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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써머
Goodbye Summer
이동혁

/ deep.





 녀석에게, 그러니까 이동혁에게 젖어드는 건 알게 모르게 젖어들었다. 마치 봄날의 가랑비처럼. 젖어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우산도 쓰지 않고 있다가 함뿍 옷을 적셔버린 것이다. 



*



 이동혁은 아빠 친구 아들이다. 이동혁의 아빠와 우리 아빠는… 틈만 나면 동네에서 술 한잔 하자며 서로를 불러댄다. 대학교때부터 이어진 우정을 술로 채워가며 돈독히 다지는 건지 뭔지. 그 우정 덕에 나와 이동혁은 어릴때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때까지. 아빠들의 우정에 우연이 겹쳐진건지 나와 그 녀석은 매번 같은 학교를 다녔더랬다. 신기한게 또 같은 반은 된 적이 별로 없다. 있어봤자 중학교 2학년 때 한 번 정도? 그래, 그렇게 각자 다른 반에 배정되어도 녀석은 하굣길에 꼬박꼬박 날 데리러 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뒷문 앞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서 있는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 자세는 변함이 없는데 … 이동혁을 둘러싼 시선과 목소리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녀석은 알아채긴 했을까? 자신의 책상 서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간식거리들을. 이렇게 인기가 많아지는 건 인소에나 나오는 설정 아닌가. 
분명 초등학교때만 하더라도 녀석이 나보다 작았는데. 지금-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나보다 커진지 오래다. 중학교 2학년때까진 이동혁이 나를 올려다보곤 했는데 이젠 내가 녀석을 올려다봐야 했다. 그리고 이동혁은 그 사실이 꽤나 신이 나는 모양인지 시도때도없이 나의 작은 키를 놀렸다. 십몇년간 이동혁을 보며 터득한 법칙 첫번째. 이동혁은 장난끼가 존나게 많다. 아,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그는 언제 이렇게 작아졌냐며 내 정수리를 장난 식으로 꾹꾹 눌러댔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에 울상을 짓던 나는 녀석에게 하지 말라며 성질을 냈더랬다. 사소한 다툼은 잦았어도 이동혁의 장난때문에 화낸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을거다 아마. 야. 내 키에 니가 뭘 보태줬어? 칼슘을 보태줬어? 내 사자후에 1차로 놀라고, 키 작은게 죄냐며 기어코 엉엉 울며 가버린 나에 2차로 놀란 녀석은 다음날, 그니까 오늘 쭈볏대며 나에게 와선 바나나 우유 하나를 내밀었다.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개미마냥,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야아아. 늘어지는 말꼬리는 덤이었다.


“야아, 화 풀어.”

“…꺼져.”

“미안하다니까. 내가 지인짜, 완전 잘못했어.”



 미안해. 어? 이제 키 가지고 안놀릴게. 약속. 그러면서 바나나 '우유'를 내미는건 싸우자는건가. 눈을 세모꼴로 만들고 녀석을 흘기자 너 이거 좋아하잖아…, 라고 이동혁은 말꼬리를 뭉뚱그린다. 이렇게 풀 죽은 이동혁 보는것도 오랜만인데. 화는 진즉에 풀렸는데 괜시리 또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녀석의 눈길과 손을 피해 애꿎은 노트에다 이리저리 선을 그었다. 두번째, 이동혁은 자칭 왕자님 타칭 똥강아지다. 타칭은 그래 내가 붙여줬다. 똥강아지. 신나게 까불 때는 또 언제고 놀아주지 않으면 혼자 시무룩해선 내 눈치 보기 바빴다. 화 아직 안풀렸어? 야아. 김여주. 화 풀어라아. 세번째, 궁지에 몰리면 말끝을 늘이며 이동혁은 애교를 부린다. 이 애교도 겪다보니까 항마력은 갈수록 딸리고, 면역력은 갈수록 높아지더라. 



“미안해애, 엉? 화 풀어줘어어. 귀여워서 그랬어.”



 아, 이런 말에는 통 면역력도, 항마력도 없는데… 그만 귀 끝이 화 붉어지고 말았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 가. 손을 휘적대자 녀석은 자신의 자리로 향할 참인지 우유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난다. 자기 자리로 가려나, 싶었는데 녀석은 교실 문을 열었다. 곧 있을 점심시간 방송을 준비한답시고 방송실로 가는 것임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3학년 초라 그런지 쉬는 시간의 교실은 공부하는 놈 삼분의 일, 노는 놈 삼분의 일, 자는 놈 삼분의 일로 정갈하게 나뉘어져있었다. 복도의 분위기도. 비슷비슷했다. 한마디로 어수선 그 자체. 이동혁은 그 어수선한 복도로 나서더니 문을 닫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복도의 소음이 교실로 숨어들었다가 사라진다. 집중이 조금 안되는게 흠이지만 뭐…6월달 전까지는 분위기가 잡히지 않을까, 싶어 모의고사 문제집 옆에 놓아두었던 샤프를 집어들었다. 2018학년도 6월 모의고사는 다 풀었으니까, 이제 9월 모의고사를 풀 차례였다. 시간을 설정해 놓으려 책상 끄트머리에 놓았던 스탑워치를 집어들 때였다. 뚱-하니 놓여있는 바나나 우유하나가 시선을 훅 잡아챘다. 아, 이동혁 진짜. 힘없는 뒷모습으로 나가던 것이 눈에 선연하던 찰나에 불과 몇분 전 녀석이 던진 말이 머리 속을 크게도 차지했다.



‘귀여워서 그랬어.’



 젠장. 그 말이 계속 떠오를 건 또 뭐야. 항아리 모양 우유 옆에 곱게 놓여져있는 빨대의 비닐을 물어 뜯었다.




*




 아. 말하는걸 까먹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이동혁하고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녀석의 인기를 더 절절히 체감할수 있었다. 2학년 때까지는 알음알음 주워들어 알고 있었다만. 아 그리고 까먹은 사실 하나 더. 이동혁은 시티고 방송부다. 간드러지는 목소리 때문인지 뭔지 고등학교 입학하고 불과 일주일 뒤에 본 동아리 면접에서 말 한 마디 했다고 철썩같이 붙어버렸다. 이동혁 말로는 멘트 하나 치자마자 기립박수 쳤다고. 뻥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학교는 방송부 군기가 빡세다고들 하는데 우리학교 방송부는 그런게 없는지 이동혁은 1학년때도, 2학년때도 선배들에게 형 누나 하면서 잘 따랐다. 그 덕인지 선배들이 졸업하자마자 방송부 아나운서 자리도 떡 맡아버렸고. 이젠 방송부 고인물이 되어버린 걔 하나 보고 방송부 들어가겠다는 1,2학년 후배들이 한 둘이 아니던데. 인기가 어지간히 많나, 싶었다. 이름이 사방에 알려질 수록 이동혁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찔렀다. 더군다나 축제를 할 때면 사회자까지 맡아서 다른 학교에까지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니 방송부 걔, 라며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오르는건 다반사였다. 시티고 방송부 걔 여친 있나요???? 주인을 숨긴 물음표가 끝도없이 붙었다. 이동혁은 그걸 보고 픽 웃을 뿐 아무 답도 남기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들 좋으실까. 이동혁이. 방송부장 이동혁이. 그렇게 좋을까. 글쎄, 나는 낄 콩깍지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스탑워치 옆에 두었던 폰 화면이 켜졌다. 톡이 왔다는 배너 하나를 남겼다. 발신인은 이동혁. 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새끼 이거 또 대본 두고 갔나보네. 영어듣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다급한걸 보면.



[이동혁] 야야

[이동혁] 나 대본 좀 가져다줘

[이동혁] 까먹었음 들고오는거

ㅅㄹ

[이동혁] 아 왜ㅠㅠㅠㅠㅠ나 그거 없으면 방송 못 해

잘 하잖아 없어도

[이동혁] ㄴㄴ 못해

[이동혁] 갖다주면 매점에서 만두 사드림



 만두에 환장하는건 또 어찌알고^^…. 하긴 볼장 안볼장 다 본 사이에 식성을 모를까. 영어듣기 시작하는 8시 20분까지는 아직 20분이나 남았다. 등교한 뒤로 귀찮아서 움직이기도 싫었는데 만두란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뒤에 앉아있던 나재민이 의자 끌리는 소리에 문제집을 풀다말고 물어온다. 아, 나 방송실. 이동혁 얘 또 대본 두고 갔댄다. 아아, 다녀와. 어엉. 이동혁의 자리에 당도하자 나를 반기는 건 떡하니 펼쳐진 대본 몇 장이다. 급하긴 급했나봐. 가방 던지고 부리나케 뛰쳐나가더니. 맨날 만나는 장소에서 마주친, 넥타이마저 삐뚤어져 숨을 헉헉 몰아쉬던 오늘 아침의 이동혁이 떠올라 흩어진 대본을 주섬주섬 손에 쥐었다.

 이동혁이 바나나 우유 주면서 사과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끝자락이었다. 패딩을 걸쳐야 따뜻하던 날씨는 많이도 풀려 교복 위에 맨투맨이나 후드티, 집업을 입어도 쌀쌀하지 않았다. 매말라있던 나무들의 끝에는 꽃봉오리가 툭툭 불거져있었다. 조금 있으면 꽃피겠다. 구름 다리를 건너다 들어온 바깥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 방송실로 향했다. 작은 창 하나 박혀있는 두꺼운 문 앞에 서서 발 뒤꿈치를 힘껏 들었다. 보자, 우리 똥강아지 어디있나.



… 저기있네.



 문을 두드려봤자 두꺼운 문을 뚫고 그 소리가 들릴 리는 없으니 이동혁이 들을 리도 없었다. 그냥 톡으로 불러야 하나. 그런데 저 표정 왜저렇게 초면이지. 처음 보는 녀석의 정색-아니 무표정이라 톡 보낼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그 옆얼굴만 보았다. 쟤가 저렇게 생겼었나. 게다가 저 니트는 또 뭔지. 교복 셔츠는 어디다 내버려두고. 교칙 위반인데… 솔직히 잘 어울렸다. 아, 이러면 안돼. 톡 보내자 톡. 쟤는 급하다며. 안급한가봐? 세상 잠잠한 무표정에 후드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폰을 꺼내어 열심히 타자를 두드렸다. 야. 대본 왔다 대본. 빨리 나와. 이동혁 앞에 놓여져 있던 폰이 알림을 둥둥 띄웠다. 녀석이 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NCT/이동혁] 굿바이 써머 | 인스티즈

[이동혁] ㅇㅋ 나감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는다. 쟤 내 톡 볼 때 저런 표정이야? 뭐야. 저 표정도 존나 초면인데요…. 손 안에서 짧게 울리는 진동에 화면을 내려다보니 단조로운 메시지 하나가 와있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NCT/이동혁] 굿바이 써머 | 인스티즈

“야 너 머리가 왜 그래….”



 급하게 왔어? 머리 정리는 하고 왔어야지. 부시시해가지고. 들고 온 후드티를 입고 나서 머리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문을 열어재끼자마자 이동혁이 웃음을 터뜨린 거겠지. 내 부시시한 꼴이 퍽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허리 굽혀 웃던 이동혁이 짐짓 손을 올려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준다. 그런데 이상하지. 평소같았으면 해도 내가 한다며 있는대로 성질을 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 손길을 받게 되는거다. 와닿는 손길은 부드럽고- 어딘가 모르게 다정했다. 그래서, 아니…. 그 때 그 바나나 우유. 그걸 주면서 했던 녀석의 말이 또다시 뚜둥, 하고 넷플릭스 광고처럼 떠오른거다. 순식간에.  '귀여워서 그랬어.'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건 순식간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도,



 이동혁한테 빠져버리는 것도, 열아홉 꽃 필 무렵. 불알친구 상대로 한 짝사랑이 시작된 것도, 전부 다. 순식간이었다.





/

방송부 이동혁이 보고 싶어서 쓴 글

담편은......작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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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오마이갓 작가님 대박 저는 항상 이런 고등학생 로맨스를 꿈 꿨지만 성인인 지금도 저 꿈은 그냥 꿈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네요ㅠㅠㅠㅠ
4년 전
독자3
아아악 작가님 넘 조아여...역시 학원물찰떡 동혀기..항상 글 잘읽고있어욤
4년 전
독자4
진짜 이동혁 진짜 사랑해... 작가님도 온맘다해 사랑합니다...
4년 전
독자5
작가님 네오시팁니다.. 꼭 동혁이 같은 선배가 있었을것만 같은ㅠㅠㅠㅠㅠㅠㅠㅠ방송부 이동혁 취향저격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6
기억조작남 이햇쨘...고등학교 방송부며 아나운서며 너무 잘 어울려요ㅠㅠ
4년 전
독자7
하. 이거다
4년 전
독자8
오마이갓.... 여중여고 나온 독자 설레서 죽어요 ㅠㅠㅜ
4년 전
독자9
작가님 저 진짜 항상 잘 보구 이써요 항상 작가님 옆에 stay하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편할 때 오세여 💚 작가님은 저의 영웅(kick it)
4년 전
독자10
고등학교 방송부 이동혁이라니 사랑합니다💚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게욧ㅠㅠ
4년 전
비회원80.9
선생님 사랑합니다 ㅜㅜㅜ 후속편 제발 주세요 사랑해요 ㅜㅜㅜ
4년 전
독자11
작가님...역시 제사랑이십니다ㅠㅠ
4년 전
독자12
와 세상에 ㅠㅠㅠㅠㅠ저 여중여고였는데 왜 첫사랑으로 동혁이 있는것같죠 ㅋㅋㅋㅋㅋㅋ첫사랑조작남이네요 ㅠㅠㅠㅠ세상에 ㅠㅠ
4년 전
비회원134.190
와 대박 작가님 너무 좋아요 진짜 동혁이랑 찰떡이고 자기 전에 설레네요 진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4년 전
독자13
아니 .. 방송부 이동혁 .... 😇🔫 작가님 잘 읽고 있습니당 ㅎㅎㅎ 후속편 .. 기다릴게요 ㅎㅎㅎㅎㅎ 💚
4년 전
비회원14.69
굿바이 써머 틀고 봤는데 세상에 이게 뭐야 동혁이랑 같이 졸업했었나? 하는 생각한 과몰입 인간이 되어버렸어요ㅠㅠ💚💚
4년 전
독자14
4편보고 역주행하고 있어요..슨샌님 자주 찾아와주세여 젭알요...스른흡니다💚
3년 전
독자15
심쿵오져요ㅜㅜ
3년 전
독자16
하 자까님 뒤늦게 시즈니가 된 1인 새벽에 이런글을 접하다니 그저 감동입니다 ...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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