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noia 01
W. prisJ
"종인아."
K예술고등학교의 입학식을 화려하게 감상한 경수는 종인부터 찾았다. 경수는 무대위에서 선배들의 연주를 보자 실기 시험날, 불안감에 휩싸여 온 몸을 달달 떨던 저가 떠올랐다. 경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신입생 대표로 입시곡을 멋지게 연주해된 종인의 모습도 감탄사를 내뱉을만큼 그들의 선배들에도 뒤지지 않았다. 사랑하던 피아노.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택한 바이올린. 저에게 있어서 김종인과 바이올린은 애증이었다. 또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김종인, 도경수. 피아노와 바이올린. 종인은 느릿하게 걷다 경수를 향해 뒤를 돌았다. 환하게 웃으며 달음박질하는 경수가 위태로워 보였다. 종인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경수를 기다렸다.
"수업 끝나고 너네 반으로 갈게."
"그래."
둘은 같은 음악과였으나 K예고에서 1반은 관현악 전공, 2반은 피아노와 성악 전공으로 나뉘어 있어 둘은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학교부터 학원까지 온 종일 붙어있던 경수는 종인이 보보이지 않는 몇날 몇시간이 고역이었다. 종인의 뒷모습을 쫓고 종인의 유려한 손놀림을 눈으로 박아넣어야만 안심이 됐다. 이건 아주 오래된 경수의 고질병같은 징크스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않았지만 경수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피아노 선율을 듣곤 했다. 종인이 보이지 않을 때에만. 경수는 그것을 종인에게 집착하는 저의 정신착란증세라며 가벼이 칭했지만 경수가 기쁠때나 슬플때나 우울할때도, 종인이 옆에 없는 시간, 날이면 언제나 피아노 선율이 들려와 경수를 마치 종인이 되어주며 위로했다.
내가 할수 없었던 피아노. 그 위에서 춤추는 너의 손. 갖고 싶어. 종인아.
경수는 오늘도 패배감을 맛봐야만 했다. 이런 경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은 경수의 저릿한 발걸음에 맞춰 음악관으로 향했다.
.
"자, 1반 학생들. 첫 실기시간이다. 만나서 반갑다. 인사 한번 해볼까? 임시반장?"
"차롓, 경례,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학생들은 정자세로 자신들의 전공 선생님께 경의를 표했다. 관현악 전공들이 각기 흩어져 전공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경수를 포함해 10명의 학생들만 남아 아늑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바이올린을 시작하면서 오로히 종인의 곁에서 종인을 따라가기위해 행해왔기 때문에 경수는 사실 바이올린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 못했다. 타 학생들의 열의열성가득한 눈빛과 다르게 경수는 공허한 눈빛을 보였다.
"그럼. 어떻게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됬는지,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거기 시끄러운 학생. 이름이?"
"네,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그래, 변백현군. 먼저 발표해봐."
백현은 어깨위에 걸치고 있던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는 원형구도로 되어있는 전공실 무대위로 섰다. 장난끼가득한 목소리로 아아, 하며 목을 풀더니 이내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실기 선생은 그런 백현의 모습에 깐깐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경수를 제외한 모두 장난끼가득한 모습이었다.
"전, 7살때부터 바이올린을 켰구요. 뭐 동기는 단순히 좋아서요. 잘하는 것도 이것밖에없고. 어렸을때 해 왔던거라 익숙하고. 또..."
백현은 손가락으로 뺨을 갈짝거리며 긁적였다. 멋쩍은 듯 웃으며 실기 선생을 바라봤다. 11명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자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백현의 눈은 올곧게 바이올린을 향해 있었고 경수는 느낄 수 있었다. 백현이라는 아이의 바이올린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그리고 처음으로 종인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가 부러웠다.
"바이올린을 킬때면 살아있는거 같아요. 아, 좀 쪽팔린데. 바이올린은 내 분신 같달까..."
"좋은 자세야. 변백현군. 특별히 아까 떠든거 감점 안해주지. 학교에 입학한 동기는?"
"뭐 여기가 음악 쪽으로는 최고라면서요. 그래서 그냥 별 생각없이 넣었는데."
"영혼이 없어, 다시 감점."
백현은 머리를 쥐어싸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럽게 다시 내려왔다. 경수의 옆자리에 앉은 백현은 바이올린을 들고 어깨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경수는 그런 백현과 바이올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실기 선생은 백현의 옆에 있던 경수를 향해 '다음'이라는 제스쳐를 취해왔고 하는 수 없는 경수도 무대위로 올라갔다. 무슨 말을 하지. 난 딱히 동기도 없고, 그저 김종인....
"이름이? 도경수? 그래, 넌 어떤 동기로?"
"......"
경수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바이올린을 내팽겨친 적은 있어도 애정 어린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고 종인에게 빼앗긴 학원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몸무림이었을 뿐. 바이올린은 저에게 그저 수단의 일종이었다. 절대로 경수에게 바이올린이란 분신이란 존재 인 적도 살아있음을 느낀 적도, 열정을 가진 적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종인과 함께해온 세월만큼 경수는 저의 마음을 모호하게 판단해왔다. 복잡하고 얽기고 섥힌 실타래같은 감정들. 바이올린과 종인을 향한 경수의 무수한 감정들은 몇 마디로는 풀 수 없을만큼 단단한 것은 확실했다.
"따라가고 싶어서요."
"뭐? 누굴?"
"제가 가장 ...하는 사람이요."
실기 선생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연신 저었다. 경수의 눈빛은 읽히지 않았다. 백현과 다른 학생들은 바이올린에 있어서는 경수와 자신들의 이질감을 느꼈다.
"싫어..하지만 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요. 저에게 바이올린은 사랑을 받기위한 수단 중 하나에요."
"입학 동기는?"
"그 사람을 따라가야 하니까요."
경수는 그 말을 끝으로 무대 밖으로 튀어나오듯이 나왔다. 실기 선생도 더 이상 물을 말이 없는지 다음 학생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을 뿐이었다. 경수는 굳은 표정으로 손툽을 물어뜯었다. 너무 세세하게 말했나. 굳이 저런 말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경수는 후회했다. 백현은 그런 경수를 바라보며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집어넣고 송진을 꺼내 현을 문질렀다. 확실히 백현의 눈에는 경수는 친해지고 싶은 과 동기이나 어딘지 모를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자기소개는 이쯤하고. K예고 음악과라면 당연히 예상했겠지?"
"드디어!"
"와! K예고 들어온거 실감난다. 그치?"
학생들은 왁자지껄 떠들었다. 백현은 경수에게 말을 걸었다. 경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K예술고는 음악으로는 대한민국 모든 예술고등학교 중 탑을 차지할 만큼 유명했는데 그 유명함의 중심에는 혹독한 스파르타 식의 교육이 뒷받침했었다. 또 K예술고 만의 전통으로 한달에 2번 향상 (실기발표회) 을 개최하여 음악과 전교생 80명 정원을 그 자리에서 등수를 매겼다. 이런 잔혹한 방식의 교육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국내외 콩쿠르나 각종 해외 매스컴을 탄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위신으로 인정받은 K예술고의 전통적인 교육이었다.
"그래. 음악과라면 피할 수 없는 향상이지."
경수는 주먹을 꽉 지었다. 분명히 종인도 향상 주제에 대해 통보를 받았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전통대로 향상은 한달에 2번. 2주의 한번씩이 오페라홀에서 열릴거고. 향상 주제는 매번 바뀐다. 먼저 너희들은 1학년이고 오케스트라라면 가장 중요한..."
"협동심?"
"그래, 변군. 협동심을 기르기위해 2반과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할거야. 2인 1조고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클라리넷은 피아노와 함께, 나머지 악기들은 성악 전공들이랑 맞춘다."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함께 맞춘다. 경수는 알 수 없지만 피아노를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이고 두근거렸다. 김종인, 김종인, 김종인.
"쌤. 피아노과에 김종인 있잖아요."
"아, 맞다. 우리 학교 입학했다고 했지?"
"걔랑 같은 조 되면 당연 1등 아니에요?"
"쌤이 아까도 말했잖아. 협동심을 보는 거라고. 김종인과 같은 조인 얘가 못하면 말짱 꽝이지."
경수의 옆에 있던 백현은 자신의 옆에서 김종인을 들먹이는 종대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종대는 그런 백현의 뒷목을 사정없이 찌르며 깔깔댔다. 경수는 그런 둘을 지긋이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따끔대는 허벅지에 백현을 쥐어박고 종대는 실기 선생에게 다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김종인이랑 콜라보하는 얘는 누구에요?"
"어디보자, 명단이..."
"누군데요, 누군데요?"
"바이올린과네. 경수? 도경수."
경수는 눈을 감았다. 어릴 적 악랄하게 경수를 물든 자아가 다시 찾아와 경수의 심장을 두들이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식되어 가 손이 덜덜 떨렸다. 입술을 깨물고는 바이올린 케이스는 들어올렸다. 침착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경수는 두터운 가면을 썼다.
"선발 방식이 뭐였어요?"
"2반이 1교시 먼저 향상 주제를 들었어, 직접 파트너를 고른 걸로 알고 있는데? 2반은 피아노랑 성악이니까 본인 전공에 맞게끔 관현악기를 선택하라고 하는 취지이셨나봐."
"그럼 김종인이..."
경수는 뒷말을 아꼈다. 곧 수업 종이 치고 백현과 종대는 케이스를 힘차게 짊어지고 실기실을 나갔다. 백현은 홀로 느릿하게 케이스를 정리하는 경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경수를 굳이 붙잡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전공 선생님은 어때?"
종인이 미리 반 앞에서 경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수는 그런 종인의 질문에 답도 하지 않은 채로, 덩그러니 피아노 한 대만 놓여있는 종인의 교내 개인 연습실로 향했다. 종인의 말없이 경수의 뒤를 쫓았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경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피아노 위로 두고 종인에게 몸을 틀어 허리를 감싸안았다. 따뜻한 품내음이 나는 종인의 품 안에서 경수는 대조적으로 표정을 냉랭하게 굳혔다. 종인의 손바닥이 경수의 어깨와 등허리에 닿았고 살살 쓰다듬었다.
"왜 나랑 향상 한다고 했어?"
"줄곧 실기발표회는 함께 해왔으니까."
종인은 경수의 좁다란 어깨위로 얼굴을 댔다. 부들부들한 경수의 뒷머리를 정리해주며 좀 더 꽉 끌어안아 당겼다. 경수도 눈을 감으며 종인의 허리를 좀 더 끌어당겼다.
"여전하구나. 어리광은."
"그냥."
경수는 더 두꺼운 가면을 찾아 썼다. 억지로 짜낸 가면이긴 하나 종인에게는 더활나이없을 만큼 완벽한 가면을. 종인은 자그마한 체구의 경수를 품으며 슬풋 웃었다.
"향상때 무슨 곡 할까?"
"세헤라자데. 림스키 코르사코프 걸로."
"어째서? 편곡해야할텐데."
"어차피 바이올린과 피아노만으로는 연주되는 곡이 있나, 뭐."
"그건 그래."
경수에게 있어서 종인은 백현에게 있어서 바이올린처럼 분신같은 존재였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삶의 주체였다. 눈을 뜨니 옆에는 완벽한 음악을 구사하는 종인이 있었고 그런 종인을 사랑했으며 증오했다. 경수의 모든 음악적 재능을 종인에게 모두 빼앗겨버린 듯한 박탈감에 언제나 시달렸고 사랑을 받기 위해 귀를 여니 매혹적인 피아노의 음색으로 저를 다독여주는 종인이 있어 행복감에 또 시달려야만 했다. 종인이 미치도록 미웠지만 사랑했다. 경수는 눈을 뜨며 허공을 바라봤다. 허한 눈에는 담겨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종인에게 저의 몸뚱어리를 맡긴채로 입발린 사랑을 속삭이는 저가 되면 됐다. 사랑을 버리면 음악을 얻을 수 있다. 이 때의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헤라자데의 멜로디는 계속 반복되잖아. 구절마다 음들이 덧입혀지면서."
"근데?"
"종인이 네가 예전에 나한테 쳐줬던거 기억안나? 우리 초등학생때."
"아. 기억나지."
"다시 한번 그때처럼 너랑 듀엣하고 싶어. 그때 우리 실수도 안했잖아. 이번엔 악기가 다르지만."
경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종인의 심장 박동소리를 천천히 감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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