
수위를 점점 넘어서는 악플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걸 본 찬열이 핸드폰을 빼앗았다.
"이런거 볼 시간에 연습이나 하세요."
찬열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세훈은 찬열을 향해 웃어보였다. 이러쿵 저러쿵해서 스케쥴이 모두 끝나고 세훈은 바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머리색이 튀어서 그런지 밤인데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듯 해서 얼른 택시를 탔다.
"형!!세훈이 없는데요?"
"아 진짜 오세훈이거."
매니저는 인원 수가 많아 미쳐 확인 하지 못한 세훈이 그녀의 집에 갔을 거라고 예상했다.
세훈이 그녀의 집 문을 똑똑똑.하고 노크했더니 그녀가 문을 열었다. 세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순발력이 좋은 세훈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세훈은 오랜만에 오는 그녀의 향기가 가득 베인 집을 둘러보며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으 쳐다보지도 않는 그녀때문에 화가 났다.
"내가 왔는데 보지도 않아? 안보고싶었어?"
"왜 왔어. 숙소로 돌아가."
"너 그렇게 보내고 어떻게 그래. 다시 생각해봐. 어? 내가 더 잘할게"
자신에게 등만 보이고 있는 그녀를 세훈은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느끼는 세훈의 넓은 품이 좋았지만 매니저의 말이 계속 생각나서 금새 품을 빠져나왔다.
"사랑해...제발..우리 헤어지지말자....어? 나 버리지 마..."
세훈과 만나면서 처음보는 표정이었다. 애절하게 애원하는 모습이... 저보다 훨씬 키도크고 덩치도 큰 세훈이 이렇게 작아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세훈은 다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그럼..지금 잠깐 떨어져있다가 다음에..다음에 만나..."
"..."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말...이해 안됬었는데 지금은 이해가되...내가..세훈이 많이 사랑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보내주는거야.알았지?"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내 모든걸 다 바쳐서 사랑해..."
세훈은 계속 부정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남이 더 길어질 수록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며 만나왔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것에서 세훈은 완벽히 깨달았고 사랑하니까...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다. 물론 완전히 보내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음 한 켠 깊숙한 곳에 그녀를 잠깐 숨겨놓는 것이다.
같은 침대에서 같이 잠들고, 해가 뜨자 세훈은 편지를 한 장 남겨두고 연습실로 향했다.
{ 내 맘속에서 널 잠깐만 숨겨놓고 있을게. 다시 찾는 시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 때 까지만 기다려 줘.항상 믿어주고 응원해줘서 너무 고맙고. 너무 사랑해. 우린 끝까지 함께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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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조진웅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