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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이준혁 성찬 엑소
DF 전체글ll조회 754l 3

 

 

 

다정한 목소리로, 그 낮은 목소리로 그는 소년의 어린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소년은 꽉 막힌 수면의 길에서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바로 꿈의 길로 빠져들었고, 남자는 그런 소년을 보며 또 웃었을 게 뻔했다. 그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자, 오늘도 고마워. 어쩌면 소년에게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고 남자가 소년으로 인해 살고 있는것일지도 몰랐다.

 

 

용국은 적어도 몇억을 챙겨 이곳으로 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스무살이라는 충분히 청춘을 즐길 나이에 인간에 질려 도망친 터라 그렇게 환상적인 도망은 있을 수 없었지만. 도주라 해도 자신을 추적할 방법은 무궁무진했으니 용국은 이미 거의 반 이상을 포기한 상태로 천천히 다른 곳으로 떠날 방법을 찾았었다. 그 태도에 아버지는 직접 용국의 별장이라고 칭하며 새 집을 지어주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아꼈고 제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약속까지 한 분이셨다. 용국은 애초에 욕심이 없었고 그 말은 오히려 부담이었기에 집만 감사히 받겠다며 도망치듯 떠났다. 새 집은 이층집이었고, 덩쿨나무를 심어 벽을 타고올라 묘한 분위기까지 났었다. 어머니께서 원래부터 살고 싶으셨다던 곳에 집을 짓다 만 곳이라 자신이 들어오려고 했을 땐 옛날의 그 향수까지 더해 용국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용국은 원래 집에 있던 책장과 새로 산 책장까지 들여 2층을 서재로 만들었다. 책에서 나는 종이의 퍼석퍼석하고도 오래된 향이 용국을 유일히 편안하게 만들었다.

통화가 희한하게도 되는 곳이었다. 용국은 그 귀찮은 전화를 항상 꺼 두었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많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는 일도 많아야 한달에 한 번 남짓, 적으면 일년에 한 번도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차라리 연락이라도 자주 하자던 어머니의 말에 용국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결국 통화를 하게 되었다. 전자음으로 섞여 나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이곳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결국 용국은 항상 가족의 연락을 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삼 년을 지냈다.

 

-용국아, 집에 와서 돈이라도 더 가져가렴.
"괜찮아요. 조금만 더 가면 시장 있어서 그곳에서 싸게 살 수 있어요."
-그 돈으로도 충분하겠니?
"그럼요.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저 끊을게요."


용국은 전화를 피하다시피 끊었고 유일하게 자신이 애용하는 현대형식의 기계인 제 차에 몸을 실어 자신의 집으로 천천히 몰았다. 이 쪽으로 쭉 가면 시장, 동떨어진 집 네 채, 조그맣게 소집된 듯한 마을 하나, 수녀원에서 관리하는 고아원 하나, 분교 하나, 그리고 끝없는 산. 비포장도로가 이젠 익숙하기까지 하다. 외제차로 바꿔 주겠다는 아버지를 극구 만류하고 얻은것도 싼 차는 아니었다. 용국은 집까지 걸어가기 위해서 풀로 무성한 곳에 차를 세웠고, 차 문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내음이 자신의 썩어 빠진 옛 기억들을 모조리 청소해주는 것만 같았다.

용국이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차 문을 소리 나지 않도록 닫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용국이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분리한 후에 산길로 발을 옮겼다. 언제나처럼 산길을 둘러보았다. 왼쪽에는 갓 자라고 있을 코스모스가, 오른쪽에는 노란 수술을 여럿 달고있는 하얀 들꽃이 있는……데, 들꽃이 충분히 만발할 곳에 풀에 물들은 역시나 하얀 옷을 입은 사내아이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용국은 잠시 헛것을 본건가 싶어 눈을 여러 번 비볐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맞았다. 용국은 쪼그려 눈을 감고 있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그를 일으켰다. 한 아름에 그를 안으니 그가 숨을 색색 내쉬는것이 느껴져 살아있다는 것 또한 알아챘다. 용국은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차를 타고 가 고아원에 들려 아이를 잃었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를 안은채로 제 집까지 걸었다. 따뜻했다. 삼 년 간 느끼지 못한 사람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어린아이가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으응……."
"……어,"


집에 거의 다 도착할 쯤에 소년이 잠에서 깬 듯 몽롱한 목소리를 냈다. 용국은 아이를 안아든 채로 제 방까지 데려가 그를 앉혔다. 소년은 눈가를 비비며 반쯤 눈을 뜬 상태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용국은 그 소년의 눈높이로 쭈그려 앉고는 다정하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소년은 용국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꺼려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고아원에 데리고 가지 않길 잘했네. 용국은 창문을 열어 햇빛이 집 안으로 방문하기를 허락했고, 다시 아이의 옆에 앉아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아이는 곁눈질로 용국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영재.


"영재? 나이는?"
"다섯살……."
"이름이 그냥 영재인거야?"
"……유영재요."


영재는 그 대답을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용국은 그 귀여운 아이의 태도에 어쩔 줄을 몰랐다. 맹랑한 재벌가 꼬맹이들만 보고 왔던 터라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용국은 다시 영재를 안아들어 욕실로 데려갔다. 그 때 분리해 두었던 휴대전화 배터리를 다시 연결해 재다이얼을 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어머니의 응답이 들렸고, 용국은 다짜고짜 자신이 어릴 때 입었던 옷들을 전부 보내달라고 했다. 그 와중에 얼굴을 씻기는것까지 같이해 영재는 얼굴을 찡그리며 용국이 얼굴을 물로 적셔주는 걸 그대로 받았다. 행여나 영재가 울기라도 할까 봐 용국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푸른 색으로 물든 옷은 빨아도 색이 지지 않을것이기에 빨지 않았다. 영재는 용국이 씻겨준 후 자신에게 옷을 하나 입혀줄 때에 가만히 용국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이름 뭐예요?"
"나? 방용국."


영재는 대답을 듣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귀엽다. 순수하고 귀여워. 용국은 자신이 굳이 씻겨주지 않아도 충분히 깨끗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안았다. 아저씨랑 평생 살자. 그 말을 영재가 어떻게 받아들였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단순히 같이 사는것만을 생각할 테니까. 평생, 아저씨가 영재랑 같이 있어줄게. 아저씨는 영재가 해달라는거 다 해줄게. 그런 의미, 몰라도 상관없었다.

 

 

영재는 아마도 고아원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버려진 게 더 확실했다. 하긴, 그 어린 아이가 갇혀있대도 도망칠 것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씻을 때에 팔뚝에 든 멍이 가정폭력 또한 예상케 했다. 이 작은 몸을 때릴 곳이 어딨다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때려댄건지, 용국은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그래서 처음 봤을때 그렇게 경계 태세를 보였던건가. 용국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더 이상 그에 관련해 생각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영재는 잠도 잘 못 잤다. 자신의 옆에 뉘여 잠을 청하게 하면 아이는 자신이 자기 전까지 눈을 감지 않았고 자신이 눈을 떴을때도 이미 깨어있었다. 결국 용국이 생각해 낸 방법이 동화책 읽어주기였다. 2층 서재로 침대만을 옮겨 밤마다 책을 골라 읽어주었다. 그건 제 어머니가 자신을 재울 때 쓰던 방법이기도 했다. 자신 역시나 어렸을 때 악몽에 시달려 잠드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그걸 알아챈 어머니가 이솝우화나 동화를 읽어주며 잠들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셔서 결국 악몽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영재는 용국이 책을 읽어줄때면 처음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다가도 끝날 즈음엔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용국은 그렇게 영재가 잠들고 나면 책 내음과 함께 영재를 끌어안고 잠에 빠졌다. 영재는 용국의 동심까지도 찾아주었다.

 

 

용국이 서른 중반에 접어들 때, 영재 또한 벌써 열여섯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용국이 책을 읽어주는것을 좋아했고, 아직도 용국이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용국은 덕분에 산 세계명작 책을 펼쳐들어 영재의 머리맡에 앉아 찬찬히 책을 읽어주었다.


"……그렇게, 줄리엣은 로미오를 따라 목숨을 끊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아직 안 잤어?"
"나 뽀뽀해줘요."


그렇게 본 영재의 눈에는 두려움이라는 게 있었다. 용국은 영재의 앞머리에 가려진 이마를 들춰내 그곳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영재의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졌고, 곧 눈이 감기더니 잠에 빠졌다. 용국은 그런 영재를 보고서야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영재야, 아저씨는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아. 그 말을 조용히 속삭였다. 영재는 아마 잠에 완전히 빠지지 않아 그 말을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것이고.

용국도 따라 잠들려던 차에 그의 휴대전화가 간만에 울렸다. 자신의 형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라 연락도 그다지 잘 하지 않는편인데, 갑자기 연락이, 그것도 이 시간에 와 용국은 불안함이 먼저 들었다. 용국은 서재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고, 그 내용에서는 길고 긴 내용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용국이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용국은 장례식장엔 갈 테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먼저 연락을 끊었다. 영재가 잠들었지만 자신은 끝까지 잠에 빠지지 못하는 밤이었다.


"영재야."
"네?"
"아저씨 잠시만 다녀올게,"
"……어디를요?"
"걱정하지 마, 꼭 다시 올테니까."


용국의 말은 확신이 가득했다. 그 말에 영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용국은 거의 2년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장례식장 안, 그 엄숙함 속에서도 용국을 향한 시선은 끊이지가 않았다. 아버지에겐 죄송함이 끝없었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역시도 컸다.

며칠동안 계속된 식이 끝나고 용국에게 몰리는 기자들, 그리고 회사 고위급 간부들에 그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룹 회장님의 뒤는 누가 잇나, 혹시 용국씨인가, 아니면 용남씨인가, 그룹을 계속 맡으실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방책이 있나…… 용국은 대답을 회피하며 제 차에 올라탔다. 차에 시동을 걸고 유일하게 문자를 보낸 사람이 제 형이었다. 도망가서 미안해, 다음에 말하자. 경영은 너 알아서 해. 무책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서열대로 형인 용남이 맡는 게 맞는 것이었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오히려 자신이 더 의문이었으니까. 홀로 집을 지켰을 영재가 차라리 지금 더 걱정이었다. 용국은 오랜만에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분리했고, 차는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를 지나 비포장도로까지 달려 집으로 도착했다. 집 안에선 자신을 반길 영재가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용국은 충분히 기댈 어딘가가 있어 다행이었다. 차는 언제나처럼 왼쪽 코스모스, 오른쪽 들꽃을 장식으로 해 멈췄다. 용국은 그것보다도 그만큼 하얗고 따스한 영재를 생각했다. 무뎌진 풀길은 평소보다도 더 푸석푸석했다.

 

 

영재는 날이 갈수록 생각이 깊어졌다. 그 사춘기라는 것이 영재에게도 온 것인가, 싶었다. 영재는 그래도 생각보다는 용국이 먼저였고 제 기분보다는 용국의 기분이 먼저였다. 용국은 영재의 자존감을 자신이 뺏은 것만 같아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용국은 자꾸 아팠다. 원인을 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영재가 자신이 아픈걸 아는게 싫었다. 병원에 간다면 진료 절차고 뭐고 따져가며 있다가 결국 영재와 또 떨어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텐데, 영재는 아직 그런 개념까지는 자신이 알려준 적이 없어 무엇인지 모를 테였다. 세상과의 소통을 아예 끊어놓은 아이니까, 용국은 이 상태에서 세상의 악랄함을 보여주기보단 이 상태 그대로 깨끗하게 자라기만을 바랬다. 자신과 평생, 그렇다면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것이 제 바램이고, 제 소망이었다. 다만 영재가 자신에게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길 바랬다. 자신의 삶은 영재에게 거의 내 주었지만, 영재의 삶은 자신이 뺏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저씨, 이 책 읽어도 돼요?"


용국은 서재에서 책을 꺼내와 묻는 영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자신이 알아서 척척 책을 읽는 영재가 대견스러웠다. 그렇다고 밤에 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는건 아니다. 그저 스스로 책을 읽는걸 즐길 뿐이다. 용국은 그 대답 후에 다시 자신이 읽던 책에 고개를 돌렸다가도, 갑자기 몰려오는 고통에 말없이 가만히 굳었다. 용국은 먼저 영재를 살폈다. 영재는 책에 빠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용국은 그 후에 몸을 푹 숙였다. 미칠 것 같았다. 제어하기 힘들만치 아팠다. 머릿속이 아득해졌고 그 이상으론 아무것도 없었다. 용국은 찬찬히 몸을 일으켜 서재 밖으로 나섰고, 영재는 용국의 뒤를 눈으로 쫓다가 자신이 따라간다면 불편해할까봐서 다시 억지로 책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래도 걱정이 먼저였다. 영재는 책장을 넘기면서도 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차지 않았다.

용국은 토기를 느껴 화장실을 향했다. 문을 잠구고 세면대에 그대로 구토했다. 그리고 그곳엔 피가 가득히 고여있었다. 그 모습에 갑자기 현실이 와닿았다.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아프기만 한 게 끝이 아니었다. 용국은 그 생각을 하다가 다시 세면대에 토혈했다. 물을 틀어 그것들을 다 내려보냈지만 머릿속엔 그 모습이 그대로 박혀있었다. 웃긴 게 이런 때에도 이기적이게 영재를 먼저 생각했다. 놓지 못해서 이기적이다. 차라리, 펼칠만큼 큰 날개를 접어두지 말고 그대로 둘 것을 그랬다.


"……영재야."
"……네 아저씨?"
"……아니야."


용국은 눈앞이 흐려졌다. 저 애를 두고 어떻게 가나. 더 이상 어떡하나. 더럽게 아팠다. 다시 입을 열면 핏덩어리가 나올 것 같았다.

 

 

용국이 읽어줬던 책을 다시 찾으며 서재에서 두리번거리던 영재가 길게 용국을 불렀다. 아저씨, 대답이 없었다. 더 크게 불렀다. 아저씨!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영재는 손에 잡힌 책을 가로로 아무 곳이나 꽂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한 눈에 보이는 집 안에서는 용국이 보이질 않았다. 발을 천천히 옮겨 집 안을 둘러보았고, 그러다 소파 앞에 쓰러진 용국을 발견했다. 영재는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저씨, 아저씨. 영재가 용국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영재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용국의 휴대전화를 만졌다. 아무렇게나 만지다가 초록색 전화기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방용남. 그 이름에 영재는 다시금 용국이 보여 정신이 어지러웠다.


-어, 왜.
"……아저씨 아세요?"
-……누구세요.
"아저씨가 쓰러지셨어요."
-네?


툭, 툭. 용국처럼 감정을 쉽게 제어하지 못하는 영재의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떨어졌다. 목소리가 떨려 말도 제대로 전달 못했다. 상대편의 남자는 영재에게 다시 말해보라며 차근차근 말했다. 그 다정한 목소리가 용국과도 같아, 영재는 오히려 더 흔들리기만 했다.


"아저씨가…… 아저씨가 안 일어나요…… 쓰러졌는데…… 안 깨어나……"
-거기 어디예요, 용국이 집?
"네, 아저씨 집인데……"
-기다려요. 곧 갈게요.


용남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영재는 전화를 끊고 다시 용국을 흔들어 깨웠다. 아저씨, 일어나요. 일어나요, 제발. 용국은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따스한 표정이 아닌 차갑게 식어 굳어버린 표정. 아니, 아예 차갑게 식어버린 듯한 몸, 딱딱히 굳은 팔, 다리. 영재는 책에서 본 대로 인공호흡이라도 해야하는가 생각해 용국의 입에 제 입을 대고 숨을 차근차근 불어넣었다. 그렇다고 용국이 깨어나진 않았다. 이젠 영재가 엉엉 울었다. 남자는 자꾸 우는 거 아냐. 열 살 때 놀다가 넘어져 우는 자신에게 용국이 했던 말이다.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자꾸 난다. 영재는 다시 용국의 입에 제 입을 맞췄다. 예전에 자신에게 맞추던 그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아저씨가 느껴지지 않아요. 영재는 덜덜 떨리는 팔로 용국을 끌어안아 목 놓아 울었다.


"아저씨……아저씨…… 일어나요……"


그 순간에, 용국의 집 문이 열리고 용남이 들어섰다. 영재는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고 용국과 똑같이 생긴 용남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용남은 신발을 신은 채 그대로 용국에게 달려와 그를 업었다. 영재는 벙찐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고, 용남은 한쪽 팔로 영재의 손목을 잡아끌며 마당에 세운 차 안에 앉혔다. 아저씨가 풀 죽으니까 함부로 밟지 말랬는데. 검은 고급 외제차가 무참하게 밟은 들풀을 무심코 본 영재가 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용남은 시동을 걸며 차에 속도를 내더니 순식간에 차를 샛길로 몰아 고속도로까지 달렸다.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차에서 느껴보지 못한 속도에 영재는 잠시 꿈을 꾸나 착각까지 했다.

용남이 도착한 곳은 대학병원이었다. 용남은 다시 용국을 업어 병원 안으로 달렸다. 영재도 그를 따라 달렸다. 숨이 찼을 게 당연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용남은 응급환자라며 용국을 제 친구인 듯한 의사에게 달려가 외쳤고, 그는 바로 응급실로 용국을 들여보낸 채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저씨."
"……어?"


영재가 멍하니 용남에게 말을 걸었다. 용남은 지친 모습으로 그에게 대답했고, 영재는 눈에 초점이 없는 채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 왜 아파요?"
"……용국이?"
"네."


용남은 바로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도 분명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용남은 아마도, 아니면 분명히 용국이 위암이 있음이 분명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응급실 앞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둘에게는 외로운 기운이 감돌았고, 그 때,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아까 그 의사가 나왔다. 그의 표정에서, 용남은 이미 충분히 알아챘다. 하지만 영재는 모를 게 뻔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용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왜요? 아저씨 어떤데요……?"


용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영재를 끌어안았다. 꽉 안았다. 용국이 단 한번도 여린 아이라 여겨 그렇게 안지 못한 그를 꽉 안았다. 죽었어요, 용국이. 용남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영재가 굳었다. 아무 말 없었다. 용남은 더 세게 그를 끌어안았다. 용남의 옷이 젖어가는게 느껴졌다. 용남은 그 느낌에 더 꽉 안았다. 영재가 팔을 덜덜 떨며 용남을 안았다.


"……아니잖아요……."
"……."
"아저씨가 평생 나랑 같이 있어준다고 했단 말이예요…… 아니잖아요……."


용남은 제 눈물을 감추기 위해 영재의 머리에 제 얼굴을 팍 묻었다. 영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인정해버린 자신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을수가 없었다.

 

 

남자가 책을 닫았다. 소년은 더 들려달라며 남자를 보채었다. 남자는 그런 소년이 사랑스럽다는듯 한 품에 그를 안았고, 소년은 헤실헤실 웃으며 같이 안았다. 그 포근함이 좋았다. 남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아니, 지금 이맘때 쯤에, 어떤 아저씨가 어린 꼬마애를 데리고 다녔대. 근데 그 꼬마애가 너야. 소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저 꼬마 아닌데요? 남자는 그런 말에 또 웃었다. 그래서 꼬마애라는거야. 남자는 몸을 일으켜 소년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봄 향기가 그들을 감쌌다. 평생 이대로이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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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미더예요ㅜ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주그지마ㅜㅜㅠㅠㅠ좋은픽써줘서고마워요
10년 전
독자2
으엉어ㅓ엉어ㅠ퓨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너무 재밌어요 어어엉ㅇ엉엉어어
10년 전
독자3
와....진짜 너무 재밌어요.....
10년 전
독자4
헐...양말입니다..이글읽으면서왠지제마음이뭐랄까..몽실몽실하네요..넘재밌게읽고가요ㅠㅠㅠ
10년 전
독자5
ㅠㅠㅠㅠㅠ어으어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슬프네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가슴이 두근거리는데 ㅠㅠㅠㅠ눈물이...ㄸㄹㄹㄹ..ㅠㅠㅠㅠㅠㅠㅠ재밌게 읽구가여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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