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으로 가는 길, 차 안에는 틀어놓은 라디오의 두 명의 DJ가 하는 대화를 제외하면 적막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보단 이런 침묵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세훈은 말없이 운전에 집중을 했고, 준면은 준면대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을 들으며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빨간색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자 멈췄고, 때를 맞춰 사연 소개가 끝나고 신청곡이 나왔다. 아침 라디오에 보낸 사연의 주인공이 직접 신청한 곡이라기엔 지나치게 신나는 댄스곡이라 조금 의아스럽긴 했지만 그런대로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며 듣고 있었다. 신호가 좀 긴 것 같았다. 지루함에 하품을 하며 창밖만 보고 있으려니 햇빛에 눈이 부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참, 이번에 가서 언제 돌아온다고 했더라.” 운전을 하던 세훈이 라디오의 볼륨을 살짝 줄이고는 말을 걸었다.
“금요일에.”
“2박 3일? 일본까지 가는 건데, 일만 하고 오려고?”
“같이 가는 사람들도 다 3일씩만 있다가 오는데, 나만 놀다 올 순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일본에서 비행기 타기 전에 연락 줘, 데리러 올게.”
“괜찮아. 자기 프로젝트 맡고 있는 거 있다면서.”
“방해 안 되니까, 연락 해. 알았지?”
“알았어.”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준면은 세훈이 줄여놓았던 라디오의 볼륨을 다시 높였다. 라디오 진행자는 1부가 끝이 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어지는 광고에 준면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미련 없이 라디오를 아예 꺼버렸다.
“아, 마실 거 샀는데. 마실래?”
준면은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음료가 담긴 비닐 봉투를 집어왔다.
“뭐 있는데?”
“커피랑 과일 주스. 근데 이거 라떼라서 내가 이거 마실게, 자기가 과일 주스 마셔.”
“그냥 커피 줘.”
“괜찮겠어? 단 거 싫어하잖아.”
“괜찮아, 그냥 줘. 좀 피곤해서 커피 마셔야할 것 같아.”
“알았어, 여기.”
세훈은 준면이 빨대를 꽂아 건네는 커피를 받았다. 세훈이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보던 준면은 자신의 과일 주스에도 빨대를 꽂았다. “많이 달지?” 준면의 물음에 세훈은 “조금.” 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준면은 과일 주스를 마시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면은 정작 할 말을 하지 못 하고 빙빙 돌려 다른 말만 하는 제 자신이 한심해 한숨을 내쉬었다. 세훈은 그런 준면을 조금 신경 쓰였지만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사이 음료를 다 마신 준면은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플라스틱 재질의 음료수 병 윗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번에 일본 가는 거, 박찬열씨도 같이 가나?”
그 순간 준면은 음료수 병을 두드리던 것을 멈췄다.
“…어, 같이 가. 왜?”
“이번에 아예 그 팀으로 합류 했나 보네.”
“응, 어차피 전속 사진작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사진 잘 찍더라. 특히 인물 사진.”
“…….”
두 사람은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의 침묵과는 다른 것 같은 불편한 공기에 준면은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세훈아, 우리… 헤어질까.”
“…….”
“아니, 헤어지자.”
“…조금 더,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건가.”
“이미 많이 생각했어.”
“다른 사람… 생긴 거야?”
“……응,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
“그래…….”
“누군지 안 궁금해?”
“……응.”
준면의 시선이 세훈에게로 향했다. 세훈은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훈의 옆모습을 보던 준면은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집 정리하고 나갈게.” 준면의 말에 세훈이 준면을 보았다. 준면은 꿋꿋이 정면만 보고 있었다. 한참 뒤에 세훈이 “알았어.”라고 답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지겠지.”
6년의 연애.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세준/열준
w.광대
이번 프로젝트부터 참여하는 사진작가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원고 하나 마감하면 또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다들 지쳐있었지만 유일하게 그 사람만 밝은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그 사람이 나서서 분위기를 형성하면 모두들 그 사람에게 매료되어 지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사람을 우리 팀의 전속 사진작가로 쓰기로 했다는 것 같기도 했었다. 덕분에 여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찬성의 목소리를 내며, 그 사람과 일을 하면 일의 능률이 오를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잘생긴 얼굴과 모델 뺨칠 정도의 훤칠한 키를 가진 그는 목소리마저 여자들이 죽고 못 산다는 저음이었다. 거기다가 적당히 가지고 있는 유머감각과 몸에 배어있는 매너까지. 팀의 특성상 여직원이 많아, 그는 머지않아 전속 사진작가가 될 것 같았다.
“준면씨, 사진 다 찍었는데. 잡지에 실을 사진 골라줄래요?”
“아, 알았어요. 찬열씨.”
준면은 멍하니 사진 촬영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가, 찬열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컴퓨터 옆으로 향했다. 찬열은 제 옆에 서있는 준면을 올려다보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접이식 의자 하나를 가져왔다. “여기 앉아요.” 찬열의 호의에 준면은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찬열은 조금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준면은 찬열이 찍은 사진을 보며 잡지에 실을 A컷과 실지 않을 예정인 B컷으로 분류했다. 사진이 전부 잘 나와서 준면은 B컷 사진을 골라내는데 애를 좀 먹어야 했다. 그래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찬열은 손을 들어 준면의 미간 사이를 문질렀다.
“인상 찌푸리지 마요, 주름 생긴다.”
“아. 사진이 전부 잘 나와서, 고르기가 힘드네요.”
“제가 좀 잘 찍긴 하죠.”
찬열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말을 하자, 준면이 찬열을 보았다. “장난이었어요, 장난.”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얼굴에 준면은 같이 웃고는 다시 사진 골라내기에 신경 썼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기에 그저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인물사진도 이렇게 잘 찍어요?”
“그럼요, 원래는 인물사진이 전공이었는데.”
“정말요?”
“네, 그래서 제가 모델들이랑 좀 친한데. 준면씨 이상형이 그 쪽이면 어떻게, 소개라도?”
“괜찮아요, 애인 있어서.”
“어, 진짜요? 와 이거 완전 의왼데.”
“뭐라고요?”
찬열의 말에 준면이 발끈해서 쳐다보니, 찬열이 진정하라고 하며 웃어 보였다.
“준면씨랑 사귀는 여자는 굉장히 억울할 것 같은데.”
“왜요?”
“음… 준면씨가 더 예뻐서?”
“뭐예요, 그게.”
“농담이에요. 음… 남자 애인 이려나.”
찬열이 툭 내뱉은 말에 준면은 사진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장난도 정도껏 해요.” 준면의 말에 찬열은 곧장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려 했지만 손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준면이 화가 난 줄 아는 찬열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어 눈치만 볼 뿐이었다.
“진짜 미안해요.”
“괜찮아요.”
“근데 진짜로, 요새는 워낙에 개방적으로 변했고… 또 모델들이랑 연예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도 있고…… 아무튼 진짜, 진짜 미안해요.”
“화난 거 아니니까 그만 미안해해요.”
준면의 말에 찬열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간만에 일찍 끝난 일 덕분에 준면은 해가 지기도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이 텅 비어있기에 준면은 어련히 지하실에 있는 세훈의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해?” 작업실 문 앞에 서서 묻자, 세훈이 뒤를 돌아보았다. “도면 그리고 있었어, 일찍 왔네?” 세훈의 말에 준면은 세훈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일찍 보내줬어. 잡지에 실을 사진이 죄다 잘 나와서 고르느라 고생했다고. 무슨 도면 그리는 거야?”
“이번에 부탁받은 거, 빌딩.”
“오, 빌딩이래. 아 맞다.”
준면은 일을 할 때 찬열과의 있었던 일이 떠올라 말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찬열이 진심으로 한 얘기도 아니었으므로 그냥 넘기기로 한 준면은, 물음표가 띄워진 세훈의 얼굴을 보고서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커피 타달라고, 자기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잖아.” 준면의 말에 세훈은 알았다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세훈의 물음에 준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하면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별로. 전에 머핀 사다놓은 거 남은 것 같던데, 그거 먹자.”
“그래 알았어. 씻고 와, 준비 해놓을게.”
준면은 세훈의 목에 손을 두르고 짧게 입을 맞춘 뒤,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세훈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머핀을 꺼내고, 원두커피기계를 작동시켰다. 은은한 커피향이 집안을 채우고, 씻고 나온 준면은 맡아지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진 듯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았다. 세훈은 커피가 담긴 잔을 준면의 앞에 내려놓고, 머핀을 그릇에 옮겨 담아 그것 역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준면은 포크로 머핀을 조각내서 세훈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고, 세훈은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준면은 커피 잔을 들고 향을 맡은 뒤에 한 모금 마셨다.
“역시, 세훈이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나는 준면이가 먹여주는 머핀이 제일 맛있는데.”
세훈이 준면의 말을 따라하듯 말하자, 준면은 “그게 뭐야.”라고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튼 이젠 밖에서 커피 못 마시겠어. 오세훈이 쓸데없이 입만 고급화 시켜놨다니깐.”
“그래서, 싫어?”
“싫을 리가.”
준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세훈은 씩, 웃으면서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녕하세요 :) 저를 알아봤어도 그냥 모르는 척 ㅎㅎㅎ 일단 제목이 나오기 전 부분과 제목 나온 후는 시간이 달라요. 6년 간 연애한 세준 사이에 들어온 찬열. 준면이의 최종 선택은 찬열이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결말은 어떻게 될지 기대해주셔도 좋.. 좋아요... ㅋㅋㅋ 참, 그리고 이건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를 모티브로 해서 제목도 같게 했습니다. 또한 이번에는 진짜 길게 써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 대략 15편 내외로 예상 중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글이 올라올 것 같네요! 그리고 암호닉 신청은 2화까지만 받을 예정입니다. 계속 받으면 제가 ... 좀 헷갈려서 ... 사실 뭐, 암호닉 신청해주셔도 음... 그냥 제가 기억하는 것 외에는 ... ... 맨날 글 써드린다 약속 해놓고서 지킨 적이 없어서 말이죠 ㅠㅠ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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