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강동원 김남길 온앤오프 성찬 엑소
달다구링 전체글ll조회 506l
"최연준! 쟤한테는 말 걸지마. 말하는거 한번도 못봤어. 우리 같은 애들은 시시한가보지." 

 

급식시간에 늘 혼자 교실에 남아있는게 맘에 걸려 같이 밥을 먹자고 물으니 옆에서 친구들이 말렸다. 면전에 대고 할 말들은 아닌 것 같은데, 듣는 나도 속상한 날이 선 말들인데도 너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괜히 말을 걸어 안들어도됬을 욕을 먹게한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목뒤를 긁적이며 어정쩡하게 친구들을 뒤따라 갔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야 했는데.. 

 

너는 키가 자랄걸 생각해서 애당초 제 몸보다 크게 샀는지 남의 옷을 뺏어 입은것마냥 품이 펄럭이는 교복을 입었다. 늘 안경을 쓰고 책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가끔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면 빼곡히 필기가 가득했다. 반 아이들과 말을 섞는 경우도 없었다. 유일하게 입을 열어 소리를 낼 때는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말곤 없었다. 수련회 따위도 한번을 참석한적이 없었다. 체육대회나 축제 때는 병결을 내고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 아픈게 아니라 공부시간 뺏긴다는 이유로 혼자 공부하려고 진단서를 냇을거라며 애들은 뒤에서 떠들었다. 정말 최수빈을 떠올리면 공부 잘하는 범생이 외에 다른 수식어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넌 항상 2등이었다. 1등은 입학부터 줄곧 다른 아이의 차지였다. 복도에 붙은 30등까지의 전교석차표를 보고 아이들은 너를 이리저리 씹어댔다. 

 

"태현이는 놀거 다 놀고, 잘 꾸미고 다니고 우리랑 피방 가고 그래도 매번 1등인데 최수빈은 뭐냐? 공부한다고 엄청 유세 떨면서 맨날 2등이야. 공부하는것만 보면 서울대 가겠어." 

비웃음과 소근거림은 점차 불어나서 복도에 울릴정도였다. 옆에 서있던 나는 맞장구를 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그만하라고 말리지도 못하겠어서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그러다 저 복도 끝에서 서성이는 최수빈을 보았다. 표정이 굳은채 이내 등을 돌려 교실로 들어갔다. 다 들은걸까? 

 

수업시간 내내 최수빈이 신경쓰여 계속 눈이 갔다. 꼿꼿히 허리를 피고 하나라도 놓칠까 열심히 필기하는게 평소와 다를바는 없어보였다. 그렇다할지라도 상처를 안받은건 아닐텐데.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한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듣고도 괜찮은 사람따윈 아마 없을테니까. 하지만 넌 감정 따위에 속상해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것마냥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서도 애들이 너를 타겟 삼는것이기도 하고. 

 

고3이 되고서부터는 아이들의 험담도 조금씩 줄었다. 다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해서도 너한테 시비는 더 이상 걸지 않았다. 

너는 고3이 된 이후로는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엔 엎드려서 잠을 자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전까진 그 시간에마저 문제집 따위를 풀곤 했었는데 엎드려있는 너가 낯설기도하고, 집에서 늦게까지 공부해서 쪽잠이라도 자는건가 싶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열심일 수 있는 네가 멋있기도, 부럽기도 했다. 무엇을 목표로하기에 너는 그토록 엄하게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걸까? 

 

3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우리 반은 귀찮은 숙제가 생겨버렸다. 수학이 3학년 전체 꼴지를 해버린 탓에 담임선생님은 2명씩 조를 짠 뒤, 주말동안 같이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서로 설명을 하고 인증사진을 찍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성적순대로 짝을 맺어서인지 1로 탑을 세우고 늘어지게 한숨 자고 일어났던 난 1등인 최수빈이랑 짝이 되었다.  

 

약속을 잡아야 만나서 숙제를 할테니 번호라도 물어야했기에 점심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최수빈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잠을 깨우려던것 뿐이었는데 최수빈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잔뜩 웅크려서 나도 덩달아 놀라서는 헉! 하고 소리를 냈다.  

 

"야,, 잠 깨운건 미안해. 우리 수학 짝이라서 약속 잡으려고 깨운건데 놀랄 줄 몰랐어." 

 

내 말에도 너는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이 흐렸다. 잠이 덜 깬건가 싶어 재차 물었다. 

 

"너랑 나 짝궁이라고. 그래서 둘이 만나야하니까 번호 좀 알려줘. 우리반 단톡에 너만 초대 안되어있어."  

 

핸드폰을 내밀자 그제서야 너는 입을 열었다. 

 

"나 핸드폰 없어.."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 들고다니는 세상인데 아에 핸드폰 자체가 없는 너가 신기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며 납득이 가기도 했다. 내가 봐온 최수빈이라면 충분히 핸드폰 따위는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애니까.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안 산거겠지. 

 

"그럼 어떻게 연락해야해? 집 전화는 있어? 주소랑 알려줘. 토요일 3시에 너네집으로 갈게." 

 

너는 서랍에서 종합장을 꺼내 집주소와 번호를 적어주었다. 핸드폰이 없어서 번거롭게 한것 같아 미안하단 말과 함께.  

딱히 나한테 미안할것도 아니고 불편한건 내가 아닌 당사자인 너일텐데도 사과를 하는 걸보고 소문이랑은 다르게 싸가지 없고 남 무시하는 애는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찢어진 종이 귀퉁이에 내 번호를 적어주었다. 너도 내 번호 알아야 엇갈렸을 때 전화할거 아니야. 내 말에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페이지만 반듯하게 접었다.  

 

 

약속했던 토요일.  

친하지도 않은데 집으로 간다는게 나로서도 조금 불편했다. 걔도 아마 불편할텐데 차라리 까페 같은데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나 조금 후회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미리 전화하고 가는게 낫겠지 싶어 꾸겨진 종이를 펼쳐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계속 늘어진다. 그럼에도 받지 않는다. 다시 걸고, 또 늘어지는 소리들을 듣고.. 몇번을 반복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가서 되돌아올지언정 일단 숙제는 해야하니 네 집으로 향했다. 

 

네 집앞에서 벨을 누르는것도 한참 망설였다. 

부모님이 계시면 뭐라고 날 소개해야하지. 같은반 친구 최연준입니다 라고 하기엔 너랑 나는 친구는 아닌것 같았다. 그래도 말이라도 친구라고 하는게 당연한거겠지만, 혹시나 친구라는 이유로 내게 너에 대해 물으신다면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머리를 굴렸다.  

대충 둘러댈 말들이 정리가 됬을 때서야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에도 없는거보면 약속을 까먹은걸까. 조금은 화도 났다. 

 

 

월요일 수학시간에 나랑 최수빈은 복도로 나가 벌을 섰다. 왜 숙제를 안해왔냐는 선생님의 타박이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향했지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굳이 변명하진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 

화도, 짜증도, 걱정도 섞어 네게 물었다. 

너는 고개를 가만히 젓는다.  

그럼 왜 전화도 안받고 집에도 없었냐 물었지만 너는 그저 미안해 라고만 대답했기에 나도 더이상 맥이 빠져 묻지 않았다. 

 

습하고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여름이 됬다. 유독 비가 많이와서 줄곧 사물함 앞에는 알록달록한 우산꽃이 피었다. 날이 화창한 날이면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공을 차며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그 해 가장 억수로 퍼붓던 날이었다. 갑작스레 내리기 시작한 비는 구멍이라도 뚫린듯 굵게 떨어졌다. 다들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우산을 들고와 하나둘씩 가족들과 함께 빗속으로 사라졌다. 

 

외동이라 평소에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이럴때면 혼자라는게 싫다.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굳이 전화조차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못오실테고 일하는데 걱정시킨다며 타박 들을게 뻔하니까.  

빗줄기가 조금 사그러들면 체육복 뒤집어 쓰고 지하철 역까지만 냅다 뛰어야겠다 생각하며 내리는 비에 흐릿하게 보이는 운동장을 보고있었다.  

 

흐릿한 풍경속으로 누군가 뛰어들었다. 최수빈이었다. 쟤도 우산을 가져다 줄 누군가가 없는지 혼자 빗속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이 어째선지 평소보다도 더 힘 없게 보였다. 가방도 없는걸보니 비를 맞고 갈 생각으로 두고온 듯 싶다. 저러다 감기 걸릴텐데. 내가 우산이 있었다면 나랑은 반대방향이긴하지만.. 조금 돌아가도 별 상관 없으니 같이 우산 썼을텐데. 

 

 

다음날 최수빈은 아침 조례가 끝나도록 등교하지 않았다. 지각은 처음이었다. 어제 비 맞아서 아픈걸까. 잠깐의 걱정이 스친다.  

내 걱정대로 최수빈은 엉망이 된 낯빛을 하고 1교시 수업전에 아슬아슬 등교했다. 볼도 귀도 붉은게 보였다. 그 빗속을 그렇게 터덜거리며 걸어갔으니 안아픈게 이상하지.  

 

이후에도 수학 숙제는 매주 제출해야했기에 숙제도 해야하고, 겸사겸사 괜찮냐고 물어볼겸 엎드려있는 최수빈의 어깨를 잡았다. 

뜨거웠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빼꼼 나와있는 얼굴을 확인해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온통 땀 범벅이었다. 괜찮냐며 흔들어도 보았지만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문이랑 맞먹을정도로 덩치가 큰 애라 혼자 보건실까지 데려갈 수가 없어서 반장과 부반장까지 합세한 뒤에야 양호실로 옮길 수 있었다. 

 

열이 높았다. 보건실 침대에 눕힐 때까지도 최수빈은 앓는 소리만 낼 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럴 때 병결 내고 집에서 쉬지 학교까지 온게 용할정도였다. 다음 수업이 수학이기도 해서 별로 듣고싶지 않았기에 병간호를 핑계로 최수빈 옆에 앉아있었다.  

 

꿈을 꾸는걸까.  

뒤척임은 없었지만 무언가에 시달리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길 반복했다.  

미간을 살짝 쓸어주었다. 인상 찌푸리면 복 달아난뎄거든. 우리 엄마가.  

 

침대가 작아 보일 정도로 키가 큰데도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 작게 보였다. 막상 수업은 안들어갔지만 딱히 잠자는 애 옆에서 할 것도 없어서 너를 눈으로 훑었다. 반팔 사이로 시퍼런 멍이 보여 눈길이 멈추었다. 이불을 걷어 셔츠를 걷어보았다. 등도 온통 시퍼런 멍 투성이었다.  

 

"야 너 이거 뭐야. 누구한테 맞았어. 너 어제 비맞아서 아픈거야? 아님 맞아서 아픈거야. 이거 다 뭔데?" 

 

놀라고 당황스럽고 걱정이 뒤엉켜 묻는다는게 따지듯이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추워. 라는 대답만 한 채 옷을 정리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숨었다.  

 

"말 돌리지말고. 이거 왜 그러냐니까? 선생님 불러올까?"  

 

의자에서 일어나 커텐을 걷으려고하자  

 

"나중에.. 나중에 말해줄게."  

라며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픈 애한테 타박해봤자 대화가 안될 것 같아서 다시 앉았다.  

 

 

일부러 친구들한테 오늘은 먼저 가라고 카톡을 보내고 최수빈이랑 같이 하교했다.  

집에가서 얘기할거냐고 물으니 그러겠다기에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집에 도착하니 지난번 그 대문이 보인다. 혼자인듯 비번을 누르고 들어간 집은 불이 꺼져 캄캄했다.  

 

"부모님은 밤 늦게나 오셔." 

 

집을 둘러보니 거실에 가족앨범이 크게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너가 막내인가봐? 형제가 셋이나 돼?" 

 

"아..응. 누나가 위로 두명있고 터울이 좀 나." 

 

요즘 대부분 외동 아니면 많아야 둘인데, 게다가 나이 차이도 나는 누나만 둘이라니 좋겠다. 많이 이뻐하겠네. 용돈도 받아? 하니 넌 씁쓸하게 웃었다.  

 

"사이 별로 안친해?" 하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며 내 얘기 궁금하다고 했지? 하고 되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나들은 공부 잘했데. 직업도 좋은걸보면 잘하긴했나보다 싶어. 그래서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으셔. 난 그게 숨 막히고." 

 

그래서 늘 아등바등 공부만 했던걸까.  

 

"나도 잘하고 싶어. 좋은 성적표를 가져가야 이뻐해주시고 칭찬 해 주시니까... 칭찬 받고 싶어서, 사랑 받고있다는걸 확인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 근데 이젠 모르겠어. 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안되는걸 어떡해..?" 

 

3년 내내 한번을 이겨보지 못했던 태현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울 엄마는 내가 전교 2등해가면 플랜카드 걸어놓고 동네 잔치라도 열텐데.. 역시 뭐든 상대적인거라서 타인이 볼때는 완벽해보이는 사람도 안을 들여다보면 다 슬픈 소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나보다.  

 

"그럼 공부 때문에 맞은거야?" 

그래도 부모님이니까 실례가 될까 머릿속을 재빨리 굴렸다.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도록 묻기위해서. 

 

"뭐.. 성적도 성적이고... 별로 나를 안좋아하셔. 자식이라서 아끼고 애틋한것보단 난 부모님을 명예롭게하고 기를 살려주는 트로피 정도인것 같아. 밖에서는 사랑스럽고 착한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시는데.. 모르겠어. 딱히 사랑 받아봤다고 생각들질 않더라고. 늦둥이랬잖아. 안낳고 싶으셨데. 나만 없었으면 진작에 노후 보냈을거라면서 늘 화내셔. 그런것들이 담긴거지 뭐." 

 

얘기를 하는 동안 넌 손을 뜯었다. 자세히보니 습관인듯 손이 상처투성이다. 너의 불안을 보여주는것만 같다. 자꾸 잡아 뜯는 손을 제지하려 한손으로 손을 붙들고 물었다. 

 

"딱히 잘못한것도 없는데 늘 맞는거야? 그럼 그건 화풀이인거잖아. 게다가 요즘 훈계를 위한 체벌도 폭력이라고 학교에서도 매 안맞는데 부모님이 이지경이 되도록 때린다고? 가만히 맞고만 있어?"  

 

내뱉는 음절마다 울컥하고 치솓는다. 내가 다 억울하고 속상하잖아. 난 여태 살면서 한번도 남한테 맞아본적 없는데. 넌 그게 일상이라는게 너무하잖아. 반항이라도 해야지 악이라도 써야지 왜 가만히 맞고만 있냐는 내 질문에 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음부턴 이유없이 때리면 그냥 집을 나와. 그러고서 우리집으로 와. 우리집에 애들 많이 와서 놀기도하고 자고도 가서 부모님이 뭐라 안하셔. 그러니까 그냥 우리집으로 뛰어와. 맞고있지 말고.  

 

너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도서관에서 같이 수학 공부를 했다.  

숙제는 이미 진작에 끝났지만 계속 눈에 걸려서 수학을 핑계로 내가 부탁했다. 

넌 한번도 우리집으로 뛰어온적은 없었다. 다행인거지만 정말 폭력이 끝나서 올 일이 없었던건지는 묻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다.  

 

두시간쯤 지나면 난 좀이 쑤셔서 몸을 베베 꼬는데 얜 학교에서처럼 미동도 없이 책만 들여다본다. 넌 공부가 재밌냐고 물으니 공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며 웃는다.  

양쪽 볼에 움푹 보조개가 패인다. 언젠가 신이 자기가 만들어놓고도 너무 예뻐서 한번 더 쓰다듬었더니 보조개가 생기더라 란 말을 본적이 있다. 그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웃을때 움푹 들어간 보조개도 커다란 입동굴 옆으로 지는 주름도 예뻤다.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 그래, 파란 하늘을 닮았다. 넌.  

 

그때즈음부터 난 최수빈한테 이쁘다는 얘기를 자주 해주었다. 보조개가 이쁘다고, 키가 커서 다리가 길다고, 같은 교복인데 몸이 좋아서 핏이 다르다고. 공부 잘하는게 부럽다고. 그럴때마다 넌 부끄러운지 귀 끝이 붉어졌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매일 이쁘다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그렇게라도 너도 사랑스러운 존재고 사랑할 부분이 많다는걸 알려주고 싶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하나둘씩 합격 소식이 들려오면서 반이 시끄러웠다. 나도 다행히 안전하게 썼던 곳에 합격해서 더이상 도서관에서 만나 수학을 공부할 필요도, 핑계거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최수빈도 수시로 합격한 뒤로는 더이상 꼿꼿하게 앉아있지 않았다.  

많이 늦은듯 했지만 조금씩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무리 안에 속하게 됬다. 여유가 생긴것 같아 다행이었고 볼은 다시 부풀 틈이 없을 정도로 넌 웃음이 많아졌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던 최수빈이 수능보는 애들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교문에 서서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다. "나 공부 잘하니까 내 기 다 가져가" 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며 손을 잡는 친구들에게 핫팩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십대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졸업식,  

나는 너랑 학교가 다르기에 앞으로는 자주 못볼걸 생각하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나만 서운한거냐고 물으니 넌 한껏 웃으며 어딜가서든 사랑 받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졸업장을 받고 이 무리, 저 무리 정신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었다. 자꾸 코 끝이 시큰거려서 들키고 싶지 않아 애꿎은 허벅지만 꼬집었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 마지막의 학교를 바라보았다.  

 

"너는 꿈이 뭐길래 그렇게 재미없게 다녔냐." 

 

"글세. 목표했던 곳 붙어서 다행이긴한데 그게 내 꿈은 아닌것 같긴해. 엄마의 꿈이지. 넌?"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학생은 공부해야한다고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니깐.. 다들 공부하니까 나만 안하는건 불안해서 시늉이라도 낸거지." 

 

"나도 똑같아. 대학이 전부인것처럼 말하니까 항상 난 착한 아이였으니까, 계속 착한 아이로 남고 싶어서 하긴 했는데... 후련하다, 뿌듯하다그런 느낌은 없네." 

 

너의 머리 뒤로 해가 진다.  

바람이 살짝 불어서 귓가를 간지럽힌다.  

 

안녕, 나의 열아홉. 

 

 

나는 어른이 됬다. 

아니. 어른이 된게 맞을까? 

분명 앞의 숫자는 2로 바뀌었는데  

나 스스로는 열아홉과 별반 다를게 없는것 같다. 달라진거라면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그래서 한동안 난 스무살을 앓았다.  

그 부담감이 너무 무거웠다.  

자고 일어나니 하루가 지나있을 뿐,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이제는 어른이니 너 스스로를 책임져야한다 라고 말하는것만 같아서. 

 

우리는 간간히 전화도 카톡도 주고 받았다.  

아직도 최수빈은 핸드폰이 어려운지 카톡보단 저녁 늦게, 잠들기전에 통화를 하는걸 더 좋아한다. 별 이야기는 하진 않지만 금세 시간이 지나 늘 핸드폰이 뜨거워질때쯤에야 서로 안녕 하고 인사를 건내고 아쉬움을 끊는다. 

 

나도, 너도  

아직은 우리가 무엇을 찾아 헤메는지 못 찾은듯 하다. 

 

다만, 너는 이제 한걸음을 온전히 네 의지대로 떼려고 하는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트로피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에 담고 싶단다.  

돌이켜보니 수련회도 수학여행도 가보지 못했던게 너무 속상하단다. 그 나이이기에 쌓을 수 있던 추억들이 분명 있는데 자긴 그게 없어서 지금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것들도 아니라 아쉽단다.  

 

그리고 그즈음에서야 너는 솔직했던 네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놀고 싶었어. 시험 끝나면 애들끼리 시내도 가고 피시방도 가는거 너무 부러웠어. 점심에 축구 하자고 할 때도 같이 뛰어나가고 싶었어.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건 내가 겁이 많아서였을거야.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 그땐 나도 어렸나보더라. 막연하게 공부 잘해서 대학 서울로 가면 집에서 나와 도망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어. 그래서 필사적이었던거야. 도망가고 싶었거든." 

 

이제야 네가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오도카니 있던게 이해가 된다. 가만히 날라오는 것들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고스란히 맞았을지언정, 그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던거구나, 너는. 

 

"이제 도망은 쳤으니까 다음엔 똑바로 마주하려고. 도망만 치면 바뀌질 않으니까. 결국엔 쫄지 않고. 두 눈에 힘 딱 주고, 똑똑하게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깐.  

그때즈음이면 하고 싶은것도 생기지 않을까? 무엇이 됬든 내가 하고 싶은걸 할거야.  

멍청하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해서 지금이야만 할 수 있는것들을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않을거야. 아 그래. 안단테 그리고 칸타빌레. 그렇게 살거야." 

 

걷듯이 느리게, 노래하듯이.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05.01 21:30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2 퓨후05.05 00:01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막장 로맨스는 처음이라 219 온도도씨 01.05 16:36
엔시티 [NCT/정재현] 그를 만난 건, 20XX 영화제에서. 66 신청서 01.05 01:33
배우/모델 [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_03 98 1억 01.05 00:27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막장 로맨스는 처음이라 117 온도도씨 01.04 23:39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뷔/김태형] 구원 _ 1,23 썸머야 01.04 17:28
투모로우바이투.. [TXT휴닝카이] 싱글파파-오 마이 도터2 42 01.04 16:59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554 육일삼 01.04 02:52
엔시티 [NCT/나재민] 왜 하필 너야? |9 신청서 01.04 02:14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뷔/김태형] 구원1 썸머야 01.04 00:28
데이식스 [데이식스/강영현] 짝사랑 회고록8 꽃노을 01.04 00:15
방탄소년단 [민윤기/정호석] 나의 냥냥이와 댕댕이 08 + 암호닉204 빙고구마 01.03 23:47
엔시티 [NCT/정재현] 그를 만난 건, 20XX 영화제에서. 56 신청서 01.03 23:33
배우/모델 [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_0281 1억 01.03 23:24
[방탄소년단] 그래서, 내 호랑이가 누구야 0258 짤탄 01.03 21:20
프로듀스 [프로듀스101/워너원] 먹방동아리 홍일점 kakaotalk 4214 먹방동아리 01.03 19:57
투모로우바이투.. [TXT/연숩] 안단테 그리고 칸타빌레 달다구링 01.03 19:01
세븐틴 [세븐틴] 괴물들과의 기막힌 동거 Ⅲ 1646 소세지빵 01.03 18:27
엔시티 [00즈] 청춘어불 특별편 새해 ver4 스청? 마이베이.. 01.03 07:57
[TXT범규] 싱글파파-오 마이 썬4 42 01.03 02:36
배우/모델 [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_01122 1억 01.03 02:08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김태형/김석진] 수채화 (水彩畫) _ Prologue36 공 백 01.03 01:46
몬스타엑스 [IM] Happy new year, 2020 上1 김세균 01.03 00:55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전정국] 전정국이랑 친구면 이럴 거 같음 0776 짤탄 01.02 22:17
기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3 청소포 01.02 14:04
투모로우바이투.. [TXT/연숩] 봄이 올까,내게도? 달다구링 01.01 21:12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그래서, 내 호랑이가 누구야 0191 짤탄 01.01 20:43
투모로우바이투.. [TXT휴닝카이] 하와이 나이트 42 01.01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