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5 (19세의 끝자락을 추억할 中)
그렇게 대략 두 시간을 오세훈과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데에 소비를 했다. 바다에 왔으니 조개 구이를 먹어야 한다며 수산시장을 꼼꼼히 살피던 녀석은, 펜션 옥상에 바베큐장이 있다는 걸 떠올려내곤 급히 마음을 바꿨더랬다. 조개 대신 삼겹살과 그에 필요한 나머지 재료들을 잔뜩 사든 채 룰루랄라 걸음을 옮기는 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펜션 쪽으로 향하는 줄 알았지만 다시 걸음을 옮겨 근처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하던 녀석은 지갑을 꺼내들며 말했다.
'기분이다. 고기값도 내 지갑에서 나갔는데, 과자도 내 돈으로 사지 뭐.'
'진짜로? 너 이미 충분히 돈 많이 쓴 것 같은데….'
'괜찮아. 오늘은 오총무가 쏜다.'
제법 당당하게 내뱉는 말에, 부담 없이 마음껏 간식거리들을 골랐다. 막상 고를 땐 몰랐는데, 고르고 확인을 해보았을 땐 거의 김종인 취향인 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신기하게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녀석의 입맛을 닮아버린 듯했다. 과자가 하나씩 추가될수록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지던 오세훈이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아마 이제 그만 골라도 될 것 같다는, 그만 골라달라는 무언의 표현이었으리라.
가득 채워진 과자와 빵, 초콜릿과 사탕, 음료수 덕택에 편의점 봉투가 터질 것도 같았다. 편의점을 나서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가자며 내 옷깃을 잡아끄는 녀석의 행동에, 메로나를 집어들었다. 마치 죠스바나 더위사냥을 먹을 것 같이 생긴 오세훈은 꽤나 소녀 취향이었다. 딸기맛 요맘때를 집어들며 싱글벙글 웃어보이던 것을 보면 말이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밖을 돌아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펜션 안에 두고 나왔던 건지 주머니 속엔 이어폰 외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둘이 어디 갔다 오는데."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종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로 머리를 괸 채 바닥에 일자로 누워있던 김종인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곧이어 녀석의 차가운 시선이 나와 오세훈에게 꽂혀왔다. 그런 녀석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오세훈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마저 들려올 만큼 안은 조용했다.
"해변 데이트랄까…."
당황했던 것도 아주 잠시, 그새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오세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김종인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는 것도 같았다면 분명 내 착각일 것이었다. 가만히 오세훈의 눈동자만을 응시하고 있던 김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뚜벅뚜벅 걸어 내 앞에 우뚝 서오는 모습에 괜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넌 왜 전화도 안 받고,"
"… 아, 방에 놓고 나갔었어."
"오세훈은 폰에 충전기 꽂아놓고 나갔지, 넌 전화도 안 받지. 둘 다 연락 안 돼서 내가…"
"……."
"아니, 말이라도 하고 나갔어야지."
"씻고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하냐. 문 벌컥 열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오세훈이 푸스스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저러니까 맨날 싸우지. 굳이 안 해도 될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내뱉어버린 오세훈을 흘끗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지 오세훈은 독특한 놈인 듯했다. 김종인의 화를 돋우는 게 녀석의 일일 미션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세훈은 시도때도없이 김종인에게 장난을 걸었고, 그에 걸맞은 욕을 얻어 먹었다.
"사온 거나 내놔 봐."
"아쉽지만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워야겠어. 왜냐하면 삼겹살이랑 간식에 돈을 너무 많이 썼거든."
"과자는 왜이리 많아. 다 네가 먹으려고 샀지."
"아닌데? 이거 다 ○○이가 고른 거야."
"돈은."
"내가 냈지. 오총무가 다 샀어, 인마. 고기며 과자며 아이스크림이며…"
열심히 말을 늘어놓는 오세훈을 애써 무시한 채 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김종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무심한 놈이다.
*
늦은 점심 식사를 대충 컵라면으로 해결을 하곤 후식으로 사탕을 먹었다. 바다에 도착해서 한 거라곤 오세훈과 장을 봐오고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은 것이 다였다. 뭐 대단한 놀이라도 하며 놀 줄 알았던 김종인과 오세훈은 그저 바닥에 드러누운 채 휴대폰 게임만 하기 바빴다. 과연 언제까지 그러고 있나 보자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 녀석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시간 째였다. 무료함에 지쳐 입을 열려던 찰나, 오세훈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아, 따분해! 나가자! 이러려고 바다 온 거 아니잖아. 나가서 입수도 하고 그래야지."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드는 오세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김종인은 아예 관심조차 없는 건지, 휴대폰 게임에만 신경이 몰두해 있었다.
"애들이 애들이… 뭘 좀 모르네. 바다에 왔으면 나 잡아 봐라 놀이도 하고, 어? 유치하게 놀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정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오세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동화를 신었다. 난 너희가 곧 나올 거라는 거 알아.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되도록이면 빨리 나와주길 바라. 새침떼기 같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먼저 밖을 나서는 오세훈의 모습에 김종인이 비웃음을 내뱉었다.
"심심하지."
"… 당연하지. 바다 왔는데 한 게 없잖아, 아직까지…."
"나갈래?"
느긋하게 휴대폰 게임을 종료시키던 녀석이 말했다. 그리곤 시꺼먼 눈동자가 나를 향해오며 다시금 도톰한 입술이 열린다. 겉옷 입어. 나가자.
*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금 이따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밖을 나선 오세훈은 휴대폰 카메라로 아름다운 경치를 찰칵찰칵 찍어내고 있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다. 아침에 김종인이 건네줬던 목도리를 두르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매서운 바람에 녀석의 까만 머리칼이 어지러이 찰랑였다. 넋을 놓고 그 유연한 움직임을 바라보다, 곧이어 내게 닿아오는 녀석의 시선에 의도치 않게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한 사람들의 심리가 모두 그러하듯, 급격히 증가하는 심장박동수 탓에 황급히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혼자 놀고 있는 오세훈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 내 시선이 느껴진 건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던 오세훈의 시선이 나와 김종인에게로 꽂혀왔고, 역시 나올 줄 알았다는듯 너스레를 떨며 녀석이 걸음을 옮겨오기 시작했다.
"안 나올 것처럼 하더니…."
"너랑 놀려고 나온 거 아니야. 그냥 얘랑 구경하러 나온 거지."
"어? 구경이라면 아까 나랑 실컷 했는데?"
"너 바다에 던져도 되냐."
"… 충격."
충격으로 벌어진 입을 막으며 오세훈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건 항상 있는 일이니 아무렇지 않다는듯, 주변에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드는 녀석의 행동에 살풋 웃음이 나왔다.
"원래 바다 오면 다같이 점프하면서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고작 세 명이서 찍을 수도 없고… 김종인은 협조도 안 해줄 게 분명하고…."
무어라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오세훈의 모습에 김종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분명 작게 중얼거리는 것 같긴 한데, 마치 다 들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같았다. 한 음절도 빠짐없이 모두 또렷이 들려왔으니 말이다.
방금 전 주워든 나뭇가지로 깨끗한 모래 위에 무언가를 쓱쓱 새기기 시작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도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간단한 흔적이라도 남긴 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내고 싶었지만, 막상 흔적을 새기려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내 이름 석 자를 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하지 말라고! 뒤진다, 진짜."
"미안 미안. 알았어, 안 할게. 아씨, 때리지 마! 아프다고!"
곧이어 김종인과 오세훈이 투닥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뭐 때문에 저렇게 티격대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해,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한가득 머금은 오세훈과는 달리 김종인의 얼굴은 꽤나 찡그려져 있었다. 살짝 상기된 녀석의 얼굴에, 괜한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도 같았다. 발로 오세훈을 슬쩍 차던 녀석의 시선이 곧이어 내게 꽂혀왔다. 그와 동시에, 오세훈이 새겨놓은 듯한 모래 위의 낙서를 황급히 발로 지우기 시작하는 김종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김종인 이름 석 자와 그 뒤에 하트가 그려져있는 것까진 정확히 보였지만, 그 뒤는 금세 지워져 아쉽게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대충 짐작은 갔다. 분명 보나마나 김종인♡오세훈… 이런 낙서였겠지. 장난을 좋아하는 오세훈이었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었다.
*
바다에 왔으니 누군가는 입수를 해야 한다며 자꾸만 입수에 집착을 하던 오세훈의 고집에 못 이겨, 결국 가위바위보라는 식상한 방법으로 입수자를 골라내야 했다. 이대로 물에 들어갔다간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는 김종인의 충고에도 오세훈은 아랑곳 않았다. 그러다 조금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발만 담그고 나오자며 뒤늦게 말을 바꾸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어. 정정당당하게 하는 거야, 알지? 김종인 너도야, 인마. 승부의 세계란 냉정한 거다. 다들 명심해.'
정정당당하게 하자고 해봤자, 방식은 가위바위보였다. 인원수도 적으니 적어도 3초 안엔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가만히 무얼 낼지 고민하는듯 보이던 김종인이 나를 툭툭 쳐왔다. 녀석은 손을 활짝 펴보이며 보자기를 내라는 신호를 보내왔고, 그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오세훈을 바라보았다. 눈까지 질끈 감은 채 엄청난 내적 갈등에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애잔해 보였다.
결국 당첨자는 오세훈이었다. 니네 둘이 짰지? 남자는 주먹이지! 김종인은 남자가 아닌가 보네…. 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오세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나와 김종인을 바라봐오는 녀석의 눈빛이 조금은 처연해 보였다. 역시 내기를 먼저 하자며 말을 꺼내는 사람이 결국 걸리게 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발만 담갔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오들오들 떨던 오세훈이 급히 펜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덩달아 안으로 발걸음을 떼야 했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오세훈이 한숨을 길게 내쉬곤 방 안에서 흰 양말을 집어든 채 나왔다. 아직 덜 말라 물기에 젖은 앞머리에선 뚝뚝 물방울이 떨어졌다.
"내일 아침에 2차로 입수 또 하자. 내일은 하반신까지 담그고 나오기."
"또 네가 걸릴 거야."
"저주 걸지 마라."
제법 정색을 하며 말을 내뱉은 오세훈이 김종인을 향해 제 어깨에 걸쳐져 있던 축축한 수건을 던졌다. 그리곤 서둘러 부엌으로 피신….
*
바다에서의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렀다. 별로 한 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30분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와 있었으니 말이다. 먼저 바베큐장이 위치한 옥상으로 향해 세팅을 하고 있겠다던 오세훈의 말을 떠올리곤 김종인과 뒤늦게 걸음을 옮겼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는 무척이나 짧았다.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날은 어둡게 변했고, 바람도 거세졌다.
"잠깐만."
가만히 앉아 오세훈을 바라보던 내게 김종인이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조심스레 내게 손을 뻗어왔다. 그러더니 내 겉옷의 지퍼를 올려주며 모자를 씌워주기 시작한다.
"감기 걸리면 안돼."
뒤이어 들려온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애꿎은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세훈을 거들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심히 내리뜬 눈부터 시작해 콧날, 도톰한 입술까지. 집게를 집어든 큼지막한 손, 가느다란 힘줄이 군데군데 서있는 손등,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까만 머리카락, 은근히 투정을 부리는 듯한 둥그런 목소리.
"이거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네가 한 번 먹어 봐."
"뭐라는 거야. 네가 먹어."
녀석의 단호한 대답에 오세훈이 푸스스 웃으며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상추를 집어들며 제법 얄궂은 듯한 어투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아, 난 누가 쌈을 싸주는 게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 내가 싸서 먹는 건 아무래도 맛이 덜해."
"… 어쩌라는 거지."
"김종인 너한테 말한 거 아니고…. ○○아, 넌 안 그래? 너도 그렇지?"
"어? 아, 난…"
이것 저것 재료들을 많이 넣어 쌈을 싼 뒤 제 입에 넣던 오세훈이 나를 흘끗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난 내가 쌈을 싸먹든, 누가 쌈을 싸주든 그게 그거던데…. 솔직한 대답을 하고자 입술을 뗐다. 그와 동시에 내 입 안에 작은 상추쌈 하나가 들어왔고, 당연하듯 말문이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꼭꼭 씹어. 대충 씹고 삼키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내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던 김종인이 툭 내뱉듯 말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던 오세훈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갑자기 배가…. 화장실 좀 다녀 올게."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오세훈이 갑자기 배를 잡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분명 입가에 웃음이 번져 있었던 것 같다면 아마 내 착각이겠지.
"……."
오세훈만 없어졌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김종인 사이엔 어색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자리에 앉아 한숨을 작게 내쉬는 녀석을 바라보며 작게 헛기침을 해보였다. 그런 내게 천천히 시선을 옮겨놓는 녀석의 모습에,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만 같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야."
"… 응?"
"… 아니야."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던 김종인이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괜히 의아해져 애꿎은 녀석의 손가락만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곧이어 녀석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나랑 있는 거 어색해?"
"뭐?"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너 유독 나한테만 이상한 것 같아."
"이상하다고? 뭐가 어떻게…."
"꼭 삐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목소리도 작고, 눈도 안 마주치고."
"……."
"오세훈이랑 대화할 땐 안 그러잖아."
"……."
"봐, 지금도."
너를 어색해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떨려서 그러는 거야.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말도 제대로 못 하겠고, 눈도 못 마주치겠고… 그래. 네가 그걸 느꼈을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 아무런 언급을 안 해줘서 몰랐어,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네게 느껴졌을 정도라니, 그동안의 내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네. 눈도 마주하지 않은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마음 편히 웃음을 짓지도 않고….
이 와중에도 녀석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고, 무어라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수긍을 하자니 사실이 아니었고, 부정을 하자니 솔직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이지 답답했다. 보는 너는 오죽 할까….
"나 봐봐."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한 채 앞에 놓여있는 접시만 바라보고 있던 내게, 김종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 봐봐. 허공에 내뱉어진 녀석의 말이 귓가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고개만 살짝 돌려도 가까이에서 보일 녀석의 얼굴이었기에, 더더욱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내 어깨에 팔을 둘러오기 시작했다.
"너,"
"……."
"나 싫어하는 건 아니지."
살짝 뜸을 들이듯 말하는 김종인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렸다. 그런 녀석의 말에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내가 너를 왜 싫어해."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 대답에 녀석이 살풋 웃음을 내뱉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고."
싫어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좋아하는 걸. 그것도 아주 많이….
*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던 오세훈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비추었다. 오세훈을 위해 마늘이 듬뿍 들어간 상추쌈을 싸던 김종인은, 생각보다 늦게 나타난 오세훈 탓에 상추가 말라 비틀어졌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해보였더랬다.
'뭐야? 이거 뭔가 이상해. 안에 딱딱한 게 엄청 많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쓸데없이 의심이 많은 오세훈은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상추쌈을 펼쳐 보았고,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이지 소름 끼칠 정도로 오세훈은 눈치가 백단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저녁 식사를 해결하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후식을 먹었다. 제 돈으로 샀으니 남은 과자와 음료들은 제가 가져가겠다며 자랑스레 말하던 오세훈에게 김종인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차에서 그렇게 자놓고도 잠이 쏟아지는 건지, 녀석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눈을 꿈뻑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던 김종인은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졸리면 그만 들어가 자라는 오세훈의 말에 작게 하품을 해보였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저도 피곤하다며 일찍 자야겠다는 오세훈의 모습에, 나도 일찍 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어두운 방 안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목까지 끌어 덮은 이불은 제법 두툼했고, 베개 또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알맞은 높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머릿속에 되새기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너 유독 나한테만 이상한 것 같아.'
'꼭 삐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목소리도 작고, 눈도 안 마주치고.'
'너,'
'나 싫어하는 건 아니지.'
자꾸만 김종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잠이 쉽게 올 거라 생각하며 떠올렸던 것인데, 어째 오히려 잠이 달아나는 것도 같았다. 그와 동시에 아랫배와 허리가 살살 아파오는 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타이밍도 참 안 좋지. 하필 오늘 같은 날 터질 건 뭐람.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형광등의 불을 켰다. 곧이어 밝아진 실내에 눈을 찡그리곤 가방을 열었다. 그러나, 작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야 할 파우치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기 넣어뒀던 것 같은데, 집 책상에 두고 온 것도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괜히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였다. 오후 11시 39분…. 꽤나 늦은 시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
대충 겉옷만 걸치곤 살금살금 방을 나섰다. 어둠으로 가득 찬 실내는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혼자 가고자 마음을 먹긴 했지만, 막상 혼자 가자니 괜스레 걱정이 밀려왔다. 편의점도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 늦은 시간에 민폐라는 걸 알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내 실수로 빚어진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김종인이 깊게 잠들어 있을 방으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고, 천천히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엔 새근새근- 녀석의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김종인…, 잠깐 일어나 봐…."
평소 옷을 벗고 자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던지라, 이불을 걷어내기가 조금은 망설여졌다. 그래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녀석을 살짝 흔들어 깨웠고, 곧이어 녀석이 뒤척이며 천천히 눈을 떴다.
"… 어어, 왜…. 무슨 일 있어?"
"… 나 터졌어…."
"… 뭐가 터져."
"그…"
"……."
"……."
"… 아,"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던 녀석이 작게 탄성을 내뱉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오늘은 다행히도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던 건지, 녀석은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겉옷을 챙겨들었다. 그리곤 잔뜩 뻗친 뒷머리를 감추기 위해 스냅백을 푸욱 눌러쓰며 녀석이 내 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난 또, 무슨 일이라고."
"… 미안, 자는데 깨워서."
"미안한 건 아냐."
푸스스 웃곤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으며 김종인이 장난스레 말했다. 그리곤 혹여나 오세훈이 잠에서 깨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느리게 신발을 신던 김종인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차디찬 바람이 느껴졌지만, 신기하게도 춥지 않았다.
*
꽤나 멀리 위치한 편의점이었던지라, 가는 것만 해도 대략 20분이 소비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 비례하듯 녀석에 대한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녀석은 그것에 관해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런 모습 마저도 내겐 크나큰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김종인과 편의점 안까지 같이 들어가 생리대를 구입하긴 살짝 민망할 것도 같아, 잠시 밖에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곤 혼자 안으로 들어가 후딱 계산을 하고 나왔다. LTE와도 맞먹는 빠른 속도에 녀석이 작게 웃음을 지어보였고, 그런 녀석에게 가자는 손짓을 해보이곤 큼큼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너 때문에 잠도 다 깼다."
"… 난 한 숨도 못 잤어."
"배 아파서?"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잠이 왜 안 와. 낮잠을 그리 많이 잤던 것도 아니고."
"… 그러게. 낯선 곳이라 그런가?"
"낯선 곳에서도 잘 자는 거 아니었어?"
"아, 뭐래…. 아니거든."
"아니야? 아님 말고."
김종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녀석을 슬쩍 흘겨보곤 천천히 걸음을 뗐다. 차가운 밤공기가 시원하다 느껴질 만큼 상쾌했다.
"가서 잠 안 오면 네가 나 재워줘야 해."
"… 뭐라고?"
"옆에 앉아서 자장가라도 불러주든가. 어떻게든."
"그런 억지가… 어딨어."
울상을 지은 채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녀석이 작게 소리내 웃었다.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애감정. 달큰하고 따끈따끈한 분위기. …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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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벌써 시즌 원도 다섯 편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여러분.. 도대체 행쇼는 어제 하냐.. 둘 중 누구라도 고백 좀 해라.. 항상 보이는 댓글들이지만.. 저도 여러분 마음 이해해요.. 왜냐하면 저도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거든요... 또륵.. 하지만 정말 머지 않았... 겠죠? 이렇게 질질 끌기도 정말 힘드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왜 그랬지.. 끙끙 그래도 우리 행쇼하는 그날까지 꾸욱 참고 기다려 보기로 해요ㅠㅠㅠㅠㅠㅠ 아마 행쇼하는 그 날엔 제가 여러분들 붙잡고 눈물을 쏟아내진 않을까.. 감히 예상해 봅니다..☆
사실 공지랄 것도 없지만, 이렇게 빨간 글씨로 포인트 좀 줘봤어요.. 헿 암호닉 관련 공지인데요. 제가 암호닉 신청을 딱 29화까지만 받으려구요. 시즌 투 들어가면 그땐 또다시 추가로 받을 예정이지만, 일단 생각은 이렇습니다. 시즌 원이 끝난다면 텍파를 만들.. 생각이구요, 암호닉 신청을 해주신 분들껜 아주 작은 보답이라도 해드리고 싶어 텍스트 파일 안에 아주 짧은 번외랄까요? 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담아보려 해요! 여주와 종인이가 지금처럼 단지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닌, 연인 사이로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뭐 그런.. 전혀 상관 없는 아주 짧은 이야기를.. 대충 뭐.. 그렇다구요..ㅎㅎㅎㅎ 말로 표현을 못 하겠네요. 어쨌든 지금 생각은 그렇습니다! 다 쓰고 나니 공지도 뭣도 아니네요.. 하.....
스폰지밥/러블리/두부/종이니/기화/핫초코/공삼이육/네네스노윙/지블리/로운/똥잠/알콩/아가야/Paper/세젤빛/꽯뚧쐛뢟/얍얍/늘봄/종이페이퍼/고구마/도비/똥강아지/두둠칫/복숭아/윤아얌/불가/제인/스누피/나니꺼/엑소더스/가그린/남사친/다예/가락/너눈/XoXo/봉봉/댜니/하리보/사랑둥이/녹차라떼/요거트/달달이/주계열성/됴루/토끼/구구가가/완두콩/니니야/종인아사랑해/우유퐁당/니나니나/거뉴경/똥백현/로리나/이레네/아이스티/이슬비/고답니니/텔라/종종걸음/윤슬/짱구여친/해피/온도니/찬샤/닻별/은하수/구글조닌/바닐라라떼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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