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나이트
რომანი და ჯულიეტა რომანი არსებობს?
소설로 된 로미오와 줄리엣 책이 여기에 있어?
'거기에 뭐래?' 소녀는 무릎을 짚고 여전히 숨을 가쁘게 고르면서 말했다. '얘 누구야?' 언니는 소녀에게 다짜고짜 그것부터 물었다. '... 친구. 왜?' 소녀는 간신히 허리를 폈다. '아니, 여기서 이런 책을 읽겠다는 애는 처음이라. 그리고, 얘 공용어도 쓸 줄 아네.' 언니는 소녀를 서재로 데려가면서 말했다. '얘 조심해야겠다.' '왜?' 언니는 책장을 이리저리 밀더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공용어를 쓸 줄 안다는 건, 읏차.' 언니는 팔을 뻗어 손가락 끝으로 책을 꺼냈다. '마나를 쓸 줄 안다는 거야. 마나를 사용하는 주문은 몽땅 공용어로 되어 있거든. 그리고 이 책도 공용어로 적힌 책이고. 자, 여기 있다.' 소녀는 언니가 준 책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카이가 있는 방을 향해 힘껏 뛰었다.
소녀는 그날 이후로 언니에게 열심히 글을 배웠다. 카이는 소녀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최대한 모든 걸 몸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카이는 소녀에게 말하고 싶은 게 많았다. 소녀는 카이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카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소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 그래서 소녀는 글을 배웠다. 이제 한글은 완벽히 뗀 소녀가 카이에게 저 어딘가 처박혀 있던 수첩을 꺼내서 당당히 내밀었다. 접이식 책상에 나란히 앉은 둘은 어깨가 맞닿도록 가까이 붙었다.
"나 이제 글 읽을 수 있어! 이제 너 이름 알려줘! 대신 아직 공용어는 안 배워서 한글로 써줘야 해..."
카이는 펜을 들고 글자를 꾹꾹 눌러 썼다. 또박또박 적으려고 애를 쓴 게 티가 난 글씨를 소녀가 소리 내어 읽었다. 카이는 밑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지 펜을 놓지 않았다. 소녀가 수첩을 다시 밀어주자 이름 바로 밑에 물음표가 달린 짤막한 글자들이 소녀의 눈에 들어왔다.소녀는 카이가 내밀은 수첩과 펜을 받아들고 신이 나서 삐뚤빼뚤한 글씨를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 소녀는 펜 뒤쪽으로 라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아빠가 부르던 이름이고,' 이번에는 밑 쪽 마히나를 가리켰다. '이건 엄마가 부르던 이름.' 카이가 펜을 소녀의 손에서 빼간 다음 그 옆에 라는 글씨를 썼다. 카이가 쓴 걸 읽은 소녀는 침대에 기댔다.
"우리 엄마, 아빠는 하와이에서 오래 있었는데 라니는 하와이 말로 천국이라는 뜻이고, 마히나는 달이라는 뜻이래. 뜻이 다 너무 예뻐서 어떤 걸 이름으로 쓸지 내가 태어날 때까지 못 정하셔서 그냥 두 개로 날 부른다고 했어."
카이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카이를 바라봤다. 그 소리에 놀란 건지 카이는 몸을 움찔했다.
"내가 하와이 말을 조금 아는데, 하와이 말로 카이는 바다래. 그래서 라니카이 는 천국의 바다라는 뜻이야. 신기하지?"
카이는 다시 수첩에 글씨를 꾹꾹 눌렀다. 카이가 적은 글씨를 본 라니는 라고 그 밑에 다시 글씨를 썼다. 라니는 카이가 앞으로 계속 어깨를 톡톡 두드릴 걸 알았지만 넘어갔다. 언젠가 한 번도 들려주지 않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겠지.
둘은 벌써 수첩 한 권을 다 썼다. 대화는 주로 카이가 쓰고, 라니가 대답하고, 또 카이가 쓰고, 라니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가끔 거기에 라니가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지만 카이의 말만으로도 수첩 하나 꽉 찰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라니는 이제 카이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안다. 카이는 이제 라니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안다. 라니는 숙소보다 카이의 방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카이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 라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공용어를 이제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 라니는 요 며칠 동안 카이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주고 있다. 로맨스 소설은 처음인 라니는 책 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에게 속삭이는 달콤한 대사들이 나올 때마다 두 볼이 사과같이 영글었다. 낯짝이 두꺼운 카이는 어쩔 줄 모르는 라니의 눈을 맞추려는 장난을 쳤다. 라니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피하다 결국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라니가 뒤로 넘어가 침대에 넘어지고 책으로 얼굴을 가리면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니를 보고 웃었다. 라니는 카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카이는 라니 손을 잡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언제나처럼.
라니는 책갈피 비슷한 걸 만들어왔다. 수첩을 찢어 하트 모양으로 두껍게 접어 책 사이에 끼웠다. 라니는 책을 펼쳤고 카이는 라니의 옆에 앉았다. 라니는 책을 읽기 전에 앞쪽으로 넘겼다. 하트 모양 종이가 접힌 곳에 멈췄다. 라니는 책 표지는 자신의 무릎에, 뒤표지는 카이의 무릎에 올라오도록 옆으로 밀었다. 카이는 라니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부분을 다시 읽었다. 줄리엣의 집에서 가면무도회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있잖아, 아직도 밖에서 무도회를 해?"
라니는 기대에 찬 눈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카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라니의 표정에 실망이 한가득 담겼다. '아~ 나는 아직 무도회를 하면 줄리엣처럼 예쁜 옷이나 입고 가보려고 했지~' 아쉬운 티를 내지 않으려 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느껴졌다. '넌 가본 적 있어?' 카이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라니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중에 하와이에 가면 가봐야지 하고 있었네...' 라니의 말에 카이는 펜을 들었다. 카이가 적은 글을 본 라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여기를 꼭 나가서 하와이에서 살 거야. 언니가 그러는데 하와이가 세상의 끝이래. 그래서 하와이에 갈 거야.' 라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이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라니를 보고 수첩에 다시 무언가를 써서 보였다. 라니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근데 너 춤 알아? 무도회 없다면서.'
카이는 어릴 적 몇 번이나 본 신데렐라에서 춤추는 장면을 되살렸다. 정확히는 되살리려고 애썼다. 카이는 라니를 손으로 가리켰다. 양옆 치마를 잡는 시늉을 하고 한 쪽 발을 뒤로 빼어 몸을 살짝 굽혔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거야?' 라니는 엉성하지만 카이의 액션을 따라 했다. 카이는 오른손을 심장과 어깨 사이에 올리고 왼손을 허리에 올렸다. 역시나 몸을 살짝 굽혔다. '이게 뭐야?' 카이는 수첩을 라니에게 건넸다.
카이는 라니의 허리를 감았다. 라니는 그만 얼어버렸다. 두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벙하게 있는 모습에 카이는 쿡쿡 웃으면서 한 손은 허리를 감은 쪽 어깨에 올리고 한 손은 카이가 잡았다. 카이가 한 발자국씩 천천히 움직였다. 라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이를 따라갔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카이는 라니와 눈을 맞추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리를 감싼 손을 푸르고 맞잡은 손을 위로 올려 라니를 한 바퀴 돌렸다. 라니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카이는 소리 없는 웃으면서 다시 라니 허리를 감쌌다. 아무 박자도 없는 스텝을 밟았다. 서로를 마주 보면서. 카이는 라니가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시 라니를 한 바퀴 돌렸다. 카이보다 키가 한참 작은 라니는 카이의 손에서 빙글빙글 잘도 돌았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원피스가 퍼지는 게 이쁘기도 하고 진짜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라니는 이제 카이에게 돌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이는 왕자님 표정을 지은 채로 근엄하게 라니를 빙글 돌렸다. 라니는 그 표정을 보고 새침데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며칠 동안은 책 읽는 것도 읽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반주도 없는 왈츠를 췄다.
춤을 추지 않기 시작한 건 어느 날 라니의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에 퉁퉁 붓기 시작하면서였다. 손을 잡지 않기 시작한 건 어느 날 라니의 손이 회초리 자국에 진물이 나기 시작하면서였다. 책을 읽지 않기 시작한 건 어느 날 라니의 목소리가 전부 쉬어버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시작하면서였다. 카이는 물었다. 라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니가 카이의 방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카이의 밥을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고, 카이의 침대에 기절하듯 자는 것 말곤 없었다. 카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라니를 바라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젠 그마저도 라니가 방에 잘 오지 않아 할 수 없게 되었다. 라니는 이제 방에 자주 오지 않았다.
라니가 오지 않은 날, 카이는 목소리를 다듬었다. 카이의 주변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카이의 손짓에 마나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깊은숨 한 번에 마나가 빨려 들어갔다. 카이의 주변에 파란빛을 띄는 물결이 만들어졌다.
카이의 손에서 얼음조각이 나오기 시작한 날, 사람들이 방을 들이닥쳤다. 라니 두 손이 묶인 채 방에 끌려들어 와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카이는 침대에 걸터 앉아 라니가 읽어준 부분까지 책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사람들을 맞았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관리자가 카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두 사람이 어떤 작당 모의를 했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곳에 온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단 한 번의 검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 아이는 문서 조작으로 지하에 내려갈 것이고, 당신은 지금 당장 검사를 받아야겠습니다. 아니면, 조사를 먼저 받으실까요?' 카이는 긴 머리가 짧은 단발로 거칠게 잘린 라니를 보고 관리자를 올려다보았다. 카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관리자는 카이에게 조사를 먼저 받자고 결론을 내렸다. 관리자는 한 손에 든 칼을 카이의 목 가까이에 대면서 물었다. 카이는 여전히 재갈을 물고 사람들에게 붙잡혀 있는 라니를 바라봤다. '당신은 당신의 관리인을 협박하였습니까?' 카이는 책을 덮었다. '당신은 당신의 관리인에게 문서를 조작할 것을 사주하였습니까?' 카이는 책을 이불 위에 올렸다. '당신은 어떠한 이유로 검사를 회피하였습니까?'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칼이 따라올라왔다. '이렇게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당신만 불리해집니다. 답을 하세요.' 카이가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주변의 공기가 얼기 시작했다. 관리자의 발은 이미 얼음에 뒤덮이고 있었으며 라니를 잡아두던 남자들의 몸도 점점 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라니가 놀란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카이를 올려봤다. 카이는 라니의 입에서 재갈을 빼냈다.
"너, 너... 이제 괜찮아...?"
"응. 카이는 이제 말할 수 있어. 마나를 다 모았거든."
상황에 맞지 않는 깜찍한 목소리로 카이는 라니의 손을 묶은 수갑을 얼려 부쉈다. 라니와 카이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얼어붙은 문 뒤로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제 가자.' 카이가 라니를 일으켜 세웠다. 라니가 카이의 팔을 잡고 몸을 지탱했다. 그때 부운 종아리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이는 담요를 라니에게 둘러줬다. '이제 많이 추울거야.' 카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부서졌다. 카이를 잡은 라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이는 마법진을 그렸다. 파란빛 마법진이 빛났다. 얼음 결정이 쏟아져 내렸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들은 날카로운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카이는 끈임없이 마법진을 그렸다. 조금 힘겨워 보이기도 했다. '손.' '응?' 카이가 라니가 잡고 있는 팔을 들어올려 라니 앞에 손 폈다. '손이 필요해.' 라니가 한 손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손을 잡았다. 카이는 새로운 마법진을 그렸다. 조금 더 진한 색으로 빛났다. 사람들은 숨을 쉬지 못하는지 다들 목을 잡고 켁켁 거리면서 쓰러졌다. 카이는 라니 머리 위로 담요를 당겼다. '저런 건 볼 필요 없어용.' 라니는 담요 안에서 눈을 꼭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이 고요해졌다. 라니는 고개를 내밀었다. '끝났어?' 라니 앞에 거대한 눈보라가 일고 있었다. 카이는 라니를 당겼다. 반짝반짝한 얼음으로 된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와...' 라니의 입김이 퍼졌다.
"진짜 예뻐..."
"내 이름 불러줘."
"진짜 예쁘다 카이야."
"그럼 갈까용?"
"뭐야 말투 왜 그래."
라니는 웃으면서 카이를 따라 얼음길 위로 올라섰다.
"근데 이거 어디로 가는거야?"
"하와이."
"그럼 가서 네 마나로 아이스크림 만들어 먹자."
카이의 웃음소리가 나지막히 울렸다. 이제 간다. 세상의 끝으로.
드디어... 하와이 나이트를 다 썼다...
사실 이 내용은 제가 카이를 맨 처음 보자마자 생각했던 소재였습니당
제가 노래 가사 가지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세상에 마상에 943 가사가 제 감성을 저격한 거 있죵
전 943 카이로 입덕했습니다...소곤...
♪그게 잘 안돼 지금 내겐 니 손이 필요해♪
와 끝에 카이 코러스에 완전 감겨서 943 뮤비 뜬 날 바로 입덕!!
그리고 이 글은 제가 맨 처음 카이 캐해를 해본 글인데 처참히 실패한 거 같지 않습니까...케케..
과묵한 카이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지...
암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